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문자 세례 … 유권자는 ‘짜증’

송파(을) 지역 유권자인 최형아(26)씨는 지난달 지역 예비후보에게 홍보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대학 동문임을 밝히며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였다. 문자를 보자마자 든 첫 느낌은 ‘불쾌함’이었다. 최 씨는 “아무리 동문이라고 해도 내 정보가 선거 운동에 쓰인다는 게 기분 나빴다”며 “공약은 알려주지도 않고 학연에만 의존하는 것 같아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송파(병) 지역 유권자인 전영주(54)씨는 “선거홍보 문자메시지가 하루에 두 통씩은 온다”면서 “대부분은 읽지 않고 삭제한다”고 했다.
▲ 최형아씨가 지난달 받은 홍보 문자메시지. 후보 SNS로 연결할 수 있는 링크가 보인다. SNS에는 여론조사에 참여해 달라는 내용과 홍보 포스터 한 장이 주기적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었다. 공약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 전영주씨가 2월 27,8일 이틀 간 받은 선거 홍보 문자.
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예비 후보들은 선거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양새다. 주요 홍보 수단 중 하나는 문자메시지다. 하지만 대다수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홍보 문자메시지로는 좋은 정치인을 가려내기 어렵다. 집으로 오는 선거 유인물이나 포스터는 쌍방향이 아닌 일방적이다. 유권자들이 능동적으로 정치인을 파악할 수는 없을까? 이 질문에 한 발 빨리 행동을 시작한 이들이 있다. IT 개발자들이다.
 
옷 사기도, 장보기도 다 인터넷으로 하는데 왜 정치는 못하나?
 
“장보는 것도 핸드폰으로 하고 옷도 핸드폰으로 산다. 친구랑 채팅도 핸드폰으로 하는데 왜 유독 정치만 (인터넷으로) 못하나?”
 
지난해 12월 한겨레 정치BAR에서 개최한 ‘시민아 정치하자 피티쑈’ 강연 중 이진순 대표(정치벤처 와글)가 던진 질문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더 나은 정치’를 만들어 보자는 IT 개발자들이 있다.
 
① ‘대한민국 정치의 모든 것’ - 클릭 한 번으로 정치인 발언록까지 속속들이 볼 수 있어
 
‘대한민국 정치의 모든 것’(이하 대정모) 웹 페이지의 박은정(팀포퐁) 대표는 “뛰어난 IT 기술로 유명한 한국이지만 아직 시민들이 정치 데이터에 접근하는 것은 불편하다”며 “사람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정책과 의정활동에 관심을 갖도록 IT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대한민국 정치의 모든 것’ 페이지 화면. 1대부터 19대까지 모든 정치인의 약력과 입법 활동 사항을 열람할 수 있다. 정치인 사진을 이름과 함께 제공한다. (http://ko.pokr.kr/)
대정모는 유권자가 정치인의 의정활동을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웹 페이지다. 박 대표는 “대의민주제에서 일반 국민들의 정치는 투표와 모니터링(감시)의 연속”이라며 “특히 투표 단계에서 후보자의 이력보다 이전 행보를 보고 판단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대정모 페이지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대정모 페이지에서는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률안과 회의 발언록을 열람할 수 있다. 법률안을 클릭하면 공동 발의한 의원 명단도 사진과 함께 볼 수 있다. 법안 원문을 확인할 수 있는 링크도 걸어두었다. 데이터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데이터 크롤링’ 기법을 사용해 가져왔다. 데이터 크롤링이란 코딩을 이용해 웹페이지에서 자동으로 원하는 정보를 긁어오는 방법이다. 출처가 확실하기 때문에 데이터의 객관성이 보장된 셈이다.
▲ 국회의원을 선택하면 개인 페이지로 이동한다. 기본정보와 입법 활동 내역, 회의 발언록 등을 볼 수 있다.
대정모 페이지는 사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낸 후원금을 통해 운영된다. 박 대표는 “우리 팀 누구도 이 일로 금전적 보상을 받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선사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를 위해 내 능력이 쓰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모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페이지를 운영하며 우리도 전문성을 개발하며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② ‘우리동네정치인’ - ‘우리 동네 정치인’ 정보만 골라서 제공해주는 맞춤 어플리케이션
 
어플리케이션 ‘우리동네정치인’은 조금 더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역구를 입력하면 내가 표를 행사해서 뽑아야 하는 정치인이 화면에 뜬다. 예를 들어 송파(병) 지역 유권자에게는 대통령과 서울 시장, 송파구청장, 송파(병) 지역 후보에 대한 선거권이 있다. 이들이 ‘나의 정치인’이다. 정치인을 선택하면 기본 약력과 공약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대정모 페이지와 다른 점은 ‘제안하기’ 기능을 통해 정치인에게 직접 건의사항이나 정책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우리동네정치인’ 어플리케이션 화면. 내가 표를 행사해서 뽑는 ‘나의 정치인’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들이 어떤 공약을 내걸었는지 보여준다. 정책을 제안할 수도 있다.
개발자인 박준영·이기석(와이어스 주식회사)씨는 대학생이다. 이 대표는 “사람들이 중앙 정치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자기 동네 국회의원 이름은 모른다”며 “지역 정치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개발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 “정치인과 유권자가 지역 정치를 위한 동반자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무조건 정치인을 비판하기보다는 유권자가 우리 동네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을 직접 파악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동네정치인 어플리케이션은 2월 중순에 출시 됐는데 3주 만에 다운로드 2000건을 넘었다.
 
③ ‘와글어사’ - 정치를 게임처럼, 유권자는 정치인을 감시하는 ’암행어사’
 
우리동네정치인이 사용자에게 좀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카카오톡과 비슷한 UI(user interface · 사용자 환경)를 구현했다면, ‘와글어사’ 어플리케이션은 게임 형식을 빌려왔다. 유권자 개개인은 모두 우리 동네 정치인을 감시하는 ‘암행어사’가 된다. 주요 감시 업무는 ‘공약 이행도’와 ‘회의 참석 여부’다. 
▲ 기자가 사는 선거구인 서울 송파(병)을 적용해 본 모습. 활동 빈도에 따라 마패를 지급받을 수 있다. ‘우리동네의원’을 누르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자동 연결된다. 해당 국회의원의 공약 완료도와 회의 출석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회의 시작 시 출결뿐만 아니라 끝날 때 참석 여부까지 체크해 ‘완전 출석’, ‘지각’, ‘땡땡이’로 구분해 알려준다. 공약 완료 여부는 한국 메니페스토 실천본부로부터 정보를 제공받는다.
방승원 대표이사(와글월드, 공동대표 박세현)는 “백화점도, 금융도 다 손바닥(핸드폰) 안에 들어있는데 딱 하나 없는 게 정치 분야”라며 “스마트폰을 마패처럼 사용해 정치인을 감시해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게임 형식을 빌린 이유는 ‘재미’다. 방 대표이사는 “재밌어야 다들 참여할 것 아니냐”며 “정치를 퇴근시간에 게임처럼 즐기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감시뿐만 아니라 소통에도 신경을 썼다. ‘어사주막’을 누르면 SNS 페이지처럼 유권자끼리 게시 글과 댓글로 소통이 가능하다. 해당 지역 유권자가 100명 이상 모이면 유권자와 국회의원이 직접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담벼락 페이지가 활성화된다. 방 대표이사는 “국회의원을 응징하자는 게 아니라 암행어사라는 재밌는 컨셉을 통해 정치인과 유권자 사이의 높은 담을 허물고자 한다”고 말했다.
 
한규섭(서울대 정치외교학부 정치커뮤니케이션센터)교수는 위 사례들에 대해 “유권자들에게 정보 생태계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웹이나 어플리케이션의 특성 상 많은 사람을 모으는 게 목적이 될 텐데 그렇게 되면 내막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단순 폭로성 정보가 제공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IT 개발자 끼리 아이디어 공유 …“‘더 나은 민주주의’ 위해 능력 보탤래요”
 
물론 위 플랫폼들은 완벽하지 않고, 완성된 것도 아니다. 개발자들은 사용자 의견을 참고하면서 웹과 어플리케이션을 계속 업그레이드시킨다. 또 더 나아가 기술적인 발전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IT 기술을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한다.
▲ <왼쪽 위> ‘와글어사’ 방승원 대표이사 <오른쪽 위> ‘우리동네정치인’ 박준영·이기석 공동대표 <아래> ‘더 나은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개발자들’ 5차 모임
이 고민을 나누기 위해 꾸려진 단체가 ‘더 나은 민주주의 플랫폼을 만드는 개발자들의 모임’(약칭 더민플)이다. 개발자들에게는 ‘오픈소스’ 라는 특별한 문화가 있다. 서로의 창작물(소스 등)을 자유롭게 공유하고, 함께 발전해 나가는 문화다. 더민플에서 개발자들은 기술적인 부분을 공유하기도 하지만 왜 이 플랫폼을 만들고 싶은지 철학을 나눈다. 또 어떻게 하면 개발 능력을 ‘더 나은 민주주의’를 만드는 데 쓸 수 있을지도 토론한다. 기술과 생각 모두 ‘오픈소스’ 방식을 통해 발전시켜 나가는 셈이다.
 
정치와 관련된 웹 페이지나 어플리케이션에서 수익 모델을 찾기는 어렵다. 취재하는 동안 만난 개발팀은 모두 후원이나 재능기부, 개인 자금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와글어사’ 방 대표는 “정치 분야 플랫폼은 특히 광고가 잘 붙지 않는다”고 했고, ‘우리동네정치인’ 박 대표도 “수익 모델을 준비하고 있지만 아직은 자본이 부족하다보니 마케팅 비용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단순히 수익만 생각하면 다른 플랫폼 개발이 낫다는 게 공통적인 의견이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정치 플랫폼 개발에 뛰어든 것일까? 지난달 25일 저녁 7시 서울시 NPO 지원센터에서 열린 더민플 5차 모임에 참석한 개발자들에게 묻자 질문을 무색하게 만드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님은 기사로, 저희는 개발로 각자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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