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퇴진’은 목표가 아닌 공영방송 신뢰 회복의 시작이라는 그들의 외침

“김장겸, 고대영은 물러나라!” 투쟁의 시작 
공영방송의 구성원들이 사장 퇴진을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 중심에는 해직 기자, 현직 기자와 PD를 포함한 공영방송의 구성원들이 있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6월 2일 서울 상암동 MBC 광장 앞에서 ‘김장겸·고영주 퇴진행동, MBC 선언의 날’ 집회를 열었다. 그들은 이 집회에서 김장겸 사장과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즉각적인 퇴진을 촉구했다. 지난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해 170일간의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강지웅, 박성제, 정영하, 최승호 언론인도 참석했다. 

▲ 지난 6월 2일, 시위 시작 20분 전, 노조 구성원들이 검은 풍선을 고정시키고 있다. 적폐청산을 상징하기 위해 마련된 ‘검은 풍선 날리기 이벤트’가 투쟁 직전에 취소되기도 했다. 풍선을 하늘로 날려 보내면 환경에 안 좋다는 내부의 목소리가 있었다고 한다. 행사 이후 검은 풍선들은 참여자들 손에 쥐어지거나, MBC 곳곳에 붙여졌다.

2012년 파업 이후 비제작부서로 발령나 지난 14일까지 편성국 주조실에서 근무하던 김민식 PD는 출근길과 화장실 가는 길에 ‘김장겸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며 페이스북 라이브로 방송하기도 했다.  

“저의 꿈은 인사위원회 올라가는 겁니다. 가서 김장겸 사장님 앞에서 페북(facebook) 라이브하면서 똑같이 한 번 외쳐드리는 겁니다. 왜 그동안. 5년 동안 왜 나에게 일을 시키지 않으셨는지. 5년동안 기자들의 명줄을 잘라놓은 그 이유가 뭔지. 인사위원회에서 부를 때까지 저는 외칠 겁니다.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김 PD는 6월 2일 집회에서 외쳤다. 
MBC는 김PD를 6월 14일부터 대기발령 조치했다. 사측은 “사내에서 사장퇴진의 고성을 수십 차례 외쳐 업무방해 및 직장질서 문란 행위를 했고 이에 대한 소속 부서장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해당 행위를 지속한 사안에 대해 인사위 회부요청이 있었다”라고 징계사유를 설명했다. 
최근 MBC 보도국 기자들은 사내 게시판에 기수별로 릴레이 규탄 성명을 내놓고 있다. 2007년 입사한 조재영 기자는 6월 2일 집회에서 “보도국에서 쫓겨나 입사 후 기자로 산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더 많은 후배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시간이 흘러가고 있고, 그래서 시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공영방송으로서의 MBC의 회복을 촉구했다. 뙤약볕 아래 참여자들은 ‘김장겸 퇴진!’이 적힌 플랜카드로 햇빛을 가리며 발언자들의 말이 끝날 때마다 ‘투쟁’의 구호를 외쳤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 새노조)도 이인호 이사장과 고대영 사장 퇴진을 위한 본격적인 행동에 나섰다. KBS 새노조는 6월 14일 서울 여의도 KBS본관 정현관 앞 계단에서 ‘고대영 퇴진’ 끝장 투쟁 선포식을 열었다. 이날 선포식에는 조합원, 언론노조 MBC‧SBS 본부의 김연국‧윤창현 위원장,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등이 참여했다. 선포식에 앞서 KBS 양대노조와 사내 직능단체들로 구성된 ‘고대영, 이인호 퇴진을 위한 KBS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14일 오전 고 사장과 이 이사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비대위는 서한에서 이 이사장과 고 사장을 향해 KBS의 미래와 새출발을 위해 용퇴해줄 것을 촉구했으며 이를 거부할 경우 KBS는 지금껏 못 본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KBS 성재호 노조위원장은 스토리오브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정중하게 퇴진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고, 다음 주부터 본격적으로 피켓팅과 집회를 통해서 퇴진을 요구할 생각입니다. 필요하다면 저희가 집단적인 운동, 불복종운동도 벌여나갈 계획입니다”라고 설명했다. 

▲ 지난 6월 14일, KBS 새노조 구성원들이 KBS 본관 정현관 앞 계단에 앉아 ‘고대영 사장 퇴진’을 외쳤다. 하얀색 현수막에 ‘고대영과 이인호는 물러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공영방송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KBS가 지난 9년 동안 국민의 방송이 아닌 정권의 방송이라는 비난을 받았다"며 성 위원장은 말했다. 이번 집회를 계기로 지난 정부가 남기고 간 국정농단의 협력자들, 언론농단의 낙하산들을 내보내야 할 절박함을 느낀다고도 했다. 

진정한 목표는 무엇인가 
두 공영방송 노조 구성원들은 단순히 사장교체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허유신 전국언론노조 MBC 본부 홍보국장은 “저희는 최대한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통해 경영진 퇴진과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이 왜 중요한지를 국민 여러분께 알리는 작업을 할 겁니다”라며 목표를 제시했다. 허 국장은 정권교체 이후에도 검찰개혁, 재벌개혁에 밀려 언론개혁이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저희는 국가적으로 큰 혼란과 국정농단이 있었던 게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영방송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싶습니다.”

최승호 PD는 사장 퇴진의 실패는 공영방송의 미래를 생각하면 굉장히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어떻게든 공영방송 내부의 구성원들이 힘을 내서 김장겸 씨를 끌어내야죠. 그렇게 함으로써 국민들이 '아, 공영방송이 아직 살아있구나. 살아있는 언론인들이 아직 있구나'라고 인식하겠죠”라고 설명했다. 최 PD는 이번 기회가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덧붙였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이제 국민들은 공영방송은 늘 정치에 의해서 지배당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 정도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MBC 노조는 법적 수단을 통한 해결도 강구하고 있다. 김연국 MBC 노조본부장은 6월 2일 집회에서 특별근로감독관에 대해 언급했다. MBC 노조는 집회 하루 전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관 신청을 한 바 있다. 특별근로감독은 노동관계법 등을 위반해 노사 간 분규가 나거나 분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큰 사업장을 대상으로 부당노동행위 등이 실제 있었는지를 살피는 제도다. “근로감독관은 사법경찰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법 위반행위에 대해서 사업체를 구속할 수도 있고, 강제 수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적 없었습니다”라고 김 본부장은 목소리를 높였다. 김 본부장은 “촛불은 지난 수년간 누적된 적폐를 청산하고 이제 헌법과 법률을 제대로 작동시키자는 요구였습니다. 저희의 요구는 단순합니다. 법대로 하자는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고용노동부 서울서부지청은 6월 29일부터 MBC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서부지청 보도자료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6월 1일 MBC 노조가 제기한 특별근로감독 신청사유를 검토한 후, 노사간 장기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특별근로감독관의 필요성을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구체적 배경으로 ⓵ 잇따른 중앙노동위원회의 부당노동행위(사측의 노조 지배개입 등) 판정 ⓶ 사측의 노조원에 대한 지속적인 징계(법원의 근로자 승소판결) ⓷ 2012년 이후 지속된 노사분쟁 및 파업의 장기화에 따른 노사갈등 심화를 꼽았다. 서부지청은 특별근로감독 결과 법 위반사항 발견 시에는 관련법과 규정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영방송이 왜 중요한가’라는 물음    
김효실 한겨레 기자는 2014년 여론미디어팀 소속으로 미디어 분야를 담당했고, 한겨레 21에서 2년간 일한 이후 지난 4월부터 미디어 분야를 다시 담당하고 있다. 스토리오브서울과의 인터뷰에서 김 기자는 공영방송 문제의 핵심은 결국 “공영방송의 존재이유”에 대한 고민에 있다고 답했다. “2014년 공영방송의 세월호 보도에 분개하면서 ‘왜 공영방송이 이것밖에 못하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BBC 등의 영미 저널리즘과 비교하면서 느낀건, ‘한국 언론이 국민 눈높이에 비해 많이 부족하구나’였습니다.” 김 기자는 30여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공영방송을 사람 나이로 치면 ‘청년기’라고 칭했다. “저보다도 나이가 어린 거죠. 그때 들었던 생각은 ‘같이 키워나가야겠구나’ 에요.” 그는 시민들이 갖고 싶은 공영방송은 어떤 방송인지, 한국에서 공영방송은 어때야 하는지를 같이 고민할 수 있는 기사를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김 기자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은 공영방송만이 실현할 수 있다고 본다. 100%는 아니더라도 권력에 대해 견제를 가하고,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공공서비스 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기자는 방송저널리즘의 평균 또는 최저선을 지켜주는 역할 역시 공영방송에 있다고 말했다. “최저선을 지켜주는 역할을 왜 JTBC가 해야 하냐는 말이에요. JTBC가 하는 건 칭찬할 일인데, 원래 기준점을 잡아주는 역할은 KBS나 MBC가 해야 한단 말이죠”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차기 정부의 방송 산업 정책 과제와 정부조직 개편방향에 대한 세미나가 열렸다. 지난 3월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미나는 언론공정성실현모임 주최로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도로 개최됐다. 세미나 토론 자리에서 김재영 충남대 교수는 언론 생태계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언론 생태계는 난개발로 진행되고 있다”며 “가장 중요한 것은 공영방송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돼도 정책적으로 수월할 것이다. 온 전력을 다해 공영방송 회복에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국가 공공재를 사용하는 지상파 방송, 특히 지상파 공영방송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증명해야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말처럼 공영방송의 존재이유는 공영방송 구성원들의 노력을 통한 국민들의 신뢰회복이 돼야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세은 강원대 교수 역시 공영방송을 비롯한 지상파 저널리즘의 회복은 ‘가능성’이 아니라 ‘당위성’의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2016년 12월 21일 방송저널리즘 연구회 <방송저널리즘의 공정성 복원과 개선 방안> 세미나에서 김 교수는 “지상파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여전하다. 비난이 있다는 것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다양한 의견이 검증, 교환되는 큰 장이 필요하고, 그 역할을 지상파가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김 교수는 언론에 대한 신뢰와는 별개로 한국 저널리즘 역사에서 지금처럼 언론이 존재감을 과시하는 때는 없다고 언급했다. “‘회복’의 기준점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가 중요하지만, 회복은 가능하며 가능해야 한다. 시민들이 ‘취재하는 존재’로서 언론의 가치를 체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취재력을 복원하는 것이다. 구조와 관행의 개선이 필요하다.”

허유신 MBC 노조 홍보국장은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느슨해졌던 언론의 감시망이 역설적으로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상파의 존재가 그렇게 작은 건 아니었구나’라고 느껴요. 오히려 모바일과 온라인 쪽에서는 여론을 확산시키고 문제제기 할 수 있는 채널이 다양해졌죠. 하지만 아무리 채널과 플랫폼이 다양해져도 수용자한테 닿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KBS, MBC 메인 뉴스를 틀어놓고 휴식을 취하는 그 시간 동안, 흘려보내듯이 듣는 공영방송 뉴스가 설정하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 허 국장의 말처럼 ‘장기간에 걸쳐서 조금씩 투입되는 뉴스가 국민 여론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공영방송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회복이 우선돼야 한다. 그 새로운 시대를 위해 공영방송 기자와 PD들은 다시 외로운 싸움을 시작했다. 이들의 투쟁구호는 ‘사장퇴진’이지만, 궁극적 목표는 국민들의 신뢰회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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