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코너는 후보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지금의 지도자를 만든 요인이 젊은 시절에 있지 않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취재팀은 1월 중순부터 자료를 찾았습니다. 자서전, 언론보도, 블로그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유용했지만 이런 내용만으로 기사를 쓰기가 곤란해 2월부터 직접 취재에 나섰습니다. 출마선언식, 토론회, 출판기념회…. 주변 인물도 만났습니다. 배우자, 학교친구, 회사동기, 투쟁동지, 보좌관, 정책자문단을 통해 후보의 면모를 더 파악했습니다. 유명 언론사의 정식기자가 아닌, 학생기자를 위해 많은 분이 시간을 내서 만나거나, 전화와 이메일로 취재에 응했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당의 후보선출이 막바지로 향하는 중입니다. 경선결과 못지않게 정치 지도자의 이해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주요 후보를 모두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이 작년 12월 1일 출범했을 때, 주요 정당의 대선주자를 10명 정도로 예상했다. 올해 들어 후보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던 중, 박원순 서울시장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등이 불출마선언을 하는 바람에 취재대상에서 제외됐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경우가 문제였다. 출마여부가 확실치 않았지만 취재팀은 자료를 모으고 주변 인물을 만났다. “현재의 국가위기 대처와 안정적 국정관리를 미루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가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날은 3월 15일이었다.

후보가 아닌데도 <스토리오브서울> 편집진은 황 권한대행의 기사를 게재하기로 결정했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이 인용된 상황에서, 국정의 최고책임자를 이해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황 권한대행이 누구인지 궁금해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를 2월 14일 국회의원회관 501호에서 만났다. 노 원내대표는 2015년 6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황교안 후보자가 총리직에 적합하지 않다고 공격했다. 최순실 게이트를 황교안 게이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노회찬’이라고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황교안’이 나올 정도. 둘은 왜 앙숙이 됐을까.

노 원내대표는 삼성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검사 명단을 2005년 공개했다.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사실이 ‘안기부 X파일’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뒤였다. 황 권한대행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특별수사팀을 지휘했다. 노 원내대표는 통신비밀보호법위반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고 의원직을 잃었다.

이에 앞서 노 원내대표가 2002년 노동운동으로 구속됐을 때는 당시 서울지검 공안검사이던 황 권한대행이 찾아갔다. 구치소에서 지내기가 나쁘지 않다고 하자 황 권한대행은 “그래서 내가 (구치소를) 따뜻하게 짓지 말라고 했는데”라는 농담을 했다고 한다.

노 원내대표가 17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으로 활동할 때는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있다. “공적인 입장 차이 때문에 부닥치는 거지, 사적으로 앙숙인 건 아니니까”라고 노 원내대표는 말한다. 둘의 관계를 놓고 ‘사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경기고 72회 동창이기 때문이다.

▲ 황 권한대행의 경기고 시절 모습

경기고에서 황 권한대행은 학도호국단 연대장을 맡았다. 학도호국단은 1949년 공포된 ‘대한민국 학도호국단 규정’에 따라 발족한 학생자치단체다. 지금은 학생 손으로 학생회장을 뽑지만, 당시에는 국가가 만든 학생회장 직책을 학교(또는 학교장)가 지명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원칙을 중시하죠. 과묵하고 점잖은 모범생 스타일이었어요.” 황 권한대행이 어려서부터 반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노 원내대표는 설명했다. 또 다른 경기고 동창,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황 권한대행에 대해 비슷한 말을 했던 적이 있다.

황 권한대행은 26살이던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공안검사로서 KAL기 폭파사건, 임수경 씨의 밀입북 사건을 수사했고, 2013년 법무부 장관 시절에는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했다.

기자가 노 원내대표를 만났을 때는 황 권한대행의 대선출마 여부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가능성을 묻자 노 의원은 딱 잘라 말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안 나오지.”

황 권한대행은 50년 넘게 교회를 다녔다. 사법연수원 시절, 수도침례신학교 신학과의 야간과정에 편입해서 졸업했다. <종교활동과 분쟁의 법률지식>(1998), <교회가 알아야 할 법 이야기>(2016)를 집필하기도 했다. <황교안 2017>의 저자 김용삼 씨가 인터넷방송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은 (검사와 전도사의)투 잡을 뛰었다”고 했던 이유다.

기자는 황 권한대행이 다니는 서울 성일교회(양천구 목동)를 2월 12일 찾아갔다. 신도들의 경계심이 컸다. 취재진이 많이 와서 대선출마 여부를 묻는 바람에 예배가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쫓겨나듯 교회를 나섰다. 사흘 뒤, 다시 가서 담임목사 등 8명을 교회 응접실에서 만났다.

신도 A 씨는 “황 전도사는 올곧음 그 자체”라고 했다. 딸이 결혼할 때는 교회 사람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장로는 그를 ‘작은 예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의 아내인 최지영 나사렛대 상담센터 교수는 남편 황 권한대행이 새벽 2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교재를 만들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황 권한대행은 2013년 법무부 장관이 됐다. 집무실이 세종특별시로 옮겨지면서 성일교회에 자주 가지 못했다고 한다. 

▲ 황 권한대행이 50년간 다닌 서울 성일교회 모습

황 권한대행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려고 2월 24일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을 만났다. 탄기국(대통령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 천막에 들어가서 묻자 칭찬이 쏟아졌다. 청렴한 사람이다, 일을 잘한다, 검증이 끝났다…. 고칠성 씨는 “보수 쪽에서 마음에 두고 있는 후보는 황교안이다. 공안의식이나 인품 둘 다 훌륭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4주년(2월 25일)에 열린 태극기 집회에서도 분위기가 비슷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김승홍 씨(26)는 “개인적으로 (황 권한대행이) 출마했으면 한다. 다만, 권한대행으로서 맡은 일에 충실하신 분이라고 믿기에 대선에 대해 말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최영호 씨(31)는 “우파에 어울리는 대통령”이라고도 표현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곽이경 씨는 “박 대통령이 탄핵을 당한 마당에 그 정부에서 일했던 황 권한대행이 대선후보로 나온다는 건 넌센스”라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뒤편에는 ‘광화문 구치소’라는 이름의 철창 안에 죄수복을 입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그림이 설치됐다. 그 오른쪽은 역시 죄수복을 입은 황 권한대행 사진이다.

황 권한대행은 결국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주어진 마지막 순간까지 오직 나라와 국민만 생각하겠다”면서 말이다. 그는 50세 전후로 목양지를 닦겠다고 했다. 교회 일에만 전념하겠다고 기약한 시간에서 10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전업 목회자의 길을 꿈꾸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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