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지르는 것보다 강한 김선주의 글화살]


“글을 쓰면서 지켜온 원칙이 있다. 나의 일상에서, 내가 보고 느끼고 경험한 일이 아니면,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삶을 억압하는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글은 일상에서 출발하지만 사회, 정치, 경제구조, 혹은 인류 보편의, 우리 시대의 전반적인 문제와 연결되었다.”

“글을 쓰면서 항상 괴로웠다. 이 글이 진실과 정의로움에 부합한 것인가,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역사에 올바로 동참하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가, 회피하거나 비겁하게 외면한 점은 없는가. 세월이 지나서도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를 매번 곱씹었다. 법정에서 반대신문을 하듯 스스로에게 다짐과 질문을 되풀이했다. 가벼운 이야기든, 무거운 이야기든 한번도 쉽게 씌어진 글은 없었다.”

“나의 일상은 뒤죽박죽이고 부끄러운 일, 후회되는 일투성이였다. 그러나 글만은 두고두고 부끄럽지 않은, 그런 언론인이 되고 싶어서였다.”
 

김선주는 책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신념을 이렇게 밝혔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는 김선주가 1993년 9월에 쓴 글부터 2010년 5월에 쓴 칼럼까지 102편의 글을 모아 낸 책이다. 사회, 정치, 경제, 남북관계, 여성, 결혼, 교육, 노년과 언론까지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다룬 그녀의 날카로운 글쓰기를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한겨레 출판은 그녀의 글을 ‘소리 지르는 것보다 강한 그의 글화살’이라 칭한다. 그 날카로운 글화살은 어디서 시작된 것일까.

[조선일보 해직기자가 한겨레 논설주간으로]

1947년생인 김선주는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1969년에 조선일보에서 문화부 기자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그 시절을 김선주는 “닥치는 대로 보고 읽고 만나며 세상을 알게 된 시기”라고 표현한다. 조선일보에 재직 중이던 1972년에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했다. 유신정권은 언론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은 독립성을 잃고 정권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 반발하여 1975년 동아일보가 가장 먼저 언론자유를 쟁취하자는 내용의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하였고, 뒤이어 조선일보의 편집국 기자 전원이 자유언론투쟁을 시작했다. 자유언론투쟁의 결과로 편집국 기자 3분의 1이 해직되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김선주였다. 해직 이후 결혼을 하고 여성잡지와 삼성에서 잠깐씩 일하던 김선주는 1988년 <한겨레>의 창간과 함께 <한겨레>의 일원이 됐다. 여론매체부원으로 시작해 생활환경부장, 문화부장, 출판본부장을 거쳤다. 2000년부터 한겨레 논설위원으로 글을 써왔으며 2004년에 논설주간이 됐다. 논설주간으로 있던 2004년에 두 차례 수상하며 빛을 발했다. 제15회 위암 장지연상을 수상하고 제4회 이화언론인상을 수상했다. 논평분야를 책임지는 여성 언론인이 드문 언론 풍토에서 10년 넘게 기명칼럼을 집필해 오면서 신문 논평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한 것이다.

[‘부끄러움’을 안다]

그녀의 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부끄러움’이다. 그녀는 늘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 부끄러움은 치열한 자기성찰과 자기매질에서 온다. 정혜신 전문의는 “어디를 겨냥한 말화살이든 그 한쪽 끝은 늘 김선주 자신을 향한다”고 표현한다. 그녀의 당대현실에 대한 날선 비판은 그저 말뿐인 비판이 아니다. 말화살의 한쪽 끝은 현실을 향하고 다른 한쪽 끝은 늘 자신을 향하기 때문에 김선주의 글은 절절하게 와 닿으며 신뢰가 간다.

“…나도 전태일에게 원죄의식을 갖고 있다. 그는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의 한 거리에서 분신자살했다. 그 가을에 나는 한창 잘 나가던 젊음을 보내고 있었다… 중산층 가정에서 인생의 양지쪽은 당연히 내 차지라는 생각만 하고 그늘에 있는 사람의 생존 문제는 그들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청계천에서 배고픔과 졸음으로 파리하게 죽어가던 10대의 어린 동생들과 자신과 동료들의 생존권을 위해 스스로 산화했을 때, 대학생 친구가 하나만 있었다면 했던 탄식과 공책에 빼곡히 쓴 일기를 보았을 때, 그때의 충격과 부끄러움이 바로 어제 일인 듯 생생하다.”( 2000/11 한겨레 칼럼 ‘역사는 되풀이되는가’)

“위헌이니 부유세니 조세 형평에 맞지 않느니 하는 보도를 접하고 내년 세금을 계산해보았다. … 올해 건물세와 토지세를 합해서 낸 세금이 90만원 가량이었다. 지난해보다 50퍼센트 이상 오르지 않게 상한선을 둔다니까 135만원은 넘지 않는다. 정밀하게 계산을 해봤다. ... 1년 평균 5백만 원에서 천만 원의 관리비를 내면서 종부세 부담이 힘겹다는 주장은 엄살이거나 거짓말, 아니면 여론 왜곡이다.”
(2004/11 한겨레 칼럼 ‘세금 엄살, 심하다 심해’)
 

그녀는 늘 자기 패를 다 까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자신이 느낀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표현한다. 전태일에 대한 원죄의식을 고백하며 자신의 과거를 뉘우친다. 강남 아파트 주민들이 종부세 세금에 대한 불만을 쏟아낼때도, 압구정동에 사는 김선주는 직접 세금을 조목조목 따져봤다. 김선주는 강남 아파트 주민으로서, 세금에 대한 불만은 엄살은 불만이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부끄러움과 솔직함을 통한 자기성찰이 바로 김선주의 글을 빛나게 해주는 무기다. 자신이 곧 글이고, 글이 곧 자신이기 때문에 읽는 이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이다. 정혜신 전문의는 김선주의 글을 ‘남미축구’에 비유한다. “사람과 공이 대등한 관계에서 혼연일체가 되어 자기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남미축구처럼 김선주라는 사람과 그의 글도 물샐 틈 없이 밀착되어 읽는 이를 뒤흔든다”는 것이다.

[‘개별적 인간’을 사랑하고 ‘평균적 삶’을 좇다]

치열한 자기성찰과 동시에 김선주는 세상만사에 관심을 갖는다. 조선희는 “김선주는 늘 세상 돌아가는 그 모든 일에 나름의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하며 정혜신은 “김선주의 글에 가장 많이 그리고 일관되게 투영되는 그의 세계관 중 하나는 인간의 개별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경외심이다”라고 말한다. 김선주 또한 자신에게는 세상 사람 모두가 특출하고 특별하고 특이한 존재이며 아무도 같은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그만큼 그녀는 ‘인간 존재의 개별’성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하며 모든 개별적 인간을 존중한다. 정혜신의 말처럼 “그것이 바로 김선주 글이 가지는 폭발적인 흡인력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김선주의 개별적 인간에 대한 관심은 결국 ‘대한민국 평균 수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신홍범 씨, 이백 원 갖고 어떻게 살아요?”라고 정색을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신홍범 씨가 “김선주 씨,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하루 이백 원이면 대한민국 평균 수준으로는 많은 편이에요”라고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 어떤 사람은 삶의 기준을 대한민국의 평균 수준으로 놓고 보는구나, 그런 방법도 있구나, 그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나는 그 순간 변했다. 그전까지의 인생과는 다른, 전혀 다른 눈으로 사람과 사물을 보게 된 것이다.
(2006/03 한겨레 칼럼 ‘그만하면 대한민국 평균 수준’)
 

그날 이후 김선주는 자신의 삶이 대한민국 평균 수준이면 만족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았으며,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볼 때 대한민국 평균 수준의 사람들은 어떻게 느낄까 라는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 노력은 그녀의 글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 이후 동네 슈퍼마켓이나 약국에서 성인용 기저귀를 파는 코너를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 성인용 기저귀를 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가는 초로의 신사나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주머니를 보면 누구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노인의 기저귀를 갈아드릴 그 손길에 따뜻한 감사와 축복의 눈길을 보낸다.
(2000/05  한겨레 칼럼 ‘아!봄날은 간다’)
 

동네 슈퍼마켓에 갈 때마저도 김선주는 평균적 삶, 개별적 인간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김선주는 자신이 살아내고 있는 삶의 방식이나 당대 현실과 유리된 글을 쓰지 않는 것이다. 후배 기자 이민아가 “김선주는 상식적인 일을 상식적인 말로 쓰는 사람”이라 말한 것처럼 그녀는 평균, 상식, 인간에 능통하다.

[문학의 향취가 물씬한 칼럼]
 

▲김선주의 칼럼 모음집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문학의 향취가 물씬한 시사 칼럼이 가능할 수 있을까. 있다. 김선주의 칼럼이 바로 그렇다”는 정혜신의 말처럼, 김선주의 칼럼은 마치 한편의 시 혹은 소설 같다. 이는 김선주의 칼럼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서도 드러난다. 칼럼 제목은 마치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표현인 것 같지만, 실은 2007년 열린우리당 탈당 사태에 대한 김선주의 표현이다.

“남녀 사이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다. 직업과 학문, 예술에 걸었던 열정도 사랑이다.
나라와 겨레, 혹은 어떤 이상을 위해 뭉쳤던 뜨거운 순간들도 사랑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런 순간들은 뒤로하고 헤어져야 할 때가 온다.
사랑의 순간이 뜨거웠을수록 이별의 고통은 크다.
왜 사람들은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의 순간들까지도 훼손하는 것일까? 최근 열린우리당의 탈당 사태를 보면서도 이별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지나 여름이 왔는데도 지난봄을 붙잡고 봄은 어떠해야 한다고 말한다.
봄은 다시 오지만 다시 오는 봄은 과거의 그 봄은 아니고 새로운 봄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자신이 어떤 시대의 대변자였다고 해서 자기 삶의 모든 시기를 통틀어 시대를 대변하겠다는 것은 만용이다.
슬프지만 인정하고 떠날 때를 알아야 한다.”
(2007/02  한겨레 칼럼“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김선주의 풍부한 감성은 그녀의 글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때로는 감성적으로 세상을 감싸 안고 때로는 이성적으로 세상을 혼내며 이성과 감성을 넘나드는 그녀의 균형감각은 탁월하다. 소설가였던 이모 아래서 자란 김선주는 늘 문학을 사랑하고 가까이했다. 그녀의 문장이 그토록 아름답고, 그녀의 칼럼에서 문학의 향취가 나는 이유다.

[“언론인으로 끝나는 선배 한 명쯤은 있어야지”]

탁월한 능력을 지닌 김선주라는 인재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김선주의 열렬한 팬이었다. 노무현은 “김선주 선생 글이라고 하면, 한 번도 감동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며 “김선주 논설위원 얼굴 한번 봅시다”고 하며 김선주를 청와대로 데려가려 애썼다. 박원순 서울시장 또한 ‘아름다운 재단’을 준비하면서 그녀에게 대표를 맡아달라고 했다. 김선주는 이외에도 여러 차례 공직을 제의받았고 무수히 위원 자리를 위촉받았다. 그러나 김선주는 이 제안들을 모두 거절했다. “언론인으로 끝나는 선배도 한둘쯤은 있어야지”라는 이유에서였다.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김선주는 언론인으로 남고 싶다는 결심을 했고 아직도 그 결심을 지키고 있다. 김선주는 물욕도 없고, 명예욕도 없고, 자리 욕심도 없다. 오직 하나, ‘멋’을 추구한다. 옷 스타일에서부터 언론인으로서의 처신에 이르기까지 김선주는 일관되게 ‘멋’을 추구한다. 언론인으로 시작해서 언론인으로 끝나는 것, 그것이 김선주가 추구하는 ‘멋’이다. “비록 비겁하게 살지언정 쪽팔리게는 살지 말자는 것이 내 인생의 좌우명”이라는 김선주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좌우명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2004년 말에 한겨레 논설주간을 사직한 후 현재는 한겨레에 칼럼을 연재하며 언론인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평균적 삶을 좇는 김선주]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결국 3만원 날렸네.” “뭐 그렇지.” 조용히 물었다. “무슨 3만원요?” “오늘 일당 못 벌어서요.” 일용직 노동자나 알바생인 듯. 오전 근무만 하고 나와 오후 일당을 공쳤다는 이야기 같았다. 심상하게 말하는 그들을 보며 얼굴이 화끈거렸다. 카카오 택시를 불러 타고 크리스마스 장식 산타와 사슴뿔 파티용 안경을 가득 싸들고 나와 여기저기 나누어 주기도 하며 유쾌한 복면으로 시위문화를 바꾸어보겠다는 마음으로 참가한 나 자신이 스산하게 부끄러워서였다. 그 젊음이 포기한 3만원이 어떤 돈일까. 그들의 밥이, 라면이, 핸드폰 값이 되었을지도 모를 아쉬운 3만원.”
(‘젊음의 두 얼굴, 수저 싸움과 수저 없는…’ 2015/12/08 한겨레 칼럼)

언론인으로 끝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김선주는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평균적 삶을 좇고 있다. 지난해 말 한겨레에 실린 그녀의 칼럼에서도 여전히 그녀의 자기성찰과 개별적 인간, 평균적 삶에 대한 관심이 돋보인다. 여전히 그녀의 글이 힘을 지니고 있는 이유다. 김선주는 자신의 인생 목표를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의 한계를 드러내고 그러면서도 사람으로서의 자존을 잃지 않고 죽는 것”이라 말하며, ”세상이 내가 태어나기 전보다 수십억분의 1만큼은 좋아지길 바라고 수십억분의 1만큼만 힘을 보탠다면 사람으로서 살다 간 보람이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김선주의 최근 칼럼을 들여다보니 그녀는 자신이 목표한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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