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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대선 2017 (19) 후보의 20대 시절 ⑨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조승재·김민솔 기자 | 승인 2017.04.16 20:02
본 코너는 후보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지금의 지도자를 만든 요인이 젊은 시절에 있지 않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취재팀은 1월 중순부터 자료를 찾았습니다. 자서전, 언론보도, 블로그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유용했지만 이런 내용만으로 기사를 쓰기가 곤란해 2월부터 직접 취재에 나섰습니다. 출마선언식, 토론회, 출판기념회…. 주변 인물도 만났습니다. 배우자, 학교친구, 회사동기, 투쟁동지, 보좌관, 정책자문단을 통해 후보의 면모를 더 파악했습니다. 유명 언론사의 정식기자가 아닌, 학생기자를 위해 많은 분이 시간을 내서 만나거나, 전화와 이메일로 취재에 응했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당의 후보선출이 막바지로 향하는 중입니다. 경선결과 못지않게 정치 지도자의 이해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주요 후보를 모두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척당불기(倜戃不羈). 뜻이 크고 기개가 있어서 남에게 자유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한나라당 대표 시절, 집무실 액자에 새겼던 좌우명.

남에게 구속받기 싫어하는 성격은 그가 검사로 재직하던 권위주의 시대, 상부의 지시를 자주 거부한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다. 통제하기 힘들다는 지적을 받는 바람에 부서와 근무지를 자주 옮겨야 했다. 이런 과정에서 생긴 ‘모래시계 검사’의 이미지는 의원, 정당대표, 도지사를 거쳐 대선후보가 되는데 자산이 됐다.

좌우명이 말하듯 정치인 홍준표는 눈치를 보지 않는,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돼 모든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이 관심을 끄는 가운데 그는 이슈 메이커라는 수식어와 가장 잘 어울린다. 어린 시절은 힘들었다. 3월 18일 대구 서문시장에서 했던 공식 출마선언의 내용을 보자.

“초등학교 6년 동안, 다섯 번이나 전학을 다녔습니다. 가난은 저희 가족을 창녕에서 대구로, 다시 창녕으로 합천으로,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았습니다. 이곳 대구 내당동 달셋방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점심 도시락을 싸갈 형편이 못 돼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습니다. 가난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아픈 시간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는 가족의 도움, 특히 누나의 헌신 덕분에 대학생이 됐다. 홍 후보의 영남고 후배로 경남도 정무부지사를 지낸 조진래 경남개발공사 사장은 4월 14일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후보님의 위로는 누님 두 분이 계시고, 아래로는 여동생이 한 분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자형제들은 모두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상급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공장생활을 한 것으로 들었고, 특히 작은 누님이 형제 중 가장 공부를 잘 하였으나 후보님의 학업을 위해 공부를 포기하고 공장생활을 하면서 후보님 뒷바라지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학생활 역시 쉽지 않았다. 자서전 ‘변방’에는 △부모님 잘 만나 아무 걱정 없이 즐겁게 대학의 낭만을 누리는 동급생들이 한없이 부럽기도 했다(54쪽) △등록을 포기하고 시골로 다시 내려갔다. 이렇게 살기에만 급급한 생활을 하며 사 년 동안 다녀본들 대학 생활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고 더 이상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56쪽)는 내용이 나온다.

서민이 교육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정책(4단계 서민자녀교육지원사업)을 경남에서 시행한 데 이어,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며 대선공약에 넣은 것은 홍 후보의 개인사와 떼어놓고 설명하기 힘들다.

기자는 4월 16일 홍 후보를 직접 만났다.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70길 한양빌딩의 자유한국당 중앙당사 2층에서 열린 청년본부 선거대책회의. 일일 청년조직위원 자격으로 참석해 20대 시절, 가장 부당하다고 느낀 일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다.

“대학 다닐 때 참 힘들게 학교를 다니다 보니까…. 당시에 아르바이트로 가정교사 일을 했어요. 가정교사 일을 하고 학교 앞의 하숙집에 오는데, 도서관을 쳐다보는데, 도서관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 내가 먹고 살기 위해 서울 왔는지, 공부하기 위해 서울 왔는지 참 억울하더라고. 그 때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 세상이 불공평하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세상에 대한 불만은 대학생 홍준표가 학업에만 전념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자서전 ‘변방’에 따르면 1974년 12월 고려대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는데 백지광고 사태로 어려움을 겪던 동아일보에 성금을 보내자고 친구가 제안했다. 둘은 도서관을 돌면서 2만 원 정도를 모았다. 그리고 동아일보사를 찾아가 송건호 당시 편집국장에게 모금액과 격문을 함께 전달하면서 자유언론을 위해 투쟁해달라고 했다. 

▲ 고려대생들의 백지광고 격려모금 기사(동아일보 1975년 1월 4일 7면)

이후 그는 서울 신촌의 여관에서 유신철폐 유인물을 만들었다. 8개월 정도 유인물을 돌리다가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붙잡혀 8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동아일보에 보낸 격문의 글씨체와 지하 유인물의 글씨체가 같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모금을 제안했던 친구는 정치외교학과를 다니던 박계동 전 의원(현 한국택시협동조합 이사장)이다. 기자가 전화로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홍준표하고 친구고, 제가 동아투위(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때 홍준표에게 성금을 모금하자고 한 건 맞아요. 그런데 요즘 대선 시기잖아요. 조합 원칙상 정치에 개입할 수 없어요. 인터뷰는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기자는 취재과정에서 홍 후보의 원래 이름이 ‘준표’가 아니라 ‘판표’임을 알게 됐다. 왜, 언제 바꿨을까. 다음은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서 4월 14일 받은 서면 인터뷰 내용.

- 어떤 계기로 개명을 권유했나?
“(내가) 청주지법 재임 당시, 청주지검에 초임검사로 부임한 홍준표 후보를 처음 만났다. 검사 이름에 판단할 ‘판(判)’이 들어있는 것은 검사로서의 관운(官運)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판단의 표준이라는 의미는 상통하는 ‘준(準)’으로 바꿀 것을 권했다.”

- 후보 스스로 자서전에서 독고다이, 통제불능 검사로 묘사했다. 성격 때문에 득도 있고 실도 있었을 텐데….
“독불장군과 같은 성격은 홍 후보자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러한 성격에 의협심과 정의감이 만나 우리가 아는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를 만들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권위주의 시대 당시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항했던 그 소신의 실천은 훌륭한 검사로서 꼭 필요한 자질이었다고 본다.”

- 검사 홍준표의 모습과 정치인 홍준표의 모습. 둘 다 지켜봤는데 다른 점이 있나?
“한결같다는 생각이다. 검사나 의원 시절, 권력형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어떤 협박이나 압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력을 다하는 것은 홍준표이기 때문에 가능하였다고 본다. 도지사로서 행한 채무 제로(0) 등 많은 일도 바로 그런 자세 때문에 실현 가능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홍 후보는 198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9살이었다. 투철한 정의감과 남에게 구속받지 않는 성격에 수사능력까지 갖췄다. 그러나 검찰 상부에선 그를 버거워했다. 수사권이 주어지지 않은 한직으로 발령받자 그는 사표를 냈다.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일관된 철학, 신념, 가치관이 홍 후보의 강점이라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남지사로서 진주의료원을 폐쇄하며 서민에게 기금이 더욱 잘 배분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더 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는 가치철학을 꾸준히 펼쳐왔다. 지금도 이러한 가치철학은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으며, 일관된 가치철학을 정책으로서 보이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 홍준표 후보가 청년본부 선거대책회의에서 답변하는 모습. 조승재 기자(왼쪽에서 세 번째)가 일일 청년조직위원 자격으로 참석했다.

청년본부 선거대책회의에서 만난 이학성 씨(30‧경기 고양시)도 “강성노조였던 진주의료원을 폐쇄시킴으로써 경남재정이 서민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 지지하게 됐다. 노조와 싸워서 사회개혁을 하고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면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같은 자리에 참석한 엄재연 씨(20‧성공회대)는 “전반적인 정책이 노조에 책임을 전가하는 형식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동안 집권여당의 잘못은 밝히지 않고 노조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책임회피 같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관훈클럽이 4월 21일 주최한 토론회에서 홍 후보를 다시 봤다. 이날 그는 민감한 질문을 받으면 목소리를 높이고, 패널에게 반문했다. 여기서도 스스로를 ‘독고다이’라고 표현했다.

류순열 세계일보 선임기자가 친박세력의 책임에 대해 묻자 홍 후보는 “후보가 달라지고 집권주체가 달라지면 그 분들은 새로운 정권의 지지세력이다. 저는 정치를 22년 했지만 어느 계파에 속해본 적 없는 독고다이다. 혼자 결정하고 혼자 고뇌하고, 그리고 혼자서 헤쳐 나갔다. 22년간 그런 정치를 했다. 이번에, 22년 만에 독고다이한테 자유한국당이라는 세력이 붙은 거다”라고 대답했다.

토론회 마지막에 홍 후보는 “집권하면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프리 토킹하겠다. 사전에 약속해 질의응답하는 것이 아닌, 기자들이 의심스럽게 생각하고 의문하는 것(에 대해) 프리 토킹하겠다. 국민들에게 국정 알릴 책무가 있다”고 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수돗가에서 배를 채우던 흙수저 소년이 독고다이로 검사, 국회의원, 원내대표, 당대표, 경남지사까지 올라왔다. 따르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욕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대선후보 중에서 비호감 1위.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고 받아친다. 그의 말처럼 출마할 때는 초상집 상주였는데, 선거가 끝나면 잔칫집 혼주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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