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9일 신촌의 한 PEET 학원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체육복을 입은 학생 수십 명이 줄서 있었다. 점심 식사 후 다시 수업을 들으러 가는 수험생들이다. 이 건물의 11층~14층 전체가 PEET 강의실이다.

이곳 수강생 김모(25)씨는 학원 근처에서 하숙을 하며 학원을 다니고 있다. 작년 입시 실패 후 재수에 도전하기 위해 1주일 전 다시 학원 종합반을 등록했다. 김씨는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학원에 간다. 수업만 일주일에 30시간 이상 들으며, 수업이 없으면 틈틈이 의무 자습을 한다. 11시가 되면 김 씨는 하숙집으로 돌아간다. 김씨는 “예전에는 1월부터 8개월만 공부해도 약학대학에 갈 수 있었지만, 요즘은 PEET 경쟁률이 높아져 9월~12월부터 미리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PEET)에 도전하는 사람이 늘고 약대 입시가 점차 불투명해지며 수험생의 사교육 부담이 심화되고 있다. PEET는 대학 2학년 이상 과정을 수료했거나 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학생이 약학대학에 지원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이다. 한국약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PEET 지원자는 2011년 1만47명에서 2016학년도 1만 5599명으로 55% 증가했다. 약학대학을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좁아지다 보니 수험생들 사이에선 학원을 다니지 않고 인터넷강의만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단 말까지 나오고 있다.
 

점차 높아지는 PEET 경쟁률…월 230만원 짜리 기숙학원, 대학생 PEET 과외까지

대부분 수험생들은 학원 종합반, 단과반, 인터넷강의, 기숙사형 학원을 통해 PEET를 준비한다. 학부 1학년 때 배우는 기초 학문 강의로는 대학 전공 수준의 피트 시험을 대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PEET 경쟁률이 점차 높아지며 수험생의 평균 학원 수강 기간, 사교육 부담은 더욱 커졌다.

비교적 저렴한 종합반의 경우 대개 1월부터 8월까지 연간 커리큘럼이 짜여 있으며 2달 기준 학원비 160만 원 정도가 든다. 하지만 최근 PEET 종합반은 선생님을 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일부 학생은 유명 강사의 단과 강의를 추가로 듣는다. 형편이 어려운 수험생들은 인터넷강의를 공동구매해 대학교 강의실에서 함께 강의를 듣기도 한다.

기숙학원은 PEET 사교육 중에서도 가장 비싼 편이다. 올해 성균관대 약학대학에 입학하는 전모씨(23세)는 기숙학원에서 8개월 동안 약대 입시를 준비했다. 기숙학원은 월 학원비 230만 원이며 휴대전화, 엠피쓰리,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다. 연애도 금지된다. 전씨는 부모님을 생각해 새벽 6시 반에 일어나 11시까지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약대생에게 PEET 과외를 받는 수험생도 있다. 학원 선생님을 붙잡고 몇 시간 동안 질문을 할 순 없기 때문이다. 수험생은 PEET에서 보는 네 과목에 관해 종합적으로 질문하기도 하고, 취약한 과목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배우기도 한다. 수험생은 주로 약대 준비생 커뮤니티를 통해 피트 과외를 구한다. 피트 과외 경험이 있는 서울대 약대 서모(25세)씨는 “주로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이 학원 보충용으로 과외를 받는다”며 “서울대 약대생의 경우 시급이 센 편이라 5만 원 이상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준 모호한 ‘서류 100%’ 전형 확대에 ‘학점 관리’, ‘학벌 관리’ 상품까지 나와  

점차 불투명해지는 약대 입시 역시 수험생의 사교육 부담이 가중되는 한 요인이다. 상위권 약학대학은 점차 서류 평가 비중을 높여가고 있다. 서류 100% 전형에선 PEET뿐만 아니라 나이, 고등학교, 전적 대학, 학과, 학부성적(GPA), 영어성적, 수상경력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하지만 입시 요강에선 이들 요소의 명확한 배점이 나와 있지 않다. 현재 서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은 서류 100%로 지원자 상위 30~50%를 우선 선발한다. 중앙대는 올해부터 신입생 전원을 서류 100%로 선발한다. 부산대는 작년 서류 100%로 신입생 30%를 우선선발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입시 경향에 따라 학원가는 PEET 강좌 외의 상품도 내놓기 시작했다. 우선선발의 명확한 기준점이 없어 공식 평가인 PEET 점수만으로는 합격선을 예측하기 어려워 졌기 때문이다. 한 학원은 ‘대학교 학점 관리’를 돕는 상품을 내놓았다. 생물, 물리, 화학 등의 과목을 대학 전공 책으로 수업하는 것이다. 한 학원에선 입학 후 2년 동안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시간표 짜는 법을 상담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여학생의 경우 고등학교 때 많이 선택했던 화학이나 생물 위주로 1학년 시간표를 짜고, 물리 전공은 피하도록 조언한다. 
 

▲서울대학교 약대 전적대학 출신 분포

약대 입시는 고등학교 입시 시장으로까지 확대되기도 한다. 서류 반영 비율이 높은 대학들의 경우 출신 학부는 물론 고등학교 학생부까지 종합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일부 학원에선 입시 상담에서 서류 평가란 출신학부를 의미한다고 노골적으로 얘기하기도 한다. 한 약대 입시 학원은 대치동에서 열린 고등학교 입시설명회에서 PEET 설명회를 동시에 진행했다. 학원은 이 자리에서 약대 입시에 유리한 학과와 학부를 학부모에게 추천했다. 고등학교 학생부의 장래희망도 약학과 관련된 직종으로 쓰도록 조언하기도 했다. 국내 한 약학대학에 재학 중인 김모(25)씨는 “요즘은 대학 입시에서 전적대학(학벌)을 노골적으로 보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소위 ‘학벌 관리’를 한다”며 “지인 역시 중앙대 약대를 목표로 미리 중앙대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한편, 작년 국정감사에 따르면 2011년~2015년 서울대 약학대학 편입학 합격자의 89%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KAIST, 포항공대 출신이었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