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4일, 교육부가 발표한 ‘2016년 학교체육 활성화 추진계획안’에는 여학생 선호종목 수업 장려, ‘여학생 체육활동의 날’ 지정 등 여학생 체육활동 증진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도 정부는 지난 5년간 중학교 스포츠클럽 의무화, 여학생들에게 특화된 ‘여신(여학생의 신나는 체육활동의 약자) 프로그램’ 권장, 여학생 선호 스포츠종목 교구 지원 등 중·고등학생들의 체육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학교현장에서 여학생들의 체육활동 참여도는 그리 높지 않다.


학교스포츠클럽, 취지는 좋지만 현실은…

교육과학기술부는 2012년부터 중·고등학생의 체육활동을 증진하기 위해 ‘학교스포츠클럽’을 권장, 운영하고 있다. 학교스포츠클럽은 체육활동에 취미를 가진 같은 학교의 학생들로 구성된 스포츠클럽을 일컫는다. 중학교의 경우 정규수업시간을 통해 3년간 총 136시간의 학교스포츠클럽활동을 필수 이수해야 하고, 고등학교의 경우 정규수업시간 외에 별도로 운영할 것을 권장한다. 각 학교의 역량에 따라 다양한 종목을 도입할 수도 있다. 학교별로 교내스포츠클럽대회를 개최하며 우승팀은 전국스포츠클럽대회에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다.

▲ 2015 전국학교스포츠클럽대회 홍보자료 (출처: 충주시 SNS 서포터즈 홈페이지)
▲ 17시간 이상 학교스포츠클럽 참여 학생 수 현황 (출처: <2016년 학교체육 활성화 추진계획안>, 교육부) (단위: 명)

교육부의 적극적인 정책 추진에 따라 학교스포츠클럽 참여율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지만 학교스포츠클럽 활동의 실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통계와는 괴리가 있다. 학교스포츠클럽은 특히 여학생들의 체육활동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소재 대명중학교 3학년 이희연 양(14)은 “학교스포츠클럽이요? 일주일에 한 시간씩 있긴 한데 성적에 반영이 안돼요. 남학생들은 운동을 좋아하니까 열심히 하는 편인데 여학생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정신여중 3학년 신혜원 양(14) 역시 “교내 대회에 참가하는 아이들 빼고는 수업참여에 소극적이다”라며 스포츠클럽의 등록률과 수업의 질은 별개라고 말했다.

▲ 교원별 학교스포츠클럽 최대 지도 학생 수. 대부분의 학생을 일반교과교사와 스포츠강사가 지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중학교 스포츠클럽 개선 방안 연구>, 교육부, 2013)

실제로 학교스포츠클럽 담당교사의 대다수는 체육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교사들과 외부 스포츠강사다. 일반교과 교사의 경우 체육교과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스포츠클럽시간의 운영을 학생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기는 경우가 많다. 외부강사가 스포츠클럽을 지도하는 경우에도 학생들이 교사의 말을 잘 따르지 않고 수업참여도가 낮다는 문제가 있다. 신 양(14)은 “교사의 통제가 약한 상황에서 운동을 선호하는 남학생들은 비교적 활발하게 참여하는 데 반해 여학생들은 앉아서 수다를 떠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학교스포츠클럽의 본래 의미가 변색된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학교스포츠클럽이 공식적으로 법제화되고 정규 교과과정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이를 대학 입시에 유리한 교내활동 스펙을 쌓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여학교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체육을 그 자체로 즐기는 여학생들이 적기 때문이다. 서울 소재 숙명여중 체육교사 나모 씨(41)는 스포츠클럽활동을 단지 진학용 스펙으로만 사용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지적하며 “순수한 목적으로 열심히 운동하는 학생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데도 생활기록부에는 좋게 써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 입시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체육활동은 학교 차원에서도 지원 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스포츠클럽활동이 정규 교과과정에 포함되지 않는 고등학교에서 이러한 경향이 더 강하다. 6년째 여중, 여고에 재직 중인 체육교사 유영상(43) 씨는 2년 전 근무했던 서울 소재 한 여고에서 여학생들의 체육활동 증진을 위한 축구클럽 개설 계획을 학교 교무부에 제출했지만 쉽게 결재를 받지 못했다. 교무부가 기존에 없던 프로그램을 신규 개설하는 데 있어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 진학과 직결된 교과도 아니고, 정규 수업 외 체육프로그램이다 보니 결재 우선순위에서 밀리기도 했다. 유 교사는 “‘비교과 활동이라는 스펙으로 대입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며 설득한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고 말한다.


여전히 미흡한 체육수업시간

그렇다면 정규 수업시간에 이루어지는 체육교육은 어떨까? 서울시교육청은 정규 수업시간 내 여학생들의 체육활동을 증진하기 위해 2015년 ‘여신 프로그램’을 발표한 바 있다. 여신프로그램은 여학생들에게 특화된 체육수업시간 활동 매뉴얼로, 그들에게 부족한 신체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근력을 키우기 위한 동작을 준비운동에 포함시키거나, 코트 크기를 줄이는 등 축구나 배구와 같은 기존 운동종목을 적절하게 변형하고, 여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새로운 종목들을 도입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 2015년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여신(중고등)프로그램’ 구성안.

여학생에게 특화된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정작 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다. 서울 소재 한 여중에서는 여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교육청으로부터 자전거 수 십대를 지원받았다. 자전거 품질도 좋은 편이고 수리공이 정기적으로 와서 점검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학교 체육교사에 따르면 실제 학생들의 자전거 이용률은 그렇게 높지 않다. 정규 수업시간보다 참여율이 저조한 추가 개설 수업에서 자전거를 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교구를 지원받더라도 정규 수업시간에 이용할 기회가 적어 학생들의 체육활동 증진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또 여신프로그램이 제시하는 체육활동들은 단순히 권장사항에 그치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실제로 실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숙명여중 체육교사 나 씨는 “여신 프로그램 내용의 대부분이 큰 강제성이 없고 기존에 있던 체육활동들을 여학생들에게 맞게 살짝 변형한 것이기 때문에 기존 활동들을 고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여신프로그램의 실질적인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새로 도입하는 경기종목은 교구를 따로 구입해야하기 때문에 일정한 절차를 거쳐 교육청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간단하지 않아 교사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실행해보자고 건의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학교 정규 체육시간에 여학생들의 참여도는 매우 저조하다. 대치중학교 3학년 김민석 군(15)은 “여학생들은 체육수업에 참여하는 데 소극적이다 보니 선생님들도 남학생들에게 주로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희연 양(14)은 “대부분 여자애들은 수업시간에 운동을 잘 안 한다. 선생님이 시키더라도 열심히 하는 아이들은 거의 다 남학생들이다”라며 “여학생들은 하더라도 몇 분 하다가 마는 수준이다”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참여도가 낮은 상황에서 프로그램만 일방적으로 제안함으로써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학생 체육활동, 실질적인 활성화 방안은…

숙명여중 체육교사 이모 씨(55)는 방과 후 및 주말 체육수업을 추가로 개설하는 것보다는 기존 수업시간을 밀도 있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대다수 중·고등학교의 체육수업 시수는 약 3단위(주당 3회 수업) 정도이며 한 회당 수업시간은 중학교가 45분, 고등학교는 50분이다. 중학교는 여기에 의무적으로 스포츠클럽활동이 1단위 추가된다. 결과적으로 중학교는 일주일에 3시간, 고등학교는 2시간 30분의 체육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교사는 이 시간만 잘 활용해도 일주일 운동시간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교육부 정책은 수업시간 이외에 아침 수업 전, 방과 후 활동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추가로 체육활동 프로그램을 개설할 경우 자발적으로 참여하려는 학생이 많지 않다. 이 씨는 정부 차원에서 체육수업 시수를 늘리기보다는 기존 수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이 씨는 열심히 할 의사가 있고, 체육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규모 스포츠클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클럽은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장 중요한데,  현재 학생들에게 스포츠클럽은 체육활동이라기보다 스펙 쌓기의 용도로 인식되고 있다. 스포츠클럽의 의무화가 오히려 바람직한 체육활동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교과 교사와 스포츠강사가 스포츠클럽을 전담하며 체계적인 체육수업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의지 없이는 스포츠클럽 참여도가 높아지기 어렵다. 따라서 정규 체육교사 인원을 늘려 스포츠클럽 활동을 강화하거나, 스포츠클럽을 아예 선택사항으로 바꿔 체육에 흥미가 있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학생들의 인식변화 역시 필수적이다. 학생들은 일반교과와 달리 체육시간을 수업시간이 아니라 ‘쉬는 시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신여중 신혜원 학생(14)은 “친구들이 체육수업시간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열심히 하려는 친구들도 더 즐겁게 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체육시간을 ‘수업’의 일부로 생각하는 것이 전제돼야 진정한 의미의 체육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