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2013년 12월 발표한 '2014 문화예술 트렌드 분석 및 전망'에서 ‘스낵컬쳐(snack culture)’가 중요한 트렌드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낵컬쳐란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스낵처럼,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에 10∼15분 내외로 간편하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라이프스타일 또는 문화 트렌드를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 기기를 통해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요즘, 현대인들에게 문화생활은 더 이상 따로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통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들을 수도 영화를 한 편 볼 수도 있다. 피키캐스트, 1boon, 잇픽 등 바쁜 현대인들이 짧은 시간 내에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를 제공하는 각종 어플리케이션이나 모바일 플랫폼도 꾸준히 출시되고 있는 추세다.
 

SNS 속에 삶을 담다

짧고 빠르게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그 흐름에 발 맞춰 각광받고 있는 문학장르가 있다. 바로 ‘SNS 時(시)’다. 하상욱, 이환천, 최대호 등 이미 잘 알려진 SNS 시인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이 직접 지은 재치 넘치는 SNS 시로 유명세를 얻었다. SNS 시는 대부분 일상적인 감정이나 고민을 담고 있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특히 하상욱 시인의 시집 <서울시>는 1, 2권을 합쳐 23만부 이상 판매되며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 자리에 올라있다. ‘흔글’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조성용 시인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또한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다. <후회>라는 작품은 9000개가 넘는 ‘좋아요’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 작가 ‘흔글(heungeul)’은 그가 직접 지은 시를 SNS에 업로드한다. 그의 작품 ‘후회’는 3월 22일 기준 좋아요 9,112개를 기록했다. (왼쪽 사진)은 관람객들이 읽어볼 수 있도록 SNS 시인들의 시집을 한 켠에 비치해 두었다. (사진=배소영)

지난 1월 26일부터 3월 13일까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SNS시인시대展>(이하 시인시대전)은 여러 작가들의 SNS시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시인시대전’에서는 하상욱, 이환천, 최대호, 김수안, 손씨, 글배우, 백가희 등 유명한 작가들의 시뿐만 아니라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시를 창작하는 ‘디카시’, 그림이나 캘리그라피를 통해 감상하는 시 작품 등 여러 가지 장르의 SNS시를 전시했다. 반포동에 사는 관람객 임정숙 씨는 전시회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며 특히 “웃음을 자아내는 이환천 시인의 <커피 믹스>가 정말 기억에 남는다”고 관람 소감을 전했다.

▲ 이환천, <커피 믹스> ▲ 김수안, <심각한 청년실업>

SNS 시는 보통의 시에 비해 길이가 짧은 것이 특징이다. 짧은 문장 속에 운율을 살리거나 발음이 비슷한 단어를 사용해 공감과 재미를 이끌어낸다. 또 SNS 매체의 특성상 언제 어디서나 쉽게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시를 감상하고 댓글이나 공감 버튼을 통해 자신의 느낌을 작가에게 직접 표현할 수도 있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SNS 시의 속성이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대중들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고 있다.

▲ 전시 마지막 날인 지난 3월 13일, 시민들이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도서관에서 열린 <SNS시인시대展>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배소영)

시, 더 이상 어렵지 않다

SNS 시집 <십상시>의 저자이자 시인시대전에 작품을 전시했던 김수안 시인은 시의 소재를 가까운 곳에서 얻는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라디오 광고를 듣다가 귀에 쏙 들어오는 표현을 살짝 비틀어 본다든지, 신문에 실린 광고문구에서 단어의 순서를 바꿔본다든지 하면서 소재를 찾는 편이에요.” 그는 가끔씩 초등학교 때 쓴 일기장에서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인스타그램에 가벼우면서도 풍자와 해학을 담은 시를 올리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1’과 ‘일(직업)’이 동음이의어임을 이용해 청년실업을 표현하는가 하면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패러디 해 ‘자세히 봐야 예쁘다고?-그럼 안 예쁜거다’와 같은 문장을 내놓는 식이다.

김 씨가 시를 쓰게 된 계기 또한 복잡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인스타그램은 긴 말 필요 없이 사진 한 장이나 짧은 동영상을 기반으로 순간을 기록하고 나누는 SNS잖아요. 거기에 해쉬태그(#)를 그럴 듯 하게 달면 곧바로 요즘의 핫 트렌드(Hot Trend)가 되는 것이 신기하더라고요.” 그는 작년 초 인스타그램을 통해 SNS 시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사용하던 휴대폰에 장착된 펜으로 직접 '짧은 시'를 써서 SNS에 올린 것이 계기가 돼 그 이후로 꾸준히 시를 창작해 왔다. 일상적인 도구들로, 일상적인 내용을 담아, 일상적으로 시를 써 온 것이다.

쉽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SNS 시 덕인지 최근 대중들은 단순히 시를 읽는 데서 한발 나아가 따라 써보거나 창작하는 활동에 큰 관심을 보인다. 김용택 시인의 시와 그가 직접 고른 101편의 시가 실린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는 독자들이 시를 감상하는 동시에 옮겨 적어볼 수 있도록 필사책의 형태로 출간됐다. 이 책은 교보문고가 제공한 최근 1년간 시집 베스트셀러 부문에서 5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다. 또 최대호 시인의 시집 <이 시 봐라>는 시를 다시 써보고 직접 꾸며볼 수 있는 페이지를 별책으로 구성해 독자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시를 감상하는 관객들이 직접 시를 짓는 풍경도 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시인시대전의 전시구성 중 하나로 관객들이 직접 SNS시를 지어볼 수 있는 ‘나도 SNS 시 작가’ 코너를 마련했다. 이 공간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시 창작 과정에 참여했는데, 벽에 걸려있는 많은 작품들이 SNS시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준다. 

▲ <SNS시인시대展>은 전시회장 한 켠에 관람객들이 직접 SNS 시를 써볼 수 있도록 ‘나도 SNS 시 작가’ 코너를 마련했다. (사진=배소영)

SNS 시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

SNS 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일부 네티즌들이나 시민들은 SNS 문학을 단지 재미를 위해 소비하는 ‘오락거리’정도로만 생각하기도 한다. SNS 상의 문학은 진짜 문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이것도 시냐’, ‘인스턴트화된 문학은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이다.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소속 송진순 교수는 SNS 시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대해 “SNS 문학이 가진 한계를 보완,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끊임없는 비판들을 통해 더 나은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학이 시대를 반영하고, 그 안에 진실을 담고자 한다면, SNS 문학은 비판을 넘어 진정한, 새로운 문학 장르로서의 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수안 시인은 SNS 문학을 둘러싼 논쟁에 대해 “SNS상에서 향유되는 문학이 가벼운 것은 사실”이라고 하면서도 “가볍다는 것과 작품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문학이라는 거대한 담론에서 본다면 SNS에서 유통되는 문학은 전신주에 붙어 있는 일명 '찌라시'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찌라시'도 수백만이 읽고 공감한다면 “분명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 2016년 1월 26일자 SBS 뉴스 [이게 '시'냐고요?..촌철살인 'SNS 시' 열풍]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

앞으로 SNS 문학은

그렇다면 앞으로의 SNS 문학은 어떤 모습을 갖춰 나가야 할까? 송 교수는 “분명 웹상에서 창출되고 있는 작품들이 갖는 한계와 우려는 있다”고 말하면서도 “이러한 작품들과 기존의 문학작품들을 동등 비교하여 그 지위를 논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을 전했다. 웹 상에서의 문학 활동은 기술의 발전으로 진화하기 때문에 형식적인 면에서도 점점 나아질 것이고, 그에 따른 사회적, 문학적 반성과 성찰의 수준도 더불어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김상혁 시인은 시인시대전을 통해 “SNS 시인들이 가진 ‘그림’이나 ‘촬영’의 재능, 혹은 그것들과 시를 적절하게 결합하는 재능을 바탕으로 SNS 시는 얼마든지 다양한 진화를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수안 시인은 지금처럼 문화가 가볍게 소비되는 트렌드에 대해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비춰 볼 때 그렇게 놀랍지는 않은 일”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경향이) 문화를 소비하는 모습이더라도 어느 한 곳에서는 그 문화가 연구되고, 보존되고, 기록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SNS 문학을 향유하는 바람직한 모습에 대해 설명했다.

SNS 문학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발전할 수 있고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잠깐의 유행 후 사라지게 될 지,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게 될지, 그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만 누군가 SNS 문학의 가치를 알아보고, 창작자는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함을 계속해서 발전시킨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디지털 문학의 세계가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들이 말한 SNS 속 문학세계는 어떤 모습일지 그들의 SNS에 들어가 시 한 편을 읽으며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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