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넥타이를 어제도 맸고 오늘도 맸다. 그런데 어제는 “멋있다”는 말을 오늘은 “촌스럽다”는 말을 들었다. 왜 그럴까. 문제는 함께 입은 셔츠에 있다. 아무리 괜찮은 넥타이라도 이와 어울리지 않는 셔츠를 함께 입으면 “촌스럽다”는 말을 듣고 만다.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산하 1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도입한 근로자 이사제가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문제의 핵심은 근로자 이사제라는 ‘제도’가 아니라 이와 어울리지 않는 우리나라 공공부문 기관과 기업의 ‘노사문화’에 있다.

근로자 이사제는 그 자체로 괜찮은 넥타이다. 기업 경영에 근로자 대표가 참여하게 되면 그만큼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어 소모적인 노사갈등과 극단적인 분쟁을 줄일 가능성이 있다. 또한, 현장의 목소리를 사용자들에게 직접 전달할 수가 있어 제품과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데도 효과적일 것이다. 이미 독일과 스웨덴, 프랑스 등 18개 유럽 국가들이 이 제도를 시행한다는 것만 보더라도 검증된 제도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근로자 이사제가 우리나라 공기업과 공공기관을 경영하는 데 있어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역할을 한다면, 근로자 이사제 도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라 말할 수 있다.

문제는 함께 입은 셔츠다. 지금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노사문화는 근로자 이사제와 어울리지 않는다. 근로자 이사제가 제대로 그 뿌리를 내리려면 ‘협력적’ 노사 문화가 필수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희생을 끌어낼 준비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근로자 이사제를 처음 도입한 독일 사회만 보더라도 협력적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노사갈등을 해결해 온 역사와 전통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사기업이든 공기업이든 노사 관계를 떠올리면 ‘배타적’이라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얼마 전만 해도 서울시가 경영 효율성 차원에서 서울메트로와 서울 도시철도의 통합을 추진했으나 서울메트로 노조의 반대와 이해관계의 충돌로 무산되고 말았다. 집단 간 갈등 구조가 엄연히 존재하는 데 과연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를 참여시켜 노사 갈등 비용을 줄일 수가 있을까. 도리어 대립만 심화해 의사결정의 효율성만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는 공공부문 개혁이라는 중차대한 과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공공 부채는 날이 갈수록 쌓여가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그것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이다. 뼈아프지만 공공 부문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모두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희생이 요구된다. 그런데 지금 공기업 노조의 입장은 어떠한가.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해소하려는 목적에서 도입하는 성과연봉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 이사제를 시행되면 과연 공공개혁은 원활하게 이뤄질 수가 있을까. 오히려 서울시 산하 15개 공공기관을 넘어 근로자 이사제가 전국 중앙공공기관과 지방 공기업으로 퍼지게 되고 그만큼 공공개혁이라는 과제는 요원해질지 모른다.

선진국의 좋은 제도를 수입한다고 해서 그 제도의 효과가 선진국과 똑같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기대하는 만큼 제도가 효과를 내려면 그만큼 그 제도를 둘러싼 환경 또한 제대로 조성이 돼야 한다. 억지로 제도를 도입하면, 기대하는 효과는 고사하고 기대하지 못한 부작용만 부를 수 있다. 지금이라도 서울시는 근로자 이사제의 제도 자체를 바라보고 순기능만 기대하기보다 이 제도를 둘러싼 환경이 어떠한지 따져보고 제도를 시행했을 때 나타날 부정적 파급효과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문제는 넥타이가 아니라 셔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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