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솔아~할아버지께서 부르셔. 예! 하고 달려가니 너 말고 니 아범."
지금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노래 '내 이름은 예솔'. 조그마한 꼬마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부른 이 노래는 당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그 노래의 주인공인 꼬마아이는 이제 국악인이 되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꼬마에서 이제는 어엿한 대학생이 된 이자람. 이번에도 그는 일을 벌이고 말았다. 가사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8시간에 달하는 판소리 완창을 성공한 것이다. 

전통적인 우리의 소리인 판소리를 계승 해 나가는 사람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정장 차림의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그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막상 앞에 나타난 사람은 헐렁한 후드티 차림에 화장기 없는 귀여운 얼굴을 한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전 원래 이런 편한 차림을 좋아해요. 한복은 무대의상 같은 거죠. 판소리 무대에서는 한복이 편하지만 평상시에는 이런 차림이 좋아요." 한창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듯 이어지는 동아리 얘기, 대학생활 얘기를 그는 즐겁게 늘어놓았다.

겉모습은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올해 10월 그는 8시간에 달하는 동초제 춘향가 완창이라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해냈다. 이는 96년 11월 4시간에 달하는 동초제 춘향가, 97년 12월 5시간짜리 강산제 심청가에 이은 3번째 완창이다. 그는 이번 완창으로 ‘최연소 최장시간 판소리 공연’으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렇게 큰일을 벌이기까지 나름대로 힘든 일이 많았다.  "선생님께 많이 혼나죠. 특히 완창 연습할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판소리는 뼈에서 소리가 나와야 하는 건데 정말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요. 사시 공부하는 사람처럼. 외롭고 힘든 생활이지만 누가 있어도 도움이 될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죠. 진짜 힘들었어요."

그러나 그는 판소리 완창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사람들이 제 손짓 하나에도 울고, 웃고 하는 데서 일치감을 느껴요. 그게 판소리의 매력인 것 같아요. 완창할 때는 저도 중간에 울고, 사람들도 울었어요. 마지막도 거의 울면서 마쳤는데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쳐주더라구요." 다른 판소리를 다시 배우게 되면 또다시 완창에 도전하고 싶다는 그의 모습은 완창 때의 감흥이 다시 살아났는지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소리에는 힘이 있다. 왜소한 체구와 걸맞지 않게 힘있는 소리에 사람들은 더욱 감동한다. "안향련님의 소리를 한 번 들은 적이 있어요. 근데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30대에 일찍 돌아가신 분인데 힘이 넘쳐흐르는 소리를 가진 분이세요. 사람들이 저보고 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소리를 많이 하시는데 그분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그의 소리의 매력은 단순히 힘이 넘치는 것만은 아니다. 만 20세의 어린 나이에 그는 슬픔이 묻어 나오는 소리를 한다. 97년 11월 전주 대사습놀이 학생전국대회 판소리 명창 부문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소리도 심청가 중에서도 가장 슬프다는 강산제 심청가였다. "저는 개인적으로 내용의 반전이 있고 리듬이 역동적인 음악을 좋아해요. 판소리에서는 즐거운 부분들보다는 슬픈 대목들이 더 그런 느낌이 있어요. 기저에 인간적인 것들이 깔려있죠. 잠깐 감상에 젖게 하는 것이 아니라 깊게 슬프게 해요. 진실한 안타까움이 느껴져요."

판소리의 차세대 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이자람. 그가 판소리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한창 ‘내 이름은 예솔이’로 방송에 나가던 때였다. 그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해, 한 TV프로그램에 출연요청이 들어왔다. 판소리에 대해 전혀 모르는 어린이가 소리를 배우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전까지 민요 외의 국악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던 그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리고는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흔쾌히 출연요청을 받아들였다. 그 곳에서 지금의 스승인 은희진 선생님을 만났다. 그의 판소리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의 전통 가락인 판소리를 하고 있는 그이지만 그가 좋아하는 음악은 제니스 조플린의 음악과 같은 락 음악이나 70년대 포크음악이다. “어떻게 제가 락 음악을 좋아하시는 걸 아시고 음반 제의도 많이 들어와요. 아직은 판소리 외의 다른 음악은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색깔이 있는 노래를 해보고 싶거든요." 우리의 가락을 하지만 가장 이국적인 음악인 락 음악을 좋아한다는 그. 역시 첫인상처럼 고정관념을 깨는 발언이었다.

현재 우리의 국악은 그 위치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 음반가게에 가봐도 국악코너는 먼지가 수북히 쌓여있다. 이런 국악의 쇠퇴에 각성을 하고 나선 사람들이 크로스 오버라는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국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판소리의 융성을 바라는 마음은 이자람도 같았다. 하지만 그는 크로스 오버에 대해서는 별로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원래 크로스 오버같은 음악은 싫어했는데 올해 초 신해철씨와 함께 공연을 하면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 공연은 테크노와 국악의 접목이라는 새로운 시도였는데 저는 국악팀으로 합류했었죠. 그 때 음악을 듣고 크로스 오버도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칫 젊은 세대들에게 고리타분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박힐 수 있는 판소리. 그러한 우리의 가락을 이어가는 차세대 주자 이자람. 그는 아직 만 20세의 어린 나이이다. 락 음악을 좋아하고 시험 때라도 놀고 싶으면 노는 신세대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그. 남학생들과도 잘 어울리는 털털한 성격까지 전통적인 여인하면 떠오르는 단아한 이미지는 겉모습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지만 그의 소리는 언제나 전통적인 미가 농축되어 있다.

사람은 인생에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고 한다. 그의 경우는 이미 두 번의 기회는 잡은 것 같다. 처음 판소리를 접하게 된 것과 이번 8시간의 동초제 완창으로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진 것. 이제 그는 세 번째 기회를 기다린다. 그리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 그는 오늘도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조수인 기자<dewedit@hanmail.net>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