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차 핵실험 강행 이후 일본 내에서 선제공격능력을 더 강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2016년 세계 군사력 순위(GFP)에 따르면 일본이 이미 세계 9위의 군사강국이지만, 북한의 핵 무장에 대처하기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의 레이더를 피해 군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순항미사일을 갖추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일본 자위대는 그동안 요격용 미사일만 이지스함 등에 갖춰왔다. '방위를 위한 최소한의 전력'만 갖추도록 헌법 9조에 명시돼있어서다. 일본은 헌법 제 9조 1항에 전쟁을 포기할 것을 명기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제 2항엔 전력을 포기하고 교전권을 부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지난해 국내외의 거센 반발을 뚫고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한데 이어 본격적인 군사력 증강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표적 보수 일간지인 산케이신문은 지난 2월 21일 순항미사일을 배치해 적기지 공격능력을 정비해야한다고 말했다. 일본 국방정책 담당 부처인 방위성 고위 간부의 말을 인용한 기사였다. 적기지 공격능력이란 적국이 자국 또는 주일 미군 기지를 향해 미사일 공격에 나설 기미가 보일 때 적의 기지를 선제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즉, 순항미사일을 배치함으로서 ‘적의 공격 기미가 감지됐을 때 먼저 공격’할 수 있는 체제로 바꾸자는 얘기다. 일본은 이제까지 헌법 9조에 입각해 ‘공격을 당한 뒤 방어’하는 안보체제를 고수해 왔다.

방위성 간부는 같은 기사에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도입하자‘는 일각의 주장은 ‘비효율적’이라며 일축했다. 북한이 일본을 공격한다면 동시에 다수의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높고, 사드로는 모든 미사일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즉, 보다 넓은 영역을 방어할 수 있는 무기를 추가 배치하는 것보다는 선제공격이 가능한 무기를 갖추는 것이 더 효율적이란 얘기다. 산케이는 이어 “북한의 미사일이 성능 등 모든 면에서 계속 발전할 것이 확실한 현재 상황에서 기존의 안보 정책으로는 북한의 위협을 제거하는 것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공격능력 정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좌) 순항미사일을 배치하자는 주장이 실린 2월 25일 산케이신문의 기사 캡쳐화면 / (우) 순항미사일의 필요성을 언급한 2월 21일 요미우리신문의 사설 캡쳐화면

또 다른 보수 일간지인 요미우리신문도 2월 21일자 ‘미사일방어 한미와의 전략적 협력이 중요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요격시스템만으로는 모든 미사일을 막을 수 없다”며 순항미사일 배치필요성을 강조했다. 요미우리는 “헌법에도 적국이 일본에게 미사일공격 의사를 표시한 경우엔 적기지 공격이 가능하다고 적시돼 있다”면서 순항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지적하기도 했다.

중도적 논조인 마이니치신문도 안보능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이니치는 2월 22일자 ‘민주당·유신의당의 안보대책, 합의할 수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등 일본주위의 안전보장환경이 급박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여야가 안보정책의 공통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격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보다 더 강력한 안보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엔 동조한 것이다. 주요 종합지(5대 일간지 중 경제전문지인 닛케이신문을 제외한 산케이신문, 요미우리신문,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는 사실상 진보적 논조의 아사히신문을 제외하고 모두 안보능력 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강한 군사력을 요구하는 여론이 주류 언론을 통해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도 개헌 군불을 때며 자위대를 ‘선제공격 가능한 군대’ 만들기에 나섰다. 아베신조 일본총리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예고한 3일 뒤인 2월 5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위대를 군대로 격상시키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이 군대를 보유하지 못하도록 한 헌법 9조 2항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 (표) 헌법 9조 개헌을 향한 아베 정권의 주요 움직임


▲ (표) 직접 제작

지난해 9월 아베총리는 안전보장관련법을 통과시켜 집단적자위권을 용인했다. 안전보장관련법은 헌법 9조의 해석을 변경한 각의 결정(내각(內閣)이 그 직무와 직권을 행하기 위하여 가지는 회의)을 뒷받침한 법이다. 이 법을 근거로 자위대의 활동범위가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넓어졌다. 아베총리는 이에 멈추지 않고 “헌법에 자위대 존재를 명기해야”한다면서 헌법 자체를 뜯어 고쳐 자위대를 명실상부한 군대로 바꾸려는 의사를 피력하고 있다. 자위대가 군대로 격상되면 이제까지 방위를 목적으로만 사용해왔던 군사력을 선제공격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겠다고 예고한 상황에서 국민의 불안 심리를 틈타 개헌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이다.


여당인 자민당의 고무라 마사히코 부총재도 아베총리가 개헌을 주장한 이튿날인 2월 6일 “(현재 안보체제로는)북한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킬 수 없다”며 아베총리의 개헌론에 힘을 실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고무라 부총재는 “북한은 최소한 300발의 중거리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어 일본대륙의 대부분을 사정권에 넣고 있다”며 안보체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카타니 겐 방위상도 27일 TV도쿄에서 "국가 안전보장의 기본적인 대목을 국민이 알기 쉽게 제정해야 한다"며 헌법 9조 2항의 개헌 필요성을 언급했다.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주요 인물들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후로 부쩍 개헌을 자주 입에 올리고 있는 것이다.

▲ 아베 신조 일본총리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군사력 강화 주장에 제동을 거는 세력도 있다. NHK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을 비롯한 공산당, 유신당, 사민당, 생활당 등 5개 야당은  ‘안전보장관련법 폐지’ 법안과 이를 대체할 법안을 2월 19일 중의원에 공동제출했다. 안전보장관련법을 폐지하고 자위대가 헌법 범위 내에서만 활동하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다. 대체할 법안에는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일본 주변’으로 규제한 내용과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장소에 자위대를 파병할 수 없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5개 야당은 “안전보장관련법은 명백한 위헌으로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을 모았다고 밝혔다.

▲ ‘아베총리여, 헌법이 당신의 것인가’라는 제목의 아사히신문 사설 캡쳐화면

진보적 논조인 아사히신문도 아베총리의 개헌 야욕에 제동을 걸었다. 아사히는 3월 4일 ‘아베총리여, 헌법이 당신의 것인가’라는 사설을 싣고 아베총리의 개헌론을 정조준 했다. 아사히는 “임기 내에 개헌을 하고 싶다”고 발언한 아베총리의 발언을 소개한 뒤 “헌법은 권력자인 당신의 것이 아니다”라고 아베총리를 강하게 비판 했다. 국민 반대가 높아 개헌할 수 없다고 판단한 아베총리가 해석을 변경해 개헌을 우회한 것에서부터 ‘헌법을 가볍게 여기는’ 자세가 보인다는 것이다. 아사히는 2월 6일의 사설에서도 “안전보장관련법과 헌법 9조의 충돌을 없애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아베총리의 발언을 비판했다. 아베총리는 전국 대학에서 헌법을 가르치는 교수 등 헌법학자 대다수로부터 ‘안전보장관련법이 헌법 9조에 기술된 자위의 범위를 넘는다’는 이유로 위헌이라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이에 아베총리가 안전보장관련법을 철회하기는커녕 헌법 9조를 바꾸자고 주장하고 나서자 아사히가 “본말전도의 논리”라고 꼬집은 것이다. 아사히는 “안전보장관련법을 철회하는 것이 순리”라고 아베총리에게 맞불을 놓았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일본이 북한 문제를 활용하여 헌법 개정이나 군사력을 증강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북한의 도발 못지않게 동북아 안보의 불안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만큼이나 일본의 재무장과 개헌 역시 우리 안보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이다. 양 교수는 “일본이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을 통해 한국˙중국과 신뢰를 구축하지 못한 채 군사력 강화에 나선다면 각국의 대립과 갈등, 심지어 분쟁가능성마저 야기할 수 있다”며 “일본은 미일동맹을 토대로 평화헌법과 전수방위를 지킴으로서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 미국 군사력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핵전력을 제외한 50여개 평가요소를 종합해 매긴 2016년 세계 군사력 순위. 현재 일본은 방위 가능한 무기 위주만으로도 세계 군사력 9위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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