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노 요시히로(牧野 愛博) 지국장

※기사에 나온 특파원의 생각은 해당 언론사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안녕하십니까? 메일 반갑게 받았습니다. 편하신 시간 있으실 때 우리 사무실 오시겠습니까?" 영어로 보낸 인터뷰 요청 메일에 대한, 일본 아사히신문의 마키노 요시히로(牧野 愛博) 서울지국장의 회신 내용 중 일부다. 영어로 된 답장을 예상했는데 일본인 특유의 정중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한국어였다. 그의 유창한 한국어 실력은 곧 성사된 인터뷰에서 확인했다. 2016년 12월 28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동아일보 본사 9층의 아사히신문 사무실에서 한국어로 이야기를 나눴다.
 
- 일본에도 ‘최순실 게이트’ 같은 사건이 있었나.
“정치부패 스캔들은 있었다. 하지만 국정농단과 같은 사건은 없었다. 물론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이 비공식적으로 여러 조언을 받는 등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정치에 도움이 되도록 이용하는 경우는 많다. 그래도 직책을 맡기는 등 최대한 공개적인 방법을 활용하려 한다. 동계올림픽 같은 국가적 행사에 기업의 재정지원이 필요할 때도 독립적인 위원회를 만든다. 그런 위원회를 통해 기업참여를 유도한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마키노 지국장은 2007년 1월부터 2012년 1월까지 청와대를 출입했다. 2012년 1월부터 2014년 8월까지는 도쿄 본사에서 순회특파원 겸 국제보도부 차장을 지냈다. 2015년 9월부터 청와대 출입기자로 다시 일하는 중이다. 6년 넘게 청와대를 취재하는 셈이다.

- 최순실 게이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나.
“이번 정권에서 청와대를 출입하며 한국정부 취재가 너무 어렵다고 느꼈다. 이명박 정권과 비교해도 (취재가) 너무 어려웠다. 평소에 청와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전화를 잘 안 받는다. 일을 비밀스럽게 할 때도 많다. 대통령 비판도 전혀 안 한다. 전체적으로 대통령에 대한 반대의견을 용서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듯했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로 취재해보니까 미국 대통령이나 한국 대통령이나 법리적인 권한은 비슷비슷했다. 차이는 이른바 '네이키드 파워(naked power)'에서 오는 것 같다. 미국에서는 삼권분립이 비교적 잘 지켜져 행정부가 사법부나 입법부에 강한 요구를 안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에는 대통령이 검찰이나 정보기관을 이용해서 자기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네이키드 파워란 버트런드 러셀의 저서 《권력》(1938)에 나오는 용어다. ‘벌거벗은 권력’, 즉 피통치자의 동의나 묵인을 수반하지 않는 폭력행사의 형태인 권력을 뜻한다.

- 청와대 출입 기자로서 취재가 어려웠다고 했다. (청와대의 수직적인 권력구조에 따른) 소통의 어려움도 이번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 있다고 보나.
“그렇다. 청와대 건물 자체도 소통이 용이하지 않은 구조다. 일본의 경우 총리와 보좌진이 같은 건물에서 대부분의 업무를 보게 돼 있다. 청와대는 대통령 관저, 본관, 비서관동 등이 나뉘어 있다. 수석비서관이라도 대통령을 만나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절차가 소요된다.”

- 촛불집회는 어떻게 평가하나.
“좋은 부분도 너무 많지만, 위험한 부분도 조금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께서 정말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셨고, 12월 9일에 탄핵안이 가결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가장 좋은 성과가 나왔다고 본다. 한편, 민주주의는 법질서에 따라야 한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탄핵을) 외친다고 대통령이 바로 탄핵되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탄핵안이 부결돼 대통령을 끌어내릴 법적인 절차가 남아있지 않게 됐다면 하야하라는 폭동으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있었다. 민주주의 국가로서는 좋은 일이 아니다. 내가 아는 국회의원 중에서도 (민주적인 절차가 무시 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여당 의원이어도 마지막에는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촛불집회를 취재하던 날, 그는 귀갓길 지하철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귀중한 집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하다, 집까지 무사히 모시겠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는 아무리 99%가 지지하는 집회였다 하더라도 공공서비스 기관에서 특정입장을 옹호하는 방송을 하는 건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 지금 대한민국에 문제가 많다. 대표적인 하나로 뭘 꼽겠는가.
“가장 큰 문제는 ‘이기주의’다. 이번 최순실 사태도 근본적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기주의가 시작이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최순실 씨가 자신이 의사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그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나라의 공직자라는 입장보다 자신의 개인적인 입장을 우선시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박 대통령과 최순실 씨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다. 그러나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검찰은 자신들은 왜 그런 (최 씨의 국정농단과 관련된) 문제들을 막을 수 없었는지 해명한 일이 없다. 2014년에 세계일보가 정윤회 사건을 보도했을 때, 검찰은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후 우병우 씨와 관련된 여러 의혹이 나왔을 때도 검찰은 적극적이지 않았다.

야당 국회의원들도 구치소까지 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하지만 박근혜, 최순실만 나쁘고 자신은 정의롭다는 듯한 태도는 옳지 않다. 새누리당의 경우에도 친박이 좀비처럼 일어나 다시 당을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엄밀히 말하면 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서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 비판만 하면 긍정적인 해법을 찾기 어렵다.”

-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 이기주의가 만연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너무 경쟁이 심한 사회이기 때문 아닐까.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급속도로 성장했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제 발전 과정에서 사회적인 룰을 지키기보다는 살기 위해서 성장과 경쟁이 먼저 강조된 측면이 있다. 오늘날의 이기주의는 한국의 역사나 사회적인 환경이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 한국의 상황을 생각했을 때,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보나.
“나라에 경제적인 위기가 찾아오면 사회적으로 패배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 사람들은 외적인 부분에서 자신이 패배한 이유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일부 미국 백인들은 일자리 감소의 원인을 흑인에게서 찾으려 했다. 유럽에서는 난민을 경계한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일본에서 재일교포나 중국인을 탓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 있다. 이런 현상 가운데 극단주의나 포퓰리즘이 나타난다.

한국은 급속도로 성장해왔기 때문에 아직까지 위와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때 처음으로 적자가 생기는 등 (경제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가고 있다. 앞으로 자연스럽게 포퓰리즘이나 극단주의가 득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겨날 것이다. 실제로 그런 징후들이 보이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민의 스트레스가 고조된 상황이라 극단주의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다른 나라들과 달리 현실적인 안보위협이 있는 나라다. 포퓰리즘에 시달릴 시간이 없다. 대통령이 누가 됐든 포퓰리즘에 빠지는 문제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질을 세 가지로 요약해본다면….
“첫 번째로는 포용성. 대통령은 한국 전 국민의 대표다. 일단 대통령에 당선되면 출신 당에 상관없이 자기를 반대했던 사람까지 끌어안는 자세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실패한 이유도 친박에 있지 않은가. 그 다음으로는 현실적인 생각. 슈퍼 파워(super power)라면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문제는 무시해도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본도 한국도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때문에 국제적인 문제에 좀 더 세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샹그릴라 대화나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한국 기자단을 보면 상대적으로 남중국해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다. 다들 한반도나 북한문제에 치중한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문제다.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힘이 빠지면 한국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남중국해로 불러들일 수 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한국이 미국에 군사적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세 번째는 감각. 정치는 이익을 분배하는 일이지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균형감을 가지고 사회의 바람을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한다. 포퓰리즘으로 흐르면 안 되지만 민심에 반응하는 일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박 대통령은 약자를 배려한다든가 위안부 할머니한테 직접 찾아가 사죄한다든가 하는 행동을 잘하지 못했다.”

특별히 주목하는 후보가 있는지도 물어봤지만, 그는 후보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건 곤란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 조건을 갖춘 후보’라고 에둘러 답했다.
 
- 한국의 정치 흐름을 고려할 때 앞으로의 한일 관계는 어떻게 전망하나.
“대통령 당선인이 ‘anything but 부시’, ‘anything but 오바마’처럼 이전 정부를 부정하는 노선을 택하는 것이 세계적인 트렌드다.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내기 쉽기 때문이다. 차기 정부도 ‘anything but 박근혜’로 갈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한일관계를 개선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어왔다. 때문에 안타깝지만 차기정부에서는 한일관계가 후퇴할 것이라고 본다.”

- 어두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에 희망이 있다면….
“대한항공도 일본의 항공도 한일노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왕래가 자유롭다. 나의 일본인 지인 중에는 이번 촛불집회에 관심을 갖고 한국을 직접 찾았던 이들도 있다. 100만 명의 분노한 한국시민이 촛불집회를 했다는 소식을 일본에서 접하면 무서운 집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 와 보면 어떤 상황인지 알게 된다. 이처럼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으면 아무리 정치인 차원에서 문제가 생겨도 (한일관계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부자와 외부자의 시각을 고루 갖춘 마키노 요시히로 지국장의 생각을 듣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다른 문화와 기준으로 우리를 진단했을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낯섦’을 가지고 스스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나 자신의 모습을 보려면 나를 비춰줄 뭔가가 필요하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우리와 가까우면서도 멀고, 멀면서도 가까운 일본인 특파원의 생각이 궁금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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