펙트체킹의 새로운 실험: 언론사들의 협업과 생존전략으로서의 가치 


“살아있는 실험실(living laboratory)이에요.”
실험의 결과가 가설에 부합할지 또는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진행될지 알지 못하지만 실험의 매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강연자는 소감을 전했다. 지난 3월 30일, ‘퍼스트 드래프트(First Draft)와 함께하는 언론인을 위한 팩트 검증(How to validate information) 특별 강좌가 서울 강남구 역삼동 디캠프에서 진행됐다. 구글 뉴스 랩(Google News lab)의 미디어 혁신 시리즈의 일환으로 열린 이 강좌는 오전 9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됐다. 퍼스트드래프트의 파트너 네트워크 매니저 에이미 라인하트(Aimee Rinehart) 씨가 강연자로 나섰다.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 등 30여 명의 기자들이 참석했다. 강연 중 절반은 기자들의 질문과 라인하트 씨의 답변으로 진행됐다. 기자들의 질문은 펙트체킹이 갖는 의의, 시민들이 참여하는 펙트체킹 등 다양했다. 퍼스트드래프트의 사진 검증 도구 활용법을 보여달라는 요청에 라인하트 씨는 프로젝터에 본인의 노트북을 직접 연결해 설명하기도 했다.

▲ 크로스체크 파트너 네트워크 매니저 에이미 라인하트 씨가 크로스체크가 정의하는 거짓정보, 허위정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 구글코리아 홍보 담당 KPR)

2015년 출범한 퍼스트드래프트는 언론사 및 SNS 기업들이 콘텐츠를 발견하고 검증해 뉴스화하는 과정에서 실질적이고 윤리적인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독립적인 단체이다. 구글 뉴스랩을 포함해 9개의 창립파트너가 있다. 2015년 6월부터 구글뉴스랩으로부터 지원을 받았고, 올해는 후원사를 다양화하기 위해 미국에 있는 재단들에게도 경제적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다.
퍼스트드래프트는 4월 23일로 예정된 프랑스 대선을 첫 번째 프로젝트 대상으로 선정했다. 라인하트 씨는 자신의 회사가 이를 위해 “크로스체크(Crosscheck)”라는 사이트를 개설해 프랑스 언론사들과 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로스체크는 43개의 언론사와 4개의 기술파트너들과 함께 하고 있다. 크로스체크는 사실이 아닌 뉴스 사이트, 사진, 영상, 밈, 댓글 등을 식별하는 데 집중한다. 또한 객관적인 검증을 위해 반드시 복수의 언론사 소속 기자가 참여해 사실관계를 따지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 프랑스 언론에 경각심을 주다.
“2016년 미국 대선 직후 언론인을 포함한 프랑스 사람들은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결과로 굉장히 충격을 받은 상태(rocked)였다.” 라인하트 씨는 프랑스 언론이 자국이 가짜뉴스의 또 다른 먹잇감(prey)이 되지 않길 바랬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우리와 협력하는 프랑스 파트너들은 언론의 잘못된 흐름을 바로잡기 위한 진정한 열망을 갖고 있었다.”
퍼스트드래프트는 출범할 때부터 속보경쟁, 단독경쟁과 같은 언론사들의 자존심 싸움이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따라서 협업이 어려운 환경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론사들이 규모에 따라 참여할 수 있는 유인이 있음을 인지했다. 소규모 언론사는 큰 회사와의 협업을 통해 취재역량을 키워나가는데 관심이 있었고, 대규모 언론사들은 지방 사정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지역언론사들과의 협업을 통해 지역정서를 살필 수 있었다. 결국 퍼스트드래프트는 20여 개 언론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라인하트 씨의 설명에 따르면, 어느 사안이든지 검증에 참여한 모든 파트너사들이 합의하기 전에는 절대 사이트에 팩트체크 결과를 공개하지 않는다. 라인하트 씨는 각기 다른 언론사에 소속돼 있는 기자들이 통일된 펙트체크 기준을 바탕으로 의견을 수렴해나가는 과정이 “민주주의 그 자체”라고 말했다.

▲ 크로스체크에 참여하고 있는 언론사 및 파트너사
▲ 크로스체크의 팩트체킹 사례

크로스체크의 검증도구(tools)
크로스체크 사이트에 들어가 이들이 하는 작업의 사례를 살펴봤다.
프랑스 대선 후보 마크롱에 대한 아랍어 기사와 함께 "알카에다가 그들의 후보를 정했고, 그 사람은 바로 마크롱이다" 라는 트위터 메시지가 올라 왔었다. 이 메세지가 뜨자, Ouest France, Liberation, AFP, Rue 89 Strasbourg 등 8개 언론사가 검증에 나섰다. 작업 결과 언론사들은 해당 트윗내용이 "거짓(false)"이라고 판단했다. 이들은 트위터 유저가 게시한 기사내용을 번역해, 마크롱에 대한 기사 내용은 사실이지만 이를 토대로 트위터 유저의 주장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고 명시했다.
크로스체크 사이트에는 사안별로 검증에 참여한 언론사들의 이름이 뜬다. 영어, 프랑스어 버전이 동시에 업로드된다. 위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팩트체킹에 참여한 언론사들의 이름이 Crosschecked by (공동확인한) 의 배너에 나열된다.
크로스체크라는 플랫폼을 통해 퍼스트드래프트는 자신들이 쌓아온 검증도구들을 활용해 정확하면서도 효율적인 사실검증을 시도하고 있다. 일반 대중들이 접근할 수 없는 위성사진 또는 고도의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닌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검증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도구들을 계속해서 발굴하고 축적하고 있다. 
라인하트 씨가 강연 때 기자들에게 제공한 사진, 비디오 검증 가이드에는 퍼스트드래프트의 검증단계가 소개돼 있었다. 퍼스트드래프트는 디지털 도구(tools)를 활용하기 이전, 기자 또는 팩트체커들이 스스로 제공받은 자료들을 검증할 수 있는 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사진의 경우 아래의 5가지 질문을 제시한다. 

▲원본사진인지 ▲촬영한 사람은 누군지 ▲촬영한 장소는 어딘지 ▲언제 촬영된 것인지 ▲사진촬영의 동기는 무엇인지

각각의 질문에 다시 5가지 단계를 설정하고 있는데, '원본사진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다음과 같은 판단단계가 있다. i)에서 v) 단계로 갈수록 “사실”일 확률이 높아진다.

i) 리버스 이미지 검색 결과에서 해당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동일한 사진이 온라인 상에 인덱스 된것을 확인했다.
ii) 리버스 이미지 검색 결과에서 일부 동일한 특징들이 포함된 검색 결과가 나타남에 따라 합성 이미지일 가능성이 있다.
iii) 각 소셜 미디어상의 날짜 검색 결과에서 해당 이미지가 온라인상에 공유된 수많은 관련 이미지 중 가장 처음 업로드된 버전으로 밝혀졌으나, 업로드한 사람으로부터 아직 확인을 받지 못했다.
iv) 온라인상에서 다른 버전들을 찾지 못했고, 그림자 및 반사 형태 확인 결과 조작된 것이 아닐 수 있다.
v) 제보자에게 직접 전달받은 이미지이며 제보자와 이야기를 나눈 상태이다.


이와 같은 검증단계에서 퍼스트드래프트가 활용하는 검증도구(tools)는 사진, 비디오, 번역, 위치검색 등의 대분류로 구분된다. 정보의 출처 또는 정보 유포자에 대한 검색은 Who.Is, Spokeo, Pipl을 통해, 사진 검증은 TinEye, Google Reverse Images Search, Fast Image Search, Jeffrey's EXIF Viewer, CheckDesk, 비디오 검증은 Youtube Data Viewer, 번역은 Bridge, Google Translate을 활용한다. 크로스체크는 이와 같은 검증도구를 활용해 2017년 2월 28일부터 2017년 4월 18일까지 총 47개의 게시물을 업로드했다.

►퍼스트드래프트의 검증도구 활용가이드를 참고할 수 있는 URL (https://firstdraftnews.com/the-first-draft-toolbox-for-newsgathering-and-verification/)

퍼스트드래프트의 가짜뉴스 분류법
펙트체킹은 그동안 개별 언론사 또는 Politifact와 같은 팩트체킹 전문 단체 단위로 행해진 바 있다. 언론사들의 협업으로 펙트체킹을 진행하는 것은 새로운 접근이었다. 스토리오브서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 박아란 선임연구위원은 가짜뉴스를 막기 위해 여러 언론사들이 협업하는 팩트체킹 시스템은 바람직한 대안 중 하나라고 꼽았다. 개별적인 언론사가 팩트체킹을 할 경우 정파성, 특정 인물에 대한 선호도로 인해 객관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업에 있어서 ‘무엇이 팩트냐’ ‘무엇이 진실이냐’를 판단하는 것이 언론사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일 것이다. 언론사마다 다른 관점과 프레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합의된 결과에 도달하는 것이 때로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박 연구위원은 덧붙였다.
박 연구위원의 지적처럼 언론사마다 다른 프레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팩트체킹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판별기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가짜뉴스 또는 허위보도에 대한 개념정의가 필요한데, 이는 국내외에서 아직 명확히 합의된 바 없다.
통일된 기준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퍼스트드래프트는 가짜뉴스의 스펙트럼을 정해놓고, 그 속에서 유사개념들을 분류했다. 퍼스트드래프트 리서치 책임자 클레어 워들(Clarie Wardle)은 퍼스트드래프트 사이트에서 자신들의 분류법을 제시하면서 ‘fake news(가짜뉴스)’ 라는 용어는 (최근의 현상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체할 만한 용어를 찾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이것이 비단 뉴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정보 생태계 전체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가짜(fake)"는 수많은 종류의 오보(허위 정보의 의도치 않은 공유)나 허위정보(허위로 알려진 정보의 고의적인 생성 및 공유)의 복잡성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워들 씨는 현재의 정보생태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종류, 콘텐츠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 콘텐츠가 확산되는 방식, 세 가지 기준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함을 밝히고 있다.
퍼스트드래프트의 분류법에 따르면 오보(Misinformation)는 거짓 정보이지만 유포자가 이를 사실이라고 생각해 유포하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허위정보를 유포하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페이크 뉴스가 되는 것이다. 허위정보(Disinformation)는 유포자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정보를 유포하는 것이다. 퍼스트드래프트는 이런 페이크 뉴스를 발견할 수 있는 7가지 타입을 제시한다. 7가지 타입에는 풍자 혹은 패러디(Satire or Parody), 조작된 내용 (Fabricated Content), 틀린 맥락 (False Context) 등이 있다.

팩트체킹: 생존전략으로서의 가치
한국에서도 언론사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팩트체킹 플랫폼이 출범했다. SNU 펙트체크는 언론사들이 검증한 공적 관심사를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서울대학교 언론정보연구소가 운영하는 정보서비스이다. 제휴 언론사는 동아일보, 매일경제,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한국일보 8개 신문사와 KBS, SBS, JTBC, MBN, TV조선, YTN, 채널A, MBC 8개 방송사다. 주요 언론사들의 팩트체킹 결과를 정리하고 플랫폼에 게재하는 방식인데, 언론사들이 함께 팩트체킹을 하는 것이 아닌 개별 언론사들의 검증결과를 공동의 플랫폼에 재전송하는 데 그치는 한계가 있다.
최근 들어 국내외적으로 팩트체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박 연구위원은 가짜 뉴스가 미디어 수용자들의 눈과 귀를 가리어 올바른 선택을 하는데 장애물이 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에 위해가 될 수 있다. 가짜 뉴스를 막기 위해서는 거시적으로는 뉴스 생산자와 뉴스 이용자, 뉴스 매개자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각 언론사와 기자들의 끊임없는 자문과 고민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강연 이후 30분 동안 진행된 스토리오브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라인하트 씨는 가짜뉴스가 언론의 생존을 위협함으로써 민주주의에 위해가 된다고 말했다. “가짜뉴스로 독자들의 의견이 극단적으로 대립한 결과 사회구성원 집단 간에 적대적인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이는 결국 진짜뉴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약화시켜 정치인들을 감시할 언론의 감시기능을 빼앗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또한, 기사나 정보가 유포되기 전 기자들의 철저한 사실파악 노력이 우선돼야 하지만, 결국 펙트체크의 필요성에 대한 언론사 최고 경영진의 인식이 전제돼야 함을 역설했다. 팩트체킹에 대한 충분한 인력과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개별 언론사의 의사결정자, 경영진의 의지가 뒷받침돼야 체계적인 검증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퍼스트드래프트는 프랑스 대선을 시작으로 점차 규모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각국의 대선, 올림픽과 같은 영향력 있는 이슈들을 선정해서, 프랑스 대선 크로스체크를 통해 배운 점들을 반영할 계획이다. 다음 프로젝트로 고려하고 있는 것은 독일 대선이다. 라인하트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뉴스를 접하고, 한국도 좋은 프로젝트 대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선까지 시간이 촉박해서 우선 필리핀을 첫 번째 아시아 프로젝트로 집중하게 됐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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