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브로더가 워싱턴 포스트 건물 앞에 서서 웃고 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부터 존 F. 케네디,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W. H.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거쳐 오바마 대통령까지. 백악관의 주인이 11번 바뀌는 동안 워싱턴 기자실을 지켰던 정치부 기자가 있다. 기자 중의 기자, 워싱턴 기자실의 학장, 정치 저널리즘의 지도자, 언론의 진정한 거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기자, 데이비드 브로더(David S. Broder)다.

브로더는 워싱턴 포스트를 대표하는 정치 전문 기자다. 1955년 콩그레스 쿼터리에서 정치부 기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워싱턴 스타, 뉴욕 타임즈를 거쳐 1966년 워싱턴 포스트에 자리를 잡는다. 81세의 나이로 사망하기 전까지 브로더는 정치 기사를 썼다. 2011년 2월 3일 그는 마지막 칼럼을 썼고 한 달 뒤인 3월 9일 눈을 감는다. 반세기 가까이 정치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그는 13번의 대선 보도를 다뤘으며, 308개의 신문에 4000개가 넘는 정치 칼럼을 썼고, 8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워싱턴 포스트 부고기사는 ‘데이비드 브로더, 정치 보도의 ’황금률‘을 남겨두고 사망하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정치부 기자들은 정치권력의 내부자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내부자의, 내부자에 의한, 내부자를 위한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로 요약되는 이 ‘황금률’은 그가 후대 기자들에게 남겨준 유산이다. 정치부 기자가 정치권력과 가깝게 지내서는 안 된다. 브로더는 스스로 정한 정치 보도의 황금률을 철저히 지켰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87년 미국은 41대 대통령 선거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공화당의 유력 대선 주자였던 H.W 부시는 그해 12월 13일 NBC의 간판 시사프로인 밋더프레스(Meet the Press)에 출연한다.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출연자였던 브로더에게 이런 질문을 받는다.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미국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지 알고 있소?” 당황한 부시는 “미국은 세계 최고의 의료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얼버무렸다. 이날 인터뷰는 화제가 됐고, 브로더는 당시 질문에 대해 “부시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삶을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며 “그가 서민들의 현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검증해야 했다“고 말했다. 

▲ 1987년 12월 13일 NBC의 밋더프레스 방송 장면. 데이비드 브로더(왼 쪽에서 두 번째)와 H.W 부시(오른쪽)가 출연했다.

반전은 따로 있다. 브로더와 부시는 매우 절친한 사이였다. 브로더의 동료였던 루 캐논 기자는 “브로더는 부시와 정말, 정말 긴밀한 관계였다(He was very, very close to George H.W. Bush)”고 증언한다. 또 다른 동료 댄 발츠 기자 역시 “브로더는 부시를 존중했다(He did have a great deal of respect for the decency of H.W. Bush)”고 밝힌다.

브로더는 친구와의 우정과 기자로서의 직업정신 사이에서 후자를 택한 것이다. 그는 언론인이 가야할 길에 대해 설명한 저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20년 동안 우정을 나눴던 한 공화당 정치인이 대통령 출마 의사를 비쳤을 때 나는 다소 거만할 정도로 그에게 이렇게 통보했다. 기자로서의 직업적 책임감에 따라 더 이상 사적인 점심이나 긴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기자는 사적인 관계나 개인의 정치적 견해 등으로부터 매순간 유혹을 받지만, 기자로서의 소명의식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In recent years, our reporting of government and national politics has narrowed to coverage OF the insiders, BY the insiders and FOR the insiders.” “I dwell on the dangers of such coverage because I think it corrupts our character. It diverts us from our main function of serving the broad public and it alienates us from that public, whose support is ultimately the only safeguard of the professional freedom we require to do our jobs.”(David Broder, National Press Club, 1979)
“The newspaper that drops on your doorstep is a partial, hasty, incomplete, inevitably somewhat flawed and inaccurate ... despite our best efforts to eliminate gross bias ...”(David Broder, Pulitzer Prize acceptance speech, 1973)
“I can't for the life of me fathom why any journalists would want to become insiders, when it's so much fun being outsiders-irreverent, inquisitive, incorrigibly independent outsiders, thumbing our nose at authority and going our own way.” (David Broder, Fourth Estate Award acceptance speech, 1988)

브로더의 기자관은 1979년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했던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이 자리에서 브로더는 정치 기사의 도당저널리즘적 성격을 비판한다. 도당저널리즘(clique journalism)은 백악관과 의회를 출입하는 정치부 기자들이 정치인들과 긴밀하게 지내면서 정치권력의 내부자 그룹(insider group)의 일원으로서 기사를 쓰는 것을 뜻한다. 언론은 시민에 봉사해야 하는 데 도당저널리즘은 언론을 시민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브로더는 지적한다.

▲ 1988년 네셔널프레스클럽에서 데이비드 브로더가 종신공헌언론상(Fourth Estate Award)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1973년 퓰리처상 수상 연설에서도 브로더는 정치 보도의 한계를 비판한다. 기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불완전하고, 부정확하며, 왜곡되고, 필연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이다. ‘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라는 뉴욕타임즈의 사시처럼 모든 언론은 완벽함을 지향하지만, 도당저널리즘에 빠진 정치 보도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1988년 권위 있는 언론상인 제4부상(Fourth Estate Award) 수상 연설에서도 브로더는 정치부 기자들에게 뼈있는 교훈을 전한다. 브로더는 “왜 수많은 정치부 기자들이 정치권력의 내부자가 되지 못해 안달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며, 시상식에 참석한 내부자들이 된 전현직 기자들을 비판한다.

1987년 출간된  「정치 보도의 뒷이야기(Behind the Front Page)」는 정치부 기자로서의 가치관이 집약된 책이다. 이 책은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서론에서는 정치 기사의 도당저널리즘적 성격을 비판한다. 본론에서는 백악관기사·의회기사·선거기사 등이 취재되고 제작되는 과정을 파헤치며 왜 정치 보도가 도당저널리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도당저널리즘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정치부 기자가 갖춰야할 덕목을 소개한다.

▲ 1987년 데이비드 브로더가 출간한 ‘정치 보도의 뒷이야기’ 표지. 이 책에서 브로더는 정치 보도의 도당 저널리즘적 성격을 비판한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백악관과 상호 간 ‘안온한 관계’를 유지하며 정보를 다룬다. 이런 취재관행은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데 방해가 된다.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기사보다는 스캔들성 기사에 열을 올리는 정치 보도 관행도 비판 대상이다. 또 선거 기간 정치부 기자들은 길거리의 시민들보다 선거캠프 내부인사들과 더 친하게 지낸다. 언론의 선거 결과 예측이 자주 빗나가는 이유는 이런 취재관행에 따른 집단사고에 있다고 브로더는 지적한다.

좋은 신문은 시민들이 민주주의 사회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최후의 보루와 같은 역할을 하는 신문이다. 정치 보도는 냉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래서 기자는 천성적인 외부자(outsider)여야 한다고 브로더는 강조한다. 기자들이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특권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이유는 결코 기자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다. 정부의 독선을 견제하고 시민들에게 양식 있는 정보를 전하라는 의무에 따라 기자들이 행할 수 있는 권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장해서 말하면 언론인은 때론 오만하고 건방지며 제멋대로더라도, 권력지도층 앞에서 콧대를 높이 들고 독자적 길을 가야 한다”고 브로더는 강조하고 있다. 결국 ‘늘 정치권력과 거리를 두려는 의지’야 말로 정치부 기자가 갖춰야할 진정한 덕목인 것이다.

실제 브로더는 정치권으로부터 여러 번 대변인이나 고위관료직 제안을 받았지만 항상 이를 거부하고 언론인으로 남았다. 많은 기자들과 정치인들이 브로더를 훌륭한 기자로 꼽았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강직함에 있다. 한 동료기자는 브로더를 고지식할 정도로 올곧은(straight arrow)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David Broder loved politics, but he hated what had become of our politics in recent years.” (MSNBC, Obituary, March 9th 2011)
“Broder experienced the world through one lens; the intersection of politics and policy.” (Matt Broder, at the memorial service)
“Mr. Broder was less concerned with being a ‘scoop artist’ than focusing on a larger portrait of contemporary politics.” (Leonard Downie Jr., Former Washington Post executive editor)
"I can't think of any columnist of a major newspaper who took academic political scientists more seriously than David Broder." (Ross K. Baker, Rutgers University Political Science Professor)

브로더는 정치를 사랑했다. MSNBC는 부고뉴스를 통해 브로더를 “정치를 사랑하지만, 정치에 관여하기 싫어했던 기자”라고 평가한다. 셋째 아들 맷 브로더 씨도 “아버지는 정치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봤던 사람”이라고 추모한다. 그는 또 아버지에 대해 “가족에 헌신적이고, 야구팀 시카고 컵스를 응원하고, 책과 잡지를 좋아했지만 아버지 인생에서 중심은 언제나 정치부 기자로서의 삶에 있었다”고 말한다.

브로더는 정치에 정통했다. 정치의 판도를 읽었고 통찰력을 제시했다. 그날그날의 정치 이슈를 다루면서도 항상 거시적인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동료기자들은 “브로더가 우리에게 정치 기사를 어떻게 취재하고 보도할지를 가르쳐 줬다”고 말하고 있다. 벤저민 브래들리 기자는 브로더를 “미국 최고의 정치전문기자(political correspondent)”라고 평가한다. 브래들리는 뉴욕타임즈에 있던 브로더를 워싱턴포스트로 영입한 당사자다. 워싱턴 포스트 편집인을 지낸 다우니 주니어 기자 역시 브로더를 “특종 기사에 연연하지 않고 항상 정치의 큰 그림에 주목하는 기자”였다고 평한다. 브로더의 정치 기사는 정치인과 정치전문가들에게 인정받는 수준 높은 기사였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뉴욕타임즈 부고기사에서 “브로더는 동시대에 가장 훌륭하고 날카로운 정치 비평가”라고 전했다. 의회정치학 권위자인 베이커(Ross K. Baker) 교수는 “정치학자들보다 정치 분석을 더 잘하는 칼럼리스트는 데이비드 브로더밖에 없다”고 극찬했다. 1951년 시카고대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브로더는 실제로  「The Party's Over: The Failure of Politics in America」, 「Democracy Derailed」 등 정치학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Before long, we got so far inside that we forgot the outside - that the campaign belonged not to the candidates or their consultants or their pollsters, but to the public." (Daive Broder)
“David made voters important in political coverage" (Maralee Schwartz, Washington Post)
“Broder had great faith in voters not just their collective judgment, but their individual ideas. ... He drew sustenance from door-knocking around the country. It’s tedious work, physically difficult, but he did it longer and better and more extensively than anybody ever has.” (Daniel J. Balz, Washington Post)
“No one filled more notebooks or wore out more shoe leather than David Broder.”
(Godfrey Hodgson, The Guardian)
“Broder was praised for his shoe-leather reporting and on-the-ground coverage.” (David Weigel, Bloomberg Politics)

정치부 기자로서 브로더의 통찰력은 선거기간에 특히 빛을 발했다. 브로더의 기사는 독보적이었다. 1968년 37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브로더는 당시 닉슨 공화당 대선 후보가 러닝메이트로 스피로 애그뉴를 임명할 것이라고 유일하게 예측했다. 또 2008년 대선을 앞두고도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의 승리를 최초로 예측한 사람도 바로 브로더였다. 

브로더는 정치부 기자들의 선거 취재 관행을 비판한다. 일반적으로 정치부 기자들은 선거 기간 유권자가 아닌 후보들을 만나는 데 더 열중한다. 정치부 기자들은 후보 캠프에서 제공하는 전세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후보나 캠프 관계자들, 동료 기자들과 보낸다. 길거리 민심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취재 관행은 ‘집단저널리즘(pack journalism)’으로 이어져, 기자들이 집단사고에 빠지는 것이다. 선거기간 언론의 예측이 종종 빗나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브로더가 선거 보도에 능통했던 건 그의 취재방식 덕분이다. 브로더의 취재법은 간단하다. 캠프에 있는 후보가 아닌 길거리에 있는 유권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취재법이다. 「정치 보도의 뒷이야기」에서 브로더는 자신의 선거 취재방식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거의 바람을 정확하게 제기 위해서는 후보로부터 떨어져 나와 유권자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면서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대중의 여론을 추출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선거 때만 되면 전국의 작은 도시들을 찾았다. 모텔, 간이음식점, 찬바람 부는 길거리를 수없이 돌아다녔다. 비록 힘들긴 해도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낡은 방식만큼 유익한 취재방식은 없다는 사실을 터득한 것이다.” 또 브로더는 이런 조언을 남긴다. “기자가 진지하게 유권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는 확신을 주면, 그들은 마음이 문을 열고 때로는 기자가 감동할 정도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브로더는 기자실에 갇혀 있기를 거부한 기자였다. 25만 단어 정도의 기사를 쓰기 위해 10만 마일의 거리를 누볐다. 다른 기자들 보다 항상 비행기를 한 번 더 타고, 취재원을 한 번 더 만나는 기자였다고 동료들은 평가한다. 조프리 허드슨 기자는 “브로더 만큼 기록을 많이 하고, 신발이 닳아 있던 기자는 없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바이겔 기자도 “브로더는 현장을 중시하는 기자”라며 “절대 그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워싱턴 기자실의 학장으로 불렸던 만큼 브로더는 후배 기자들에게 많은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블룸버그의 마크 핼퍼린 기자는 “브로더는 항상 우리에게 ‘두려움도 없이 호의도 없이without fear or favor)’ 정치인을 대할 것을 강조했다. 클린턴이든 부시든 말이다”라고 전한다.
 
브로더가 세상을 떠난 지 4년이 된 2015년 3월 9일 워싱턴포스트에는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데이비드 브로더라면 2016년 대선 보도를 어떻게 할까?(What would David Broder think of the 2016 presidential campaign?)’ 브로더가 남긴 ‘정치 보도의 황금률’은 여전히 미국 기자들 사이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 2015년 3월 9일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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