구름 없는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황금연휴의 끝자락이었던 5월 6일 반포 한강공원에서는 가족이나 연인과 봄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긴 했지만 대부분 텐트와 돗자리를 펴놓고 누워 따스한 햇살을 즐겼다.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먹거나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반면 한강에서 바라본 63빌딩은 미세먼지로 뿌옇게 보여 화창한 날씨와는 대조적이었다. 맞은편에 위치한 남산의 경치도 탁한 모습이었다.

▲미세먼지가 올해 들어 최고치를 기록한 5월 6일. 이태원에 위치한 P카페의 테라스에는 식사와 함께 야경을 즐기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같은 날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P카페. 남산 바로 밑에 위치한 이곳은 이태원과 남산 쪽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인기가 많다. 가게건물 옥상에 위치한 야외 테라스 자리는 음식과 음료를 즐기는 손님들로 만석이었다. 야외 자리를 잡지 못한 일행 5팀 정도가 실내에서 ‘웨이팅’하고 있었다. 미세먼지 경보가 무색했다. 저녁 시간대 용산구의 미세먼지 수치는 약 90㎍/㎥로 나쁨 수준이었다. 연휴를 즐기러 왔다는 직장인 정우진 씨(26)는 “미세먼지는 눈에 안 보이는데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야경은 눈에 보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날은 올해 들어 공기 질이 가장 심각한 날이었다. 서울의 미세먼지(PM10) 수치는 일평균 199㎍/㎥로 미세먼지 나쁨 수준인 80㎍/㎥을 훌쩍 뛰어 넘었다. 최고값은 423㎍/㎥을 기록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서울 25개 구의 미세먼지 수치는 대부분의 시간대에서 150~250㎍/㎥ 사이에 머물렀다.
미세먼지의 위험을 경고하는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시민들은 미세먼지 대처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마스크를 매번 구매하고 챙겨야 하는 ‘귀차니즘’을 극복할 만큼 미세먼지의 인체 유해성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농도는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미국 환경보건단체 보건영향연구소(HEI)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평균 초미세먼지(PM2.5)는 29㎍/㎥(2015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평균 15μg/㎥의 두 배 수준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평균 미세먼지(PM10)는 2012년 이후 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봄철엔 중국발 황사가 더해지면 미세먼지 나쁨 기준인 80㎍/㎥을 훌쩍 넘는 날이 많다. 미세먼지 나쁨 경보가 일상처럼 익숙해진 이유다.

미세먼지? 그거 먹는 건가요?
많은 사람들은 매번 마스크를 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한 번도 마스크를 쓴 적 없다는 박로명 씨(28)는 “미세먼지라는 게 공기 중에 떠다니는 건데 항상 마스크 쓰고 다닌다고 예방이 될 것 같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 밖에도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는 게 유난떠는 것 같아 쓰기 꺼려지기도 하고, 마스크를 사야하는 비용도 부담스럽다고 얘기한다. 여성들은 마스크를 쓰고 나면 화장이 지워져 잘 쓰지 않는 경우도 있다.

▲미세먼지 매우 나쁨 경보가 내렸지만 사람들은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다. 사진 속에 보이는 행인 30여명 중 마스크를 쓴 사람은 불과 5명뿐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음식을 파는 식당과 카페들은 대문을 열고 영업하는 경우가 있다. 5월 7일 오후 2시 음식점, 카페, 화장품 가게가 밀집한 서울 북촌로와 삼청로. 낮 시간대(오전11시부터 오후 4시) 종로구 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107μg/㎥으로 나쁨 수준이었지만 차도에 길게 늘어선 가게 대부분은 대문이 열려 있었다.
이렇게 사람들 귀찮게 하는 마스크. 우리나라에 미세먼지가 많은 건 알지만 꼭 써야 하는 걸까. 미세먼지 심한 날에 가게 문을 열어 놔도 괜찮은 걸까. 미세먼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대기오염역학을 연구 분야로 개척해온 서울대 보건대학원 김호 교수를 만나 얘기를 들어 봤다.

Q. 미세먼지가 인체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나
A. 호흡기, 심혈관계 말고도 피부병, 눈병, 콧병과도 관련이 있다. 최근에는 신경계 질환과 관련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미세먼지 내에 중금속이 신경계 부작용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미세먼지에 취약한 노인들은 대기오염에 노출되면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계 질환의 발생확률이 높다. 어린이의 경우 소아비만, 아토피, 천식뿐만 아니라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지능지수(IQ) 저하와 관련이 있다고 나타났다.
또한 우울증, 자살과 관련 있다는 연구도 있다. 임신부들은 조산, 저체중아 발생률이 높아진다. 저체중아의 경우 한 개인의 평생 건강을 좌우하는 요인이다. 현재까지 연구에 따르면 미세먼지는 현대 사회의 거의 대부분 질환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결과들은 보이는 현상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파악한 기전 연구일 뿐이다. 미세먼지가 오랫동안 서서히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거라 연구가 어렵지만 좀 더 과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상태에서는 이정도 질환과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결과는 평소 질환을 갖고 있던 사람의 기대여명 감소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얘기지, 생판 건강하던 사람이 미세먼지 수치가 올라간 것 때문에 아프거나 죽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Q. 미세먼지 나쁨 기준인 80㎍/㎥을 넘으면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할까
A. 미세먼지 수치가 81이면 굉장히 위험하고 79면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미세먼지의 위험성은 비례적으로 증가한다. 즉 선형(線型)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한 기준점을 중심으로 행동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미세먼지의 인체 유해성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미세먼지에 민감한 사람은 낮은 수치에도 위험하고 건강한 사람들은 조금 높아도 큰 지장이 없다. 자신이 미세먼지 취약계층이면 본인이 현재 미세먼지 기준보다 엄격히 생각해서 마스크를 쓰면 된다.
노인, 어린이가 미세먼지 취약계층이다. 호흡기, 심혈관계 질환을 앓고 있는 만성질환자도 포함된다. 반면 젊은 층은 몸의 저항성이 크기 때문에 실제로 미세먼지가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젊은 사람들 중에서 민감한 사람은 조심하면 된다. 예를 들어 아토피가 있거나 호흡기가 약한 사람이다. 
직업 특성상 미세먼지에 자주 노출되는 사람들도 민감 군에 포함된다. 건설 노동자나 교통경찰, 버스 운전자 등은 조심해야 한다. 분진이 많이 나오는 공사장, 자동차가 매연을 뿜는 길거리는 미세먼지 특히 많이 발생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평균 미세먼지 수치가 50㎍/㎥이다.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보통 20대부터 50대까지 젊고 건강한 사람의 경우 100㎍/㎥까지는 활동해도 괜찮다 생각한다. 바깥 활동을 줄임으로써 얻는 피해가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Q. 미세먼지 심한데도 가게 문 열어놔도 괜찮나
A.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미세먼지 수치 100㎍/㎥ 정도는 환기를 하는 게 낫다고 본다. 200㎍/㎥가 된다면 고민이 필요하다. 300㎍/㎥의 경우는 닫는 게 낫다고 본다. 물론 일반적으로 건강한 사람을 기준으로 말한 주관적 생각이다. 취약계층은 이보다 더 민감한 기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음식점, 카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다중이용시설에 대한 미세먼지 대처 가이드라인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가이드라인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면 어린이와 노인, 만성병 질환자와 같은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기준을 먼저 만들어줘야 한다. 예를 들어 유치원, 어린이집, 양로원, 요양병원 등에서는 좀 더 엄격한 미세먼지 수치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지하철 승강장 내의 미세먼지 수치는 100㎍/㎥을 넘는다. 전동차 바퀴가 마모될 때 미세먼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지하철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젊은 사람이라 불평이 좀 적은 것뿐이다. 지하철 같은 다중이용시설에서도 구체화된 미세먼지 기준이 필요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 취약집단이 많이 다니는 곳이 어딘지와 같은 장소 기준의 논의도 필요하다. 그런 장소는 주민들이 잘 안다. 취약계층, 장소, 시간대 등으로 세분화된 미세먼지 가이드라인을 주민과 정부, 학계가 모두 모여 논의가 진전되어야 한다.

김호 교수의 말을 종합해보면 기자를 비롯해 젊고 건강한 사람들은 마스크를 안 써도 큰 무리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건강해도 미세먼지 수치가 나쁨 기준 초과로 치솟을 때는 마스크를 써주는 게 좋다. 노인, 어린이, 임신부, 미세먼지에 노출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 등 미세먼지 취약계층은 미세먼지가 나쁨 수치가 아닐 때도 수시로 써주는 게 좋다.

김 교수는 사전주의의 원칙(precautional)이 미세먼지 문제에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주의는 위험 가능성이 조금만 있어도 과도할 정도로 선제적 조치를 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미세먼지의 인체 유해성이 훗날 과학적으로 큰 연관관계가 없다고 규명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피해자가 100명 중 2명이 될지 20명이 될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말한 미세먼지 취약계층에 대한 가이드라인 또한 좀 더 엄격하고 세분화된 기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사전예방원칙과 관련이 있는 셈이다. 
매번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고 마스크를 쓰는 일은 번거롭다. 그러나 미세먼지의 유해성이 속 시원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들도 ‘사전예방’하는데 관심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결국 본인의 건강은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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