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는 채식을 하고 있어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제 발 저린 듯 상대방의 표정을 살폈다. 채식을 하고 있다고 밝힌 뒤부터 생긴 습관이었다. 대화하던 상대방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스치는가 싶더니 곧이어 의아함이 떠올랐다. 잠시 머뭇거리던 대화 상대들은 모두들 한결같이 채식을 한다고 밝힌 기자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뭘 먹고 사시는 거죠?”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욕망과 함께 채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단과 요리법이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인기 있은 지도 오래다. 어느 정도 채식에 대해 열린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들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 또한 관대해졌을까?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솔직한 시각을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직접 2주 동안 채식을 하며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무슨 다이어트를 그렇게까지 해?”
채식을 시작했다는 기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최소윤(22)씨가 물었다. 채식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음에도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눈치였다. 최씨는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다이어트에 강박이 있는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며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식단관리와 관련해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해서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채식을 곧 다이어트라고 생각한 사람은 최씨 뿐만이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만난 43명 중 18명에게서 최씨와 유사한 반응이 나왔다. 2012년 시장조사전문기관인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가 성인남녀 1,000명에게 채식을 통해 기대하는 효과를 물었을 때 47.9%의 사람들이 ‘다이어트’라고 응답한 것과 유사한 수치였다. 채식과 다이어트를 직접 연결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화 내내 다이어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 사람도 있었다. 채식이 다이어트와 직결된다는 생각은 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변화하지 않은 셈이었다.
채식주의자를 극성적인 동물보호론자로 보는 사람도 만나볼 수 있었다. 채식은 무조건 동물보호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신문규(20)씨는 유제품을 먹으려는 기자의 모습에 “유제품도 동물에게서 나오는 것이니 채식주의자면 먹으면 안 된다”며 “채식까지 할 정도면 동물을 끔찍이 생각할 텐데 그러면서 유제품을 먹는다는 건 위선적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는 달걀, 유제품, 어류 등 섭취허용 정도에 따라 나눠지는 채식주의자들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찾아볼 수 없었다.
사회생활을 위해서 채식을 그만하는 게 어떻겠냐는 충고를 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지나친 민폐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서지윤(25)씨는 채식 전용 식당이 쉽게 검색되지 않자 “채식을 하는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며 “잘못하면 이기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니 그만두는 건 어떻겠냐”고 말했다. 그녀의 성화에 결국 식사는 일반 음식점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채소로만 된 샐러드를 하나 팔고 있어 들어갈 수 있었던 식당이었다.
약 2주간 직접 느낀 채식주의자를 향한 사람들의 시선들은 다소 편향되어 있었으며 또한 날카로웠다. 3년째 채식을 하고 있다는 김다원(23)씨는 “채식주의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가 높아졌다고 해도 실제로 주변에서 채식주의자를 마주했을 때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채식을 그만두라는 주변 사람들의 등쌀에 최근에는 채식관련 커뮤니티를 통해 친해진 사람들과의 만남만 정기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무조건 예민하고 까다로운 사람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며 “채식도 하나의 취향일 뿐이니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를 것이라는 편견이 점점 줄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