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상반기 삼성직무적성검사에서 가장 어려웠다고 꼽히는 문제 중 하나다. 기준에 따라 답이 나뉠 수 있어 각종 추측이 난무하지만 정답은 알 수 없다. 삼성이 정답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적성검사를 대비하는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은 난감하다.

인성검사와 적성검사를 줄여서 인‧적성검사라고 부른다. 보통 서류전형 다음에 실시되는 채용과정 중 하나다. 취준생은 가까스로 서류전형에 통과해도 면접을 가기 전에 인‧적성검사를 통과해야 한다.

▲ 2015년 10월 18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고등학교에서 삼성 그룹 취업을 희망하는 취업준비생들이 직무적성검사를 마치고 돌아가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10월 취업준비생과 입사기간이 1년 이내인 신입사원 609명을 대상으로 ‘인‧적성검사 준비 방법’ 조사한 결과, 과반수인 58.8%가 “삼성의 GSAT를 위주로 공부하고 있다”고 답했다. 취준생들에게 있어 GSAT(Global Samsung Aptitude Test)는 인‧적성의 기본서와 다름없다. 삼성그룹은 1995년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부터 학력제한을 철폐하고 열린채용을 하겠다는 목적으로 직무적성검사를 도입했다.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 공기업, 중소기업까지 거의 모든 기업이 서류전형 합격자에게 인‧적성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학력‧성별‧지역과 관계없이 취업준비생에게 대기업 입사를 제공하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인적성검사가 오히려 취준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기업 맞춤형으로 만들어지는 취준생들의 인성

인성은 개성의 기본이며, 또한 자신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대기업 채용과정에서의 인성은 다르다. 업무와의 연관성, 회사 조직의 분위기 등을 고려하다보면 본인의 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축학과를 졸업해 전공과 관련된 회사를 지원하는 손성희(27)씨는 “내성적인 성격이라서 인성검사를 할 때마다 걱정 된다”고 말한다. 외향적이고 현장에서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하는 직업인데 본인의 성격과 괴리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손 씨는 “인‧적성검사를 볼 때마다 고민하지만 결국 직업이 요구하는 성격에 맞추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인성검사는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몇 백 개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부사나 서술어만 달리하는 비슷한 질문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따라서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인성검사는 ‘일관성’있게 체크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해법이다.

하지만 몇 백 개의 질문에 일관성을 보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점점 취업관문이 좁아지고, 어려워지는 추세에 있다 보니 인성검사를 위해 ‘최면’을 이용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경향신문, 2016-01-21 10면, “인성검사 일관된 답변 어렵지?” 취준생 ‘불안’ 파고든 최면교육) 경향신문에 따르면 최면교육센터는 “최면치료를 통해 본인의 가치관, 세계관 등 사고체계를 변화시켜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최면교육센터에 전화하여 인성검사 관련하여 상담을 요청하니 “최근 많은 분들이 효과를 보시고 취업에 성공하셨다”면서 “인성검사 외에 면접에도 효과가 있다”며 방문을 요청했다.

채용과정에서 취준생이 자신 그대로를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검사에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인성개조’가 진행되고 있다.


IQ테스트와 다를 바 없는 직무적성 검사 … 왜 합격했는지조차 몰라

직무적성검사는 일반적으로 언어논리, 수리능력, 공간지각능력, 일반상식 등을 평가하는 문제로 구성된다. 일반 IQ테스트와 유사하다. 하지만 기업마다 난이도에 있어 차이가 있고 문제유형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많은 취준생이 공부하는 GSAT의 경우는 위에 나열된 일반적 항목에다가 2015년부터 역사문제를 강화했다. LG나 금호 등 일부 기업은 한자문자를 출제하기도 한다. 현대계열사는 에세이 시험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업포털 인쿠르트가 취준생을 대상으로 지난해 연말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상반기 입사지원 계획이 있는 취준생들은 평균 33개 기업에 지원할 예정인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지원하는 회사의 개수가 많아지는 만큼 인‧적성을 준비해야하기 때문에 전방위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 

지난 상/하반기 인‧적성 ‘전패’로 취업 삼수에 접어든 차정화(27)씨에겐 인‧적성 문제유형 중 공간지각능력 부분이 가장 어렵다. “학종이를 접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뭐하고 있나 싶어요” 접힌 색종이에 뚫린 구멍을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답을 찾던 차씨는 결국 학종이까지 동원하여 문제를 푼다. “도대체 이런 문제(공간지각능력, 언어추론 등)들이 내가 지원하는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한다.

통과 기준도 명확히 밝혀진 게 없다. 기업들이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시간 내에 풀지 못했을 경우 찍는 게 유리한지, 혹은 빈칸으로 두는 게 유리한지 알 수 없다. 차정화씨는 “통과 기준이 절대적인 개수인지, 정답률인지 기준이라도 알고 싶다”고 말했다.

본인이 왜 통과했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2014년 상반기에 입사해 2년차 직장인이 된 이상아(28)씨는 “취업준비 당시 인‧적성 통과율이 높은 편이었지만 본인이 어떤 경우에 붙었는지 일반화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못 봤다고 생각한 시험에 붙고, 오히려 잘 봤다고 생각한 시험에서 떨어지기도 했다. 인‧적성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은 답답하지만 준비해야 한다.


다양한 인‧적성 공부 유형, 부담이 되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

취업준비생들이 인‧적성을 준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문제집을 혼자서 푸는 ‘독학형’, 사람들과 함께 모여 시간을 재서 문제를 푸는 ‘스터디형’도 있다. 학원이나 인터넷강의와 같은 ‘사교육’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준비유형과 상관없이 인‧적성 시험은 취준생들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 대형서점엔 인‧적성 문제집 코너가 따로 존재한다.

취업재수 끝에 2015년 하반기 대기업에 취업한 조아란(27)씨는 ‘독학형’이었다. “독학형이 그나마 가장 비용이 덜 들어가는 축에 속한다”고 말하는 조아란씨는 “하지만 문제집의 경우도 회사마다 유형이 제각각이라서 어쩔 수 없이 사야했다”고 전했다. 기업별로 한 권당 보통 17000~25000원 정도인 책을 1~2권씩만 사도 취업준비 과정에서 책값으로 많은 돈을 지출하게 된다.

▲ 취업전문 W학원 인터넷 사이트는 기업별 모의고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이트 캡쳐)

 
‘사교육형’의 지출비용은 더욱 크다. W학원의 경우 5주 동안 일주일에 한 번 듣는 인‧적성 수업은 20만 원 정도다. 혹은 기업별로 개강하여 수강생을 모으기도 한다. 삼성반, LG반, CJ반 등으로 나눠 운영한다는 의미다. 기업별로 인성검사와 직무적성검사의 비중이 천차만별이라 여러 개의 기업을 준비하는 취준생들은 정보를 얻기 위해 학원 등록을 고민하게 된다.

현재 상반기 취업을 앞두고 있는 김지희(26)씨는 “취업카페에 올라오는 각종 광고를 보고 학원을 다닐까 고민 중”이라며 “어디든 기대고 싶은 심정 때문에 학원을 택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취업에 대한 불확실함에 안정감을 취하기 위해 학원을 택한다. W학원 데스크에서 조교를 맡고 있는 강석진(26)씨는 “공채 전후 상관없이 취준생들이 항상 많다”고 말했다.


인‧적성 떨어지면 상처…, 합격해도 글쎄?

법률저널(2015.12.31)에 따르면 2015년 상반기 삼성직무적성검사에서 응시자 중 겨우 8%만 통과했다. 응시자가 10만 여명인 가운데 8000여 명만 합격했다는 말이다. 인‧적성 탈락은 면접으로 가기 직전의 관문에서 막힌다는 걸 뜻한다. 많은 취준생들은 다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올라와 학원 수업을 듣고 스터디를 하는 박광규(30)씨는 “작년에 인‧적성에서 모두 탈락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말한다. 그는 슬럼프를 이겨내고 다시 시작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비용이 만만찮다. 부산-서울 왕복 KTX 비용을 일반가로 119,600원이고 최대 할인을 받아도 83,720원이다. 10주반인 학원 수강료는 54만원. 이 외에 매주 카페 이용비용과 밥값이 추가로 지출된다. 그는 이 비용이 “취업을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말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한 만큼 올해엔 꼭 좋은 곳에 취업하겠다”는 포부도 덧붙였다.

인‧적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도 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신입사원 10명 중 3명이 입사한 지 1년 안에 조기 퇴사했다. 신입직원의 퇴사사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조사한 결과 ‘적성에 맞지 않는 직무 때문’이라는 응답이 22.5%였다. 인‧적성검사와 기업생산성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는 아직 없다. 하지만 10명 중 3명이 퇴사하는 추세를 비춰보면 현재의 채용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대목이다. 


인적성은 왜 실시? 표준화된 시험만이 방안인가?

기업이 인‧적성검사를 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약 500개 기업에 인‧적성검사를 제공한 엔잡얼라이언스의 인재진단연구소 이남희 과장은 지원자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이 과장은 “많은 지원자들을 상대로 기업에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전한다.

하지만 한국취업진로교육원 류동희 원장은 본인의 업무 능력과 상관없는 어려운 문제 해결능력을 요구하는 인‧적성 검사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직무에 관련 없이 너무 고난이도의 문제를 요구하는 게 현 기업들의 인‧적성 검사”라며 “가장 이상적인 건 자기소개서 검토를 강화하고, 면접 전형을 보완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인‧적성 검사 대신 공기업과 공공기관이 실시하기로 한 NCS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NCS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능력(지식 ·기술 ·태도)을 국가가 산업부문별, 수준별로 체계화 한 것이다. 류 원장은 “정말 직무에 필요한 인재를 원한다면 어려운 지식을 묻기 보다는 상황을 제시하여 어떻게 해결하는 지를 평가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사교육 시장으로까지 확대된 인‧적성 검사는 시정이 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했던 취준생들은 하나같이 “납득이 가는 채용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무리 준비할 게 많아도 떨어지는 이유라도 알게 되면 다음 공채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인성개조에 IQ테스트까지 봐야하는 취준생의 취업도전은 어렵다. 채용인원이 점점 줄어드는 현재, 그 도전은 더욱 험난해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채용과정에서조차 인‧적성 검사라는 표준화된 시험으로 귀결되는 게 우리 사회다. 정량적 수치로만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 세태에 EBS 다큐프라임 <시험: 2부 '시험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하는가'>는 ‘표준화된 시험이 과연 실력을 보여주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대만의 한 과학자는 "표준화된 시험에 적합한 DNA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시험 고수인 수능 만점자, 행시 최연소 합격자, 사시 합격자들은 "표준화된 시험엔 기술이 존재 한다"고 말한다. 기술과 주변 환경, 당시 몸 상태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시험으로는 개인의 능력을 완벽하게 측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는 시험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시험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교육이 성적이라는 기준으로만 학생들을 평가해 왔기 때문에 다양한 영역에서의 개인들의 능력을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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