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반만에 13만 부 판매. 이 정도면 출판 시장에선 이례적인 ‘대박’으로 평가된다. 초판 인쇄 물량이 2천 부를 넘지 못하는 요즘 같은 불황에는 더욱 그렇다. 높은 인기의 주인공은 지난 1월 15일 출간된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 작년 12월 말 예약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단숨에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1940-50년대 디자인을 그대로 살린 아날로그적 감성과 독특한 마케팅 외에도 이 책이 독자들의 주목받은 이유는 또 있었다. 바로 영세한 1인 출판사의 책이기 때문이다. ‘소와다리’라는 이 낯선 이름의 1인 출판사에서 탄생한 베스트셀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출판사 소와다리 김동근(39) 대표를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년 3주기 정음사 초판본(왼쪽), 1955년 10주기 정음사 증보판(오른쪽)

지난 2월 15일 오후 12시, 인터뷰를 위해 합정역 근처 할리스 커피에서 소와다리 김동근 대표를 만났다. 연한 회색 후드 티셔츠에 트레이닝 바지, 빨간 패딩 조끼를 입고 있던 그는 길쭉한 나무 책상에 홀로 앉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의 편안한 차림은 양복 입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인사를 건네고 옆 자리에 앉았다. 그는 오전에 요청 받은 잡지 서면 인터뷰를 한창 처리하고 있었다. “요즘 서면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렇게 10분이 지나서야 그와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국내 출판사 중 79.3%가 1인 출판사

출판사 소와다리의 책 맨 뒷장에 실린 사업자 등록지는 인천시 남구. 합정역, 그것도 일반 커피숍에 만난 이유를 그에게 묻자 간단한 답이 돌아왔다. “거긴 저희 살림집이에요. 사무실은 따로 없어요. 혼자서 모든 작업을 다하니까 따로 공간이 필요 없거든요. 이 노트북만 있으면 어디든 앉은 자리가 사무실인거죠.” 그는 출판사나 인쇄소, 서점 관계자들이 자주 왕래하는 합정역 근처 카페에서 주로 작업한다고 말했다. 홀로 작업하는 만큼 공간적인 제약도 덜하다는 이야기였다. 소와다리와 같은 1인 출판사는 책 선정부터 작가와의 계약, 편집, 제작, 마케팅 등 출판의 전 단계를 한 사람이 맡는다. 통계를 산출할 때는 직원 수 4인 이하의 소규모 출판사를 1인 출판사로 집계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올해 발표한 ‘2015 출판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국내 출판사 3,606개 중 2,761개, 즉 76.6%가 1인 출판사다. 그는 “보통 1인 출판사의 경우 기획은 본인이 하더라도, 편집이나 디자인 같이 전문적인 영역은 외주를 맡긴다”며 “나는 편집이나, 디자인, 마케팅 모두 혼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와다리야말로 1인 출판사 정의에 딱 들어맞지 않느냐며 뿌듯한 웃음을 지었다.
 

반도체 영업직에서 출판인으로
출판사 퇴직 이후 1년간 1인 출판 준비

그의 하루는 보통 서점에서 출판사로 들어오는 책 주문을 처리하는 데서 시작한다. 오전 11시쯤 서점에서 그 날 들어온 책 주문을 확인해, 창고로 출고 지시를 넣는다. 오후에는 기획 중인 책 편집을 하거나 파주에 위치한 책 창고로 이동해 포장 작업을 한다. 책이 출간되면 오프라인 서점에 방문해 홍보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그는 “출판사 일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이라며, “특별히 사무실이 있어도, 창고를 가거나 서점 영업도 해야 해 앉아 있을 시간이 없을 것”이라 말했다. 출판사 소와다리가 첫 책을 낸 때는 2012년 1월.

“하루 일본어 첫걸음”이라는 평범한 외국어 학습 서적이었다. 언제부터 그는 1인 독립 출판을 꿈꿔왔을까. 그는 10년 전만 해도 반도체 영업일을 하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어느 날 회사 일이 너무 반복적이고 지겨워, 아침에 출근은 않고 광화문 교보문고로 달려갔어요. 평소에 책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 때 출판사 일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죠.” 그는 매번 다른 책을 한 권씩 기획하는 일에서 새로움이 주는 재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후 그는 31살이라는 늦깎이 나이에 일본 문학 출판을 담당하는 ‘북스토리’라는 중견 출판사에 입사했다. “그 회사에선 5년 정도 일했어요. 사실 일은 굉장히 재밌었어요. ‘리스타트 일본어’라는 책을 기획했는데, 반응도 좋았죠. 그런데 늦게 입사하다 보니 상사들과 나이 차이도 있고, 책 만드는 감각에도 차이가 있어 오래 일하지는 못했어요.” 퇴사 후 그는 1년 동안 1인 출판을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출판 학교(SBI, Seoul Book Institute)에서 강의를 듣고, 회사 동료 디자이너를 붙잡고 책 디자인을 직접 배웠다. 그렇게 그의 소와다리 출판사가 탄생했다.


쉽지 않은 1인 출판의 길
다부진 각오 출판사 이름에 넣어

그에게 출판사 이름 ‘소와다리’의 의미를 물었다. 순간 그는 장난기 섞인 표정을 짓더니 “이건 오프더레코드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금까지 인터뷰에서 그는 “소년이 소 등에 올라 피리를 불며 다리를 건너는 동양화를 보고 마음이 편해져 소와다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답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소위 ‘인터뷰용’이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졸업 때까지 검도를 오래 했는데, 검도나 유도 훈련 중에 ‘소와다리’라는 훈련 방법이 있다”며 이름을 짓게 된 배경을 언급했다. 소와다리란 한 선수가 여러 명의 선수를 상대하며 겨루는 1대 다 연속 자유대련 방식의 훈련법이다. 그는 “1인 출판사를 차리면서 그 한 명의 마음으로 치열하게 끝까지 해내야 겠다”고 생각해 이 이름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녹록치 않은 1인 출판 사업에 뛰어들면서, 쉽게 포기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각오가 담겨 있는 셈이다. 실제로 공격적인 광고와 마케팅을 내세운 대형 출판사에 비해, 소규모 자본의 1인 출판사는 열세인 것이 사실이다. 그는 “서점에서 책이 놓여 있는 순서나 자리엔 모두 광고 값이 붙는다”며, “책이 일단 노출되는 데 비용을 쏟아야 하는데, 1인 출판사는 여건 상 힘들어 비용 지출보다 SNS 등을 많이 활용해 노출시키는 편”이라 설명했다. 그에게 월 수익은 얼마인지 조심스럽게 묻자, “먹고 사는 만큼은 번다”는 무난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 전 한달 총 매출이 천만 원 정도”라고 말했다. 2013년 기준 출판업 1인당 평균 매출액은 일반단행본의 경우 9천 4백여만 원, 출판사 평균의 9분의 1 수준인 셈이다. 그는 “총 매출 중에 절반 정도가 책 제작 비용으로 나가고 200만 원 정도가 다음 책을 만드는 데 쓰이기 때문에, 순수하게 월급처럼 돌아오는 건 300만 원 정도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출판사에서 상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판매 부수는 1년에 2000부”라며 “1000부를 팔아봐야 인건비나 제작비를 떼고 나면 수익이 남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업적 성공 안긴 초판본 출간
당시 디자인, 표기 그대로 복원
“대형 출판사들과 차별화 위한 선택”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년 정음사 초판본 내용 중 일부.

월 매출 천만 원의 소규모 1인 출판사가 상업적 성공을 거둔 계기는 ‘초판본 출간’이었다. 초판본은 책이 처음 나왔을 때의 내용과 디자인, 표기와 활자까지 그대로 복원해 최대한 당시의 느낌을 살린 책을 말한다. 초창기 소와다리의 주력 분야는 일본어, 영어 학습 서적과 외국 동화 원서였다. 그러던 중 2014년 3월 <어린왕자>의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버전을 출간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인간실격> 등 외국서적 초판본 출간에 본격 뛰어들었다. 지난해 말부터는 한국 시집으로 눈을 돌려,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초판본을 복간해 출간했다. 낯익은 시집이었지만 독자들은 향수를 자극하는 아날로그 감성에 높은 호응을 보였다. 2월 2-3주차인 현재까지도 두 권의 책은 인터넷 서점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한국출판인회의가 집계한 2월 2주차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7위를 차지하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그의 동료인 1인 출판사 파란책 김재운 대표는 “이번 초판본 흥행은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초판본을 제작해 온 노력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동근 대표가 처음 문학 작품의 초판본 출간을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고전 문학을 택한 이유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되어 자유롭게 출판이 가능하기 때문이었고, 초판본 디자인을 택한 것은 다른 책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2011년 개정된 저작권법에 따르면 이미 사망한 작가의 경우 사후 50년, 사망하지 않은 작가의 경우 사후 70년간 저작권이 유효하다. 1934년 사망한 김소월과 1945년 사망한 윤동주 모두 이미 저작권은 소멸됐다. 그는 “고전 문학 시장은 수요가 꾸준해 매력적이지만, 1인 출판사가 민음사의 인지도나 펭귄 클래식의 디자인, 더 클래식의 가격을 따라가기는 힘들다”며, “특별한 취향을 가진 소수를 위해 초판본 출간을 기획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진달래꽃>의 경우 1925년 중앙서림 초판본의 내용과 활자를 그대로 복원했고, 세로 쓰기와 우측 넘김 구성까지 살렸다. 옛 표기법과 한자 표기도 눈에 띄었다. 가독성보다는 복원 자체에 더 공을 들여 독자들에게 ‘소장하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겠다는 의도였다. 초판본 자료의 출처를 묻자, 그는 “<진달래꽃>의 경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공받았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초판본을 소장하고 있던 독자가 제공했다”고 답했다. 그는 개인 독자들에게 초판본 자료는 상당히 고가의 물건이라 따로 요청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진달래꽃> 흥행 이후 갖고 있는 초판본 자료를 제공하겠다는 연락이 많이 오고 있다”며 “그 중에는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시인의 <청록집>도 있다”고 언급했다.


우편 봉투 포장․ 육필 원고철 동봉 등
시 의미 살릴 수 있는 이벤트도 직접 기획

▲ <진달래꽃> 1925년 중앙서림 초판본 패키지.

인터뷰를 시작한 지 두 시간여 지났을까. 그는 “오늘 <진달래꽃>의 책 포장 작업이 있다”며 나갈 채비를 했다. 이야기를 더 나누고자 기자도 동행했다. 이 날 작업해야 할 <진달래꽃>의 수작업 포장 작업은 총 100부. 초판본이 성공한 배경에는 ‘패키지 포장’이라는 독특한 이벤트도 한 몫 했다. <진달래꽃>은 ‘경성에서 온 소포’라는 기획으로 우편 봉투에 대한제국 시절 우표를 붙이고, ‘경성 25. 12. 26’, ‘속달편 경성국 329호’, ‘경성촌 연건동 121번지 김정식(김소월 본명)’의 도장도 직접 제작해 찍었다. 독자가 시인으로부터 직접 시집을 건네받은 듯한 희소적 가치를 건드린 마케팅이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역시 1948년 3주기 초판본과 1955년 10주기 증보판, 윤동주 육필 원고철과 판결 서류 및 사진을 함께 제공했다. 그는 이러한 이벤트를 기획하게 된 배경에 대해 “물론 책이 더 잘 팔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책과 시의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이벤트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진달래꽃>의 경우 시간여행을 주제로 1대1 소통의 느낌을 주고,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육필 원고철을 넣어 일제 강점 하 시를 쓴다는 것의 의미를 독자들이 새기길 바랐다는 것이다.

합정역에서 2200번 버스를 타고 1시간을 달려 파주에 있는 책 창고에 도착했다.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착하자마자 그날 포장해야 할 책들의 리스트를 살폈다. 그의 책들은 오른쪽에서 두 번째 줄 가장 안쪽 선반에 놓여 있었다. <진달래꽃>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외에도 그가 이전에 출간한 외국 서적과, 컬러링 북 등이 쌓여 있었다. 그는 “보통 하루에 500부에서 1000부 사이를 포장하는데 오늘은 책이 아직 출고가 안 되어 조금밖에 작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책 뒤 쪽에 엽서를 끼우고, 노란 우편 봉투에 넣어 포장하는 일을 도왔다. 작업을 도우며, 베스트셀러 진입 이후 마음가짐의 변화나 주변의 시샘이 없는지 슬쩍 물었다. 그는 조금 고민하더니 “보통 1인 출판사 사장님의 로망은 자신만의 멋진 사옥을 짓는 것인데, 주변에서 빌딩 언제 올리냐고 놀린다”며 웃었다. 잠시 뒤, 그는 지금의 큰 인기가 사그라들고 난 이후에 대한 고민도 내비쳤다. “처음에는 2천-3천만 원 규모로 시작해서, ‘망해도 작게 망하자’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나가는 돈만 억 단위”라며 “나중에 책이 잘나가는 시기가 끝나면 어떤 박탈감이 올 지도 모르겠다”며 솔직히 말했다.

▲ <진달래꽃> 포장 작업을 하고 있는 소와다리 김동근(39) 대표.

모든 작업이 끝나고 오후 6시쯤 그의 책 창고를 나섰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기자가 만난 그는 ‘영리한 출판인’이었다. 문학 작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서도, 상업적 성공을 도외시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소박한 출판인’이었다. 100부 팔리는 대박짜리 1권보다 1부씩 꾸준히 팔리는 100권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그였다. 그를 떠올리며, 합정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그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웬만하지 않은 1인 출판사의 나날>을 클릭했다. 뉴스피드를 내리던 중 2015년 12월 23일 게시물에 눈이 멈췄다. “제게 있어 <초판본>은 원본을 얼마나 똑같이 복제했느냐 혹은 복원했느냐 하는 그런 시각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복제본에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그 안에 있는 글이 중요하죠. 다만 너무 익숙해져 잊고 지내던 시를 다시 읽도록 하는 장치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이 받으시는 건 조잡한 복제본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입니다. 말과 글을 빼앗긴 어려운 시기에도 창작을 했던 마음입니다. 그 마음 전하기 위해 이벤트를 하는 것입니다.” 화면 대신, 책에 대한 그의 진심에 ‘좋아요’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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