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신인숙(58,가명)씨의 집을 찾아간 날은 2월 4일이었다. 아들 김주현(27)씨는 오전 10시경까지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경기 화성의 주간 보호소에 가지 않는 날에는 이렇게 하루 종일 집에서 같이 지낸다. 혼자 있으면 김 씨는 화장실과 부엌에 샴푸나 세제를 뿌려 놓는다. 흥분하면 문짝을 부순다. 주간보호소에서 지내는 시간에도 신 씨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5분대기” 한다. 혹시라도 아들이 돌발행동을 하면 뛰어가서 말려야 하므로. 하지만 주간보호소에서도 지난 3월 이후 나와야했다.

▲아들 김주현 씨가 돌방행동을 하며 부술까봐 예방차원에서 집안 곳곳에 붙여 놓은 나사.

김 씨 같은 발달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의 장애인 가정에서는 어머니가 이를 떠맡는다. 잠시라도 맡길 수 있는 곳이 간절한 이유다. 발달장애인은 지적장애인과 자폐장애인을 말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4년 12월 기준으로 국내에 20만 3000여 명이 있다. 전체 장애인의 8.2%수준인데 해마다 7000명씩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가 발달 장애인을 위한 법을 따로 만든 이유다.

 

“나는 쇠하고 아이는 흥하니까”

용인강남학교는 아파트 단지의 끝자락,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야산 밑에 있다. 발달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다. 공부를 마치고 나온 진영(17)군은 어머니 김소연(47)씨가 세워둔 검은색 소나타승용차 뒷좌석에 올랐다. 기자가 김 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진영 군은 운동화로 좌석을 계속 두드렸다. 가끔씩 거친 숨을 내쉬었다. 기자가 눈을 돌릴 때 마다, 진영군은 눈을 맞추고 미소를 지었다. “아이가 신발가지고 노는 걸 좋아해요.”

김 씨의 승용차는 30분 뒤, 수원의 수영장에 도착했다. 얼마 전부터 종교재단의 지원으로 수요일마다 수영을 배운다고 한다. 진영 군은 오른손에 수영가방을 들고, 왼손으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수영장에 들어섰다. 수영 강사에게 아들을 맡기면서도 김 씨는 늘 걱정한다. 돌발행동을 하진 않을까, 무언가에 화내진 않을까…. 10여분 뒤부터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김 씨는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김소연씨가 진영 군의 손을 잡고 수영장으로 걸어가는 모습. 김 씨는 진영 군이 걱정 돼 한동안 수영장을 지켰다.

진영 군은 현재 특수학교를 다니지만, 졸업 후가 걱정이다. 인근 주간보호소가 포화상태라 최소 3~4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김 씨는 소수의 장애학생을 돌봐주는 ‘그룹홈’을 가톨릭교회와 함께 만들기로 했다. 뜻이 맞는 부모 몇몇이 모여 준비하는 중이다. 그 곳은 진영군이 평생 머물 보금자리라고 김 씨는 믿는다.

최성영(62,가명)씨는 서울 강남의 장애인 주간보호소를 매일 오전 9시에 들른다. 자폐증세가 있는 아들 현석(27,가명)씨를 맡기기 위해서다. 현석 씨는 키 180cm에 몸무게가 100kg다. 최 씨는 자신의 힘으로는 아들을 당할 수 없다. 가끔 외출했다가 통제가 되지 않으면 경찰을 불러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들의 몸은 강해지는데, 자신은 점점 약해지는 중이라 불안하다고 최 씨는 털어놓았다.

최 씨는 그나마 다른 발달장애인 부모에 비해 사정이 좋은 편이다. 주간보호소에서 평일 내내 아들을 맡아 주기 때문이다. 시설 역시 좋은 편이라 걱정이 덜하다. 하지만 최 씨는 자신이 더 늙고 힘이 없어지면, 아들을 누가 맡아야 하나 걱정이다. 주간 보호소가 아무리 좋아도 평생 맡아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마침 발달장애인법에 따라 ‘공공 후견인’제도가 생겨 기대가 크다고 최 씨는 말한다.

국내 첫 지역발달장애인센터 개소

정부는 발달장애인과 그들의 가족을 위해 ‘발달장애인의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약칭 발달장애인법)을 2015년 12월 개정했다. 2월 1일에는 지역발달장애인센터가 대구에 처음으로 생겼다. 센터는 대구를 포함해 광역지자체 단위 17곳에 설치될 예정이다.

대구 지역센터는 185㎡(56평) 규모의 공간에 개인별지원팀, 권익옹호팀, 운영지원팀으로 출발했다. 센터장을 포함해 직원 11명이 근무한다. 지역센터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개인별 지원계획을 수립하여 복지, 교육, 고용, 문화 등 관련 서비스를 연계한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에게 어떤 서비스가 필요한지 판단하고, 민간과 공공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시설을 소개해주는 일이 주 업무다. 또 발달장애인이 관련된 범죄가 발생하면 현장조사에 나서고 재판과정에 도움을 준다. 개소에 앞서 지난해 9월부터 3개월 간 발달장애인 170명을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했더니 만족도가 94~95%로 나타났다고 한다.
 
국내 첫 지역센터장이 된 나호열 센터장은 한국장애인부모회 대구지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오랜 기간 일하며 장애인들의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집회를 개최하고, 장애인 부모 대표로 발언을 하면서 발달장애인법 제정에 큰 역할을 했다. 지체장애 1급인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센터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관계당국에 더 많은 지원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역센터의 개인별 지원계획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김치훈 정책연구실장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별도의 센터가 생겼다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면서도 “성인기 이후의 발달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가 없기 때문에 지원센터의 역할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앙발달장애인센터의 조윤경 팀장은 “아직까지 발달장애인을 위한 서비스의 총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지역센터가 순차적으로 문을 열어 전국적인 연결망을 구축한다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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