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한겨레 그림판을 걷어치우고 이제는 애니메이션을 하겠다며 (주)오돌또기를 만든 박재동 감독이 지난 일 년 간의 워밍업을 모아 책을 펴냈다. 98년 8월부터 99년 7월까지, MBC 뉴스데스크와 KBS 시사터치 코미디 파일, 굿모닝 코리아에서 방영된 시사 애니메이션 <박재동의 TV만평>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9cm×9cm짜리 네모칸에서 2분 30초의 공간으로 한껏 날아올랐던 그의 도약에 우리는 여전히 통쾌한 합격점을 줄 수 있을 듯 하다.

사회는 내 그림이 변화시킨다!

시디롬과 함께 출판된 이 책은 직접 봐야 알 수 있다. 컷을 나누어 구성된 만화만 보아도 내용은 이해되지만 어딘지 어색하다. 영상을 위해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애니메이션으로 보는 것이 정석이다.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컷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동세와 생동감을 애니메이션에서는 마음껏 누릴 수 있다. 박재동 화백의 만평에서는 오묘한 깊은 뜻을 읽어내야 했지만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쉽고 재미있게 풍자를 즐기면 된다. 깊은 뜻과 재미, 만평과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에 따른 차이겠지만 깊은 뜻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는 애니메이션도 포기할 수 없다.

"시사만화는 하나씩 해야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자기 하고픈 이야기를 길게 할 수 있지." 그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짧지 않은 2분 30초의 시간에 "사회에 영향을 미쳐서 바람직하게 변화시킬 힘이 있는 그림"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시사 풍자의 특성상 풍자의 대상에게서 불만이나 압력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판사, 검사, 변호사, 사무장, 브로커 다섯 명이 수퍼맨 옷을 입고 나란히 하늘을 난다. 금뱃지를 자랑하고 망토를 휘날리는 <법조계 오형제>. 다섯 사람은 합체하여 거대한 고릴라로 변해 "전관예우를 몰라보다니!"라고 외치며 신참 변호사를 한 방에 날려버린다. 이때 시작된 검찰과의 신경전은 김태정 전 검찰총장을 풍자한 <닥터 오>에서 절정을 이루고, 결국 검찰은 MBC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정치적 생명이 누구보다도 긴 김종필 총리를 <십일장생>에 빗댄 작품도 있다. 십장생도의 화폭을 배경으로 산신령이 나타나 총리께 질문을 던진다. "다음 중 총리께서 되지 말아야 할 것은?" 민생안정의 주춧돌, 정치발전의 디딤돌, 통일의 노둣돌, 개혁의 걸림돌 중 답은 개혁의 걸림돌이다. 첫 번째 문제를 무사히 맞춘 총리는 다음 시험인 "개혁"을 읽는 발음 문제에서 퇴짜를 맞는다. "개헌! …개현! 아니 개헉, 아니 개…."

풍자의 대상은 "한바탕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정치만이 아니다. 올해 1월, 한일 어업협정 실패와 해수 온도 상승 등의 기상이변에 따라 생선값이 금값이 됐다. 3월에 방영된 <쌍끌이 고등어>에서는 한 식료품 가게가 등장한다. 주인이 퇴근하자 소, 돼지와 통닭이 떠들기 시작하는데, 기세등등한 마지막 쌍끌이 고등어가 등장해서 고기들을 얼차렷 시키고 기합을 준다. 한 근에 4천원 밖에 안 되는 소는 4천 5백원짜리 고등어에게 꼼짝도 못한다. "생선의 위상을 이토록 높여주시고, 농수축 업계에 새 질서를 부여하신" 해양수산부에 대해 경례!

진정한 홈런의 의미

애니메이션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난중일기를 패러디한 <난중만화>가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면적으로 쳐들어오는데 우리 만화들은…. "검찰에서 붙잡고 있는 만화"가 있는가 하면, "방송사에서 별로 제작하지 않"아 싸울 군사가 모자라고 "조정에서 지원한다는 소리는 큰데 도착한 것은 없"어 보급은 끊기기 일보직전이다. 이순신 장군은 침통한 표정으로 "지원만 제대로 되면 싸울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한다. 박 감독도 정부에서 시행할 수 있는 지원책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가 생각하는 지원책은 크게 두 가지. 우리 나라 애니메이션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방송사에서 드라마를 편성하듯이 애니메이션을 편성"해야 한다. 제작이 많아야 쓸만한 것이 많이 나온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방송사에서는 돈이 없다고 하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둘째는 벤처기업의 실질적인 지원이다. 애니메이션 산업은 인력만 있고 담보로 맡길 만한 것이 없으니, 신용이나 작품 실적을 전제로 한 무담보 융자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스스로를 "가난한 예술가"라 자위하는 그들. <박재동의 TV만평>이 끝난 이후로도 오돌또기 팀은 분주하다. 부산 민주공원의 민주항쟁기념관에 들어갈 애니메이션을 막 완성했고, 지금은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고 있다. 또 장편 애니메이션 <오돌또기>의 시나리오도 고쳐 쓰고 있다. 오돌또기 팀의 야심작인 <오돌또기>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인 만큼, 서두르지 않고 공과 시간을 들여 진행한다.

시사 애니메이션에 대해 오돌또기 팀에서는 이전에 박 감독이 "한겨레 그림판 시절 아웃된 적이 별로 없었"던 것에 비해 "요즘 작품들은 계속 아웃 아니면 파울"이었다는 내부 평가가 있었다. 그러나 파울과 홈런은 선 하나를 넘느냐 넘지 못하느냐의 차이다. 이제 그들은 그라운드를 누비며 홈까지 달려갈 수 있는 넉넉한 자유를 얻었으니, 그것이 곧 우리 모두가 환호할 수 있는 진정한 홈런이 아닐까. 

조혜원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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