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터 게일(Alastair Gale) 지국장

※기사에 나온 특파원의 생각은 해당 언론사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한국이 가야 할 길을 명확히 알고 국민들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필요합니다.”

알래스터 게일(Alastair Gale)은 월 스트리트 저널 (WSJ, The Wall Street Journal) 서울 지국장으로 6년째 근무 중이다. 그는 10년간 일본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고, 또 싱가포르에서 6년간 근무하는 등 대부분의 경력을 아시아에서 쌓았다. 서울에서는 주로 국내 정치와 북한 관련 뉴스를 다뤘다. 인터뷰 내내 그는 한국의 대내외적 상황과 한국언론에 관해 냉철히 분석했다. 그를 만나 한국의 정치와 대선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과 비슷한 일이 본국에서도 있었나?
“나는 영국 출신이다. 비슷한 사건들이 있었으나 이 정도로 영향력이 크지는 않았다. 한국에서처럼 특정 인물이 대통령의 주요 의사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쳤던 일은 없었다.”

- ‘최순실 게이트’를 뉴스로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처음에는 정말 중대한 일일까 회의적이었다. 6년간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정치권의 부패 사건들을 많이 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이 정도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장기화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크게 국민의 반감을 불러일으킬 거라고도 생각지 못했다. 나로서는 최순실 게이트의 파급력이 매우 놀랍다.”

뉴스를 보고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다는 게일 지국장의 이야기를 듣고 그가 바라보는 한국 언론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하여 언론이 제기한 모든 의혹을 신뢰할 수 있다고 보는가?
“확신을 가지고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증거가 필요하다. 공식적으로 혐의가 입증 되거나 형사상의 죄목이 될 수 있는 경우처럼 말이다. 검찰이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통령이 개입한 사실이 의심된다고 말했을 뿐, 아직 대통령의 혐의가 입증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한국언론에 대해 걱정되는 부분은 객관적인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측의 상반되는 입장을 모두 다루지 않고 한쪽에만 치우친 보도를 한다. JTBC는 각종 의혹에 대해 완벽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나라면 법원에서 입증되어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사실만으로 기사를 쓸 것 같다. 아직까지는 이 모든 내용이 혐의와 추측, 불확실한 사실에 불과하다. 내 생각이 한국인들과 많이 다름을 알지만, 법원이 공식적 판결을 내릴 때까지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다.

- 두 달 이상 계속된 대규모 촛불 집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대규모 집회는 민중의 분노와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준다. 이제껏 본 집회 중 가장 큰 규모라서 놀라웠고,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한 행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 긍정적이었다. 이제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해야 하는데,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법적절차를 밟을 시점이라고 본다. 그러나 시민들이 그들의 주장을 펼치려고 했던 열정을 높게 평가한다. 그 과정이 작년과 다르게 평화적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며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 현재 한국의 최대 당면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의 개혁이다. 한국의 경제모델은 구식이다. 수출에 주력하는 소수의 대기업, 협소한 분야의 서비스 및 사업에 너무 의존한다. 이는 균형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이를 개혁하고 새로운 경제 체제를 만들어 내는 일은 매우 어렵다. 차기 정부에서 해결할 문제라고 본다. 정치체제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된 현 정치체제가 정말 한국에 적합한지 자문해야 한다.”

게일 지국장은 한국의 정치와 경제 모두 전반적인 개혁과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당에 대한 생각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 한국의 보수와 진보정당을 어떻게 보나.
사실 한국의 진보와 보수정당은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이나 영국의 보수는 변화를 싫어하고 진보는 근본적인 개혁을 추구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러한 구분이 적용되기 어려워 보인다. 한국정당들의 문제는 국가 중대사의 해결에 집중하기보다 정당 내부적인 문제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지 않는 양상을 보인다. 한국정치는 어떻게 함께 국가적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하는 과정이라기보다 권력 다툼에 바쁜 정치인들 간의 싸움으로 느껴진다. 정당 간의 협력도 부족하다.

- 최근 보수 정당의 분열에 대해서는?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선이며, 누가 후보가 되느냐가 중요하다. 영국의 경우 총리가 국정 전반에 대해 의결권을 가지지만, 한국에서는 국회보다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다. 그래서 정당의 문제보다 대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차기 한국 대통령이 갖춰야 할 세 가지 조건을 꼽자면.
첫째, 한국의 미래에 대한 비전. 새로운 경제 및 정치 모델을 확립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둘째, 외교적 동맹 관계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은 국가주의적인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원만한 대외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는 역사적인 문제나 대북 관계로 인해 방해를 받기도 한다. 한국의 대통령은 국가주의에 입각한 감정적 판단을 배제하고, 현실적으로 국민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대외 정책을 고수해야 한다.
셋째, 국민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 한국의 대통령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대통령이 소통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고립된 리더처럼 느껴진다.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이 가야할 길을 명확히 알고 원만한 외교 관계를 구축하며 국민과 진정성 있게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 한국의 외교 정책이 대선 결과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고 보나.
진보정당의 후보가 당선된다면 아마도 북한과의 대화를 시도할 것이다. 그로 인해 중국과의 사이가 가까워지는 대신 일본과는 멀어질 가능성이 높다. 보수정당의 후보가 당선된다면 지금과 비슷한 외교 정책이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후보들이 균형적인 대외 정책을 실행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어느 측 후보가 되건 크게 변화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 보수 정당이 집권한 최근 9년간의 한국 외교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서양국가들과는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확립했다고 생각한다. 일본과도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본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중국과의 관계다. 중국은 현재 세력을 키우고 있고 더 나아가 미국을 대신해 주도권을 갖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힘을 주변국들이 인정해 주기 바란다. 그래서 중국과의 관계 발전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국이 강력해질수록 한국과의 관계는 더욱 불편해질 가능성이 높다.

게일 지국장은 최근 한국정부의 외교를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들리는 마찰음은 중국이 세력을 팽창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분석했다.

-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으로 인한 반세계화 움직임이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의 수출품에 대해 관세를 높게 부과한다면 물론 큰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가 그런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리라 본다. 트럼프의 정책들은 많은 부분이 이민자들에 관한 부분인데, 이는 한국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생각된다. 안보문제에 있어서는 트럼프가 아시아에서 미군을 철수시킨다면 한국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사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트럼프가 북한과의 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진보성향의 한국 차기 대통령과 정책 방향이 일치할 가능성도 있다.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변수가 많아서 정확한 판단은 어려울 것 같다.

 게일 지국장은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길 꺼렸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차기 대통령의 조건은 현 시점에서 한국에 필요한 리더가 어떤 인물인지 그려볼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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