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코너는 후보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지금의 지도자를 만든 요인이 젊은 시절에 있지 않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취재팀은 1월 중순부터 자료를 찾았습니다. 자서전, 언론보도, 블로그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유용했지만 이런 내용만으로 기사를 쓰기가 곤란해 2월부터 직접 취재에 나섰습니다. 출마선언식, 토론회, 출판기념회…. 주변 인물도 만났습니다. 배우자, 학교친구, 회사동기, 투쟁동지, 보좌관, 정책자문단을 통해 후보의 면모를 더 파악했습니다. 유명 언론사의 정식기자가 아닌, 학생기자를 위해 많은 분이 시간을 내서 만나거나, 전화와 이메일로 취재에 응했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당의 후보선출이 막바지로 향하는 중입니다. 경선결과 못지않게 정치 지도자의 이해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주요 후보를 모두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학생운동 경험을 반성하느냐고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 요원이 묻자 청년은 이렇게 답했다. “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사법시험 3차 면접 전의 일이었다. 그는 1980년 6월, 유치장에서 제22회 사법시험 합격 통보를 받았다. 경희대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서울 청량리경찰서에 구속된 지 20여 일째였다.

청년은 그 후 시민운동가이자 변호사로 활동했고 대통령 비서실장, 국회의원, 정당 대표를 거쳐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섰다. 사법고시 합격의 문턱에서 당당했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그의 20대 시절이 궁금했다.

원칙의 정치인

문 전 대표를 취재하기 위해 2월 4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을 찾았다.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의 북콘서트가 있던 날. 서울지하철 1호선 회기역 앞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승객 10여 명이 문 전 대표의 저서를 손에 들었다. 행사 3시간 전부터 줄이 이어졌다.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두른 사람들이 몰리면서였다. 오후 5시, 행사가 시작됐을 때는 4500여 좌석이 거의 찼다.

북콘서트는 문 전 대표와 패널이 대화하는 식이었다. 소설가 이외수 씨(71)는 자신의 사인회에서 문 전 대표가 줄을 서서 기다리던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고민정 전 KBS 아나운서(38)는 “인터뷰 하면서 대표님 참 고집이 세구나 생각했다. 이 고집으로 끝까지 대한민국을 이끌어 주시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원칙 있는 뚝심으로 대한민국이 정상이 되도록 해 내겠다”고 답했다.

문 전 대표의 캠프 관계자들도 원칙주의를 다른 후보와의 차별성으로 꼽았다. 기자는 2월 10일 서울 영등포구 대산빌딩 5층을 찾아갔다. 캠프 사무실이 꾸려진 지 1주일이 채 안 돼 어수선한 상황. 하지만 관계자들은 감사인사를 하면서 커피를 대접했다.

인터뷰에 응한 김중현 보좌관(44)은 2012년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캠프에 합류했다. 그는 “원칙에 입각한 의사결정에 흔들림이 없는 사람”이라고 문 전 대표를 표현했다.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가겠다는 발언과 관련해서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가야할 상황이 온다면 (북한을 먼저) 가야한다는 게 아닐까”라고 김 보좌관은 설명했다.

정재성 변호사(57)는 1990년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에 영입되면서 문 전 대표와 함께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 사건을 밤새 준비하고 기록했던 변호사로 기억한다. 의뢰인의 질문이라든지, 요구를 가급적 많이 들어주는 편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사무실에서 변호사를 만나기 굉장히 힘들고, 대부분 사무장을 만나서 상담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변호사는 가급적 당사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곤 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특전사령부와 경희대 축제에서의 모습. (출처: 문재인 페이스북)

안봉진 변호사(56)는 2012년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춘천시지역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면서 문 전 대표를 만났다. 안 변호사는 “그 정도 사회적 위치에 있는 분들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달리 신사적이고 겸손하다. 하지만 갈등국면에서 본인의 견해를 가지고 단호한 판단을 내리는 모습도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의 이러한 모습은 특전사 시절에도 나타났다. 신문지에 꽁꽁 싼 물건을 문재인 일병이 부대 교육장교에게 건넸다. 숙소에서 열어보니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저)였다. 당시 운동권의 바이블. 군인이 소지하면 체포사유가 될 만한 금서였다. 노창남 전 합참 특수작전과장은 “데모하다 구속되고 강제징집 당해서 여기까지 온 주제에 누구 죽일 일 있나하고 생각했다”고 <그 남자 문재인>이라는 책에서 밝혔다. 30여 년 후 문 전 대표를 다시 만났을 때, 노 전 합참 특수작전과장은 책을 찢어서 버렸다고 했다. 문 전 대표는 “생각이 짧아 책을 줬지만, 그 일로 군에서 잘못되지 않았을지 걱정하고 후회했다”며 미안해했다.

정재성 변호사는 문 전 대표가 보통의 원칙주의자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원칙주의자들은 보통 완고하기 쉬운데, (그는) 완고하지는 않다. 본인과 생각이 다르면 거절하지만, 돌아서서 혼자 생각을 많이 하는 분이다.” 정 변호사는 문재인이 더 나은 제안을 받는다면 충분히 수용해 자기 의견을 바꿀 만큼 융통성도 있다고 했다. 기본적으로 원칙주의자지만 소통과 공감에 능하다는 뜻이다.

유권자들도 문 전 대표의 진정성 있는 원칙주의에 호감을 표시했다. 기자가 북콘서트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 김경철 씨(25)는 “5년 전에는 잘할 것 같아서 지지했지만 지금은 그냥 평소에, 일상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줄 것 같다”고 지지이유를 설명했다.

원칙주의, 갈등을 부르다

몇 가지 확고한 원칙을 세워두면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원칙이 발목을 잡는 경우도 있다. 김중현 보좌관은 “전략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너무 본인 고집과 기준에 의해서 이야기하는, 다소 비정치적인 점이 아쉽다”고 했다. 캠프에 영입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의 구설수에 대응했던 모습이 대표적이다. 전 전 특전사령관은 “아내가 비리가 있었다면 내가 권총으로 쏴 죽였을 것”이라고 SNS에서 말했다. 심화진 성신여대 총장이 교비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논란이 생기자 문 전 대표는 “부인을 채용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 보좌관은 “본인도 비정치적 발언임을 알고 있지만 잘 안 되시더라”라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에도 원칙으로 인해 갈등을 겪어야 했던 일이 있다. <문재인 스타일>이라는 책에 따르면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선 대학생 20만 명이 신군부에 맞서는 투쟁을 벌였다. 심재철 서울대 총학생회장, 유시민 서울대 대의원회 의장은 “쿠데타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며 일단 퇴각하자고 주장했다. 이수성 서울대 학생처장(후일 국무총리 역임)도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충고했다.

경희대 복학생 문재인은 같은 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시위에 나선다. 학생운동 지도부의 회군결정과 정반대였다. 문 전 대표는 당시 ‘경희대 복학생회’ 플래카드를 들고 선두에 있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누군가가 앞장을 서 줘야 하는데, 따라다닐 사람은 많지만 앞장서 줄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고 문 전 대표는 설명했다.

오마이뉴스의 조창훈 전 인턴기자(31)는 “회사에 들어서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을 다 찾아가 (문 전 대표가)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보통 정치인들의 의례를 많이 배운 것 같았다”고 전했다. 카리스마를 많이 보여주려는 것 같은 인상을 줬다는 뜻이다.

문 전 대표의 강연회가 2월 6일, 서울 동작구 윌비스고시학원에서 열렸을 때의 일이다. 공무원 준비생을 대상으로 하는 자리라서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왔다. 고민정 아나운서가 기회를 주자 사시존폐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질문이 나왔다. 문 전 대표는 “제가 참여정부에 있던 시절 로스쿨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사법시험을) 존치하자는 이야기는 못하겠다”고 대답했다.

기자는 문 전 대표에게 질문했던 이미현 씨(33)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 씨는 늦깎이 로스쿨준비생. 그는 문 전 대표의 답변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과연 로스쿨에서 경력단절여성을 받아줄까? 문재인 전 대표 본인은 남성이다. 여성은 한 번 경력이 단절되면 노동시장 재진입이 힘들다는 관점을 생각 못하시는 것 아닌가 해서 질문했다. 질문을 하면 적어도 생각해 보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많이 실망스러웠다.”

▲문재인 전 대표가 윌비스고시학원에서 강연하는 모습

캠프에선 문 전 대표의 소통능력이 점점 더 좋아지리라 기대한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행사를 빡빡한 일정에 끼워 넣은 탓에 거친 언사가 나왔다고 평가했다. 김중현 보좌관은 “정치인으로서 대중을 만나는 스킨십이 굉장히 유연해졌다”며 ‘현실정치에 있는 사람은 반대하는 집단도 포용해야 한다’는 문 전 대표의 발언을 예로 들었다.

문 전 대표를 잘 아는 취재원을 만나려고 한 달 이상 시도했다.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57)은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부소장. 매체(스토리오브서울)의 격이 맞지 않는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송철호 변호사(68)는 바쁜 일정을 이유로 들었다. 한승헌 변호사(83)는 건강이 좋지 않아 힘들다면서 신간 시집 <하얀 목소리>를 보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지 못해 아쉬웠지만 오늘의 문 전 대표를 만든 20대 시절을 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MBC와 한국경제신문이 공동으로 실시한 새해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의 자질 중 세 번째로 소통능력이(15.9%) 꼽혔다. 20대 시절부터 원칙을 지켜온 문 전 대표가 소통을 강화해 꿈을 이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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