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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의 지표, ‘깔세’를 아시나요?
고홍주 기자 | 승인 2017.04.30 21:38

6개월 전, 명동 상권에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깔세’ 매장이 입점한 것이다. 명동 노른자 땅에 있던 월세 8천만 원의 화장품 가게는 인형 뽑기 매장으로 변신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상권에 번듯한 간판도, 화려한 인테리어도 없이 영업하는 매장이 들어선 것이다. 명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승훈 씨는 “명동에는 원래 깔세가 없었다. 일반적으로 명동에 점포를 내려면 보통 3개월, 빠르면 6개월 전에 미리 계약을 해야 할 만큼 임차 수요가 높다. 그런데 최근에 명동 한복판에 있는 점포 두 군데가 깔세로 나왔고, 나오자마자 바로 나갔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가게를 임차할 때는 월세 외에도 권리금과 보증금을 낸다. 깔세는 이러한 관행을 깨고 권리금과 보증금 없이 일정 기간 동안의 월세만 한꺼번에 내고 입점하는 형태의 계약이다. 대신 월세가 비싸다. 서울의 한 재래시장의 경우, 정식 임대 월세가 180만 원 정도라면 깔세는 220만 원 정도로 책정된다. 원래 임대차 시세보다 20~30% 정도 비싼 셈이다. 간판 위에 ‘창고폐업’, ‘떨이 세일’, ‘원가판매’ 등의 현수막을 붙여놓고 장사하는 형태의 점포가 대부분 이 깔세 점포다. 짧게는 1·2개월, 길게는 6개월 정도로 단기간만 임차해 ‘치고 빠지는’ 장사를 한다.

▲ 서울 시내 깔세 매장들

깔세가 늘어나고 있다. 원래는 장사가 잘 되지 않는 상권 중심으로 들어섰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명동이나 홍대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도 깔세가 등장했다. 서울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꼽히는 남대문시장에도 속옷과 의류를 판매하는 깔세 매장이 들어섰다. 재래시장의 공실률은 일반 상가나 점포보다 높지 않은 편이라 재래시장에서 깔세는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시장에도 조금씩 등장하고 있다. 인천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장형창 씨는 “재래시장에 깔세가 들어오면 한두 달 사이 상품 가격이 다 하락하는 경향이 있어서 기존 상인들의 반발이 심하다. 그러나 시장 내 깔세를 찾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깔세에 관한 정보를 다루는 전문 사이트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노점과 깔세', '깔세 114' 등의 사이트들은 깔세 매물은 물론 깔세 업자들이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대학 재학 시절 창업동아리를 했던 취업준비생 정모 씨는 “사업을 처음 배우거나 단기로 돈을 벌고자 하는 대학생들의 경우 깔세를 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 깔세 정보 공유 인터넷 커뮤니티

깔세 업종도 변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주로 의류, 잡화, 생활용품 등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인형뽑기 매장이 깔세의 대표적 업종이다. 명동부동산의 이승훈 씨는 “요즘 인형뽑기를 깔세로 입점할 수 없냐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수도권에 사는 김모 씨 역시 한 달여 전 건널목 앞에 있는 깔세 매장에 인형뽑기 가게를 열었다. 김 씨는 “요즘 중고등학생들에게 인형뽑기가 인기가 많고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보니 6개월 정도는 수익이 날 것 같아서 단기로 계약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인형뽑기 기계의 임대료는 한 대당 10만 원에서 15만 원 사이라 초기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업종은 10평(33.057851㎡) 짜리 소형 점포에서도 영업이 가능하고 인테리어 등 부대비용이 거의 들지 않아 새로 가게를 내는 상인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하다.

▲ 서울 시내 한 인형뽑기 전문점

가게를 빌려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보증금과 다달이 월세를 받는 일반적인 계약 형태를 선호할 수밖에 없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공실률에 깔세를 택할 수밖에 없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상업용 부동산의 2015년 2분기 공실률은 12.7%였지만, 2016년 2분기에는 13.4%로 더 높아졌다. 가게를 빈 상태로 놔두느니 보증금을 포기하더라도 깔세 형태로 임대해 월세를 받는 게 낫다는 판단인 것이다. 수도권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장형창 씨는 “임대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장사가 잘 되지 않아 입점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깔세 임대를 선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월세만 잘 받으면 된다는 인식에 깔세가 이전보다 많이 나오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깔세가 부동산 시장에서 최근 몇 년 간 지속되고 있는 것은 경기 불황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깔세를 양산하고 있는 셈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깔세는 일반적으로 맺는 임대차 계약 형식은 아니다. 어떤 세입자가 3개월만 장사를 하고 싶겠는가”라며 “깔세가 많아지는 것은 상권이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뜻이고 그 자체가 경기 불황의 지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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