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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재난탈출구’는 어디에
장현주 기자 | 승인 2017.04.24 00:00

재난에 더욱 위험한 장애인의 현실
휠체어를 사용하는 대학생 A 군은 학내 도서관에서 화재 경보를 들었던 기억이 아찔하게 남아있다. A군은 “화장실에서 화재 경보를 들었을 땐 상당히 심각한 상황인 줄 알았다”며 “다행히 당시 2층에 있어 지상과 연결된 출입구로 나갈 수 있었지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7, 8층에 있었다면 어떻게 대피할지 난감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A군은 큰 사고 없이 대피했지만 장애인의 재난 관리를 이처럼 우연이나 행운에 의존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장애인이 재난에 취약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장애인은 재난에 얼마나 취약할까.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와 국립재활원이 실시한 ‘장애인 재난위기관리 매뉴얼 개발 및 보급’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시 소방공무원의 신고 사례를 분석한 결과 장애인의 재난 대처능력이 비장애인보다 2배 이상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규출 동원대학교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자력으로 재난현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지만 장애인은 일반인에 비해 재난 인지 속도가 느리고 대피 시간도 오래 걸린다”며 “재난에 약한 층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경주지진 이후 진행된 작년 10월 지진대피훈련에서 어린이집, 유치원, 초·중·고, 공공기관 등을 의무 대상으로 포함했지만 장애인 시설은 의무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장애인을 위한 실질적인 재난훈련과 교육의 부재
어린이대공원역 주변에 위치한 광나루안전체험관은 재난훈련을 체험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기자가 방문한 2월 21일(화)도 어린 학생들,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재난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들과 함께 서울북부장애인재활시설에 소속된 지적발달자폐성 장애인들도 광나루안전체험관의 재난훈련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벌써 몇 년째 광나루안전체험관을 방문한다는 이들은 약 1시간 40분 동안 지진, 태풍, 화재 등 다양한 재난상황을 체험하고 대피방법을 학습했다. 김지은 서울북부장애인재활시설 대리는 “매년 지적발달자폐성 장애인들을 인솔하고 광나루안전체험관을 방문한다”며 “체험관에서 배운 것을 질문해도 기억하고 대답을 잘하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찬우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사무총장도 광나루안전체험관을 장애인들이 체험을 통해 얻는 효과를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해 구조대와 같은 소방장비를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그런데 휠체어 사용자가 실제로 해보니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장애유형에 따라 사용이 가능한 장비나 그 이용법을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이를 위해선 직접 체험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모든 장애인이 광나루안전체험관처럼 장애인이 체험할 수 있는 재난훈련 장소를 방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애인을 위한 재난훈련과 교육은 대부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A군은 “학창시절 대피훈련을 받아도 휠체어 탄 사람들은 그냥 나가있으라고 하거나 구체적인 조치 없이 다른 사람에게 업혀가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서울에 있는 국립서울농학교에서도 연간 1, 2회 정도 대피훈련이 이뤄지지만 대부분 선생님이 동행하며 대피동선을 파악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장애인 본인뿐 아니라 장애 관련 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난교육도 부족하다. 장애인에게 일상생활에서 필
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보조인은 총 40시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지만 이중 안전관리에 배정된 시간은 3시간에 불과하다. 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재난교육을 담당하는 이민정 소방교는 “재난이 발생하면 초동대처 부분에서 보호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도 함께 방문하는 장애인 보호자나 인솔자도 가능하면 재난훈련을 체험하라고 권유한다”고 말했다.

▲ 광나루안전체험관에서 소화기사용을 체험하고 있는 서울북부장애인직업재활시설 사람들 (사진제공: 서울북부장애인직업재활시설)
▲ 광나루안전체험관의 선박안전체험장

장애인을 위한 재난대응시설은 오래전부터 제기된 고질적인 문제다. 특히 공공기관에서 장애인을 위한 재난대응시설이 부실한 경우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장애인이 주로 이용하는 복지관이나 특수학교는 구조대, 시각경보장치, 피난용 이송기구 등이 잘 갖춰진 편이었다. 그러나 2015년 발표된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장애인 재난안전 모니터링’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도의 공공기관 중 사이렌과 시각경보기의 설치와 작동이 가능한 곳은 48% 미만으로 나타났다. 또 휠체어 사용자가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경사로의 설치율도 서울 30.4%, 경기 22.2%에 불과했다. 

구멍 뚫린 장애인 재난 관리 체계 
기본적인 행동 지침인 재난 매뉴얼도 보완이 필요한 분야다. 현재 개발된 장애인용 재난 매뉴얼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서 만든 지체장애인 재난위기관련 매뉴얼, 시각장애인 재난대응매뉴얼과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만든 청각장애인 재난대응매뉴얼 등이다. 그러나 기존 매뉴얼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장애 및 재난유형, 장애인과 보조인의 구분 등 세부적인 분류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승완 국립한국복지대학교 장애인행정과 교수는 “2014년 제작한 지체장애인 재난위기관련 매뉴얼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고 2015년 제작된 시각장애인 재난대응 매뉴얼도 이론 부분이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이미림 한국장애인연명 간사는 “기존 매뉴얼은 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다”며 “장애인 복지관이나 소방안전 담당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실생활에서 사용이 가능하도록 풍부한 예시가 보충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위급상황 시 대피장소인 민방위대피소나 지진대피소는 접근조차 힘들다. 대부분의 민방위대피소나 지진대피소가 건물 지하에 위치했기 때문에 계단을 이용하기 힘든 장애인은 현실적으로 사용이 어렵다. 이미림 간사는 “시각이나 청각장애인은 조력자가 있으면 대피가 가능하지만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대피가 어렵다”며 “일본은 대피소의 턱이나 경사를 보완해 장애인도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 장애인 학생들의 이동을 돕는 손잡이를 설치한 특수학교

변화의 시작은 컨트롤타워 수립과 매뉴얼의 혁신으로
전문가들은 장애인 재난 관리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장애인 재난 관리는 국민안전처와 보건복지부가 개별적으로 다뤘으며 이를 전담으로 집행하는 부서가 없었다. 김승완 교수는 “작년 12월부터 장애인안전대책 TF팀이 구성돼 점차 발전하는 모습을 보인 건 사실”이라며 “그동안 전체적인 차원에서는 국민안전처가, 개별적인 정책 차원에서는 보건복지부가 담당한다고 밝혀 장애인의 특수성을 고려한 전담부서가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은 카트리나 참사 이후 2010년 연방재난관리청(FEMA)에서 장애인통합조정부서를 신설해 장애인 재난 관리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장애인통합조정부서는 재난 상황 시 효과적으로 대피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청각장애인에게 재난 시 수화도우미 서비스를 제공하고 전광판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난 발생을 알려야 한다는 등의 장애유형을 고려한 재난대피 방법을 전달한다. 
또한 재난매뉴얼은 장애인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만든 청각장애인 재난대응매뉴얼은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해 다른 매뉴얼에 비해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실태 조사 과정에서 한국농아인협회나 청음회관 등 청각장애인 단체의 도움을 받았고 소방공무원에 대한 심층 인터뷰도 진행해 청각장애인과 현장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었다.
메뉴얼 개발 후 배포 단계도 중요하다. 여기에는 인적 네트워크의 확보가 병행돼야 한다.
 지역마다 주민이 쉽게 발견할 수 있도록 매뉴얼을 배포하고 마을 사람들이 협력해 이웃에 거주하는 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영숙 한국에너지기술원 박사는 “독일은 마을마다 주민 센터 같이 접근성이 좋은 장소에 매뉴얼이 배치되고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장애인 재난대피가 이뤄진다”며 “재난매뉴얼은 이에 대한 교육이나 네트워크 구축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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