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홍사덕

오래 전의 영화 「사막의 라이온」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독립군에게 양식 얼마간을 보태줬던 젊은 시골 아낙네가 사형을 앞두고 마지막 짧은 기도를 했다.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준 것을 감사드립니다." 얼마나 뭉클해오는 이야기인가.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하고 많은 생명 가운데 우리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늘 기뻐하고 고마워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게다가 그 축복의 정점은 바로 이 글을 읽을 여러분의 나이, 즉 20대이다.  이것은 그 나이의 두 배 이상을 살아본 사람이 경험을 통해 들려주는 얘기니까 의심없이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 따라서 지금부터 들려줄 얘기는 축복의 절정기를 지나는 동안 놓치지 말아야 할 일들에 대한 나의 뉘우침 섞인 권고이기도 하다.

우선 무엇보다도 첫째, 하늘을 찌를 듯한 자존심을 갖자. 내가 끊임없이 그래왔듯이 여러분들도 발을 헛디디거나 잘못인 줄 알면서도 저질러 놓고 보는 후회거리를 만들고 있을 것이다. 겁내지 마라. 사실은 그게 바로 삶이요, 자신이 사람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누구라 할 것 없이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높은 자존심을 갖고 있는 사람은 바로 본디의 모습을 되찾는다. 헛디딘 발을 빼내고 후회한 이후의 결정을 현명한 쪽으로 가져간다.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사람은 실수하거나 운 나쁜 사람이 아니라 자존심을 잃어버린 사람임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나에게는 그런 자존심을 가질 건덕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한두 가지의 빼어난 점을 주신다.  그리고 절대로 한 사람에게 여러가지 장점을 한꺼번에 주시지도 않는다. 자존심이란 자신의 빼어난 점을 마음의 기둥으로 삼는 일이다. 지금 당장 깊이 묵상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존심의 마음기둥을 찾아 세우도록 하라.

둘째, 스스로를 높인 사람은 저절로 다양성을 인정하게 된다. 나와는 다른 가치관, 나와는 다른 의견, 나와는 다른 장점에 대해 넓은 가슴으로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오페라 가수가 댄스 가수를 칭찬하고 여성해방론자가 전업주부의 삶을 "그 역시 아름다울 수 있다"고 말하는 세상. 그런 다양성이 받아 들여지는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얘기다.

거듭 말하거니와 자존심과 다양성은 바늘에 실 따라가듯 하는 관계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짧은 글의 첫머리에 올린 것은 여러분들의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너무도 이와 엇나가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기도하다. 사람이란 관찰과 경험으로 세상을 배우는 법인데, 우리의 관찰과 경험의 대상은 거의 정반대의 길을 가르쳐왔던 것이다.

셋째, 나눔과 사랑에 대해서 기성세대와는 정반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기성세대는 아프리카의 가나보다도 가난하던 나라를 불과 30여 년만에 세계 10위권의 부강한 나라로 키운 공적이 있다. 하지만 워낙 모진 마음으로 그 일을 해내다 보니 나눔과 사랑이라는 사람 본디의 모습을 잃고 말았다. 사람 노릇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입만 열면 '동포', '동포애'를 외치면서도 북한의 동포 수백만이 굶어 죽어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짐승사료로 들여오는 옥수수가 한해에 6백만톤인데, 또 외환위기 한가운데서도 실업 대책비로 10조원을 쓰는 재력이 있는데 2백만톤의 옥수수를 보내지 않아서, 3천 6백억원을 쪼개어 주지 않아서 그 많은 동포가 굶어죽었다. 이게 어디 사람 노릇인가.

여러분들은 달라야 한다. 나눔과 사랑을 생활화하도록 힘쓰자. 내가 살펴본 바로는 20대에 톱 10%에 드는 사람이 40대, 50대가 되었을 때 그대로 나라의 지도층이 된다. 따라서 여러분이 사랑과 나눔을 생활화하면 2020년대의 한반도는 참으로 따뜻한 세상이 될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예언한 대로 20%가 일해서 나머지 80%를 먹여 살리는 상황이 온다 해도 한반도만은 평온할 수 있으리라.

넷째, 유학이 어렵거든 해외 배낭여행이라도 몇 차례쯤 다녀오기 바란다. 이 지구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 미국 록키 산맥 두께의 절반도 안되는 한반도를 동서로 갈라 싸우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온 몸으로 체험해주기 바란다.

여행처럼 좋은 스승은 없다. 여행에서의 묵상처럼 훌륭한 영혼의 영양소는 없다. 친구와 함께 훌쩍 떠나는 거다. 그게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수 있는 소백산 어느 두메마을이라도 좋고 숲 너머로 펼쳐진 노을을 조망할 유럽의 어느 고성이라도 좋다. 여러분들의 특권을 행사하라.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라.

다섯째,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끊임없이 고쳐 나가더라도 자신의 일생에 관한 꿈을 설계하자. 내 경험에 의하면 이런 계획은 백에 열 가지도 제대로 진행되는 게 없다. 하지만 계획이 있다는 것은 항로를 잃은 선장의 손에 여전히 나침반이 쥐어져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 목표가 가물가물하거나 보이지 않는 경우에도 그 목표 쪽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있는 한 주저앉을 일은 없는 것이다.

물론 기우이겠지만 그래도 걱정스러워서 한 마디 덧붙여야겠다. 기성세대의 생활태도에 심각하게 오염된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을 돈이나 재산의 크기로 설계할까 싶어서다. 그러나 조금만 묵상하면 이게 얼마나 바보짓인가를 스스로 깨우칠 수 있을 테니까 굳이 긴 얘기로 끌고 가지는 않겠다.

이 무한한 우주공간, 평균온도로 치면 섭씨 마이너스 2백 70도의 차가운 공간 속에서 우리는 생명현상이 가능한 지구별에 선택되었다. 그리고 그 많은 생명들 가운데 높은 지적활동이 가능한 사람으로 태어났고 여러분들은 지금 그런 축복의 절정기를 누리고 있다. 기뻐하라. 한없이 기뻐하라.

그 축복과 기쁨을 더욱 알차게 만들기 위해 먼저 그 길을 더듬어 온 한 사람이, 더듬어 오면서 유난히 많은 묵상을 했던 한 사람이 가리고 가려서 다섯가지의 도움말을 줬다. 헤아려서 자기 것으로 삼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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