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대학교 시네마떼끄 4월 기획전 <한국 독립영화>의 포스터.
▲ 서울대학교 씨네꼼 봄영화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특별전>의 포스터.
▲이화시네마떼끄 3월 넷째 주 기획전 <여성로드무비>.

영화 관객이 증가하면서, 더 이상 ‘천만 관객’은 불가능한 기적이 아니다. 갈수록 관객의 눈은 높아지고, 상업영화 뿐만 아니라 다양성 영화(작품성, 예술성이 뛰어난 소규모 저예산 영화)에 대한 관객의 수요도 늘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이 제작, 배급한 영화 위주로 상영되는 대형 상영관에서 이런 영화를 보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인디스페이스, 아트하우스 모모같은 독립영화관부터 CGV 무비꼴라쥬 등 대기업이 운영하는 곳까지 다양성 영화를 스크린에 올리는 영화관도 있지만, 대학교 안에는 조금 더 특별한 곳이 있다. 바로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영화관 ‘시네마떼끄’이다. 시네마떼끄(cinematheque)란 유럽에서 시작된 영화운동의 거점으로,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극장이 외면하는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상영해 영화 팬들의 예술적 욕구를 해소해주고 영화인들에게 새로운 영화상영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대학교 내 시네마떼끄들은 재학생 운영위원들이 직접 영화를 선정해 상영하고 영화제를 열어 재학생과 외부인 모두에게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고 있다. 꾸준히 세미나를 진행하며 영화에 대해 논의하고 공부하는 시간도 갖는다. 그야말로, 대학교 속 시네필(Cinéphile,영화팬)을 위한 공간이다.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 ‘보고 싶은 영화도 못 보는 현실’

2013년 민주당 최민희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CGV(42%), 롯데시네마(25%), 메가박스(19%) 등의 대형 상영관이 전체 상영시장의 86%를 차지할 정도로 영화산업의 독과점이 심각하다. 문제는 상영관을 운영하는 이 기업들이 배급시장도 독점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자사가 배급하는 영화 위주로 상영해 수익을 올리는 이른바 ‘자사 영화 밀어주기’가 이뤄지는 것이다.  특히, 올해 초 스크린 독과점으로 논란이 되었던 작품 <검사외전>의 경우 전체 스크린의  74.5% (2,424개 스크린 중 1,806개)까지 점유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객은 독립영화, 해외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등의 다양성 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점점 잃고 있다. 대학생 이은경 씨(21)는 “최근에 영화 <무스탕: 랄리의 여름>을 보고 싶었지만 상영관이 적어서 결국 못 봤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빈번히 겪는 일이죠”라며 안타까워했다.
 

대학 내 시네마떼끄, 관객에게 다양한 선택권 부여할 수 있을까

대학교 내 시네마떼끄들은 타 독립영화관과 달리 비영리로 운영된다. 따라서 새로운 영화의 ‘개봉관’이 될 수는 없고, 지난 명작과 숨은 수작들을 재발견하는 기획들이 상영된다. 이 때문에 새로 개봉한 다양성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들은 대학교 내 시네마떼끄가 이런 기회를 제공하지 못해 아쉽다는 의견이다. 이화시네마떼끄를 이용했던 관객 이주영 씨(21)는 “시네마떼끄에서 준비한 기획전이 매우 좋아 이용했지만, 타 독립영화관에서 개봉해 상영하고 있는 작품은 볼 수 없고, 시네마떼끄가 준비한 기획전의 영화만 볼 수 있다는 점이 아쉬워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종대 시네마떼끄 회원 정 모씨(22)는 “요즘은 보고 싶은 영화를 손쉽게 다운받아 볼 수 있는 시대지만,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보는 영화와 의자에 앉아 스크린으로 감상하는 영화는 느낌의 차이가 분명 있죠”라며 지난 명작들을 대형 스크린에 상영한다는 점에서 시네마떼끄가 관객에게 새로운 선택권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의 시네마떼끄인 ‘씨네꼼’ 회장 정병준 씨(22)도 “영화제를 위한 영화는 상업성보다는 다양성을 염두에 두고 선정해요. 쉽게 구할 수 없는 영화를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관객에게 다양성을 제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시네마떼끄가 대형 상영관, 소규모 독립영화관과는 또 다른, 별개의 선택지로서의 역할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네마떼끄가 활성화된 서울대학교, 세종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세 곳을 취재했다.


작은 상영관에서 매 학기 약 80여 편의 영화 상영, ‘이화여대 시네마떼끄’

▲ 100석 정도를 갖춘 이화시네마떼끄의 상영관 내부.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343호에 위치한 이화시네마떼끄는 1994년 개관해 지금까지 영화를 상영하고 공부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고 싶었지만 구하기 어려워 보지 못했던 영화들, 알려지지 않았지만 따뜻한 감동을 주는 좋은 영화들, 영화사에 획을 그은 명작들을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이화 시네마떼끄는 방학 동안 세미나를 통해 준비한 10개의 기획전을 매주 상영한다. 한 기획전 당 8편 정도의 영화가 선정되니, 한 학기에 이 상영관에서 80편 정도의 영화가 상영되는 셈이다. 지난 1학기에는 정기상영 <여성로드무비>, <농문화 deaf film>,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전>, 대동제 특별 상영 <80년대 한국 에로영화 작품전> 등에서 다양한 분야의 영화를 다뤘다. 뿐만 아니라 매 학기 <세계영화사> 기획전을 준비하는데, 이 기획전에서는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수작들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일주일에 한 번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기획전을 준비한 시네마떼끄 회원들과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함께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비디오나 다운로드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관객이 많았지만 최근엔 시네마떼끄를 찾는 관객은 적은 편이다. 외부에서 관객들이 영화를 감상하러 올 정도로 좋은 기획전을 많이 준비함에도 불구하고, 종종 ‘펑’(관객이 없어 상영을 못하는 상황)이 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이화시네마떼끄의 관장 이재희 씨(24)는 “관객을 유치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지만, 영화 감상 환경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즉각적인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게 어쩌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사람들에게 영화를 통해 문화적으로 긍정적인 경험을 선사겠다는 이화시네마떼끄의 개관 목적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관객을 많이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영화를 선정하고, 그에 대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운영위원으로서의 정도(正道)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화시네마떼끄를 이용하는 관객은 적지만, 이용 관객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이화시네마떼끄에서 올해 초 관객 1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관객만족도 조사에서 ‘이화시네마떼끄가 문화적 다양성과 이화인 대중의 문화적 권리를 증진시키려는 목적에 얼마나 부합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84.3%가 매우 부합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시네마떼끄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관객이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선택권, 즉 ‘대중의 문화적 권리’를 시네마떼끄를 통해서 부여받는다고 느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화시네마떼끄를 꾸준히 이용해온 외부 관객 이용희 씨(45)는 “페이스북으로 이화시네마떼끄를 알게 됐는데,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좋은 기획전을 많이 해서 자주 찾게 됐어요. 특히 방학 때 진행됐던 <에바 전작전>의 연속 철야 상영회가 기억에 남네요” 라며 다양한 영화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는 시네마떼끄의 프로그램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시네필을 위한 자유로운 영화공동체, ‘서울대 씨네꼼’

▲ 40여 개의 관객석을 갖춘 씨네꼼 상영관 내부 (왼쪽). ▲ 수많은 영화 자료를 보유한 씨네꼼 자료실 (오른쪽).

취재를 위해 찾아간 씨네꼼은 작은 공간이었다. 상영관 내부를 촬영해도 되냐는 질문에, 씨네꼼 회장 정병준 씨(22)는 “잠깐만요, 지금 누가 영화를 보고 있어서요” 라며 조심스럽게 상영관 문을 연다. 40여 개의 관객석이 있지만, 관객은 단 한 명. 정기 영화제 이외의 시간에 영화를 보고 싶은 씨네꼼 회원은 자유롭게 상영관을 이용한다.

서울대학교 두레문예관 401호에 위치한 시네마떼끄인 ‘씨네꼼’ 은 1993년에 만들어진 영화공동체로, 영화를 뜻하는 시네마(cinema)와 공동체를 뜻하는 코뮌(commune)의 합성어다. 학교 복지과에 소속된 기관으로 상영실을 관리하는 일을 하지만, 타 대학 시네마떼끄처럼 세미나, 영화제 준비, 영화감상, 등의 활동도 한다. 최근에는 회원들끼리 <헤이트풀8> 심야상영을 보러 가기도 했고, 전주국제영화제에 다녀오기도 했다. 씨네꼼 영화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오스카상 수상을 계기로 기획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특별전>, 거장 감독의 데뷔작을 모은 <그들의 첫 번째 영화> 등 매번 다른 주제로 계절마다 개최되는데, 영화제 한 번에 평균 150명의 관객이 씨네꼼을 찾는다. 정 씨는 “학교 주변에 영화관이 별로 없어 관객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씨네꼼의 세미나는 영화제처럼 한 가지 주제를 정하거나, 책을 읽고 나서 진행된다. 최근에는 영화 형식이론에 관한 세미나, 영화 발달이론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해 영화에 대해 공부하고 회원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내부에 갖춘 방대한 아카이브 역시 씨네꼼의 자랑거리다. 93년, 씨네꼼이 생겼을 때부터 모아온 자료들이기 때문에 현재는 구하기 힘든 작품들도 많이 있고, 현재도 국내에선 구하기 힘든 작품은 아마존 등에서 구입해 상영하고 있다. 씨네꼼 영화제는 누구나 관람 가능하며, 영화를 사랑하는 서울대 학생이라면 언제든지 씨네꼼에 가입할 수 있다.


영화를 만드는 이들의 영화관, ‘세종대 시네마떼끄’

다른 시네마떼끄들이 학교 자치단위나 복지과로 운영되는 곳이라면, 세종대 시네마떼끄는 영화예술학과의 과 동아리로 운영되고 있다. 영화를 좋아할 뿐만 아니라 전공으로 삼는 이들의 시네마떼끄인 만큼, 상영보다는 ‘스터디’에 초점을 두고 시네마떼끄를 운영한다. 이번 학기에는 예술적, 문화적 소양을 위해 전시회, 촬영소, 영상 자료원 등을 방문해 볼 계획이라고 한다.

세종대학교 시네마떼끄의 영화 기획전은 매 달 바뀌는데, 매주 화요일 7시에 세종대학교 광개토관 1212호에서 상영되며, 상영 후에는 시네마떼끄 부원들이 직접 영화에 대한 부가 설명을 하고,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소개하며 관객과 소통하는 ‘관객끼리 대화’ 시간을 갖는다. 세종대 시네마떼끄 회원 정 씨는 “기획전은 주로 그 ‘달’이 가진 색깔에 집중해요. 감독전을 열기도 하고, ‘계절’을 주제로 하기도 해요”라고 했다. 최근 세종대학교 시네마떼끄에서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등 B급 감성의 수작을 모은 <B급 영화> 기획전, <잉투기>, <나쁜나라> 등 비교적 최근 개봉한 좋은 한국 독립영화를 모아 기획한 <한국의 독립영화>, 그리고 <번지점프를 하다>, <러브레터> 등의 로맨스 영화를 모은 <이런 사랑 영화> 등의 기획전을 상영했다.

영화에 누구보다 열정을 가진 이들이 모인 시네마떼끄일뿐만 아니라, 한 기획전의 상영작이 4편뿐이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상영하려는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심지어 한 회원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상영하기 위해 몰래 상영 후보작 틈에 해당 영화를 끼워 넣었다가 다른 회원이 “이 영화는 뭐야? 왜 있어? 누가 넣은 거야?”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도 했다.

세종대 시네마떼끄를 찾는 관객의 수는 매번 다르다. 때로는 단 2명의 관객만이 자리를 지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4월, 다큐멘터리 <나쁜나라>와 작년에 <다이빙벨>이 스크린에 걸렸을 때는 상영관이 꽉 찰 정도로 많은 관객이 찾아오기도 했다. 정 씨는 “보고 싶지만 보기 어려운 영화를 보기 위해 매번 찾아와주는 관람객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네마떼끄가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세종대학교 시네마떼끄 회원들은 ‘영화과’라는 특성 때문에 영화의 기술적 측면에 집중하게 되면서 영화 자체만 감상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시네마떼끄를 찾은 타과생과 감상 후기를 나누며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경험을 했다. 정씨는 “좋은 영화를 보고, 공부하고, 관객과 소통하는 것은 시네마떼끄를 운영하는 영화과 학생으로서도 매우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며 “시네마떼끄에 찾아오는 외부인, 그리고 그들의 감상을 항상 환영한다”고 밝혔다.


제 3의 선택지 시네마떼끄, 시네필을 위한 공간으로

대학교 내 시네마떼끄는 대형 상업영화관, 혹은 소규모의 독립영화관과는 별개로 시네필 관객들에게 새로운 문화적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시네마떼끄가 없는 타 대학 학생이나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이런 학교 내 상영관을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씨네꼼 정병준 씨는 다른 대학들도 시네마떼끄를 운영해서 보다 많은 관객에게 다양한 영상 예술을 경험할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또한 “최근에 개봉했던 영화도 씨네꼼에 상영하면 ‘이런 영화가 언제 개봉했었냐’는 반응을 보이는 관객이 많습니다”라고 말하며 시네마떼끄에서의 영화 감상 경험을 통해 관객이 대기업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생각해보는 기회도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대학교 영화과 재학생 김동주 씨(21)도 “요즘에는 전공생이 아니고서야 잘 보지 않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에 대한 일반 관객의 수요가 증가한 만큼, 일반 관객들도 영화에 대한 수준 높은 대화가 가능해 진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며 시네마떼끄가 다양한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소통하는 공간이 됐으면 하는 기대를 보였다. 충분한 대외 홍보와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 내 시네마떼끄가 시네필들의 소통의 장으로서 활용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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