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실 전용 엘리베이터는 따로 없었다. 투명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유리 바깥쪽으로 시청이 훤히 보였다. 로비를 드나드는 서울시 공무원, 기자, 시민들이 점점 작아졌다. 4월 16일, 스토리 오브 서울의 강예슬, 정수연, 문예슬, 김지혜 기자가 박원순 시장 집무실을 찾았다. 인터뷰 전 기자들은 6층 집무실 앞을 둘러봤다. 복도 가득 풀 내음이 났다. 흰색 통로 곳곳에 화분이 있었다. 로즈메리, 카밀러와 같은 허브였다. 집무실 앞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탁구대. 박원순 시장과 서울시 공무원들이 시간 날 때마다 탁구 대결을 벌인다고 한다. 한 편에 정리된 라켓 손잡이는 손때가 묻어 윤이 났다. 탁구대를 둘러싼 책장 덕에 집무실 앞은, 작은 서재 같은 분위기도 났다. 벽 한 쪽에는 기사가 갈무리 돼 있었다. 경향신문의 2016년 10월 25일 자 <'위안부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정부 대신 서울시가 비용지원>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4시 20분, 시장실 문이 열렸다. 업무를 보던 중이었는지 박원순 시장의 소매가 걷어 올려져 있었다. 박 시장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기자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며 악수를 청했다. “미래의 기자님들을 만나게 돼서 반가워요.” 박 시장이 건넨 명함에 넓적부리 도요새가 그려져 있었다. 그와 '짝꿍'을 맺은 멸종위기종이란다. 멸종위기종과 짝꿍 맺기는 박 시장이 희망제작소에 일하던 시절 만들었던 프로젝트 중 하나다. 박 시장이 자리로 기자들을 안내했다. 그는 가장 위쪽의 시장 자리를 비워두고 아래쪽에 자리 잡았다. 기자들이 앉은 의자는 모두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다. 정수연 기자는 인권변호사 조영래가 써 왔던 의자에 앉았다. 강예슬 기자는 자수장 한상수 선생이 자수공방에서 30년간 썼던 의자에, 문예슬 기자는 37년간 젓갈 장사를 해 온 '기부천사' 류양선 할머니의 젓갈 통으로 만든 의자에 앉았다.

▲ (왼쪽부터) 정수연 기자, 박원순 시장, 강예슬 기자, 김지혜 기자, 문예슬 기자

박 시장이 먼저 말을 건넸다. 그는 학교도 제각각 다른 학생들이, 어떻게 <스토리 오브 서울>에 함께 모이게 됐는지 궁금해했다. 미리 받은 기자들의 사진과 얼굴을 맞춰보면서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했다. 매체 이름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다. “스토리 오브 서울은 서울만 다루는 매체인가요? 우리 서울시랑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미국의 <뉴요커>를 롤모델로 하고 있다는 기자의 답에, 박 시장은 뉴요커를 안다며 웃으며 화답했다. <스토리 오브 서울>에 서울시의 투자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말도 던졌다.

“아, 잠시만요. 스토리 오브 서울에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박 시장이 책장으로 향했다. 박 시장은 본인의 서체가 하나하나 새겨진 스크랩북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스토리텔링 서울>, 매체 이름과 비슷한 서울시 정책이었다. 서울시의 문화유산과 관광명소에 얽힌 이야기를 관광객들에게 이야기로 알려주는 사업이었다. “스토리 오브 서울에서 이런 얘기 실으면 재미나겠지요?” 정책을 설명하는 내내 박 시장은 들떠 보였다. 처음 인사할 때와 달리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평소 언론에서 접한 차분한 말투와도 달랐다.

▲ 스크랩북을 보여주는 박원순 서울시장 (왼쪽부터) 정수연 기자, 박원순 시장, 강예슬 기자

<박원순이 걸은 길>에 등장하는 박 시장 주위 사람들은 박원순을 ‘나쁜 사람’이라고 입 모아 말한다. 일 중독자는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할 수밖에 없다. 박원순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새벽에도 전화해서 묻는 사람이었다. 여전히 주위 사람들을 너무 피곤하게 하냐는 질문에 박 시장은 “요즘은 반성하고 있어요. 서울시 공무원들이 거의 병원에 실려 갈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내가 수첩도 안 갖고 다녀요”라고 답했다. 그가 수첩을 펴는 순간 공무원들은 두려움에 떤다고 한다. 박원순의 오래된 친구인 김수진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6일, <스토리 오브 서울>에 해준 말이다. 김수진 교수는 박 시장의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다. 김 교수는 박 시장에게 서울 시장 출마를 권유하기 위해 백두대간을 등반 중이던 박원순을 찾아 세 번이나 산에 오르기도 했다. 김 교수는 “그 친구가 수첩에 모든 이야기를 빠짐없이 적어요. 그렇게 적으면, 아래 사람들은 또 일할 거리가 생기는구나. 이러는 거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요즘은 반성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요즘은 자제하려고 해요. 새벽에 전화하고 그런 거는 비인간적이지요.” 과거의 자신의 일화가 멋쩍다는 듯이, 박원순 시장은 연신 머리를 만지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4시 35분, 본격적인 인터뷰가 시작됐다. 먼저 ‘인간’ 박원순에 관해 묻기로 했다. <스토리 오브 서울>은 박원순을 만나기 전, <박원순이 걸은 길>을 함께 읽었다. 책에는 박원순 시장의 학창시절부터 참여연대 시절, 서울 시장에 도전하기까지의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책을 읽고 4명의 기자가 느낀 점은 모두 같았다. 박원순은 지독한 일 중독자라는 것이다. “과로사가 꿈”이라는 게 사실이냐 묻자 박 시장은 “비참하게 요양원에 가서 있다가 죽는 것, 너무 슬프지 않나요?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고 싶다”고 말했다. 또 요즘 얼마나 일을 하고, 잠을 얼마나 자냐는 질문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정말 잠이 안 온다”라고 대답하며 다시 한 번 일 중독자의 면모를 보여줬다. 

일 중독자 박원순이 가장 애착을 쏟는 정책은 뭘까. 기자단은 청년정책이라고 생각했다. 박원순 자신도 서울시의 청년정책에 대해 “열정만큼은 80~90”점이라고 대답했다.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던 ‘청년수당’에 대해서도 물었다. 서울시가 열정을 들이는 데 비해 청년수당의 시민 지지율이 높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자 박 시장은 “서울 청년만을 위한 정책이라 다른 지역에서 ‘아, 서울 잘났어.’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 같아요. 또 복지는 포퓰리즘이라고 생각들을 하시니까. 그런데 청년수당은 포퓰리즘이 아니라 리얼리즘이예요”라고 답했다. 박 시장은 청년수당이 청년의 삶을 바꾼 ‘리얼리즘’이라고 말한다. (매달) 50만 원이 큰돈이 아니라도 그만큼 아르바이트를 덜 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자기 취업 준비도, 자기 성장도 할 수 있으니 써 본 사람은 귀하게 생각합니다.”

청년수당 얘기가 끝나자 갑자기 박 시장이 벌떡 일어나 기자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 따라오세요. 카메라도 따라와야지." 시민들의 소망을 적은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은 벽과 시내 교통 상황, 물가 정보들이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인터랙티브 스크린을 지나자 두 평 남짓한 서재가 나타났다. 천장까지 스크랩북이 촘촘했다. "이것도. 또 이것도." 박 시장이 능숙하게 파일을 찾아 건넸다. 서울시의 청년 정책을 손수 정리한 스크랩북 두 권이 묵직했다. 그중 한 권에 '서울 혁신파크'가 정리돼 있었다.

▲ 서재에서 스크랩북을 보여주는 박원순 시장

박 시장은 서울시가 청년수당이라는 제도를 통해 청년들을 돕기도 하지만, 청년자치에도 공을 들인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무엇보다도 청년들이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게 만들어요. 청년들에게 공간을 주고, 거기에서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게 하죠. 혁신파크 너무 대단하지 않아요?” 인터뷰 이후 22일, 기자가 직접 혁신센터를 방문해 봤다. 불그죽죽한 붉은 벽돌이 30년이 넘은 건물을 둘러쌌다. 건물은 2년 전까지는 질병 관리 본부로 쓰였다. 2층으로 올라가자 넓게 난 창문 밖으로 북한산이 훤히 펼쳐졌다. 금요일 오후인데도 널찍한 테이블마다 사람으로 차 있었다. 한쪽 테이블에서는 영상 작업이, 반대쪽 테이블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다. 박 시장의 말처럼 서울시는 혁신파크에 예산과 공간만 지원하고 내용에 대해선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혁신센터의 박진영 디렉터는 이곳 운영 방식에 대해 "입주 단체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반상회를 해요. 쓰레기를 어떻게 버릴지, 행사 소음은 어떻게 할지, 난방비와 전기세는 어떻게 할지. 이 모든 과정을 스스로 결정하죠"라고 말했다. 

대선 출마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박 시장은 탄핵 정국에서 촛불 집회를 잘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행정가 박원순의 관리 능력이 제대로 발휘된 순간이었다. 그런데 지지율은 오르지 않았다. 행정가 박원순은 탁월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박원순은 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에 대해, 박 시장은 “정치인은 크게 결단하고, 저항하고, 정치적 액션을 많이 취하잖아요.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내가 정치적 행보만 보였다면 청년수당에 관해 대통령 앞에서 단식투쟁을 하든가 하면서 반(反) 박근혜 선봉의 지도자가 됐을 거예요”라고 답했다. 박 시장은, 이어 자신의 행보 스타일은 ‘합리적 행정가’라고 말했다. “물론 나도 싸웠지만, 정치적으로 싸우는 대신, 중앙정부랑 잘 합의를 해서, 예산을 지원받아 돈 10억이라도 더 끌어와서 서울 시민에게 도움을 주는 걸 택했어요.”

박 시장은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정치적 액션 취하는) 정치인들 계속 대통령 만들어보니까 어떻게 됐어요? 행복해요? 만족하는 사람 있어요? 이제 행정가형 정치인이 필요한 때예요. 행정가형 대통령이 시민들의 삶의 질도 높이고 해야 하는데, 아직 잘 몰라주는 것 같네요.” 박 시장은 기자들에게도 리더의 자격에 대해 물음을 던졌다. “소통해서 10억이라도 더 끌어오겠다는 사람과, 그런 생각은 안중에도 없고 투쟁해서 (자기 자신을) 부각시켜 지지율 올리려는 사람, 어느 게 더 좋겠어요?” 부드럽던 박 시장의 표정이 한순간 단호하게 바뀌었다.

▲ 박원순 시장

‘합리적 행정가’는 서울시에 한 번 더 머무를지, 더 큰 정치에 도전할지 궁금했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묻자 박원순은 미리 다 얘기하면 재미없다며 운을 띄웠다. 이어 “서울시에서 온갖 실험들을 다 해봤다. 너무 재미나고, 신나고 하지만 다른 시장이 와버리면 또 전부 무효가 될 수 있으니까. 내가 (정책들을) 고정화 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5초간의 짧은 침묵이 흐르고, 박 시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아니면 내가 또 다른 정치적 역정으로 나아갈 것인가인데…,” 박 시장은 말을 끊고 기자들과 눈을 맞췄다.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투표 한번 해볼까요?” 과연 박 시장은 어떤 선택을 할까.

박 시장은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세상을 더 낫게 디자인하는 사람이 본인의 꿈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디테일에 대해서도 말했다. 기존의 정치인들이 큰 담론을 말했다면, 박원순은 작은 담론을 얘기한다. “아주 작지만, 정교한 행정들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어요. 이동 노동자들의 쉼터를 만들면서 약자들을 돕고, 청년수당도 적은 돈이지만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처럼 말이죠.” 박 시장의 말처럼, 박 시장은 디테일에 강했다. 인터뷰 도중 정책 얘기가 나올 때마다 본인이 수집한 스크랩북을 꺼내왔다. 천여 개의 스크랩북이 각각 어디에 놓여있는지도 정확하게 기억했다.

▲ 시장실의 '기울어진 책장'

인터뷰를 마치면서 박 시장 집무실의 ‘기울어진 책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 시장 서재의 모양은 보통의 책장과는 좀 다르다. 두 개의 책장이 좌우 양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사이의 V자 홈에도 책을 꽂을 수 있다. 박 시장은 양쪽으로 기울어진 책장은 이념과 지역으로 양극화된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V자 틈처럼 균형을 잡고 갈등을 조정하는 ‘소통 정치인’이 되겠다고 말했다. “소통은 늘 이해관계자나 국민과 함께 대화하고 토론해서 쟁점과 갈등을 사전에 해소하는 거예요. 합의의 컨센서스(Consensus)를 만들어서 정책을 이끌어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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