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모든 건물을 들어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니까 힘든 점이 많아요.” 김민성(22)씨는 다리가 불편해 전동 휠체어를 탄다. 그래도 발을 쓸 수 있어 다른 장애인보다 사정이 조금 더 나은 편이다. 발로 문을 밀면서 앞으로 나가면 되기 때문이다. “휠체어에 의존하는 장애인은 대부분 발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지나가기 힘들어요.” 김씨가 건물 출입의 불편한 고충을 토로했다. 대부분 건물에 흔히 볼 수 있는 문은 유리로 된 여닫이 문이다. 비장애인은 손이나 상체로 쉽게 열지만, 장애인은 다르다.
 
양 방향으로 자유롭게 열 수 있는 문보다 ‘미세요' 혹은 '당기세요’ 표시가 되어 있는 문이 더 문제다. 한쪽 방향으로만 열 수 있으니 당길 때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힘도 많이 든다. 휠체어를 가누는 것도 일이다.

▲한쪽 방향으로만 열 수 있는 문. ‘당기세요’ 표시가 되어 있다.

김씨는 가장 불편했던 문으로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의 제1기숙사 문을 꼽았다. 한쪽으로만 열리는데다 무겁기 때문에 혼자서는 지나가기 힘들다. 비장애인은 문이 무겁거나 한쪽으로만 열려도 바로 지나갈 수 있지만, 장애인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김씨에 따르면 문 주변에서 도움을 청하는 데만 적어도 3~4분이 걸린다.

이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 문이 얼마나 있을까. 서울 민간기관과 공공기관의 출입문을 점검하기로 했다. 민간기관 중 이용 빈도가 높은 은행, 비교적 장애인 시설을 잘 갖추고 있는 문화시설, 그리고 정부 기관을 살펴봤다.

먼저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세종문화회관을 찾아갔다. 공연장까지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승강기가 없어 휠체어 리프트를 타고 안내를 부탁해야 한다. 올라와도 두꺼운 미닫이 유리문이 가로막는다. 안내인에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어떻게 혼자 들어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안내를 받으라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도움을 청하려는데 어떻게 먼저 안으로 들어가 부탁하라는 건지….” 상황을 지켜보던 시민 이유실(53)씨의 말이다.

▲세종문화회관 공연장까지의 계단이 높아 휠체어로 올라가기 어렵다.

은행 출입문도 혼자 휠체어를 타면서 열기에는 무겁고 힘이 많이 필요했다. 70kg에 육박하는 무게도 그렇지만 문의 구조가 더 문제다. 톱니바퀴와 맞물려서 유리문을 닫은 상태로 유지하는 장치인 스트라이커 때문에 문을 반대 방향으로 열려고 하면 멈춤 쇠가 걸려서 돌아가지 않는다.

▲은행의 유리 미닫이문. 무겁고 한 쪽으로만 열려서 휠체어가 출입하기 힘든 구조다.

서울 지하철 5호선의 광화문 역 주변에는 다섯 새의 은행 ATM 부스가 모여있어 업무를 보기에 편리하다. 하지만 휠체어 사용 고객은 이를 이용할 수 없다. 무거운 출입문을 가까스로 열어도 턱이 있고, 좁아서 들어가기 힘들다. 부스 진입에 성공해도 다시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너비와 폭이 좁아 방향을 바꿀 수 없거니와, 문을 당길 공간조차 없다.

▲서울 광화문 역 옆에 ATM 부스들이 모여있다. 부스가 좁아 휠체어 이용 고객은 이용하기 힘든 구조다.

공공기관의 출입문은 조금 나은 편이다. 대부분이 열고 닫는 유리 문이고, 자동문 또는 장애인이 혼자 조작할 수 있는 회전문을 설치했다.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정부서울청사에는 두 개의 회전문과 두 개의 여닫이문이 있다. 한 블록 떨어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도 회전문과 두 개의 여닫이문이 있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의 헌법재판소에는 자동문이 설치돼있다.

▲헌법재판소의 자동문(왼쪽)과 서울 종로경찰서(오른쪽), 여닫이문과 자동문이 모두 설치되어 있다.

정부 과천청사에는 장애인을 배려한 추가적인 장치가 있다. 시민들이 주로 사용하는 고객안내센터에는 여닫이 문과 원형 자동회전문이 각각 두 개씩 설치돼있다. 회전문 입구에는 장애인 마크가 그려진 초록색 버튼도 보인다. 동그란 버튼은 휠체어를 타면 쉽게 손을 뻗을 수 있는 높이에 있다. 버튼을 누르면, 회전문의 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회전문 안의 너비 또한 휠체어가 충분히 들어갈 정도로 넉넉하다.

미국의 경우, 학교, 관공서, 군 기관, 병원을 비롯한 공공기관과 대형 건물 입구에는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배려한 자동문이 설치되어있다. 출입문 버튼은 휠체어의 높이를 고려해 성인 여성의 허리 정도 위치에 있다. 서 있거나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도 쉽게 손을 뻗을 수 있다. 버튼을 누르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경우에 따라서 문이 바로 앞에 있는 경우도 있고, 버튼과 1m 정도 간격을 두는 경우도 있다. 문은 15초 정도가 지나면 서서히 자동으로 닫힌다. 이중문 역시 모두 자동으로 열리는데 뒷문은 시간차를 고려해 더 늦게 열리고 닫힌다.

서울시에서 권고하는 출입구 규정은 문 자체보다는 주변의 장애물, 단차 제거에 초점을 맞췄다. 규정 자체가 ‘출입구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은 장애인의 닫힌 공간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건물의 출입구(가능하면 주출입구)는 반드시 단차 없이 접근 가능해야 한다.
(나) 장애인이 이용 가능한 출입구는 유도 및 안내표시를 해야 한다.
(다) 시각장애인과 휠체어사용자는 최대한 분리된 출입문으로 유도되어야 한다.
(라) 주출입구에는 건물과 건물 내 편의시설(특히, 장애인이 이용가능한 화장실)의 안내표시 또는 안내소가 있어야 한다.
(마) 외부 출입구 바닥면은 눈, 비 등으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마감처리 되어야 한다.

국립특수교육원 장애이해사이트의 출입구 규정은 출입문 자체에 대한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출입구의 폭이나 문턱의 유무를 규정하는 데 그쳤다. 국립특수교육원은 문의 종류마다 주의할 점을 정했다. ‘미닫이 문은 가벼운 재질로 하며, 턱이 있는 문지방이나 홈을 설치하여서는 아니된다,’ ‘여닫이 문에 도어체크를 설치하는 경우에는 문이 닫히는 시간이 3초 이상 충분하게 확보되도록 하여야 한다,’ ‘자동문은 휠체어사용자의 통행을 고려하여 문의 개방시간이 충분하게 확보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규정 역시 문의 무게, 자동 여부, 손잡이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비장애인은 출입문이 장애인에게 큰 불편이 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월 12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열린 ‘비장애인들의 출입문 지나가기 체험’에 참여한 남정은(25)씨는 휠체어를 타고 미닫이 출입문 열기에 도전했다. 출입문 도달에는 어려움 없이 성공했지만 문을 밀자 휠체어가 미끄러지며 뒤로 밀려났다. 결국 한 손으로 바퀴를 고정하고, 한 손으로 밀면서 가까스로 문을 열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당기세요’라는 표시가 있는 문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상태에서는 문을 힘껏 미는 게 어려울 뿐만 아니라 문을 당기는 동시에 휠체어 바퀴를 밀거나 방향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씨는 “휠체어를 타고 혼자 다니는 데 문이 걸림돌이 될 줄은 몰랐다. 이번 체험을 통해 장애인 입장에서 일상생활의 불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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