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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후 이직 계획’ 미리 세우는 취업준비생들
안소영 기자 | 승인 2016.08.26 00:10

김벼리(26)씨는 언론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아랑’에 들어가 매일 채용정보 공고를 확인한다. 김 씨는 중소신문사부터 인터넷 신문사까지 지원 중이다. 그러나 김 씨의 꿈은 기자가 아니라 영화 평론가다. 영화평론가가 되는 방법은 한국영화평론가 협회와 씨네 21의 평론상 공모뿐이다. 작년에 뽑은 평론가 수는 모두 4명이었다. 그것만 보고 일 년을 더 준비하기엔 턱없이 적은 수였다. 김 씨는 “이동진 기자처럼 기자를 하다 평론을 할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며 “직장을 두세 번 옮길 각오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인을 꿈꾸는 카페-아랑 웹사이트 (자료=아랑)

‘평생직장’이라는 말이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국내외 기업의 직장인 2,647명을 대상으로 <올해 이직계획>에 대해 조사한 결과, ‘올해 이직하기 위해 현재 준비하는 것이 있다’고 답한 직장인이 55.1%였다. 직장인들뿐만 아니다. 최근 첫 직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직을 계획하고 있는 취업준비생들도 많아지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23세 A씨는 원하는 직장이 경력직만 채용해 미리 이직계획을 세워둔 취준생이다. 외국계 기업을 희망하지만, 마케팅, 홍보 직군이라면 기업을 가리지 않고 쓸 계획이다. A씨는 커리어 고민이 들 때마다 ‘특별한 그녀의 스펙타클 홍콩스토리, 제이니의 캐나다 취업’등의 블로그를 찾는다. A씨는 “주변에 외국계 회사에 취업한 사람이 많지 않아 이 블로그들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든 외국계 회사에 갈 수 있도록 영어방송을 듣고, 스페인어도 꾸준히 연마하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연구직 취업을 준비하는 24세 B씨도 비슷한 경우다. 국내보다 연구개발에 투자를 많이 해주는 외국계 기업을 가는 것이 목표지만 외국계 공고는 찾아보지도 않는다. 경력직만 뽑는다는 외국계 회사 공고를 몇 번 본 뒤부터였다. B씨는 국내 기업에서 몇 년 일한 뒤에 외국계 회사에 지원할 계획이다.

‘꿈의 직장’을 위해 1인 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경쟁력을 쌓은 뒤 이직하려는 취업준비생들도 있다. 이연규(25)씨는 지원서를 쓸 시간에 영상을 만드는 중이다. 그는 프리랜서로 1~2년 일한 뒤, 28세쯤부터 회사에 지원할 계획이다. 쌓아 놓은 영상 포트폴리오로 취준생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CJ E&M이나 네이버에 가는 것이 목표다. 이 씨는 “좋은 기업을 가기 위해 오랜 시간을 끌지는 않겠지만, 이직해서라도 콘텐츠 영향력이 큰 기업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대열(24)씨는 스펙을 많이 보기로 소문난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지원하기 전 창업을 해볼 계획이다. 그는 IT 스타트업을 설립하기 위해 친구들과 매주 주말마다 모여 아이템을 개발하고 있다. 유 씨는 “토익이나 공모전 같은 사회가 정해준 스펙을 쌓는 대신 나만의 경쟁력으로 승부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자격증을 딴 뒤 신의 직장으로 입사하려는 학생들도 심심찮게 있다. 장은별(24)씨는 CPA 합격 후 회계 법인에서 경력을 쌓고 금융 공기업에 지원할 생각이다. 회계법인은 업무량이 감사 기간에 집중돼있어 피로도가 높기 때문이다. 장 씨는 “회계법인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 어려워 이직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장 씨는 CPA 자격증을 원하는 이유를 여성임에도 경력 단절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다는 점과 직업의 전환이 자유롭다는 점을 꼽았다.

취업과 이직을 동시에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며 혼란스러워하는 취업준비생들도 많다. 광고홍보 업계를 지원하는 김수민(24)씨는 최근 취업 스터디에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신입사원으로 지원해 합격하는 사례를 자주 봤다. 김 씨는 “중고 신입 사례를 보면 일단 일하다 이직을 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고민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며칠 전 취업 설명회를 다녀왔다는 노지현(23) 씨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노 씨는 “취업설명회에 가면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도 많이 듣지만, ‘취업이 어려우니 쓸 수 있는 건 다 쓰라’는 말도 많이 들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혼란스럽다”고 했다.

취업 컨설턴트 신현우(35)씨는 ‘취준생들이 이직을 준비하는 현상’을 ‘취업준비생들의 자신감 부족’과 ‘경력도 스펙이란 사고’를 원인으로 꼽았다. 신 씨는 이를 “처음부터 본인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에 일단 들어가서 옮기겠다는 현실 도피성 유예 현상”이라고 말했다.    

또 전문가들은 취업준비생들의 생각만큼 이직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취업 컨설턴트 황혜진(31)씨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 다른 직업을 위해 꾸준히 경력관리와 자신의 스펙관리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신현우(35)씨는 지금은 이직이 취업만큼 어렵지만,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이직이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라 진단했다. 신 씨는 “직장이 아니라 직업을 선택하기를 권한다”며 “본인의 직업에 경쟁력만 있다면 직장은 생각보다 쉽게 따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안소영 기자  soyoung9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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