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코너는 후보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지금의 지도자를 만든 요인이 젊은 시절에 있지 않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취재팀은 1월 중순부터 자료를 찾았습니다. 자서전, 언론보도, 블로그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유용했지만 이런 내용만으로 기사를 쓰기가 곤란해 2월부터 직접 취재에 나섰습니다. 출마선언식, 토론회, 출판기념회…. 주변 인물도 만났습니다. 배우자, 학교친구, 회사동기, 투쟁동지, 보좌관, 정책자문단을 통해 후보의 면모를 더 파악했습니다. 유명 언론사의 정식기자가 아닌, 학생기자를 위해 많은 분이 시간을 내서 만나거나, 전화와 이메일로 취재에 응했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당의 후보선출이 막바지로 향하는 중입니다. 경선결과 못지않게 정치 지도자의 이해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주요 후보를 모두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은 지금 유력한 대선후보이지만 여느 정치인과 다른 길을 걸었다. 정치인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정당에서 수십 년을 보내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이나 시민운동을 했던 경험 역시 없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이 지금의 안 의원을 만들었을까.

대학생에서 기업인으로

정치인이 되기 전의 안철수를 가장 먼저 지켜본 사람은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동기들이라고 생각했다. 1980년 서울대 의과대학 입학생을 중심으로 취재원을 찾은 이유다. 부산에 있는 서울메트로병원의 이명호 병원장이 그중 한 명. 같은 부산 출신이어서 안 의원과 친하게 지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아주 얌전하고 잘 나서지 않는 친구였어요. 대학생 때는 많이들 술 마시고 당구 치며 놀잖아요. 잡기라고 하나요. (웃음) 그런 쪽에 관심이 없는 친구였어요. 부모님이 원하는 가장 모범적인 학생이었죠.”

안 의원은 학생운동에 나서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휘어잡는 리더십 역시 없었다. 그저 묵묵히 공부하는 조용한 학생이었다.

대학 시절 그는 가톨릭 의료봉사 서클인 ‘무의촌’에 들어갔다. 산간도서 벽지의 노인이나 어린이를 진료하는 대학 동아리였다. 거기서 아내(김미경 서울대 의대교수)를 처음 만났다. 젊은 안철수를 가장 잘 알겠다고 생각해 취재를 요청했다. 이메일을 보낸 지 1주일 뒤에 김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다.

“하혜빈 기자님! 인터넷매체 <Story of Seoul>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안철수 대표의 <20대 시절>에 관한 기획 기사에 초대하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만 안대표의 지방 일정 등 사전에 약속된 일정으로 직접 대면 취재에 응하지 못함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가능하시면 서면으로 질문을 보내 주시면 진솔하게 답변 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앞으로 하혜빈 기자님의 대학생활 동안 멋진 활약을 기대하며 졸업 후 대한민국을 위해 훌륭한 인재가 돼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김미경 드림”

김 교수는 “지금 안 대표가 아재 개그를 많이 하는데 그때도 썰렁한 농담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첫 인상이 굉장히 순수해 보였는데 선배들이 그를 두고 완전 천재, 한번 읽으면 다 기억한다고 말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무의촌’ 가입은 의대생으로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고민의 결과였던 것 같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두 사람은 본과 3학년 때 처음 만났다. 각자 관심이 있는 분야에 몰두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성격이 잘 맞는 듯 했다. 데이트 장소는 주로 도서관이었다. “공부하다가 놀면 훨씬 더 재미있어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희가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잘 다녔다고 합니다. 꼭 특별한 데이트 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둘이 있으면 모든 게 다 좋았어요.” 김 교수는 당시 안 의원과 주고받은 작은 쪽지까지 모두 보관하고 있다. 최근에 펼쳐본 쪽지 하나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 나온 건지는 잘 모르지만 불어는 보기만으로도 아름다운 것 같다. 누구 같이.”

▲안 의원이 1992년 아내 및 딸과 함께 지인의 집을 찾아갔을 때 모습 (출처: 안철수 공식 블로그)

대학생 안철수는 뭔가에 몰두하는 성격이었다. 전공인 의학뿐만 아니라 컴퓨터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해 밤을 새워 가며 백신을 만든 이야기는 잘 알려졌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게임광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새로 나오는 컴퓨터 게임을 사서 해법을 다른 사람들과 해법을 연구하고, 할 일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게임을 했다.(김상훈, <컴퓨터의사 안철수, 네 꿈에 미쳐라>, 79쪽)

컴퓨터가 비싸서 지금처럼 PC와 게임이 널리 보급되지 않았지만 그는 컴퓨터를 놓을 줄 몰랐다. 이는 ‘안랩’이라는 회사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안 의원과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높다. 그가 2월 25일 청년창업가인 이진열 씨를 만난 이유다. 이 씨의 서울대 졸업연설을 보고 학교선배이자 창업선배로서 만나고 싶다며 먼저 연락했다.

이날 안 의원은 안랩을 이끌던 경험을 토대로 회사의 직원이 10명일 때, 그리고 50명일 때의 리스크와 해결방법에 대해 조언했다. 그는 이씨와 10분 정도 이야기한 뒤, 이 씨 회사의 직원들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기자는 안 의원이 나올 때까지 1시간 정도를 밖에서 기다려야 했다. 안 의원이 떠나자 이 씨는 “창업을 했던 경험이 있으신 만큼 조언이 현실적이다. 정치적인 이슈와 별개로 후배들을 격려하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했다.

▲안 의원이 2월 25일, 청년 창업가 이진열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업인에서 정치인으로

오늘의 안 의원을 자세히 알려고 정책네트워크 내일과 접촉했다. 고려대 최상용 명예교수가 이곳의 이사장이다. 안 의원의 후원회장을 지냈으며 그의 정치적 멘토로 알려졌다.

인터뷰를 하루 앞둔 2월 13일, 최 교수는 스승이자 멘토로서의 질문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안 의원이 최 교수로부터 뭔가 배웠다는 인상을 주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서라고 했다.

최 교수는 안 의원과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가 아닌, 정치적 선후배 사이로 정의하고 서울 마포구의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났다. “제가 안 대표의 멘토라고 불리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저도 안 대표에게서 배운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최 교수는 안 의원의 장점으로 온화함과 인내심을 꼽았다.

김 교수를 포함해 지인 누구도 정치인으로서의 안철수를 생각하지 못했다. 최 교수의 의견도 다르지 않다. 두 사람의 공식적인 첫 만남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 교수는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고문으로 일하며 정의에 대해 강의했다. 안 의원이 여기서 강의했는데 주제는 ‘한국의 소프트웨어’였다.

두 사람은 2004년에 만날 수도 있었다. 최 교수는 당시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장이었다. 일부 중진 의원들이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소장을 비례대표로 추천했지만 최 교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는 그 때 안철수 소장이 창조적인 일을 하는 젊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열린우리당에서 당선시키기 위해 정치판으로 데려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비례대표 제안을 했다면 그가 수락했겠냐고 묻자 최 교수는 “가볍게, 쉽게 응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까지 안 의원은 이렇게 학습과 연구에 매진했다. 2012년 대선 당시 안 의원을 처음 만난 채이배 의원(국민의당)은 컴퓨터를 다룬 만큼 ‘0 아니면 1’이라는 논리적 사고방식에 안 의원이 익숙하다고 했다. 어떤 문제에 한번 접근하면 해결하기까지 냉철하게 고민한다는 뜻이다. “가끔은 너무 교수님 같고, 컴퓨터 기술자 같은 느낌이 있어요. 감성적으로 유권자에게 다가가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을 먼저 하니까요.”

그래서인지 안 의원은 정치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혼자만의 노력으로 공부하고, 사업을 하면서 성과를 거뒀기에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해결하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정치를 시작하며 달라진 점을 묻자 김 교수는 “하얗게 변한 머리요. 정치를 안 했다면 머리가 까만색이었을지 몰라요”라고 했다. 정치인으로서 안 의원이 받은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게 한다.

작년에 실시된 4.13 총선 당시 안 의원은 최 교수 집을 찾아갔다. 18년 동안 끊었던 술을 마시며 고민을 나눴다고 한다. 정치지도자는 근본적으로 갈등 앞에 스스로를 던지고 그것을 풀어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최 교수는 강조했다. 안 의원과 인연을 맺으면서 가장 많이 이야기를 많이 나눈 부분도 이러한 점이라고 했다.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의 김철근 대변인은 안철수 캠프 관계자 7명과 함께 3월 1일 기자를 만났다. 여기서 그는 “제가 여의도에만 20년 있으면서 많은 정치인들을 만났습니다. 안 대표는 그 중 가장 많은 분야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2012년부터 안 의원과 함께 했다. 처음만 해도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이 없고, 말수가 적어 좋은 지도자가 될 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에 안 의원은 ‘정치의 방정식’을 풀었다고 김 대변인은 강조했다. 정치경험을 쌓으며 예전보다 자신감과 여유를 갖게 됐다는 뜻이다.

안 의원은 정치에 입문한 2012년 이후 많은 일을 겪었다. 서울시장 양보, 대선출마 선언과 단일화, 국회의원 당선…. 최 교수는 정치인 안철수가 ‘농축 경험’을 했다고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안 의원은 점점 외향적인 성격으로 변하는 중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전한다. 이명호 원장은 “예전에 비해 수줍어하거나 겸연쩍어 하는 모습은 줄어든 것 같아요. 요즘은 동기 모임에서도 잘 나오고, 밴드나 카카오톡 채팅방에서도 종종 참여를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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