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TV에는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9년 Mnet의 슈퍼스타K를 시작으로 방송사들은 음악, 요리, 댄스, 연기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오디션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2011년, 슈퍼스타K3는 케이블 방송사에서 방영했음에도 평균 시청률 11.8%를 기록했고, 오디션은 어느새 프로그램의 성공을 보장하는 ‘흥행 코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오디션 프로그램이라는 특성상 1등이 정해지는 결승전이 끝나면 시청률이나 인기에 상관없이 탈락한 참가자를 더 이상 볼 길이 없다. 때문에 대중들은 한창 눈길이 가던 참가자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아쉬울 때가 많다. 여대생 박정혜(21)씨는 가수 에디킴을 오디션 프로에서 알게 된 뒤 팬이 되었다. 하지만 그가 탈락한 뒤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까지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은 더 이상 없었다. 그녀는 “오디션이 끝난 뒤에도 나처럼 참가자들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팬들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경연이 끝난 후,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참가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오디션으로의 첫 발걸음

그들이 오디션에 지원한 계기는 다양했다. 얼마 전 종영한 마스터셰프코리아(이하 마셰코) 시즌4의 참가자 남의철(36)씨는 요리와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종합격투기 선수다. 그가 음식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선수 생활 중 훈련의 일부로 식단을 직접 관리하면서 부터다. “7, 8년 전부터 제가 직접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어요. 근데 (요리를) 하다 보니 재미있고, 저랑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평소 남의철 씨가 체육관에서 훈련을 하는 모습. (사진=남의철씨 제공)

마음 먹고 시작한 요리가 아닌데도 ‘마셰코’라는 경연 프로그램에까지 도전하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제가 짠) 건강한 식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걸 전문가 분들께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생겼죠.”

왁킹(Waacking) 댄서 여은지(25)씨는 2013년에 시작한 ‘댄싱9 시즌1’에서 긴 팔다리와 이국적인 외모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왁킹은 아프로 아메리칸 종류의 스트리트 댄스로 박자에 맞춰 팔을 움직이는 동작으로 구성된 춤이다. 사실 여씨가 처음 접한 춤은 왁킹이 아닌 힙합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왁킹 댄서 원지혜 댄서에게 수업을 받으면서부터 그는 왁킹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팔다리를 쭉쭉 뻗고 도도한 자태의 포즈를 보면서 다른 장르보다 저라는 사람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춤이라고 생각했어요.”

▲여은지씨가 '댄싱9' 이후 찍은 개인 프로필 사진. (사진=여은지씨 제공)

춤을 춘지 10년 째 된 여 씨는 춤이라는 콘텐츠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호기심이 생겨 ‘댄싱9’에 도전했다고 한다. “오디션이라는 특성 때문에 많은 댄서들 사이에서 돋보여야 했어요. 그래서 저만의 왁킹 스타일을 만들려고 노력했고, 의상, 메이크업 전부 열심히 준비했어요.”

남성 듀오 마틴스미스는 Mnet 슈퍼스타K7(이하 슈스케)에서 TOP5라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마틴스미스가 오랫동안 팀으로 활동한 것은 아니다. 2015년 5월 14일 서로의 버스킹을 구경하다가 쉬는 시간에 같이 노래를 한 것이 마틴스미스의 탄생 계기였다. “혁이가 (노래를) 잘하는 친구예요. 그래서 제가 도와줄 수 없나 해서 같이 화음을 넣어준 게 팀의 시작이었어요.”

작사, 작곡 및 랩과 보컬과 기타를 맡은 전태원(22)씨와 노래를 부르는 정혁(20)씨는 처음에 각자 개인 참가자로 슈스케에 지원했다. “원래 팀으로 지원할 수 있는지 몰랐어요. 예선 하루 전날 버스킹을 같이 했는데 느낌이 너무 좋아서 팀으로 지원하게 됐죠.”

험난했던 오디션의 과정

“처음에는 '마셰코 100인 오디션'에 참가해서 평가 받는 것까지가 목표였어요.” 높은 성적을 거둘 거라고 예상했냐는 질문에 남의철씨는 겸손한 답을 내놓았다. TOP9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그는 올라가는 매 라운드가 신기했다고 말한다. “자꾸 올라가니까 정말 신기했죠. 내가 이런 재능도 있구나 싶고 나중에는 TOP10까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그는 100인 오디션에서 선보였던 ‘에너지 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라운드에서 예상 밖의 좋은 평가를 받아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00인 오디션은 그에게 일종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였던 셈이다.

▲남의철씨가 마스터셰프코리아 시즌4 참가 중 스튜디오에서 요리 연습을 하고 있다. (사진=남의철씨 제공)

요리와 격투기는 다른 듯 닮았다. “요리도 체력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마셰코’도 경쟁이라는 점에서 격투기와 비슷하죠.” 강한 승부욕과 빠른 상황 판단력이 장점이라는 그에게 ‘마셰코’는 또 다른 승부이자 경기였다. 하지만 그는 요리를 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게 됐다. “격투기는 어떻게 상대를 쓰러뜨릴까에 초점을 맞춘다면 요리는 마음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리에 있어서 만큼은 경연에서 승리했을 때보다 자신의 정성이 충분히 전해졌을 때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그에게서 따뜻한 배려와 요리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여은지씨는 시청자들과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으며 '댄싱9'의 3차 생방송까지 좋은 결과를 이뤄냈다. 그녀가 만든 무대들 중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무대는 두 번째 생방송에서 이선태 씨와 함께 했던 ‘Bad Romance’였다. 그녀 역시도 가장 좋았던 무대로 ‘Bad Romance’를 꼽았다. “제가 가장 잘하는 표정과 느낌, 움직임들로 이루어진 작품이었기 때문에 더 자신 있게 했던 것 같아요.”

그녀가 출연했던 ‘댄싱9’은 매 주 무대 점수가 매겨지고 그 순위가 공개됐다. 여씨는 무대를 만드는 일 자체보다 순위 공개가 자신을 더 힘들게 했다고 말한다. “하위권에 있으면 제가 제일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잠들기 전에 일기를 쓰면서 자책을 하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그녀는 될 때까지 노력하는 자신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게 됐다. “전에는 제가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인지 몰랐어요. '댄싱9'을 도전하면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마틴스미스가 처음 '슈스케'에 지원했을 때 특별한 목표는 없었다. “웃겨도 좋으니까 TV에 한 번이라도 비춰보자는 게 목표였어요. 음악하는 일이 좀 더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TOP5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이들은 그저 감사했다고 말했다. 마틴스미스에게 '슈스케'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슈스케는 스케줄이 힘들게 짜여있어서 매일매일 큰 산을 넘는 느낌이었어요”라며 정씨는 서로가 있었기에 해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특히나 그런 것이 듀오라는 특성상 남들보다 곡을 선정하고 레퍼토리를 보여주기 위해 연습하는 시간이 2배, 3배 걸려서 힘들었다고 한다. 전씨는 슈스케에 참가한 이후 모든 순간이 하나의 에피소드인 것 같다며 “짧은 시간내에 편곡하고 곡을 내놓는 소중한 경험들은 앞으로도 해보지 못할 일"이라고 말했다.

▲마틴스미스의 프로필 사진. 왼쪽 전태원, 오른쪽 정혁 (사진=전태원씨 제공)

오디션이 불러온 변화

‘마셰코’에서의 도전이 끝난 뒤 남의철 씨의 삶에는 다양한 변화가 생겼다. 제일 먼저 요리를 대하는 태도나 관점의 변화를 꼽았다.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제 요리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재미도 느끼게 됐죠. 삶이 풍성해진 것 같아요.” 요리를 통해 삶에 즐거움이 늘었고, 더 깊은 소통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지금 하고 있는 운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계기도 생겼다. “많은 참가자 분들이나 심사위원 분들이 요리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저도 제 일에 더 진지하게 임하고 더 나아가 잘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남씨는 지금까지도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요리 영상을 보는 등 요리에 대한 관심과 배경 지식을 키워나가고 있다. “요리에 관해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계속 배우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그는 맛있는 음식을 친구들과 나눌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건강한 음식은 건강한 마음과 생각을 가져다 주는 것 같아요. 여유와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죠.”

여씨는 댄서로서, 학생으로서 본분을 다하고 있다. 오디션이 끝나자마자 우승팀인 레드윙즈 갈라쇼에 두 달 동안 매달렸고 오디션에 함께 했던 멤버들과 지방투어, 올스타 쇼 공연을 계속했다. 지금은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생으로서 공부도 하고, 학원에서 댄스 꿈나무들도 지도하는 중이다.

‘댄싱9’이 여씨에게 가져다 준 가장 큰 변화는 춤 영역이 다양해진 것이다. “여러 장르의 댄서들과 호흡하다 보니까 많은 움직임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댄싱9’에 지원하기 전의 비디오와 후의 비디오를 비교하면 확실히 달라요. 춤을 출 때 움직임이 많이 열렸어요.” 또한 그녀는 과거의 자신에 비해 오디션에 참가하는 동안 무섭게 노력하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슈스케 도전이 끝난 뒤 마틴스미스가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은 바로 자신들을 찾는 곳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되게 힘들게 공연했어요. 길거리에서만 노래했었는데 클럽이나 행사 등 불러주는 곳이 많아졌어요.” 정씨는 예전보다 자신들을 알아보고 믿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공연하는 곳도 늘었다며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전씨는 슈스케를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이미 (꿈을 이루기엔) 늦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오디션을 통해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자신감 있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열심히 달려온 그들의 목표

로드FC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게 됐다는 남의철씨는 라이트(65.7 ~ 70.3kg)와 페더(62 ~ 66kg) 급 챔피언에 도전하려 한다는 목표를 밝혔다. 그는 UFC에서의 방출로 선수로서는 다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무대와 상관없이 운동을 즐기고 싶다고 말한다. 요리에 대한 도전을 통해 자신감과 삶의 여유를 배웠다는 그가 또 다른 목표를 이루는 모습이 기대된다.

여은지씨는 학업의 길을 계속 걸을 계획이다. 대학원에서 1년 더 공부하고 졸업작품을 ‘인생작’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포부다. “졸업 후에는 계속 도전해서 세계 각지에 ‘여은지’라는 왁킹댄서를 알리고 싶어요.” 그녀는 도전이 거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햄버거를 주문하는 것’, ‘화장품을 사는 것’, ‘새로운 일을 배우는 것’과 같이 사소한 것들도 모두 도전이라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도전하려 한다. “도전을 해야 성장하기 마련이에요. 도전을 무서워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거예요.”

“한번쯤은 아무 생각 없이 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마틴스미스는 '잃을 것이 없으니 도전해보자’는 생각으로 오디션에 지원했다. 정씨는 오디션을 준비하는 과정이 특히 즐거웠다고 말한다. “도전에 있어서 거침없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즐겁게 산책한다는 마음으로 임했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는 이들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아 보였다. 전씨는 자신들처럼 오디션에 참가하는 모두가 잘됐으면 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마틴스미스의 최종 목표는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에 가는 것이다. “온 세계 사람들이 보는 그래미 어워드에서 저희 음악을 보여주고 싶어요.” 두 사람이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자신들의 장점이라는 이들은 지금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며 준비하는 중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목을 받았던 참가자들에게 오디션은 분명 큰 의미를 갖는다. 오디션을 통해 그들은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고, 성장하는 것을 느꼈으며, 소중한 경험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그 후, 그들에게 향했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꺼진 뒤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가꾸고 발전시키는데 매진하고 있었다. 일상으로 돌아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꿈을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은 브라운관으로 그들을 응원하고 지켜봤던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기에 충분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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