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슬 씨(24)는 남도학숙 재수생이다. 성신여대에 입학한 2012년에 남도학숙에 처음 지원했으나 탈락했다. 수능 점수가 낮다는 이유였다. 이씨는 “최저등급만 맞추면 대학 입학이 확정됐기에 수능에 다소 소홀했었다”고 말했다. 한슬씨는 대학생이 된 후부터는 학점을 잘 받기 위해 노력했다. 이씨의 1학년 평점은 4.27이다. 한슬씨는 남도학숙에 다시 지원했고 예비 10번을 받아 결국 들어갈 수 있었다. 남도학숙은 전라남도와 광주시가 서울로 유학 온 지방 학생들을 위해 만든 기숙사다.

이밝은 씨(26) 역시 남도학숙에 들어가기 위해 학점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는 남도학숙에 입사하기 위해 2012년 계절학기를 들으며 평균 평점을 올렸다. 이씨는 “계절학기 등록금이 아까웠지만 자취를 하며 써야하는 돈보다 싸다고 생각했다”며 “학교에서 다소 멀긴 하지만 신축기숙사인 학교 기숙사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라고 남도학숙을 원했던 이유를 밝혔다. 이같은 상황은 남도학숙뿐만이 아니다. 충북학사는 2017년 재사생 100명을 선발했는데 483명의 학생이 지원했다.

▲대방동 남도학숙 전경
▲당산동 충북학사 전경

 

 

 



 

 


 

많은 학생이 몰리는 데는 경제적 이유가 크다. 부동산 중개업체 ‘다방’의 조사 결과, 서울 지역 대학가 원룸의 평균 가격은 보증금 1450만 원에 월세 49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증금을 제외하고도 1년에 6백만 원 가까이가 주거비로 드는 셈이다. 하지만 재경기숙사 입사생은 식비를 포함해 평균 월 15만 원만 내면 된다. 나머지 생활비는 모두 해당 시·도에서 부담한다. 수도권 대학에 진학한 지방 학생을 위한 재경기숙사는 총 17개. 매년 약 4천여 명에 달하는 대학생이 재경기숙사 혜택을 받고 있다. 

이유불문… B학점 미만은 지원 불가
대부분의 재경기숙사는 지원자의 생활수준과 성적을 고려해 입사생을 선발한다. 많게는 75%에서 적게는 50%까지 지원자의 성적이 반영된다. 대학 신입생의 경우 수능 성적이, 재학생의 경우 총 평균 학점이 기준이다. 경제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도 성적이 일정 기준 미만이면 지원할 수 없다. 

2014년 군 제대 후 2015년 대학교 2학년으로 복학한 나경진 씨(26)는 성적 때문에 남도학숙에 지원조차 못 했다. 당시 남도학숙의 지원 기준은 평균 평점이 B학점 이상이었다. 그는 “군 입대 전 마지막 학기 성적이 2.8이었다.”고 말했다. 경진씨는 “성적이 나쁘다고 기숙사에 지원조차 할 수 없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공부를 다소 소홀히 한 학생도 지원하지 못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대부분의 기숙사가 평균 평점이 B학점 미만인 대학 재학생에게는 지원 기회조차 주지 않는다. 또한 생활수준과 성적이 비슷한 비율로 선발 점수에 반영되기에 학점이 좋다면 경제적 도움이 크게 필요치 않아도 입사할 수 있는 구조다.

수능 성적순 선발… 학벌 공고화 우려
대학 신입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제천학사의 경우 신입생 상위 20%는 가계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수능이나 고3 성적만 적용하여 선발한다. 일정 점수 이하의 성적으로는 지원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 장학관과 포천학사는 수능이나 고3 내신 성적이 상위 20%인 학생만 지원할 수 있다. 서울장학숙과 충북학사는 수능 백분위 평균이 80점 미만인 학생은 지원할 수 없다.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입시 현실에서 대학 신입생의 성적을 반영하는 것은 학벌을 공고화할 수 있다. 학벌없는사회를위한광주시민모임(이하 학벌없는사회)이 남도학숙의 2014~16년 입사생을 분석한 결과 입사생의 약 40%가 중앙대, 한양대, 서울대, 이화여대 학생이었다. 이 네 학교 모두 3년 동안 입사생의 약 40%를 차지했다. 재경기숙사 중 두 번째로 큰 충북학사도 마찬가지였다. 2016학년도 재사생 320명 중에서 서울대 46명, 고려대 25명, 연세대 13명 등 이른바 ‘명문대’로 꼽히는 대학 재학생이 220명이 넘었다.

학벌없는사회는 “지역인재란 성적이 우수하거나 이름 있는 대학의 학생만이 아님에도, 그동안 남도학숙은 학벌을 공고화 하는 공간으로 활용되어 왔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자 재단법인 남도학숙은 올해부터 입사자 선발규정에서 성적 제한 규정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기존의 지원기준인 ‘평균 평점이 B학점 이상인 재학생’ 규정을 철폐했고 서울지역 4년제 대학으로 한정됐던 기준을 전문대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지원 자격에서 성적 기준만 없앴을 뿐 지원자의 성적을 반영한 점수를 토대로 선발하는 방식은 그대로다. 성적이 높은 학생일수록 입사에 유리하게 되는 상황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복지가 아닌 장학 사업
성적기준 철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지방소도시 출신으로 2017년 재경기숙사 입사생 선발에 탈락한 문 모씨는 성적 기준이 철폐되면 중산층 학생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씨는 “아버지가 공무원이시다. 물론 누군가는 더 힘든 사람들 생각도 안 하느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비와 생활비가 부담인건 매한가지다. 현재도 한부모 가정이나 차상위 계층에 대한 혜택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있다.”고 말했다. 

9개 시·군과 서울시가 함께 설립한 내발산동공공기숙사에서 2년째 살고 있는 전혜진 씨(24)는 “비록 부모님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된다고 하지만 지역인재육성 사업의 일환인 만큼 학생 스스로도 어느 정도의 노력을 보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충북학사 관계자는 “충북학사는 단순한 복지사업이 아니다. 우수한 지역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충북학사의 설립 목적”이라며 현재의 성적 기준이 설립 목적에 부합하게 설정됐다고 말했다. 

공부를 못해도 배울 수 있도록… 모두를 위한 장학관
강화도가 설립한 강화장학관은 지원자의 성적을 반영하지 않는다. 강화장학관 지원자는 생활수준만으로 1차 평가를 거친 후 공개 추첨을 거쳐 강화장학관 입사 기회를 얻는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뿐 아니라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기회가 잘려나간 학생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강화장학관 관계자는 “강화장학관은 강화군민 모두를 위한 장학관이다. 성적 제한을 두면 일부 좋은 학교의 상위권 학생들에게만 유리하기 때문에 하위권 학생은 혜택을 받기 힘들다. 그 학생들도 어려움 없이 배울 수 있도록 하고자 성적 제한을 두지 않는다.”고 성적을 보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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