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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회동 ‘화요전쟁’
박자은 기자 | 승인 2017.04.24 00:01

하루를 지켜보다  
 

지난 1월 24일 오후 2시, 영하 10도의 추위에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 부근에서 '맞 집회'가 열렸다.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 싶은 상인 모임)'회원들과 삼청 새마을금고 회원 10여 명이 좁은 이차로를 끼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오후 2시 10분, 상인 김유하(임차인/공방‘씨앗’ 대표)씨가 “삼청 새마을금고는 임차상인과 상생하라!”를 외쳤다. 이에 새마을금고 측 발언자는 “우리는 법대로 할 것이며 법치주의를 믿는다!”를 외쳤다. 집회가 시작된 것은 벌써 일 년 째. 현재는 매주 화요일마다 양측이 삼청동에서 ‘맞 집회’를 벌이는 상태다. 5달 전부터는 ‘맞 집회’가 격해지며 소음까지 심해졌다. 주변 상인이 “집회 때문에 시끄러운 게 오래돼서 이제는 아주 짜증나 죽겠다”고 할 정도다. 

▲ 지난 1월 24일 삼청동 새마을금고 앞에서 양측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10평 남짓한 가게를 운영하던 가회동 상인 김영리(임차인/‘장남주 우리옷’ 대표)씨와 김유하(임차인/공방‘씨앗’ 대표)씨가 건물주인 삼청 새마을금고로부터 작년 8월 22일 강제철거를 당하면서 갈등은 격화됐다. 당시 권리금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기 때문이다. ‘임차인은 계약갱신요구권을 5년간 보장받고, 임차인의 권리금 보장을 제도화 한다’는 내용의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5년 5월 13일. 그러나 법 시행 28일 전 임대차 계약이 만료된 두 상인은 법의 소급적용을 받지 못했다. 결국 권리금을 못 받고 쫓겨난 이들이 금고 측에 배상금 1억 7천만 원을 요구했고 금고 측은 이를 완강하게 거절했다. 1억 7천만 원은, 두 상인 모두 이전 임차상인에게 지급한 시설투자비(다음에 들어올 상인으로부터 받아야 하지만 철거로 인해 받지 못하는 비용) 각 7천만 원씩 1억 4천만 원과 명도소송 비용, 정신과 상담 비용 각 1천 5백만 원씩 3천만 원을 합한 액수다.

새마을금고 측은 두 상인이 1억 7천만 원이란 돈을 요구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삼청 새마을 금고 천상욱 이사장은 “우리는 법적 절차에 따라 강제집행을 했다. 작년 2월 두 상인이 명도소송에서 패한 후 우리가 ‘(임차인이)명도하면 그 대가로 4천만 원(금고 측이 제시한 권리금 명목)을 각각에게 주겠다’고 했는데도 이를 거절했다”고 말했다. 명도소송이 진행된 당시 이 지역 권리금은 10평 기준 7~8천만 원선이었다. 천 이사장은 두 상인이 요구한 1억 7천만 원에 대해서는 “그 돈을 준다면 그것은 새마을금고 회원의 돈이다. 회원들이 오히려 큰 액수에 반발하고 나섰다”고 말했다. 이어 “상인들의 시위로 업무가 방해돼 금고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작년 9월부터 자발적으로 나와 집회를 하고 있다”며, 매주 시위를 하는 상인들에 대해서 법적으로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고 측은 현재 김유하 씨, 김영리 씨 등 ‘맘상모’ 회원들에게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 청구를 한 상태다.      

오후 2시 반, 양측 사이에서 점점 높아지는 고성에 지나가던 중국인 관광객이 멈춰서더니 신기하다는 듯 동영상 촬영을 시작했다. 몇 명은 집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다. 행여나 두 집단 사이에 폭력이라도 생길까봐 관할 경찰관 두 명은 매주 이곳에 나와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한 경찰은 “두 곳이 각각의 이해관계를 서로 이해를 못해주니까...”라고 말끝을 흐리며 “매주 반복되는 상황이 그저 안타깝다”고 전했다. 

오후 3시, 신고 시간인 1시간을 넘기고 ‘맞 집회’가 계속됐다. 감정이 격양된 양측은 실랑이까지 벌였다. ‘맘상모’ 상임활동가 공기 씨가 맞은편을 향해 “대체 저희 상황이 어떤지 알고 이 자리에 나와 계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정말 알고 나오시는 겁니까?”라고 쏘아붙이자, 금고 측 집회 참가자는 미리 설치해둔 노래방 기계에 다가가 군가를 틀었다. 순간 군가의 엄청난 소음이 ‘맘상모’회원들의 목소리를 덮쳤다. 이들이 쓰고 있던 확성기는 더 이상 쓸모 없어 보였다. 결국 ‘맘상모’회원 중 한 상인이 노래방 기계의 스위치를 끄려 하는 찰나, 새마을금고 관계자와 몸싸움이 붙었고 욕설이 오갔다. 근처에 있던 경찰관이 달려와 싸움을 말렸지만 이들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법은 개정됐어도 억울한 임차인들은 여전히 괴롭다
2012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임차상인들의 평균 장사 햇수는 1.7년이다. '2016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하루 평균 3천여 명의 자영업자가 문을 열고 2천여 명이 문을 닫는다. 계약갱신 가능기간이 5년이지만 5년을 채우는 상인들은 거의 없다. 지역 임대료 상승이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자영업자들이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보호에서 벗어나 있다. 상인들의 권리 확보를 위해 두 차례 개정은 있었다. 2013년 첫 번째 개정 때는 환산보증금(보증금과, 월세의 백 배값을 합한 금액)의 규모에 상관없이 5년간 계약갱신 요청이 가능하도록, 2015년 두 번째 개정 때는 이전 임대인이 변경돼도 기존계약 후 5년 갱신이 가능하도록 했다. 

문제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상인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제 10조 5항에 따르면, 상가건물이 대규모점포의 일부, 국유 또는 공유재산일 때 임차인은 권리금 회수를 보장받을 수 없다. 임대인의 상황이 정당한 사유로 인정돼 임차인이 권리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 가회동 두 상인이 1년 넘게 억울함을 외친 것은, ‘2015년 5월 13일 전 이미 임대차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된 경우 임차인은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장받지 못 한다’라는 법의 예외 조항 때문이다. 결국 법의 소급적용을 못 받는 것이 합법이 된 셈이다. 새마을금고의 ‘법대로 하자’는 일관적 주장에는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단지 법의 사각지대에서 임차인이 스스로를 방어할 무기가 없는 것이 문제다. 현재로서 두 상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영하 15도 날씨에 철거된 가게 앞에 텐트를 친 채 버티는 것뿐이다. 

▲ 가회동의 철거된 가게 앞에서 두 상인은 텐트를 치고 매일 시위 중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들의 처지와 ‘공정성’이란 법의 취지를 고려해, 명도소송 재판 기간인 7개월 동안 2번의 화해조정을 진행했으나 실패했다. 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일과 불과 한 달 차이로 임대인이 바뀌었으니,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주면 어떻겠냐는 것이 조정안이었다. 하지만 최초 명도소송 제기자인 이전 건물주와 금고 측 모두 조정 합의를 거절했다. 작년 10월 양측 분쟁의 조정에 나섰던 서울시 역시 새마을금고의 손을 들어줬다. 임차인이 요구하는 액수를 내줄 수 없다는 금고 측 입장을 고려해서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 누구의 개입 없이 오롯이 임차인과 임대인만이 해결할 몫이다. 다만, 오랜 시간 두 상인이 얻은 건 갑절의 억울함, 그리고 생업을 잃은 슬픔뿐이다.

지금 시점에서 가회동 두 상인이 원하는 것은 ‘임차인과 상생할 줄 아는 임대인의 자세’다. 권리금 회수만 원하는 건 아니다. 주변 상인의 시선도 그렇다. 건너편에서 10년 넘게 장사해 온 상인은 “건물주가 임차인의 상황을 조금이라도 배려했으면 이렇게까지 안됐을 텐데...”라며 혀를 찼다. 그렇다고 이들을 돕는 이 지역 상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들 자신을 돌보는데에도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김영리(‘장남주우리옷’ 대표)씨는 그래도 담담하다. 그녀는 “임차인이 쫓겨나는 현실이 북촌만의 문제가 아니고 사회 전체의 문제인 만큼 우린 공공투쟁을 해야 한다”며, “우리의 투쟁은, 비슷한 처지의 상인들이 우릴 보고 ‘쟤네 저렇게 10달 싸우는데도 안 되네’하고 억울하게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우린 선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새마을금고 측은 이들과 문제를 다투는 내내 배려보단 법치주의를 강조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새마을금고의 사훈은 ‘상부상조’다.

오후 3시 반, 집회는 양측의 분노만 더 키우고 소란만 피운 채 어정쩡하게 끝나버렸다. 김영리 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에휴, 오늘도 상황이 별 수 없네”라고 중얼거렸다. 다음 주 집회를 다시 기약하며. 

4월 11일 현재 새마을금고와 가회동 상인들은 더 이상 협의를 하고 있지 않다.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맞 집회’가 양측 간의 유일한 소통이다. 매주 화요일 서울 삼청동 거리에선 상생, 역지사지, 양보와 배려, 조정...' 이런 단어가 실종된 우리 사회의 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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