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야마 가즈히로, <아베와 본심으로 이야기한 70시간>

▲아오야마 가즈히로 기자의 <아베와 본심으로 이야기한 70시간, 원제:安倍さんとホンネで話した700時間>

“참 불가사의한 정치가다”

2004년 10월, 정치 기자 아오야마 가즈히로는 일본 정치인 아베 신조의 담당 기자로 발령받는다. 당시 아베는 자민당 간사장 대리였고, 아오야마는 12년 차 중견기자였다. 아오야마는 자신의 눈에 비친 아베 신조를 이렇게 표현한다.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 아버지 아베 신타로 전 외무대신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정계의 프린스'다. 강력한 어조로 관료나 자민당 간부에게도 덤벼들고, 좀 더 부드러워도 될 상황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공격적인 정치인이다.“ 아오야마 기자는 그런 아베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아베 신조의 '본심'이 알고 싶다”

2015년 10월 2일에 출간된 <(아베 신조를 너무 모르겠어서) 아베와 본심으로 이야기한 700시간 (원제:安倍さんとホンネで話した700時間)>은 그 호기심에서 시작된 책이다. 아베를 '수수께끼'라고 느낀 아오야마는 제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아베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제목에 나타난 700시간의 숫자는 그가 10년에 걸쳐 아베를 취재했던 시간을 어림잡아 합산한 숫자다. 강연회나 간담회는 물론, 단독 인터뷰와 동행취재까지 포함된 시간이다. 여기에 아베를 둘러싼 주변인들을 취재하고, 각종 자료를 더해 신뢰도를 높였다. 올해로 정치 기자 경력 25년차에 접어든 저자는 예리한 눈으로 아베 신조를 종횡으로 분석해간다. 아오야마는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민영 방송국 니혼테레비에서 정치전문 해설위원을 담당하고 있는 정치 전문가다. 동시에 국회, 관저 캡을 담당하고 있는 현역 기자다. 정치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인 아오야마는 아베 신조라는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었을까.

"세상 사람들로부터 공격받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

"저는 할아버지가 기시 노부스케인 데다가, 아버지가 아베 신타로라서 항상 체제 쪽에 있던 걸로 생각되어집니다. (중략) 하지만 스포츠를 볼 때면 전 그 쪽(약한 쪽)을 응원하고 있었어요.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약자편애(半官贔屓, 약자를 응원하는 마음을 뜻함)가 꽤 강하네요."

아오야마가 주목한 것은 아베의 소수자 의식이다. 권력가 가문에서 자란 '도련님'은 스스로를 '억압받는 소수자'로 인식했다. 기자와의 메일을 통해 이뤄진 4차례의 인터뷰에서 아오야마는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놀랐던 순간으로 아베 수상이 스스로를 '약자편애자’라고 말했던 때를 꼽았다. 귀족 같은 집안에서 자란 아베였다. 그런 그가 약자들에게 동질감을 느낀다는 사실은 10년 가까이 아베를 취재해온 아오야마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고 한다.

아오야마 기자는 이 소수자 의식의 뿌리를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 개정 반대 시위에서 찾는다. 미·일안전보장조약 개정을 강하게 추진하던 기시 전 수상은 국민들의 분노에 직면한다. “데모 부대가 연일 집 주변을 둘러쌌고, ‘안보, 반대’라는 구호가 집안까지 들려왔다. 돌이나 판 조각, 불 붙인 신문지 등도 날아 들어왔다고 한다. 그 후 기시 수상은 수상관저에서 폭한에게 습격당해 왼쪽 허벅지를 나이프에 찔렸다.”

당시 만나이로 5살이던 아베는 할아버지에게 쏟아지는 사람들의 분노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이 당시의 일은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도 아베가 가정교사에게 "무서웠다"고 말할 만큼 기억에 깊이 남겨졌다. 그리고 나이를 먹자 아베도 대중의 야유를 받게 됐다. 'A급 전범의 손자'라는 손가락질을 친구들에게 받으면서 아베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저의 사춘기였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반(反)자민당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어요. 그런 가운데에서 저는 세상 사람들에게 공격받던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학교 안에서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어요."

다수의 대중에게 '억압'받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싹튼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섰던 기시나 아베를 '억압받는 소수자'로 보는 건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아오야마 기자도 이런 아베의 심리를 ‘이해하기 힘든 감각‘이라고 잘라 말한다. 하지만 아베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건 객관적인 사실 자체가 아니다. 그 사실을 아베가 어떻게 인식했느냐다. 아오야마는 "최소한 아베 본인은 힘들었다고 생각한 건 분명하다"고 덧붙였다.

'목계'에 이르지 못한 재상

어린 시절에 형성된 소수자 의식은 정치가 아베 신조의 '공격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보수는 공격받는 입장이다’라는 생각이 ‘분명하게 반론을 해야 한다, 싸워야한다‘로 발전한 것이다. 이런 태도는 같은 당의 선배 정치인과 공개적으로 설전을 주고받았던 일에서도 잘 드러난다.

2008년 6월, 야마자키 타쿠 전 자민당 부총재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내놓자, 아베가 격돌한다. "국회의원이 상대가 듣기 좋은 말을 해버리면, 상대는 교섭에 응하지 않게 된다. 백해무익하다. 아니, 잘 생각해보면 백해는 있지만 이권이 있는 것 아니냐"라고 공개적인 비방을 한 것이다. 더군다나 야마자키가 북한과 이권으로 얽혀있는 것 아니냐는 강경발언에 자민당 내부에서도 "아베는 얌전히 있는 편이 좋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아오야마 역시 '어째서 저렇게까지 공격적인 걸까' 싶어서 혀를 내둘렀다‘고 회상한다.

아베의 공격적인 태도는 2차 아베정권 수립에 성공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작년에 일어난 두 차례 '총리 야유사건'이 대표적이다.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에게 수상이 직접 '야유'를 날린 것이다. 일련의 일로 아베는 "저급한 야유로 국회의 품격을 실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아직도 목계(木鷄)에 이르지 못 했습니다"라고 사과를 해야 했다.

‘목계’는 장자에 나오는 구절로, 가장 강한 싸움닭은 나무로 만든 닭처럼 태연하게 있는 닭이라는 뜻이다. 아오야마는 ‘한마디 들었을 때 바로 반박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한다. 그런 반사 신경이 몸에 익어버린 것이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된 지금도 '태연자약’하게 흘려듣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은 아닐까‘라며 아베를 '목계에 이르지 못한 재상'으로 평한다. 

"그쪽도 반박하면 되잖아?"의 함정

주장과 반박을 좋아하는 만큼 아베는 서로가 좀 더 분명하게 주장하고, 확실하게 토론하는 것을 선호한다. 수상이 된 지금도 아베는 "이쪽에서 주장을 하고 있으니까, 반론이 있다면 그쪽도 하면 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아베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는 점이다. 아베가 자유로운 토론을 하자고 하더라도, 상대편은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아오야마는 아베와 언론의 관계를 들어 이 부분을 지적한다.

"아베수상은 자신들 보수 세력은 '억압 받아온 소수자'라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다. 반론하는 것으로 자신의 입장을 지켜왔다는 자부가 있기 때문에 수상이 된 지금도 말해야 할 것은 말해야 한다는 자세다. 반면, 미디어의 입장에서는 일국의 재상에게 반론하는 일에 당연히 긴장감을 갖게 된다. 발언의 배후에 국가권력이 눈을 뜨고 있기 때문이다. 방송국의 인가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정부다."

설령 보수가 실제 소수라고 할지라도, 힘을 갖고 있는 소수와 그렇지 않은 소수는 다르다. 힘을 갖고 있는 정부의 의견은 압력으로 바뀔 위험이 있지만 '억압 받는다'는 인식이 강한 아베가 그 차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들어오고 언론 탄압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그 증거다. 2015년 6월 자민당 의원들이 ”언론을 응징하는데 있어서는 광고수입을 없애버리는 게 그만이다. 경단련의 기업들을 움직여야 한다"라는 발언을 했던 사례나, 올 초 NHK ‘클로즈업 현대’의 캐스터 쿠니야 히로코의 하차에 따른 논란이 대표적이다.

아오야마는 수상에게는 자유롭게 논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의무가 있고, 동시에 반대편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수상이 압력을 가할 의도가 없었어도, 언론이 스스로 자기규제에 들어갈 위험이 있다는 걸 인식하라는 주장도 덧붙인다.

좋은 부분도, 나쁜 부분도 모두 국민에게 보여지길

아베가 참을 수 없는 건 자신의 의견을 어필할 수 없는 순간이다. ‘페이스북을 너무 많이 한다’는 언론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한 때 하루 평균 1.8개의 페이스북 포스팅을 했던 이유다. 집단적 자위권 해석 변경이 이뤄졌던 2015년에는 수상이 직접 모형을 들고 방송국을 돌아다니며 국민들에게 설명을 했다. 아오야마가 누차 얘기했듯, 아베에게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건 자신의 입장을 지키는 길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이야기했다면 거기에 따른 비판은 존중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셈이다. 아오야마 기자도 아베가 비판 자체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인물이라 평한다. 그런 아베의 태도는 <아베와 함께한 700시간> 책을 쓰겠다는 얘기를 아베에게 전했을 때 단적으로 드러난다. 기자와 아오야마의 메일 인터뷰에 따르면 아베 수상은 아오야마 기자의 출간 계획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한다.

"아베 수상은 의외로 흔쾌히 OK해주었습니다. 저는 “(아베를) 칭찬만이 아니라, 분명하게 비판도 할 겁니다"라고 말했죠. 아베 수상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좋은 점도 나쁜 점도 국민들에게는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

아베는 수상의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책의 취재를 위한 시간을 여러 번 별도로 마련해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덕분에 평소에 드러나지 않던 아베의 속마음이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아베의 입을 통해 나왔다. 물론 수상이라는 직책 상 직접 인용보다는 간접 인용의 형태로 실려 있다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소수자'라는 의식부터, 공격적인 성품까지 아베의 육성이 아니었다면 알기 어려웠을 내용들이 책에 가득했다. 아베의 동의가 없었다면 나오기 힘들었을 책인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아베에게 우호적인 칭찬만 담긴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우려에 대해 아오야마는 "이 책을 만드는 나름대로의 원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 본 것을 솔직하게 적으려고 노력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아오야마가 바라보는 아베는 어떤 수상일까.

“때로 저렇게 공격적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현실적인 리더입니다. ‘이렇게 하는 게 좋아’라는 게 분명하기 때문에 믿을만한 리더이기도 합니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지만,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은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한국이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아베'를 담고 있는 책

'가장 가까운 나라이자, 가장 먼 나라'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한일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장 친근한 나라지만, 역사와 영토문제로 인해 갈등의 골도 깊다. 2012년을 기점으로 갑자기 관계가 냉각됐듯, 언제 다시 관계가 호전될 지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국과 일본은 앞으로도 서로에게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을 것이란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지금 어떤 수상과 마주하고 있는 걸까"라는 아오야마의 의문은 한국인들에게도 필요한 의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이웃나라 수상과 마주하고 있는 것일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손자의 명언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상대방을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대책도 바로 세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아베는 개헌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를 위해 당 총재 임기를 제한한 당규를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아오야마 기자도 말했지만 ’장기정권‘도 시야에 들어온 상황이다. 크게 이변이 없으면 2020년 도쿄올림픽에서도 아베 수상을 만날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제 한국도 아베 수상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자문해봐야 할 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10년 간 한국 언론 보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아베는 망언으로 논란이 된 인물 1위에 꼽혔다. 실제로 아베수상의 망언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아베를 '망언 정치인'으로서만 대하는 게 아닐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차 내각에서 처절하게 실패한 뒤에도 재기에 성공한 정치인이고, 얼마 전에는 집권 2년 만에 지지율 60%를 달성한 총리가 바로 아베 신조다. 단순히 망언만 일삼는 정치인으로 바라보기엔 아베의 인기와 영향력이 남다르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분석한 아베'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인들에게도 의미가 있다. 저자가 몸담은 니혼테레비가 보수성향이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아베 신조를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기엔 좋은 참고자료다.

마지막으로 아오야마 가즈히로 기자의 당부를 덧붙였다.

"아베수상은 아마 한국에서 상당히 '나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분명 공격적인 부분이 있고, 저 역시 '조금 더 정중한 편이 좋을 텐데', '너무 강인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 '이렇게 하는 편이 좋아'라고 믿고 행동하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그 부분도 알아주신다면 기쁠 겁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