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살 때부터 87세까지, 박옥임 할머니(87)는 20년 넘게 폐지를 주웠다. 신림동 난곡에 살 때는 몸이 건강했다. 남편도 함께 일했다. 폐지 가격도 지금보다 높았다. 10년 전 석 달 동안 병원에 있어야 할 정도로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딸의 보살핌이 필요해 자양동으로 이사 왔다. 가만히 있어도 허리가 쑤시고 몸이 아프다. 그런데도 폐지를 줍는다. 딸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다. 폐지 값은 해가 갈수록 떨어져서 몸이 건강했을 때보다 일을 더 해야 한다. (통계청 <재활용가능자원가격조사> 기준 2008년 1월 기준 폐지 가격 kg당 146.9원. 2017년 2월 기준 폐지 kg당 120원) 새벽 세시에 일어나 저녁 일곱 시까지 일을 한다. 그런데 황 할머니는 지금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요즘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저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어.” 지난 2016년 6월 청년들이 제작한 ‘끌림 리어카’를 만나고부터다. 끌림은 서울대학교 사회공헌동아리 인액터스와 전국고물상연합회가 작년 11월에 설립한 비영리 법인이다. 
 

▲ 박옥임 할머니가 리어카를 끄는 모습

끌림 리어카, 무게는 빼고, 광고는 더하고
“아, 얼마나 가벼운지 몰라. 원래는 내 몸무게보다 훨씬 무거운 걸 끌고 고갯길을 오르락내리락했는데… 이걸 미니까 허리에 무리가 덜 가. 그러니까 일도 더 하게 되고 좋지.” 할머니가 현재 밀고 다니는 ‘끌림 리어카’는 33kg이다. 보통 폐지 수거 노인들이 밀고 다니는 리어카는 60~70kg 정도다. 지난 2015년 12월, 끌림의 이건용 팀장은 폐지 수거 노인을 위한 사업을 계획하면서 직접 리어카를 끌어보았다. 이 팀장은 “리어카를 운전해보니 20대 남성인 저도 쉽게 못 끌겠더라고요. 그래서 가장 먼저 리어카 경량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끌림은 경량화 소재를 사용해서 리어카 무게를 20kg 이상 감량했다. 현재 끌림 리어카는 33~40kg 정도다. 경량화에 성공한 이후에는, 야광판을 달았다. 새벽과 밤에도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끌림 리어카는 리어카에 달린 ‘광고판’ 때문에 더 특별하다. 리어카 양옆에는 가로 870mm, 세로 640mm 크기의 광고판이 있다. 끌림은 한 달에 5만원 이상을 노인들에게 드리는 것을 목표로 기업 광고비의 60~90%를 노인에게 전달한다. 나머지는 리어카 생산비와 유지비로 쓰인다. 현재 끌림은 비영리법인이라 광고비에서 따로 가져가는 수입은 없다. 내년쯤,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후에는 광고비 일부를 수익으로 가져갈 예정이다.

21일 기준, 끌림 리어카를 끄는 폐지 수거 노인은 총 12명으로 광진구와 관악구 일대에서 리어카를 끈다. 이들은 폐지 수거 수입 이외에 월 37,500원을 광고료로 받는다. 관악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폐지 줍는 노인 32%의 월수입은 10만 원 미만이다. 그런 그들에게 고정 수입 월 37,500원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다. 박옥임 할머니의 경우, 기초연금으로 20만 원을 받고, 폐지를 모아 한 달에 적게는 5만 원 많게는 10만 원 정도를 번다. 그중 월세가 20만 원이다. 남은 돈으로 생활한다. 이 때문에 집에서 식사는 거의 하지 않는다. “식사비도 많이 들고, 겨울 되면 또 가스비도 내고 해야 하니까 최대한 아껴야지.” 할머니는 복지관이나 교회에서 한 끼를 때우고, 나머지 식사는 대체로 굶는다. 하루에 두 끼 이상 챙겨 먹는 경우는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없다.그런 할머니에게 매달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37,500원은 큰 힘이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것이 좋아서 아직 한 번도 쓴 적이 없지만, 할머니에겐 큰 원동력이 된다. “일할 힘이 더 나고. 감사하고 그렇지 뭐. 너무 감사해 정말.” 

끌림 리어카, 관심을 ‘끌다’
끌림 리어카는 단순히 광고비를 받는 것 그 이상이다. 광고판이 달린 리어카는 노인들의 외로움을 덜어준다. “내가 리어카 끌고 다니면 다 쳐다봐. 가끔은 말도 걸어주고.” 실제로 지난 2월 14일 기자가 직접 박옥임 할머니가 리어카를 끄는 모습을 지켜봤다. 동네 아주머니 세 분이 길을 가다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 오늘도 고생하시네요.” “추운데 옷 따뜻하게 입고 다니세요.” 원래 아는 분이냐 묻자, “이 리어카 끌고 다니면서부터 오다가다 이렇게 말을 하게 됐어. 애들도 지나가다가 ‘예쁜 리어카다!’ 하기도 하고.” 

동네 주민들과 '말트기'를 한 후부터 할머니 집 앞에도 변화가 생겼다. 14일 할머니의 반지하 문 앞에는, 신문지 2kg 가량, 페트병 20개, 박스 10개 등이 놓여있었다. “오다가다 만난 사람들이 내가 여기 사는 걸 아니까 이렇게 갖다 주기도 하더라고.” 이건용 팀장은 리어카 제작 초기를 회고하며 “처음에 노인들을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하루에 말을 하실 일이 거의 없으셨다는 거예요. 리어카를 끄시는 분 중에는 독거노인이 많으니까요.”라고 말했다. 끌림과 함께 리어카를 관리하는 고물상 선경자원 유형희 사장도 “지역 주민들이 고물상과 노인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 좋다”며, “예전에는 고물상이 더럽거나 시끄럽다는 민원이 많이 들어왔는데 사업 이후에는 좋은 일 한다는 것에 (지역 주민들이) 공감을 해서 그런지 민원이 많이 줄었다”고 전했다. 

▲환경부·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실천협약 및 광고 문구

끌림 리어카는 확산 중…
끌림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노인들에게 리어카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리어카 대수가 한정돼있어 일부 노인만 끌림 리어카를 끌고 있다. 선경자원 유 사장은 “현재 우리 고물상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이 150명 정도 돼요. 근데 리어카가 한정돼있어서 마음이 아프지. 서로 자기가 (끌림 리어카를) 끌고 싶다고 하셔서.” 끌림은 폐지 줍는 노인들을 인터뷰해 대상자를 정한다. 생계가 어려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먼저 끌림 리어카를 제공한다. 또 광고효과를 높이기 위해 리어카를 자주 끄는 분들에게 우선순위를 준다.  

끌림의 바람대로 리어카는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작년 12월 환경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와 끌림은 ‘폐자원수거노인 소득 향상 등을 위한 실천협약’ 체결을 맺었다. 환경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폐자원수거노인의 재활용 자원을 모으는 활동이 재활용산업의 근간이 되는 매우 중요한 활동임을 깨닫고, 열악한 환경 개선을 위해 지원사업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협약 실천의 일환으로 유통자원센터는 리어카 50대를 보급하기로 했다. ‘유통지원센터가 어르신들을 응원합니다’라는 공익광고가 리어카에 실린다. 환경부는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되면 공익 가치를 중시하는 기업, 지역 소상공인, 단체 등의 참여가 확대되어 어르신들의 안정적인 소득 증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전국의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으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11일 세브란스 병원 외래간호팀도 리어카 20대의 제작비를 기부했다. 세브란스 외래간호팀 이숙자 팀장은 “끌림 리어카는 폐지 수거 노인을 돕는 획기적인 방법이라 생각해 기부를 결정하게 됐다”며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끌림 리어카가 더 확대 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 받은 끌림 리어카는 기존에 운행되던 광진구와 관악구 일대를 넘어 강동구와 성동구에도 보급될 예정이다. 광고판을 부착한 ‘끌림 리어카’가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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