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Grace Villamil

그는 52세의 나이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데뷔했다. 2007년에 발표한 첫 작품 <No End in Sight>는 선댄스 영화제를 비롯한 북미 유수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 및 논픽션 부문 대상을 받았고, 3년 뒤 개봉한 <Inside Job>은 제83회 아카데미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단 두 편의 작품으로 할리우드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그가 2015년 <Time to Choose>로 돌아왔다. 이 글은 Representational Pictures의 대표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찰스 퍼거슨의 이야기다.

MIT에서 정치학 박사를 수료한 그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2010.10.1.)에서 스스로를 ‘정책 덕후(policy geek)’라고 칭했다. 그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그럴 만도 하다. 그는 레이건 정부와 아버지 부시 대통령 재임 당시 미 백악관과 무역대표부, 국방부에서 정책 컨설턴트로 일했고, 1994년에는 소프트웨어 회사 Vermeer Technologies를 창립했으며, 2년 뒤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이 회사를 약 1억 3천만 불에 인수한 뒤에는(*이 덕분에 그는 돈 걱정 없이 첫 작품을 촬영할 수 있었다) 다시 정책 연구 분야로 돌아와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오랜 경력과 전문성 덕분에, 그가 만든 다큐멘터리는 늘 정치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으로 가득했다. 미국 언론과 대중, 정치인들이 그의 다큐멘터리에 열광한 이유다. 데뷔작 <No End in Sight>는 사담 후세인 정권 축출 이후 이라크 재건 과정에서 미국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에 대한 몇몇 평가를 먼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부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이 열린다면 이 다큐멘터리의 대본이 검사들의 손에 쥐어져 있을 것이다."
(“The script of Charles Ferguson's “No End in Sight” would certainly be in the hands of prosecutors in the event of impeachment hearings.”)
- Stephen Hunter, The Washington Post

"대이라크 정책을 수정하려면 부시 행정부가 저지른 정책적 오판과 그 결과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No End in Sight>를 통해 우리는, 이라크의 혼돈 상태에 관한 포괄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얻게 되었다."
(“Forging better policy towards Iraq requires an understanding of the Bush Administration's devastating policy errors and their consequences. With No End in Sight, we now have a comprehensive, objective analysis of Iraq's descent.”)
- Rahm Emanuel, 2003.01~2009.01 미국 연방의회 하원의원

이외에도 그의 데뷔작에 대한 수많은 찬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사항이 바로 정확성이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찰스 퍼거슨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가장 노력한 부분이기도 했다. 미국 IFP(Independent Filmmaker Project)가 발간하는 잡지 ≪Filmmaker≫와의 인터뷰(2008.2.8.)에서, 이라크와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한다고 했을 때 “마이클무어의 <화씨 9/11> 같은 작품을 만들 계획이냐(Is this going to be like Michael Moore?)”고 물어 본 사람이 많았다고 그는 밝혔다. 그때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요. 저는 정치학 박사를 딴 사람입니다. 진지한 영화가 될 것이고, 이 안에 담긴 모든 것이 진실이 되도록 할 거예요. 정확성을 확보하는 것이 제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No, I have a Ph.D. in political science — this is going to be a serious film, and everything in it is going to be true. I’m going to take accuracy extremely seriously.)”

객관적인 진실을 밝히고자 했던 그의 집념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인터뷰이의 면면이다. <No End in Sight>에는 미국 국방부 산하 이라크 재건·인도지원처(ORHA)의 첫 처장을 역임한 제이 가너(Jay Garner) 장군을 비롯해 리차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 전 국무부 부장관, 로버트 허칭스(Robert Hutchings) 전 국가정보위원회(NIC) 의장,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의 수석 보좌관이었던 로렌스 윌커슨(Lawrence Wilkerson), 점령군 전략처장 폴 휴즈(Paul Hughes) 대령, 2003년 4월 주 바그다드 미국 대사로 파견된 바바라 보딘(Barbara Bodine) 등 35명의 인터뷰이가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부시 행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거나 전후 이라크 상황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로, 각각의 증언은 부시 정부의 정책적 실패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는데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도 2007년 ‘올해의 10대 영화’에 이 작품을 선정하면서 쓴 기사(2007.12.9.)에 한 인터뷰이의 증언을 인용한 바 있다.

"부시 정부에서 일했던 한 관료는 이렇게 말했다. (국무부가 작성한) 이라크 점령에 관한 분석 보고서를 전달받았을 때 대통령은 맨 첫 페이지에 있는 요약문조차 읽지 않았다고."
(“As one ex-Bush official notes, when the President was presented with an analysis of the Iraq occupation, he didn't even read the one-page summary.”)

2006년 초에는 현장을 직접 취재하기 위해 이라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완전히 폐허가 된 수도 바그다드에서 격렬한 반미 시위가 들끓던 때였다. 독립 제작자의 신분으로 어느 기관의 보호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숙소, 통역, 민간 경호원, 차량 등 생존을 위한 모든 준비를 스스로 했다. 어머니에게는 연구차 유럽에 다녀온다고 거짓말을 했다.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그는 혼돈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가족과 친구들의 죽음에 절규하는 이라크 시민들과 치안의 완전한 공백, 콘크리트를 박살내 못 하나까지 약탈해가는 무질서는 여러 인터뷰이들이 증언한 그대로였다. 특히 인류 초기 문명의 유산을 간직한 이라크 국립박물관은 ORHA가 미군이 보호해야 할 건물로 첫 손에 꼽은 곳이었지만 완전히 초토화가 된 상황이었다. 명령권을 갖고 있던 도널드 럼스펠드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가 방비하라고 지시한 유일한 물적 자산은 이라크 정부의 석유부였다.

그는 <No End in Sight>의 제작기와 모든 취재 내용을 책으로 남겼다. 2008년 출판된 동명의 책 서문에서 그는 “1시간 40분짜리 영화에서 우리들이 조사하고 인터뷰했던 전체 내용의 1%도 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가 이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얼마나 철저하게 취재하고 공부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책에는 그가 인터뷰이에게 던진 질문과 답변 전문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 향후 대이라크 정책과 관련한 논의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책을 집필했다고 그는 말했다.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강조했던 투명성(transparency)의 실현을 목표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된 셈이었다.

2010년에 개봉한 그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Inside Job>은 <No End in Sight>의 글로벌 금융위기 버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전작과 유사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시네마토그래피가 한층 더 세련돼졌다는 점, 할리우드 스타 맷 데이먼이 내레이터로 참여했다는 점이 유일했다. 객관적인 진실을 밝혀 정의(正義)를 실현하고자 하는 그의 집념과 방대한 사전 조사 및 연구, 핵심 인터뷰이들의 충격적인 증언은 전작과 다를 바가 없었다. <No End in Sight>처럼 취재 기록을 담은 동명의 책 <Inside Job>도 2012년 출판했다.

데뷔작은 수상 후보에 오르는 데 그쳤지만 <Inside Job>은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다큐멘터리상 수상작으로 당당히 호명되었다. 영화 제작에 대한 정규교육을 단 한 번도 받지 않고 단 두 번의 시도 만에 아카데미 장편다큐멘터리상을 받은 감독은 찰스 퍼거슨이 유일할 것이다. 공동 수상한 프로듀서 오드리 마스(Audrey Marrs)가 자신들과 같은 ‘신출내기(newcomer)’에게 이런 대단한 영광을 누리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찰스 퍼거슨은 다음과 같은 독특한 수상소감으로 청중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죄송하지만 이 말씀부터 드리지 않을 수 없네요. 금융사기 범죄로 발발한 그 끔찍했던 금융위기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났는데, 여태껏 단 한명의 금융회사 간부도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이건 명백히 잘못된 겁니다."
(“Forgive me, I must start by pointing out that three years after our horrific financial crisis caused by massive fraud, not a single financial executive has gone to jail, and that’s wrong.”)

이 날 이후 찰스 퍼거슨을 수식하는 새로운 용어가 생겼다. 바로 “겁 없는 영화제작자(a fearless filmmaker)”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의 집요함을 더 잘 알 수 있는데, 그는 취재원이 당황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오로지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이다. 신용부도스와프(CDS) 같은 금융파생상품과 증권화(securitization) 과정이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안정시키고 경기침체를 예방한다고 주장했던 경제학자들을 찾아가, 그들이 어느 금융회사로부터 얼마를 받고 그런 논문을 썼는지를 집중적으로 캐묻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글렌 허바드(Glenn Hubbard) 전 하버드 대학 교수(현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원장)와 프레드릭 미시킨(Frederic Mishkin) 컬럼비아 대학 교수는 그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듯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들의 일그러진 표정과 더듬거리는 말투는 열 마디 말을 대신했다.

미국 CNN의 앵커이자 종군 기자로 유명한 크리스티안 아만포(Christiane Amanpour)는 구글 뉴스랩과의 인터뷰(2015.4.9.)에서 철두철미하게 사안에 대해서 학습하는 것(thoroughly informed)이 자신의 인터뷰 노하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찰스 퍼거슨이 매 인터뷰 때마다 밝히는 제작 과정과 아주 유사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때마다 해당 주제에 대해 수십 권의 책과 논문을 읽고 전문가들을 찾아가 초벌 취재를 했다. 사안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던 그의 노력은 결국 다큐멘터리의 사실성과 깊이로 귀결되었다.

그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거대한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을 정 조준했지만 마지막에는 늘 이 사람들을 직시했다. 바로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전쟁의 비극 속에 팔·다리를 잃은 군인과 하루아침에 극빈층으로 전락해 거리로 내몰린 하우스 푸어들, 실직자들, 환경오염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가난한 마을의 주민들까지. <No End in Sight>의 도입부에는 이런 자막이 나온다. 이 영화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다룬 이야기며(This is the story of America’s invasion of Iraq), 국가를 위하는 여러 사람들이 여기 등장한다(It is a story in which many people tried to save a nation)고 말이다. 그가 직접 쓴 이 문구는 그가 생각하는 애국(愛國)이 무엇인지, 정의(正義)가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 

<Inside Job>의 마지막 장면에서 들리는 맷 데이먼의 목소리는 그런 점에서 인상적이다.

“It won't be easy. But some things are worth fighting for.”
(그들은 개혁이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싸워서 얻어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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