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및상식’, ‘논작문비평’, ‘상식모아요’, ‘필기복원방’…

이들은 언론사 입사 지망생들을 위한 온라인 동호회 ‘언론인을 꿈꾸는 카페-아랑’의 주요 게시판 이름이다. 게시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대부분의 언론사 입사 시험에서는 상식 수준과 논술 실력을 평가하는 필기시험과 면접, 이 두 가지 항목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류, 필기, 면접의 세 단계를 거치지만 내용이 많은 필기시험과 정해진 틀이 없는 면접에 대한 수험생들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 그래서일까? 언론사 입사를 위해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상식과 맞춤법, 논술 등을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 언론사 입사 지망생들을 위한 포털사이트 Daum의 온라인 동호회 ‘언론인을 꿈꾸는 카페-아랑’

한국 언론교육의 현실

속칭 ‘언론고시’라 불리는 언론사 채용문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현재의 입사 방식으로 인해 제대로 된 저널리즘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이봉수 교수는 “(언론사 입사를 희망하는 수험생들이) 글쓰기 교육 등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저널리즘의 가치와 표준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그런 상태에서 입사하면 언론사의 조직문화와 논조에 쉽게 물들게 되고 때로는 왜곡보도를 서슴지 않게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언론사들의 공채제도가 한국 저널리즘에 해가 됐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프런티어저널리즘 스쿨(이하 FJS)을 이끄는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 학부 이재경 교수는 “공채제도가 인재를 공평하게 채용하는 시스템인 것은 맞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특유의 ‘연줄문화’가 되어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저널리즘의 발전을 방해했다. 결국 언론사에서도 기본적인 R&D (Research & Development: 연구개발) 기능인 기자교육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언론사의 채용 방식 논란과 더불어 한국의 언론인 양성 교육의 문제점은 예전부터 꾸준히 지적돼왔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는 FJS 재학생 이형관(30) 씨는 “신문방송학과에서 배우는 수업 내용들은 사실 기자와 PD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말하며, 전문성 있는 저널리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한국형 저널리즘 스쿨의 등장

이 같은 문제점들을 보완해소하기 위해 우리나라에도 ‘실무 중심의 교육’과 ‘역량 있는 저널리스트 배출’을 목표로 하는 저널리즘 스쿨에 주목하는 추세다. 그 선두에는 2007년 1기 학생을 모집한 프런티어저널리즘스쿨(FJS)과 2008년 설립된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있다. 사실 미국, 영국 등 앞선 저널리즘 교육을 선보이는 국가에서는 저널리즘 스쿨의 존재가 특별하지 않다. 특히 미국의 스쿨(School)은 우리나라의 학부 정도의 개념으로, 특별한 교육기관이라기 보다 대학의 한 부분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배우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언론인이 되기 위한 실무 중심의 교육을 받는다. 또 그 학생들은 실제 언론사의 인턴 등을 경험하면서 실무를 익히기도 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대학에서는 이론 중심의 저널리즘 교육이 대부분이다. 4년 간의 학부 과정에서 실무 교육의 비중은 턱없이 낮다. 그래서 한국에서 저널리즘스쿨이 갖는 의미는 더욱 크다. 실효성 있는 저널리즘 교육에 대한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소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되기 때문이다.

왜 저널리즘 스쿨인가

저널리즘 스쿨은 공통적으로 실무 중심의 저널리즘 교육을 지향한다. 대학교 학부 과정이나 단기로 운영되는 사설 아카데미 과정은 여건 상 개개인이 충분한 저널리즘 교육을 받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고시식 채용문화에 맞게 글쓰기와 같은 기술적인 부분만을 다루며 아주 고액을 요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저널리즘 스쿨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맞춤 첨삭 지도(FJS ‘튜토리얼’, 세명대 ‘튜터제도’)를 제공하고, 실습을 위해 자체적으로 인터넷 뉴스 매체(FJS ‘Story of Seoul’, 세명대 ‘단비뉴스’)를 운영하는 등 실효성 있는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개별 맞춤식 교육은 학생들에게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다. FJS 학생 이형관(30) 씨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들은 주로 해외학자들의 과거 논문이기 때문에 시간적•물리적으로 괴리가 있고, 현장에 대한 이해능력도 갖추기 어렵다. 그러나 FJS는 이러한 결핍을 채워준다”며 받고 있는 교육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는 “알뜰한 보살핌을 받기 힘들었던 학부와 비교되기 때문인지 재학생의 만족도는 대단히 높다”고 말한다. 

▲프런티어 저널리즘 스쿨은 매년 25명~30명의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으며 2016년 2월 현재 총 163명이 기자, PD등으로 진출했다. 사진 제공 = FJS 홈페이지
지난 1년간 언론사 채용이 많지 않았음에도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졸업생·재학생을 합쳐 24명(입학정원 27~29명)의 언론사 합격자를 배출했다. 세명대 측에 따르면, 2008년부터 매년 25~30명 정도를 선발해왔던 저널리즘 스쿨은 개원 후 7년여 동안 언론사 114명, 광고/홍보/SNS회사 14명 등 모두 128명의 학생을 입사시키는 데 성공했다. FJS의 경우, 매년 기자와 시사교양pd 부문을 합쳐 약 30명 내외의 학생들을 선발한다. FJS 측은 홈페이지 자료를 통해 2015년 11월 13일 기준 언론사 및 방송사 누적 합격자 수는 총 153명인 것으로 밝혔다. 이는 저널리즘 스쿨의 실무중심, 개별 맞춤식 교육이 언론사 입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있음을 증명한다.

저널리즘스쿨은 최신 동향에 맞는 교육을 학생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최근 해외 언론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디지털 저널리즘’에 대한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이재경 교수는 “(저널리즘 개론서인) ‘저널리즘의 기본원칙(빌 코바치, 톰 로젠스틸 저)’을 읽게 하고, 몇 가지 정보 등을 알려준 후, 스스로 찾아가게끔 하는 식으로 가르친다.”고 말한다. FJS에 재학 중인 이지현(26) 씨는 저널리즘 스쿨의 교육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와 디지털 저널리즘에 대처할 수 있도록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며, 그 이유에 대해 “이제 원하면 누구든지 기사를 쓰고 이를 유통시킬 수 있지만, 제대로 된 저널리즘의 윤리들을 지켜서 쓰는 기사만이 가치가 있다고 배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빠르게 변해가는 저널리즘의 영역에서도 전체를 관통하는 원칙은 변하지 않음을 학습함으로써 디지털 저널리즘에 잘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는 것이다. 이봉수 교수는 “아주 충분치는 않지만 디지털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데 바탕이 되는 교과목들이 여럿 개설돼 있다”고 말하며, “수업에는 탐사보도와 데이터 저널리즘 전문가들의 이론과 실습강의가 포함된다. 스튜디오에는 영상제작 등을 위해 최신설비들을 거의 다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단비뉴스’와 FJS의 ‘story of Seoul’


저널리즘 스쿨이 해법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재정과 인력에 대한 우려는 계속되고 있다. 학생들의 수강료는 물론 강사초빙, 시설마련, 프로그램 연구까지 소수의 인원이 전체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봉수 교수는 “입학정원을 늘리면 교육이 부실해지고 늘리지 않으면 재정압박을 받게 된다. 교수들도 모두 연구실에 야전침대가 있을 정도로 헌신을 요구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양질의 교육과 재정부족 사이에서 씨름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재경 교수도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하니까 방향과 방법에 대한 논의가 유동적이긴 하다. 그러나 운영 자체가 쉬운 것은 아니다. 지도인원도 적어서 거의 사회 운동하는 것처럼 일을 하고 있다”며 소수의 교육자들이 저널리즘 스쿨 시스템 전체를 만들어 나가는 데 따른 어려움을 전했다.

운영상의 어려움과 함께 학생들의 우려도 있었다. 저널리즘 스쿨이 새로운 사교육 시장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미디어오늘’이 예비 언론인 5명과 함께 연 집담회에서는 저널리즘스쿨이 새로운 스펙이 되지 않겠냐는 지적과 함께 합리적 채용에 대한 필요성도 제기됐다. 이재경 교수는 이런 지적에 대해 “저널리즘 스쿨은 지망생들이 기자로서의 자질을 검토하는 곳이다. 이곳을 선택한다는 것은 곧 기자로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저널리즘 스쿨에서는 세상을 먼저 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면서도 “언론사의 시험식 채용방식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봉수 교수는 미디어오늘의 기사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기사를 게재하며 ‘저널리즘 스쿨은 언론고시에서의 학벌을 깨려는 시도’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저널리즘스쿨과 한국 저널리즘의 미래

한국 저널리즘스쿨은 일명 언론고시라 불리는 기존의 언론사 채용방식의 병폐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이다. 이재경 교수는 “이미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 있을 만큼 훈련된 인재를 배출해왔다”며 “교육이 바뀌어 이런 인재들이 늘어나면 현장이 바뀌고 현장이 바뀌면 결국 대한민국 언론도 달라질 것”이라며 긍정적인 예측을 내놓았다. 대한민국은 현재 주먹구구식 채용시험, 사쓰마와리(경찰서 출입기자 제도), 연줄문화 등 언론계에 제기되는 고질적인 문제들로 시작해 저널리즘을 향한 불신이 팽배해있다. 이 속에서 저널리즘 스쿨과 같은 교육 현장의 본질적인 혁신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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