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작은 이야기에 끌려요. 아니, 이야기가 작은 게 아니라 거의 얘기된 적이 없는 거죠.”
 
다이애나 마컴은 2015년 4월 30일 하버드 니만 재단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퓰리처상 피처라이팅(Feature Writing)부문을 수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이하 LA타임스)의 기자인 마컴의 퓰리처 수상작은 ‘캘리포니아의 모래지대’(California’s Dust Bowl). 2014년 초부터 시작된 캘리포니아의 가뭄과 그로 인해 고통 받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마컴이 쓴 기사는 그 해 5월부터 12월까지 모두 5회에 걸쳐 LA타임스 칼럼원(Column One) 섹션에 실렸다.

▲마컴의 ‘캘리포니아 모래지대’(California Dust Bowl) 시리즈 중 첫 번째 기사 ‘꿈은 가뭄으로 말라 죽었다’(Dreams die in drought). 휴론의 농부 갈베즈와 그의 가족 이야기가 나온다. (출처:퓰리처위원회 Pulitzer.org)

‘빠른 시일 내에 캘리포니아에 비가 오지 않으면, 도심이나 교외에 사는 사람들은 더 비싼 상추를 사야 하고, 그들이 가꾸는 화단은 줄어들지 몰라도 그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모래지대 시리즈 세번째 기사 ‘무너지는 땅 그리고 마음’(Sinking Land and Hearts)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날씨는 계급적이다. 도시에 사는 중산층 사무직에게 날씨는 옷차림의 문제다. 그러나 밭에서 일하는 농부에게 날씨는 생존의 문제다. 마컴은 가뭄에 대한 기사를 쓰기로 마음 먹은 뒤 캘리포니아 센트럴 밸리(Central Valley)에 사는 농부와 그의 가족들을 만났다. 휴론, 스트랫포드, 테라 벨라처럼 주(州) 경계에 있어 알려지지 않은 마을의 주민들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그들의 우물은 말랐고, 파이프는 진흙이나 황토물을 내뱉고 있었다. 수도꼭지에서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농부들은 그들이 먼지를 키우고 있다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마컴은 니만 재단 인터뷰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정말, 정말 잘 봐야했다”고 말했다. 조그만 마을의 농부와 주민들은 관련 기록조차 없었다. 마컴과 사진기자 마이클 로빈슨 차베즈는 맨땅에 헤딩하듯 마을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가며 기사를 썼다.

퓰리처상 피처라이팅부문의 수상 기준은 ‘좋은 글’이다. 퓰리처수상위원회는 피처라이팅부문이 글의 품질과 독창성, 간결함을 고려한다고 웹사이트에서 밝히고 있다. 기사의 소재뿐 아니라 문체나 작법도 중요한 이유다. 마컴은 뉴욕타임스의 기자이자 소설가였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참고했다. 다반 마하라지 LA타임스 편집국장(당시 에디터)이 쓴 퓰리처상 추천서와 니만 재단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은행에 땅을 뺏긴 농부 조드와 가족이 그들이 살던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이야기다. 1933년부터 시작된 대가뭄과 마른 땅에서 일어난 모래폭풍은 조드 가족에게 설상가상이었다. 가뭄은 미국 중서부인 텍사스와 오클라호마를 강타했고, 주변지역으로 확대됐다. 이주 과정에서 조드와 그의 가족들은 죽거나, 실종된다. 캘리포니아에 무사히 도착한 나머지 가족들도 오클라호마만큼 어려운 현실에 부닥친다.
 
‘모래지대’라는 마컴의 기사 제목은 스타인벡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 대가뭄을 가리키는 용어다. 동시에 캘리포니아 가뭄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겨레21>의 안수찬 편집장이 지난해 6월 마컴의 기사가 스타인벡의 오마쥬라고 표현한 이유다. 스타인벡은 책에 담긴 사실적 묘사로 1940년에 퓰리처상 소설부문을 받았다. 그는 뉴욕타임스 기자로 일하면서 이주 농민의 실상을 다루기도 했다. 마컴은 그로부터 70년 뒤 퓰리처상을 받았다. 안 편집장의 말처럼 마컴의 기사는 두번째 <분노의 포도>인 셈이다.
 
70년 전 대가뭄은 8년이나 지속되면서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나앉았다. 캘리포니아의 가뭄도 비슷한 상황이다. 기사가 나온 2014년 10월 스트랫포드에서는 물이 말라 지반이 주저앉고 있었다. 스타인벡이 그렸던 시대와 달라진 게 있다면 이번 가뭄은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캘리포니아 마데라 주민 제임스 터너는 “거꾸로 뒤집힌 모래지대를 보고 있다”고 말한 이웃의 얘기를 전했다. 1930년대 이주민들은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왔지만, 지금은 캘리포니아에서 오클라호마로 가야한다는 뜻이다. 터너는 그의 부모님과 함께 1920년대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마을 휴론의 농부 프란시스코 갈베즈는 가족과 함께 텍사스로 이주 계획을 세웠다. 터너와 갈베즈는 <분노의 포도> 조드의 후예들이다.
 
니만 재단의 루이즈 키어만은 그밖에 마컴에게 글쓰기 기술을 물었다. 마컴은 “기사를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낼지 그것만 알면 집에 온 거다”라고 대답했다. 기사의 리드와 끝을 중요하게 본다는 뜻이다. 편집 과정에서도 이 부분은 거의 고치지 않았다고 했다. 첫번째 기사 ‘꿈은 가뭄으로 말라 죽었다’(Dreams Die in Drought)는 이렇게 시작한다.

'두 명의 일꾼은 실제로 있지도 않은 잡초 위로 괭이질을 했다. “풀이 많은 것처럼 하자”, 프란시스코 갈베즈는 그의 친구 라파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일주일치 일감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사는 이렇게 끝난다.

'갈베즈와 (그의 아내) 마야는 가족 회의를 열었다. 갈베즈가 아이들에게 곧 텍사스로 이사를 가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15살 잇젤은 싫다고 했다. 그녀에겐 남자친구가 있었다. 11살짜리 프란시스코도 싫다고 했다. 그는 학교가 좋았다. 큰아들인 마뉴엘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도입부에서 농부들은 일감이 없는 마른 땅에서 일감이 있는 척 하자며 농담을 던진다. 독자는 ‘웃픈’(웃기지만 슬픈) 상황에 빠져든다. 기사 끝에서는 철부지 십대 남매와 큰 아들의 말과 행동을 대비시킨다. 독자 입장에선 여운이 남는다.  
 
마컴 기사에선 통계를 비롯해 수치를 찾아볼 수 없다. 흔한 인포그래픽도 없다. 있는 건 글과 사진뿐이다. 대신 사람 사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비극은 희극과 함께 온다. 마을 주민들은 최악의 상황에서 서로 웃고 떠든다. 앞서 갈베즈와 라파엘이 “풀이 많은 척 (괭이질을) 하자”는 대화가 대표적이다. 스트랫포드의 정비소에 모인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지반이 가라앉고 있는 이 마을은 장사가 안돼 모든 식당과 카페가 문을 닫았다. 주민들은 카페 대신 정비소에 모여 커피와 쿠키를 나눈다. 사랑방에 모인 것처럼 수다를 떨던 그들은 먼지를 키우고 있다고 자조적 농담을 섞는다. 이 마을의 슈퍼 주인 케니는 사정이 어려운 손님들에게 외상을 하도 줘서 가게 점원에게 혼이 난다. 직원이 주인을 걱정하는 상황이다. 마컴은 인간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머와 희망을 찾아낸다. 그는 그게 인간이라고 한다. “절망적인 이야기만 하는 건 현실이 아니에요. 사람들은 유머를 잃지 않죠. 그 부분이 제가 인간에게 감탄하는 이유입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그가 어릴 때 돌아가셨다. 마컴은 “그러나 저는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사람들은 제가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LA타임스에 오기 전 캘리포니아의 샌 조아퀸 밸리의 신문 프레스노비에서 9년 간 일했다. 프레스노비는 6개 구(區) 단위 행정구역을 담당한다. 그는 프레스노비를 그만둔 뒤 2010년 LA타임스의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고, 2011년 정식 기자가 됐다. 그가 퓰리처상을 받게 되자 프레스노비는 이에 관해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는 “마컴이 프레스노비를 그만 두고 ···(중략)··· 평생 꿈꿔왔던 LA타임스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설명이 나온다.
 
마컴의 기사가 실린 칼럼원 섹션은 1면 왼쪽에 있다. 마컴은 “어렸을 때부터 칼럼 원을 읽었다”고 니만 재단 인터뷰에서 말했다. 칼럼원은 1968년부터 시작된 LA타임스의 전통적인 기획기사 섹션이다. 칼럼원을 읽던 어린 소녀가 기자가 돼 칼럼원에 기사를 쓰게 된 것이다.
 
LA타임스에 매주 칼럼을 쓰는 팻 모리슨은 칼럼원이 독자들에게 “잘 몰랐는데 이거 정말 흥미롭군”이라는 반응을 끌어내려는 목적이라고 했다. 기자 겸 방송인인 모리슨은 칼럼원에 실린 기사만 골라 엮은 책 <피아노는 어디까지 날까?>의 소개글에 그렇게 썼다. 마컴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칼럼원의 전통대로 “기사는 흥미로워야 했고, 특별해야 했고, 다른 기사와 달라야 했다”고 말했다. 이는 퓰리처상 심사 기준과 겹친다.
 
LA타임스 페이스북은 퓰리처 당선자가 발표됐을 때 실시간으로 편집국 상황을 영상으로 찍어서 공유했다. 다이아나 마컴은 LA타임스의 또다른 퓰리처상 수상자(비평부문) 매리 맥나마라와 함께 샴페인을 터뜨렸다. 마컴은 퓰리처 시상식에서 그의 이름이 호명됐을 때 “꿈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고 했다.

▲‘2015년 퓰리처상’ 시상식.맨 왼쪽부터 마이크 프라이드 퓰리처상 심사위원회 사무국장,리 볼링어 컬럼비아대 총장, 다이애나 마컴 기자. 출처: 퓰리처위원회(Pulitzer.org)

마컴의 기사가 상을 탄 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06년 프레스노비에 있을 때 ‘서부의 최고’(The Best of West)라는 저널리즘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그는 기자로서의 열정을 가뭄기사에서도 쏟아냈다. 낮에는 써야 하는 기사를 썼고, 새벽 2시부터 가뭄 기사를 썼다. 마컴은 “저는 밤부엉이에요”라고 했다. 처음엔 데스크의 간섭이 두려워 마하라지 편집장에게 알리지 않고 무턱대고 취재를 했다. 기사를 쓴 7개월의 시간이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마하라지 편집장이 추천서에 쓴 내용처럼 다른 기자가 정부의 대처에 주목할 때, 가뭄의 패턴을 분석할 때, 가뭄으로 인한 손실을 계산할 때다. 그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농부에 주목했다. ‘얘기된 적 없는 이야기’는 이렇게 발굴됐다. 
 
캘리포니아 가뭄은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기사도 마찬가지다. 그와 그를 도왔던 가뭄팀은 LA타임스 가뭄 섹션에서 꾸준히 연재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는 2015년 8월 플립보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기사에선 마을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주(州) 전체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마컴은 기사의 끝은 알아도 기자의 끝은 모른다.

▲2015년 8월 마컴과 사진가 로버트 고티에(Robert Gauthier)는 주(州)전체 단위에서 가뭄 문제를 조망하기 위해 3주에 걸쳐 1600마일을 달리는 로드트립을 떠났다. 그들은 로드트립 내내 트위터와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독자와 소통했다. (출처:플립보드 Flipboar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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