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시청광장의 한 카페에서 민경중 교수를 만났다. 사진으로 미리 본 것처럼 희끗희끗한 백발에 아버지같이 푸근한 미소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를 첫 눈에 알아보는 데는 실패했다. 생각보다 큰 풍채에 강렬하고 부리부리한 ‘기자 눈빛’의 소유자였던 탓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크게 웃는 그의 미소에서 기대했던 푸근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는 염색을 해서 이제는 검다고 했다. 왼쪽 손목에 스마트워치(Smart Watch)가 눈에 띄었다. 자리를 잡고 얘기하려는데 민 교수는 의자가 너무 높아 눈을 맞추고 대화할 수 없겠다며 자리를 옮길 것을 제안했다. 자리를 옮기고 나서야 그는 “내가 인터뷰 할 만한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운을 뗐다.

▲출처 : 민경중 교수 Facebook

-해온 일과 책에 나와 있는 것만 봐서는 충분히 훌륭한 인터뷰이(interviewee)인데

“솔직히 나 자신을 한 번도 마이너이거나 약자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요즘 얘기로 흙수저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27년 6개월 간 좋은 회사를 다녔고, 그것 만으로 충분히 나는 주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기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지만, 어려움을 딛고 역경을 이겨낸 다른 기자들과 나를 비교했을 때 실망할까 봐 우려된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와 무동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민경중 교수는 CBS 보도국장 시절 <김현정의 뉴스쇼>와 <노컷뉴스>를 만든 장본인이다. 보도국장 뿐 아니라 베이징 특파원, 마케팅본부장, 제주본부장, 크로스미디어센터장 등 언론사의 일을 속속들이 다 해본 베테랑이다. 지면이나 방송보다 웹 기사가 대세가 될 것이라 일찍이 예측했으며, ‘택시뉴스’ 나 ‘음향뉴스’ 등 새로운 형식의 뉴스를 시도했다. 바야흐로 급변하는 언론 환경 속에 기자들도 정신없이 발맞춰야 하는 시대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의미 있으리라 생각했다.

-CBS에 있을 때 기존의 뉴스들을 과감히 없애고 <뉴스쇼>나 <노컷뉴스>를 만들었다. 미래를 내다본 새로운 시도라 생각한다. 그래서 멋대로 <더 가디언>(The Guardian)의 앨런 러스브리저(Alan Rudsbridger)를 떠올려 보기도 했다.

“우선 그건 혼자 한 일이 아니라는 걸 밝힌다. <김현정의 뉴스쇼>는 기자 뿐 아니라 작가와 피디까지 협업해서 뉴스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의 결과물이다. 또 기존 스트레이트 뉴스나 짧은 리포팅만으로는 부족하다 느껴 여러 유형의 캐릭터뉴스를 고안했다. 택시 속에서 손님과 기사님들 사이의 대화를 싣는 ‘택시뉴스’, 현장의 음향을 생생히 듣는 ‘음향뉴스’, 뉴스의 이면을 파악하는 ‘why뉴스’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내부 오디션으로 발굴한 김현정PD가 진행을 굉장히 잘 했다. 그 모든 것들이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리고 라디오에 나오는 콘텐츠들을 인터넷으로 기사화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노컷뉴스>를 만들었다. 라디오에 나온 기사와 대담들을 빠르게 받아 적어 인터넷에 올리니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

-왜 반응이 좋았다고 생각하나.

“사실 노컷뉴스(2003)나 뉴스쇼를 만들던 시절에는 기존 언론들이 정보를 독점했다는 기득권에 취해 있었다. 90년대 후반만 해도 다음이나 네이버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 홈페이지에 와서 봐’라는 공급자 중심의 원칙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기득권은 곧 깨진다고 생각했다. 우리 것을 과감히 공개하고 털어낼 때, 요리로 치면 요리재료를 다 공개할 때 사람들은 열광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노컷뉴스를 만들었다. 기존 언론이 정보를 독점하고 정제하는 공급자 중심이었다면 노컷뉴스는 ‘노컷정보보고’를 만들어 야후를 통해 기사의 원재료가 되는 정보를 공개했다. 정제되지 않은 정보들을 내보내니 독자들과 상호작용도 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컷뉴스 어때? 노 에디트, 노 컷 말이야. 선배들이 자르지 않고 보도하려 했던 노력이 얼마나 귀중했는지 알아? 그게 CBS의 정신이야.” 순간 모든 팀원들이 젓가락질을 멈췄다. “바로 그겁니다, 부장님.” ‘노컷뉴스’ 이름은 그렇게 중국집에서 태어났다. - [다르게 선택하라]민경중 저, 32p

-27년간 몸담았던 언론사, CBS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CBS는 항상 권력이나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비판적인 논조를 굽히지 않아 왔다. 어떤 조직이길래 그럴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그걸 이해하려면 우선 CBS의 소유와 경영 구조를 알아야 한다. 언론이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정권과 돈, 이 두 가지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보통 언론은 소유구조상 그게 어렵다. 공영방송이나 관영매체라면 금전적으로는 여유롭지만 정부의 규제나 감독을 받게 돼 있다. 반대로 민영 매체는 사주의 입김이 작용한다. 그런데 CBS는 1954년 미국의 북장로교회라는 선교기관이 세운 최초의 민영방송이다. 미국 선교단체와 한국 기독교계의 지원이 있었기에 비교적 정부와 시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사실 CBS같은 소유구조나 모델링은 흔치 않다.”

“그리고 CBS는 구성원들 간에 소통이 굉장히 자유롭다. 2~3년차만 되면 회사의 이런저런 문제점들에 대해 거리낌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다. 이를 바탕으로 CBS엔 내부적으로 상호통제시스템이 살아있다. 그래서 CBS에서 일하다 다른 회사로 간 친구들이 깜짝깜짝 놀란다고 한다. 아닌 것에 ‘이건 아니지 않느냐’ 라고 할 분위기가 도저히 아니고, 너무 게이트키핑이 많이 된다고 한다. 또 구성원들의 준거가 높다. 원래 100 중 30만 되도 만족하는 사람이 있고 70이 안 되면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CBS는 조직 내 합일점의 수준이 높다. 언론의 질적 차이는 여기서 나온다. 모든 언론은 정론직필(正論直筆)을 말하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CBS는 특유의 조직 구조와 62년의 전통 속에 조직원들의 높은 컨센서스(consensus)를 바탕으로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보장돼 있다. ‘뭔가를 해라, 혹은 뭐는 하지 마라’는 목소리가 없다.”

-그럼에도 CBS도 성역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방송인 만큼 신천지라든지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편향된 입장에서 보도를 하게 되는 한계가 있지 않나?

“우리가 불교나 천주교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천지를 비판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탓이다. 신천지는 신자로 하여금 가족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학업과 직장을 포기하게 하면서 교주의 이익에 헌신하게 한다. 물론 이조차 기독교적 싸움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CBS에서 과거 했던 파업도 목사들을 상대로 한 것이었다. 당시 사주였던 목사가 정부의 입김과 자금력에 영합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파업 이후 지배구조를 오히려 독립성을 더 보장하는 방식으로 바꾸게 됐다.

“또 우리 내부에도 동성애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 유보하는 입장이 다 있다. 물론 찬동까지는 하지 않지만, CBS 모든 구성원들은 적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는 한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동성애자를 연결해서 인터뷰를 하면 다른 기독교 단체에서 모두 항의전화가 올 것이다. “ CBS가 동성애를 찬성하는 거냐, 이럴 수가 있냐”고. 그런데 적어도 우리는 최소한 그들의 목소리는 들어볼 것이다. 옳다, 그르다 결론을 내리기 이전에, 소외된 사람들과 약자들에게 귀를 갖다 대 주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CBS는 그런 역할을 조금은 더 하려고 노력한다. 아니, 오히려 다른 언론들이 이 역할을 너무 안 하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돋보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CBS는 신입기자들 사이에 정보 공유도 못 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다. 교육을 특히 더 힘들게 시킨다고. CBS가 신입기자에게 함양하고 싶어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안주하지 않게 해서 처절함과 독립정신을 심어 주려 한다. 87년 이전은 언론들에게 행복기였다. 기자들에게 세금을 면제하고,아파트를 제공하고 촌지를 주기도 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만큼 암흑기이기도 했다. 그만큼 언론이 길들여져 있었다. 그래서 한겨레와 CBS는 촌지를 거절하고 정보의 카르텔에 편입되기를 거절했다. 기자실에 못 들어갔다. 경찰서장이 다른 기자들을 다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가도 우리는 그 자리에 못 갔다. 필연적으로 물을 먹을 수밖에(낙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CBS가 마이너 언론이 아니라는 것을 실력으로 보여줘야 했다. 기자단에 안주하지 않고 남들보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더 공정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CBS는수습기자 교육을 강하고 엄격하게 시킨다. 호랑이새끼를 절벽에서 떨어뜨려서 살아 돌아오게 하는 게 우리 역할이라 생각한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고미야 가즈요시는 CEO가 갖춰야 하는 전략, 마케팅, 회계, 리더십, 인재관리 능력을 빛나게 하는 것은 ‘작은 위험은 두려워하지 말고, 큰 위험은 무릅쓰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안전해 보이지만 불리한 상황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야말로 큰 위험을 무릅쓰는 결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다르게 선택하라]민경중 저, 77p

-지금이 ‘언론의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앞으로의 언론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본다면?

“언론이 점점 어려워지는 건, 갈수록 흐름을 못 읽기 때문이다. 올드한 도제식 시스템과 정보 독점의 소유 의식, 아젠다 세팅 기능 등 에 너무 함몰되다 보니 진짜 흐름을 놓친다. 과거 나폴레옹이 엘베섬에서 탈출해서 파리로 올 때 언론의 논조가 시시각각 바뀌었다. 처음 탈출 때는 ‘천하의 독재자 나폴레옹이 탈출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파리에 오자 ‘황제폐하 파리에 입성하시다’ 라고 말을 바꾼다. 마찬가지로 20대 총선 전 언론들은 새누리당의 압승을 점쳤다. 그런데 결과가 나오자 ‘이변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이변이란 말은 있을 수 없다. 전문가와 언론이 민심 바닥의 흐름을 읽지 못했거나 외면한 것을 애써 강변하는 것뿐이다. 사회적인 변화의 현상을 언론이 읽지 못하면 외면 받게 돼 있다. 반대로 미래를 잘 예측하면 인류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

-그렇다면 기자들은 어떤 역량을 갖춰야 하나.

“좋은 기자는 모두가 이 쪽으로 갈 때 적어도 다른 쪽을 예측해봄으로써 인류가 비참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사람이 언제나 틀리는 것은 아니고, 누군가는 답을 이야기한다는 희망을 사람들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전에 모두가 이세돌의 압승을 점쳤다. 그런데 어떤 교수님 한 분만이 홀로 알파고의 승리를 예상하더라. 이런 사람이야말로 지금 언론사에 필요한 인재다. 신입 기자들에게, 기존 선배들의 생각을 수용하고 관찰하되 그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 6개월이면 신기술이 나오고 산업이 형성될 만큼 급변하는 시대다. 우리 때와는 달리 기자들이 더 공부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기자를 하기가 굉장히 어려울 거다. 또 기자는 결코 멋있는 직업이 아니다. 비참할 때도, 좌절할 때도 있다. 고민의 연속이다. 벼랑 끝 잔도(棧道)보다 더 좁은 길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고행길을 가려고 하는 것 같아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짠하다.”

“앞으로의 뉴스는 스페셜리스트만 살아남는 영역이 될 거다. 또 1인 미디어와 뉴스 큐레이션의 시대가 오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사를 분명히 파악하고 있는 매체들이 살아남을 거다. 왜냐면 이제는 언론이 광고주들에게 정확한 데이터로 자신들의 파급력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아프리카TV의 BJ들은 별풍선이든 조회수든 정확한 데이터로 영향력을 증명한다. 기존 언론들이 해 왔듯 비과학적인 형태의 영향력만으로는 광고를 따낼 수 없을 거다. 더 양질의 콘텐츠와 더 정확한 큐레이션, 더 보기 좋은 시각화와더 용이한 기술적 접근 등 역량을 총동원해서 진짜 결과물을 내 놓아야 할 거다.”

-<다르게 선택하라>를 읽었다. 보도국장 시절 20년차 기자인 변상욱 대기자에게 시경캡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하셨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변상욱 대기자는 같이 일한 선배기도 하고, 언론인으로서 배울 점도 많았다. 나는 관행을 바꿔보고 싶었다. CBS는 경찰서에서 ‘너무 강하게 교육시키는 언론사’라는 이미지와 전통을 가졌었다. 그런 전통에 새로운 시도를 가해서 교육방식의 변화를 꾀하고 싶었다. 일종의 충격 요법을 써본 거다. ‘왜 시경캡은 7~8년차가 해야 하나?’는 의심을 가졌다. 7~8년차가 위에서 교육받은 것을 그대로 교육시키는 것보다는, 기자생활을 20년 이상 해 본 사람이 스스로 깨우친 지혜를 신입 기자들에게 전수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물론 변상욱 대기자가 이런 제안을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나는 이미 1987년에 시경캡을 거친 몸인데 20년이 지나 다시 맡으라니, 이런 발상의 전환이나 고정관념의 탈피는 말이 쉽지 그리 생각하는 거나 그걸 선배에게 제안하는 거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튼 그런 사람이다. 지금도 그때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나서지 않았던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타성에 젖어가는 기성 언론계에 도전이 될 만한 프로젝트였다. -[다르게 선택하라]민경중 저, 145p, 변상욱 대기자의 추천사 중

-기자생활을 마무리하고 지금은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또 ‘무동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미래 세대를 양성해내는 데서 갖는 의미는?

“도올 선생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스승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내가 눈높이를 낮추고 젊은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면 얻을 수 있는 게 정말 많다. 나는 라디오에서 관련 코너를 진행할 정도로 요새 트랜드에 밝다는 평을 듣는다. 그건 내가 젊은 친구들과의 호흡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면서 비슷한 또래하고만 교류한다. 나는 조금이라도 어린 후배들과 함께 얘기를 한다. 내가 나이가 들수록 내 그룹에만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더 젊은 친구들이 어디에 관심을 두는가를 보면 공유하는 지점이 생기고 세대간 단절도 막을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해야 하는 건 입을 닫고 지갑을 여는 거다(웃음). 지금 외대에서 초빙교수 생활을 하지만 강사료를 학생들에게 밥과 술을 사는 데 거의 다 쓴다. 특히 내가 교류했던 인턴 기자들은 현재 많은 수가 현직 언론인이 되면서 끊임없이 교류하게 됐다. 지금은 내가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입장이다. 모두가나에겐 귀중한 하나의 UX(User experience)가 되는 것이다. 젊은 친구들은 나에게 용천수(湧泉水) 같은 존재다. 짠물로 가득한 제주도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수(生水)다.”

-기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이 기사를 읽을 것 같다. 이들에게 책을 권해 주신다면?

“나는 요즘 고전을 다시 읽고 있다. 톨스토이나 단테 등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개발서도 읽어 보고 했지만 결국 다시 어린 시절 읽었던 책들로 돌아가고 있다. 요새 젊은 친구들은 고전을 잘 안 읽는 것 같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호흡이 짧은 글들만 보지 긴 호흡의 글을 잘 안 보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특정한 책을 권하기보다는 호흡이 길고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고전을 읽었으면 좋겠다. 왜냐면 먼 과거 사람들의 생각과 삶은 고전으로 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전을 읽은 사람들은 세대 간의 단절이나 벽을 깨뜨릴 수 있는 지혜를 찾을 수 있을 거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시다. 기독교인은 보지 않고도 믿어야 한다. 교회 내에 의심을 불경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도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기자는 의심하는 직업이다. 우스갯소리로 예수의 열두제자 중 ‘도마’는 의심이 많고 믿음이 부족했지만 좋은 기자의 자질을 갖췄다는 평가도 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해 예수님 손의 대못 자국을 직접 보고, 또 만지고 나서야 믿었다)

“기자는 신이 아니다. 다 볼 수는 없다. 세월호 현장에도 많은 기자가 있었지만 모두가 다른 시각으로 기사를 썼다. 세월호를 둘러싸고 ‘자기가 봤다’고 주장하는 수 많은 ‘도마’들이 있는 거다. 신앙이라는 건 이성과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했고 따라서 시체가 없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누가 옮긴 것 아냐?’하고 의심했다. 이렇듯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신앙이 필요하다. 기자 역시 믿음이 필요하다. 무조건 모든 것을 다 보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교만이다. ‘내가 쓴 기사는 무조건정의고 팩트다’ 라고 생각하면 교만이 시작된다. 이렇게 합리화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기사일수록 오히려 문제가 많다. 오히려, ‘나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내 기사엔 이런 한계와 부족함이 있습니다’ 인정하는 내러티브형 기사가 미국에선 좋은 기사로 인정받는다. 그런 전제를 먼저 두고 오류를 줄여 나가려고 최대한 노력하는 기자가 좋은 기자다.”

-기자 생활을 되돌아본다면.

“기자는 기사로 평가를 받는데 솔직히 나는 인터뷰 대상이 될 만큼 훌륭한 언론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책을 보고 인터뷰를 신청했다고 했는데, 지금 나는 저 책을 볼 때 ‘내가 저 당시 너무 교만했구나’ 느낀다. 나는 엄청난 상을 받았다거나 단독이나 특종을 많이 쓴 기자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지키려고 했던 한 가지를 말해 보자면, 나는 리포트를 내보낼 때 사전녹음을 한 적이 거의 없다. 다음날 아침 7시 반에 나갈 기사를 전날 저녁에 녹음하고 퇴근하는 게 죄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방송 직전까지 원고를 가다듬고 어떻게든 ‘생으로’ 하려는 노력을 했다. 청취자들이 비록 내 노력을 보지는 못하지만, 쉐프로서 요리를 내놓는 입장에서 냉장고에 넣어뒀다 덥혀서 주는 뉴스는 내가 용납할 수 없어서다. 물론 편집국에서는 나를 별로 안 좋아했다(웃음).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민경중의 뉴스는 뭔가 다르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나중에야듣게 됐다. 뭔가 좀 어눌하고 버벅거리긴 해도 뉴스가 훨씬 긴박하고 신선하다고. 나는 그런 노력을 했다.”

-마지막으로 본인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흔히 사람들은 결과만을 보지만, 한마디로 나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통해 평가받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나는 좋은 기자가 되려고 하기보다는 매 순간 덜 나쁜 기자가 되려고 노력해온 것 같다. 또 내가 쓴 책 제목처럼 ‘저 기자는 뭔가 다르구나, 다른 과정을 거쳐 왔구나’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프로스트는 두 갈래 길에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는 언제나 남는다고 한다. 하지만 만족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나는 어렸을 때 그 시를 보면서 갈래길에서 남들이 좀처럼 가지 않는 길을 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왕 선택할 거라면 내가 먼저 그 길을 원해서 선택하겠다고. 그 때문에 많이 힘들게 산 적도 있지만. 다르게 걸어왔다는 보람이 있다.”

밀려드는 촌지를 거절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조회수를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있을까, 늘 긴장하고 깨어 사실 확인에 게으르지 않을 수 있을까, 주변의 압력을 이겨내고 해야 할 말을 할 수 있을까,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을까, 고되고 바쁜 생활 속에 이 모든 노력에 충실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함으로써, 우리는 ‘덜 나쁜 기자’가 될 수 있을까?

기자로서 겪게 될 많은 유혹과 그에 비해 한참 나약한 나를 볼 때 마음에 두려움이 일곤 했다.하지만 그 길을 앞서 걸어간 민경중 교수와 인터뷰를 하며 든든함을 느꼈다. 불완전하지만 매 순간 충실한 삶으로 평가받는 기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 부족한 글쓰기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를 읽을 독자들이 기자가 느꼈을 가슴 뜀을 조금이라도 전달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