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들은 다 비슷.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정파성을 피할 것인가, 방대한 데이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지난 7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2회 글로벌팩트체킹서밋에 참여한 한 기자가 트위터에 올린 내용이다. 글로벌팩트체킹서밋(Global Fact Checking Summit)은 2014년부터 매년 7월 미국 포인터연구소가 개최한다. 세계 각국의 팩트체커들이 모여 활동현황 등을 공유한다. 

팩트체크(Fact Check)란 말 그대로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팩트체크는 기사에 쓰인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내부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뜻한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미국에서 팩트체크라는 단어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됐다. 정치인이나 유명인 발언의 진실 여부를 판단하고 거짓정보에 대해 왜 틀렸는지 분석한 기사들이 나타났다. 글로벌팩트체킹서밋에 모인 팩트체커들은 이런 종류의 팩트체킹을 실천한다.

시작은 2003년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애넌버그 공공정책연구센터의 팩트체크닷오알지(FactCheck.org)다. 2007년에는 탬파베이타임스가 정치인 등의 발언에 대해 진실측정기(Truth-O-Meter)를 사용해 사실 여부를 검증하는 폴리티팩트(PolitiFact)를 선보였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레토릭 뒤에 숨겨진 진실(The Truth Behind The Rhetoric)’이라는 문장을 내걸고 팩트체커(Fact Checker)를 운영 중이다.

▲2015년 7월 글로벌팩트체킹서밋에 참가한 김필규 기자가 작성한 트위터 내용 캡쳐


한국의 팩트체커 JTBC 김필규 기자

새로운 의미의 팩트체크를 하는 한국 기자로는 JTBC의 김필규 기자가 있다. 앞서 소개한 트윗의 작성자이기도 하다. 그는 2002년 중앙일보 39기로 입사해 현재 JTBC 보도국 정치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 JTBC 뉴스룸에서 팩트체크를 진행한다. 김 기자의 별명은 ‘똑필규’다. 복잡한 문제들을 똑똑하게 분석해 준다고 하여 시청자들이 붙인 이름이다. 

김필규 기자의 팩트체크는 전문가 인터뷰나 논문·연구자료 등을 이용해 이슈의 사실 여부를 검증한다. 정치인 발언이나 정부 발표, 통계자료 등이 주요 검증대상이다. 논란이 되는 사회통념들을 따져주기도 한다. 팩트체크라는 프로그램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JTBC 보도국 담당 손석희 사장이다. 손 사장은 『세상을 바로 읽는 진실의 힘: 팩트체크』의 서문에서 팩트체크 담당기자를 정하는데 큰 고민을 하지 않았다며 “누구든 김필규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현재 팩트체크 팀은 7명으로 활동한다. 2014년 9월 22일 첫방송을 시작해 지금까지 200회가 넘도록 날카로운 검증을 이어가고 있다.

2월 15일 상암동 JTBC 보도국 회의실에서 김필규 기자를 만났다. 김필규 기자가 생각하는 팩트체킹 저널리즘에 대해 들어보았다. 또 ‘어떻게 검증하고, 어떻게 정파성을 피하며 또 어떻게 방대한 데이터를 풀어내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JTBC 팩트체크 속 장면(왼쪽)과 JTBC 뉴스룸 홍보영상 속 화면 캡쳐(오른쪽)


한 걸음 더 들어간 뉴스

“팩트체크는 새로운 분야다.” 김필규 기자는 팩트체크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상당히 다른”이라는 표현을 썼다. 기존 방송 리포트와 다르다는 의미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보통의 기사는 시청자가 모르던 사실을 전하지만 팩트체크는 이미 알려진 이슈에 대해 다룬다. 예를 들어 2월 15일자 주제는 ‘한국의 핵무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였다. 시청자들이 핵무장 문제가 정치권에서 논란이 된다는 정보를 알고 있음을 전제한 것이다. 

속보경쟁을 할 필요도 없다. 잘못 알려진 정보를 바로잡고 사실을 확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 더 깊이 있는 취재가 필요하다. 팩트체크가 기존 보도와 상당히 다른 두 번째 이유다. 김 기자는 “팩트체크라는 기사는 한 발 늦을 수밖에 없는 포맷이다. 하지만 더 취재하고 검증하여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려주는 포맷이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뉴스다”라고 말했다. 

저널리즘의 기본서라 불리는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책은 새로운 저널리즘에 대해 “이제는 수용자가 어디선가 부분적 정보를 접했으리라고 가정해야 한다. ... 이전에 전달된 잘못된 정보를 정정해 줘야 한다. ... 또 잘못된 정보를 들은 수용자를 위해 기록을 바로잡아 줘야 하고, 다른 기사들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공해 줘야 한다”고 설명한다. 폴리티팩트 설립자 빌 아데어(Bill Adair) 기자 역시 트위터를 통해 “팩트체킹(Fact-checking)이 강력하고 중요한 저널리즘의 새로운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었다.


사실(Fact)로서 검증(Check)하기

그렇다면 검증, 즉 진실을 확인하는 작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김필규 기자가 밝힌 원칙은 사실을 통한 접근이다. 그는 오피니언을 통한 접근을 경계한다. 김 기자는 “저뿐만 아니라 JTBC의 사장, 보도총괄도 사실이 아닌 오피니언으로 접근하지 말라고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팩트체크라는 제목 자체가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다.”

구체적 방법으로 공신력 있는 자료확보, 최대한 많은 취재원접촉 등이 있다. 김 기자는 “임금피크제 같은 경우가 특히 그랬다”며 예시를 들었다. 팩트체크팀은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두 달 이상 이슈 팔로우업(follow up)을 했다.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창출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처음 나왔을 때는 그 주장을 사실로서 검증하기 어려웠다. “그 말의 진위 여부는 추후에 기업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이슈는 작년 12월 15일자 ‘노동개혁-청년고용의 '팩트'…직접 체크해보니’라는 제목으로 보도됐다. 정부 주장을 사실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린 이유는 공신력 있는 자료를 확보했던 데 있다. “상당히 신뢰도가 높다고 판단할 수 있는 국회입법조사처 자료와 이기권 장관의 전임자였던 방하남 노동부장관이 노동연구원에 있을 때 썼던 논문”이 사용됐다. 전문가 멘트 하나를 인용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추가적인 검증 자료를 확보한다.

취재원은 가능한 많이 확보한다. 김 기자는 “특히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이슈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과 너무 다른 내용을 다루게 될 것 같다고 판단될 경우”를 설명했다. 작년 5월 7일자 보도인 ‘출산 10시간 만에 외출한 왕세손빈, 산후조리는?’과 같은 보도가 그런 사례다. 출산 후 산후조리가 꼭 필요하다는 통념은 학술적으로 검증된 적 없다는 보도였다. 김 기자는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너무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서 무조건 정통한 산부인과 교수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전화해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취재를 했다고 후기를 밝혔다. 취재한 의사만 해도 10명이 넘는다. 

▲‘노동개혁-청년고용의 '팩트'…직접 체크해보니’ 캡쳐화면(왼쪽)과 ‘출산 10시간 만에 외출한 왕세손빈, 산후조리는?’ 캡쳐화면(오른쪽)

정파성 문제는

정파성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팩트체킹은 주제선정부터 정파성 논란에 휩싸이기 쉬운 보도 양식이다. 팩트체킹이 가장 활발한 미국의 경우 정치인 발언을 중점적으로 검증하는데 만약 민주당 정치인의 발언만 집중적으로 다룰 경우 여당 편향적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글로벌팩트체킹서밋에서 공통적으로 나왔던 정파성 고민은 각국 팩트체커들이 당면한 현실문제다. 

김 기자는 주제를 정할 때 시의성을 염두에 둔다고 밝혔다. 결방 등으로 다루지 못하고 넘어간 아이템이 있더라고 옛날에 있던 일을 다시 끄집어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 발언 등은 가급적 아이템으로 선정하지 않는다. 또 취재원을 선택할 때도 정파색이 적은 사람을 최대한 인용하려 한다고도 했다.

▲2015년 7월 글로벌팩트체킹 서밋에 참가한 이탈리아 기자 Alexios 트위터를 통해 후기를 밝히고 있다.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는 보도

김 기자가 중시하는 또 하나의 원칙이 있다. “스스로 이해하지 못한 것은 단 한 단어도 방송에 내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팩트체크는 시청자가 이해할 수 있는 보도를 지향한다. 그는 “아무리 좋은 분석이라도 시청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여러 번 말했다.

팩트체크는 시청자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하루 평균 팩트체크 팀의 회의는 세 번 정도다. 그 중 한 번은 CG(컴퓨터 그래픽)를 구성하는 회의다. 한 회 방송에 사용되는 CG는 평균 10개 정도다. 팩트체크팀에 전담으로 소속된 그래픽디자이너가 있을 정도다. 팩트체크가 방대한 데이터를 풀어내는 방법은 이런 친절함이었다.  

▲‘직장인 평균 월급 264만원…평균치 맞나?’ 캡쳐화면(왼쪽)과 최종 정답 발표 D-4, 수능 '출제 오류' 총정리 캡쳐화면(오른쪽). 모두 시청자의 이해를 돕는 CG를 활용한 팩트체크들이다.


협업저널리즘의 증거들

김필규 기자의 팩트체크에서는 협업저널리즘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시청자가 제보한 아이템이 주제로 선정되는 경우가 있다. ‘한국만 믿는다는 '선풍기 돌연사'…사실일까?’를 분석한 팩트체크는 네이버뉴스에 1,7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이는 한 초등학생의 제보를 통해 진행된 아이템이다. ‘'지급 보장 안 된다?'…국민연금 위기설 확산, 왜’, ‘좁은 국도에서 자전거 라이딩…교통 위반일까?’ 등도 시청자 제보로 진행됐다. 

또 지난 11월에는 세계 정상들이 G20 터키 정상회담에서 한 발언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는 ‘글로벌 팩트체커톤(Global Factcheckathon)’가 있었다. JTBC, 워싱턴포스트, 폴리티팩트 등이 참여했다. “난민들에게 가장 많은 물질적이고 인도적인 지원을 하는 국가는 미국”이라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은 ‘대체로 진실(Mostly True)’판정을 받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창조경제를 다른 나라에도 적용할 수 있는 성공적인 혁신사례로 소개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글로벌 팩트체커톤을 소개하는 사진자료

 

새로운 저널리즘의 시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의 저자 로젠스틸은 2013년 5월 ‘저널리즘의 미래’를 주제 한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언론이 독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날 믿으라고 강요하는 ‘TRUST ME’가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언론이 독자들에게 왜 자신의 기사를 믿어야 하는지를 설명해 줘야 하는 ‘SHOW ME’의 시대다.” 인터뷰를 끝내고 기자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김필규 기자의 팩트체크는 ‘SHOW ME’ 시대에 적합한 새로운 저널리즘의 형태였다. 주제 선정부터 사실검증의 과정들 그리고 마지막 전달단계까지에서 팩트체크팀의 고민은 독자를 향했다.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고, 시청자가 믿을 수 있고 그리고 시청자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를 지향한다.

팩트체킹이 필요한 이유는 변화한 언론 환경에 있다. 정보의 양은 갈수록 늘지만 오히려 정확한 정보를 찾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은 이를 정보화 시대의 학습의 역설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김필규 기자 역시 팩트체크가 가능했던 이유로 정보의 홍수를 꼽았다. “정보의 양이 너무 방대해져서 그만큼 숨기고 감추기도 쉬운 환경이 됐다.” 팩트체크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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