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머로우(Edward Murrow)의 보도를 보며 언론인을 꿈꿨다. 1963년 최연소로 ABC에 입사했다. 1980년 심야 뉴스 프로그램 <나이트라인(Nightline)>의 앵커 겸 담당국장(Managing Editor)을 맡았다. 2005년까지 25년 동안이었다. 주중 네트워크 뉴스 즉 공중파 방송 뉴스 앵커로는 최장 기록이다. 76세의 노장(老將) 언론인 테드 카풀 얘기다.

▲테드 카풀 기자의 모습.

테드 카풀은 42년간 ABC에 있으면서 베트남전 종군기자, 해외 특파원, 외교부 팀장 등을 고루 지냈다. 그는 무엇보다도 <나이트라인>의 앵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밤 11시 35분부터 30분 동안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련된 사람을 인터뷰했다. 프로그램은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문화 전반을 다뤘다. 그는 날카로운 질문을 서슴지 않는 집요한 인터뷰어였다. <나이트라인>에 출연했던 게스트로는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국 상원의원 게리 하트,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미국 연방 대법원장 워런 버거 등이 있었다.

<나이트라인>은 에미상, 피버디상 등 다수의 수상 성과를 냈다. 에미상 뉴스 및 다큐멘터리 부문의 회장 빌 스몰(Bill Small)은 카풀을 “두려움 없는 인터뷰어, 현실에 대한 끈질긴 도전자, 거센 종군기자, 재능 있는 필자 겸 제작자”라고 평가했다.

지난 2012년 11월, 카풀이 '칼브 리포트(The Kalb report)'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칼브 리포트는 미국의 전국언론협회(National Press Club)와 하버드를 포함한 4개 대학이 공동 제작하는 프로그램이다. 마빈 칼브(Marvin Kalb)가 진행한다. 카풀은 현대 언론이 겪고 있는 위기, 민주주의와 언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60분간 그가 털어놓은 언론에 대한 생각과 고민은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의 이야기를 아래에 소개한다.

▲칼브 리포트에 출연한 테드 카풀 (사진=유튜브)

시민이 아닌 수익을 위한 저널리즘

테드 카풀은 저널리즘의 범위를 방송(broadcast)으로 한정한다. 그는 후발주자로 등장한 케이블 채널을 비판한다. 폭스 뉴스로 대표되는 케이블 채널은 정파주의를 조장하며 의견을 사실인 양 떠벌린다. 그리고 제대로 된 편집 과정을 거치지 않고 즉흥적으로 보도한다.

워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 체트 헌틀리(Chet Huntley), 데이비드 브링클리(David Brinkley) 같은 언론인들이 활동하던 시절 3대 공중파 채널 ABC, CBS, NBC는 공중의 이익, 편의와 필요를 추구했다. 이들은 시민이 알아야만 하는 정보를 편견 없이 전달했다. 순수한 사실만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저널리즘의 호시절이었다. 카풀이 베트남에 있던 1960년대에는 취재하는 데 3일이 걸리기도 했다. 사건의 맥락, 역사의 흐름 속에서 생각하고 보도했다. 반면 요즘 기자들은 블로그에 글을 써야 하고,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해야 한다. 24시간 내내 일하면서도 그들에게는 막상 취재할 시간이 없다.

저널리즘의 모습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카풀은 그 시작점을 CBS의 <60분(60 minutes)>에서 찾는다. 1968년 방영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TV 뉴스 최초로 수익을 냈다. 그 전까지 TV 뉴스는 수익과 전혀 상관없었다. 오히려 일부러 가격을 낮게 매기는 특매품(loss leader)이었다. 진행자 칼브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취재에 중요한 누군가와 인터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만 가지고 로마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고 회상한다. 돈이 얼마나 들지 걱정하지 않고, 그저 취재를 시작하면 됐다. 하지만 <60분> 이후 뉴스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섰다. 뉴스도 수익 창구(profit centers)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수익을 올리려면 첫째, 시청자를 많이 끌어 올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제작비용이 덜 들어야 한다. 카풀은 90년대 중반 ABC에서 모스크바 현지 취재 부서를 폐쇄했던 일을 소개한다. 회사 경리부는 뉴스 프로그램들을 돌아다니며 1년에 몇 번 모스크바 담당 부서가 필요한지 물었다. 다 합해 50회라고 해보자. 모스크바 부서를 운영하는 데 1년에 200만 달러 (한화 약 20억 원)가 든다고 하면 1번 보도하는 데 드는 비용이 4만 달러 (한화 약 4천만 원)인 셈이다. (금액은 모두 실제가 아니라 예시다.)

ABC는 회사 재정을 이유로 모스크바 부서를 없앴고 비슷한 일이 CBS와 NBC에도 일어났다. 대부분의 해외 취재는 이제 소규모 현지 사무실과의 메일 교류를 통해 이뤄진다. 큰 일이 어딘가에서 일어나면 그제야 유명 특파원이나 앵커를 파견한다. 현지에서 체류하며 그 나라의 정치 상황, 사람들, 권력가들을 알아가며 오랜 기간 취재하는 일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타국에 대한 정보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지만 현지에는 기자들이 없다.

방송 편성 또한 상업주의 논리에 따르게 됐다. ABC에서는 최근 찰리 신(Charlie Sheen)의 문란한 사생활을 다룬 프로그램을 주요 시간대에 내보냈다. 시청률은 당연히 높았다. CNN의 파리드 자카리아(Fareed Zakaria)는 일요일 오전 <GPS(Global public square)>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는 지식인들과 함께 중요한 사안을 논의한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절대 주요 시간대에 편성될 수 없다. 시청차를 모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론이 시민이 들어야 하는 정보(ought to hear) 보다 듣기를 원하는 정보(want to hear)를 제공하게 됐다. 저널리즘이 수익을 내는 상품으로 전락하면서부터다. 시청률이 높게 나올 만한 가십거리를 주요 시간대에 편성하고, 중요한 정보임에도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충분히 취재하지 않는다.

케이블 채널의 등장과 의견 저널리즘

루퍼트 머독(Rupert Murdoch)과 로저 아일스(Roger Ailes)는 1996년 공중파 채널들보다 덜 진보적인 방송에 대한 수요가 미국 내에 분명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폭스 뉴스가 출범했다. 폭스 뉴스는 크게 성공했고 1년에 10~15억을 벌었다. NBC 또한 그들의 케이블 채널인 MSNBC를 만들었지만 잘 되지 않자, 폭스 뉴스를 보며 생각했다. “폭스 뉴스가 보수적인 보도만으로 15억달러를 번다면, 그 반만 해도 7억 5천만달러는 벌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진보적인 보도를 하자.”

그 결과 케이블 채널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을 위한 정보, 진보적인 사람들을 위한 정보를 공급하는 뉴스가 따로 생겨났다. 그날의 중요한 이슈를 정치적 편견 없이 보도하는 뉴스 기관은 사라졌다. 카풀은 폭스 뉴스와 MSNBC의 상업적 성공을 두고 무당파적 슬픔(nonpartisan sadness)을 느낀다고 말했다. 케이블 채널의 이 같은 의견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에 무익하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사람들이 정치적 차이를 넘어 타협할 수 없도록 만든다.

카풀은 객관성은 단순히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직업적 자질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변호사에게, 의사에게 그가 나를 좋아하는지 혹은 그의 정치적 성향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의 직업적 전문성을 발휘해 사건을 변호하거나 아픈 곳을 치료하기를 기대할 뿐이다. 언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언론인이라면 객관적인 시각을 갖춰야 한다. 그의 개인적인 의견은 설 자리가 없다.

믿을만하고 객관적인 정보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며 정보 수집은 눈에 띄게 수월해졌다. 우리는 노트북 앞에 앉아서 정보를 수확(harvest) 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발견한 정보의 근거가 무엇인지, 정보에 담긴 원작자의 의도, 목표, 편견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칼브는 현장에서 정석에 따라 정보를 수집하는 기자가 없다면 다른 것들은 모두 거짓말(baloney)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날 저널리즘이 없다는 게 아니라, 훨씬 더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뭔가에 대해 알고 싶어도 믿을 수 없는 정보들이 많아졌다. 카풀은 선거권을 가진 미국 대중이 현안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믿을만하고 객관적인 정보 없이는 선거 시스템, 나아가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만다.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주저 않고 후자를 고르겠다고 했다. 신문 없는 정부는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제임스 캐리(James Carey)는 “민주주의가 흔들리면 저널리즘도 흔들리고, 저널리즘이 길을 잘못 들면 민주주의도 길을 잘못 든다(When democracy falters, journalism falters, and when journalism goes awry, democracy goes awry)”고 말했다. 이처럼 저널리즘은 민주주의와 발걸음을 같이하며 발전해 왔다.

저널리즘은 새로워져야 한다고 말한다. 전에 없던 기술을 보유한 21세기 저널리즘은 새롭고 새로워야 한다(The New New journalism)는 얘기다. 하지만 단 하나, 시민을 위한다는 저널리즘의 마음가짐은 세월이 지나도 그 자리여야만 할 것이다. 민주주의를 단단히 떠받치는 언론이 없다면 진보된 기술은 도리어 민주사회를 퇴보시킬지도 모른다.

테드 카풀에 대하여

1940년 2월 8일 영국 랭커셔에서 태어났다. 유대인이던 그의 부모님은 히틀러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왔다. 1953년에는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주했다. 시러큐스 대학에서 학사를, 스탠포드 대학에서 대중매체연구와 정치과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WMCA 라디오 뉴욕 지부에서 일하다가 1963년 ABC에 입사했다. 라디오 채널인 WABC에 근무했다. 1966년 TV로 옮겨가 베트남전 종군기자를 맡았다. 마이애미(1968), 홍콩 지부 국장(1969~1971), 외교부 팀장(1971~1980)을 지냈다. 1980년 3월부터 2005년 11월까지 <나이트라인>을 진행했다.

2005년 11월 계약 만료로 ABC에서 퇴사했다. 이후 NPR, Discovery, BBC America 등에 도움을 주고 있다. 20개 이상의 대학에서 명예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In the National Interest(1977, 마빈 칼브와 공저)>, <Off Camera(2001)>, <Lights Out(2016)>이 있다.

앞서 소개하지 않은 <나이트라인> 출연자로는 알 컴퍼니스(전 MLB 회장), 코라손 아키노(전 필리핀 대통령), 에반 메캄(전 애리조나 주지사), 제닛 쿡(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 짐과 테미 페이 베커(TV 전도사), 마돈나(가수), 마이클 듀카키스(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미하일 고르바초프(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야세르 아라파트(팔레스타인 자치기구(PLO) 초대 수반) 등이 있다.

수상 기록은 다음과 같다. 에미상 42개, 해외 프레스 클럽상(Overseas Press Club Awards) 10, 듀퐁-콜롬비아 상(DuPont-Columbia Awards) 12개, 피버디상(George Foster Peabody awards) 8개, 조지 포크 상(George Polk Awards) 2개, 시그마 델타 치 상 (Sigma Delta Chi Awards) 2개.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