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야외 조각공원에 있는 조나단 보롭스키의 ‘노래하는 사람’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입을 열었다 닫으며 노래하는 조각상의 모습이 신기한 듯 작품을 관찰하던 사람들은 교육 강사의 설명이 시작되자 행동을 멈추고 집중했다. 한 쪽 손은 보호자들의 손을 잡은 상태였다.

▲조나단 보롭스키의 ‘노래하는 사람’에 대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는 프로그램 참가자들.

모두가 미술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을 때, 5살 영서는 거대한 조각상이 무서운 듯 보호자의 다리 뒤에 숨은 채 칭얼거렸다. 그 모습을 보던 남궁홍 씨(32)가 곁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눈높이를 맞추었다. “영서야, 선생님이랑 같이 가까이 가서 한 번 볼까?” 영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남궁 씨의 손을 잡고 조각상 곁으로 다가갔다. 10월 9일, 장애인을 위한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 ‘공유+공감’이 시작하던 날이었다.

남궁 씨는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문화과에서 장애인 대상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 담당자로 근무한다. 특수교육대상자를 포함한 가족/단체 대상 프로그램인 ‘공유+공감’과 인지기능 장애가 있는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 ‘시니어 조각 공원 소풍’은 모두 그녀의 손을 거친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남궁 씨는 참가자의 뒤에서 자리를 지켰다. 영서처럼 작품을 낯설어하는 어린이가 보이면 함께 손을 잡고 작품을 즐겁게 감상하도록 도움을 준다. 영서는 교육 강사의 설명이 끝나고 다른 작품을 향해 참가자들이 움직일 때에도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작품이 마음에 들었나 봐요.” 영서의 보호자가 신기한 듯 웃음을 지었다.

“장애인을 위한 미술관 교육 프로그램은 상대적으로 미술문화를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미술관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운영된다”고 남궁 씨는 말한다. 장애인 대상 프로그램이 전시 및 관람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이런 그녀의 말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현장은 일반적으로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교육 강사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며 작품에 관한 설명을 듣는 방식이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였다.

이러한 모습이 프로그램 진행에 방해가 되진 않느냐고 묻자, 남궁 씨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품해설에 집중하지 않아도 돼요. 중요한 점은 감상과 체험을 통해 미술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경험이니까요.” 그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교육 강사가 백남준의 ‘다다익선’에 사용된 텔레비전의 숫자를 물어보자 여러 명의 참가자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100개!” “1000개요!” 엄청난 수의 텔레비전을 사용했다는 강사의 힌트에 참가자들은 자신이 아는 가장 큰 숫자를 이야기하며 미술관 체험을 즐기고 있었다.

작품의 감상과 이해가 끝나면 창작 워크숍이 진행된다. 전시된 작품과 자연환경이라는 과천관만의 특수요소를 활용하여 미술을 체험할 기회를 갖는 시간이다. 자신의 작품을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발표하면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워크숍의 목적이다. 오늘의 워크숍 주제인 '텔레비전에 우리 가족이 나온다면?'은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통해 배운 미디어 아트를 체험하는 수업이었다. 미디어 아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끝나고 클레이를 통한 작품 만들기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도우미 선생님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살구색은 어떻게 만들어요?” 장애인 대상 교육에 참여하는 보조강사 강보라 씨(30)가 바빠지는 순간이었다.

▲프로그램 진행 중 참가자들을 돕고 있는 교육 강사.

미술관의 다양한 교육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계기로 장애인 교육 프로그램을 돕게 됐다고 강 씨는 말했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개념이 점차 확장되는 추세잖아요. 특히 사회적인 역할을 해내는 측면에 관심을 가지면서 특수대상 프로그램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 것 같아요.” 강 씨는 현재 다른 여러 교육 강사들과 같이 ‘공유+공감’과 ‘시니어 조각공원 소풍’에 참여하고 있다.

작품 제작을 향한 열기가 한창인 미술관 지하의 소강당에서 강 씨는 테이블 사이를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누구를 만든 거예요, 엄마? 완전 잘 만들었다.” 참가자들이 만든 작품에 하나 하나 관심을 가지며 말을 걸자 처음에 쭈뼛거리던 참가자들도 마음의 문을 연 듯하다. 강 씨의 칭찬에 신이 난 듯 클레이 반죽을 설명하며 같이 작품을 완성하기도 했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말을 걸지만 강 씨가 처음부터 편안하게 프로그램을 대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장애인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배려를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요.” 지금은 교육 대상자들이 불편함과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마음을 열고 기다려주는 자세의 중요함을 배웠다고 말했다. 간혹 교육 대상자들이 낯선 환경 때문에 불편해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먼저 다가가 소통하는 모습이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참가자들이 작품을 발표하는 시간. 간혹 부끄러워하며 마이크를 손에 든 채 서 있는 참가자에게는 격려의 박수가 쏟아졌다. 다른 사람들의 발표를 들으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작품에 대해 공감했다. 모두의 순서가 끝나고 난 뒤 설문지 작성을 마친 참가자들은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히계세요 선생님.”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소중히 든 채 교육 강사들을 꼭 안았다. 

▲참가자들이 교육 강사들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남궁홍 씨 제공)

장애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이 장애인들에게만 값진 경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참여자 모두에게 보람과 기쁨을 준다. 강 씨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 중 하나로 ‘시니어 조각공원 소풍’의 일을 꼽았다. “치매 어르신들과 가족이 같이 참가했어요. 수업 말미에 그림자 놀이를 통해 마음을 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서로에게 감사함을 표하시는 어르신들과 가족들의 따뜻한 마음 때문에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마음의 벽을 자연스럽게 허물고 소통하면서 많은 점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 점은 남궁 씨도 마찬가지였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늘 큰 보람과 기쁨을 얻는데, 참여자와 인솔자 모두 서로의 마음을 느끼며 소통한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미술관이 되는 과정이잖아요. 앞으로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교육의 대상을 확대하여 더 많은 장애인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참가자가 소강당을 나서자 도우미 선생님들은 두 시간 뒤에 있을 다음 프로그램 준비를 시작했다. “수고하셨어요.” 다소 지친 표정들이었지만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도우미 선생님들의 얼굴에는 행복한 웃음이 감돌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 하루도 미술관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데에 성공한 사람들의 미소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