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슬로푸드청년대회(We Feed the Planet & Terra Madre Giovani)에 다녀온 청년 3명의 이야기

올해 1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연간고용동향에 따르면 청년들은 ‘정년 등 안정성이 있는 곳’을 가장 취직하고 싶은 일자리로 꼽았다. 전년 동월에 대비해 농림어업숙련종사자나 관리자도 감소했다. 2015년 취업포털 잡코리아 좋은일연구소가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100대기업 고용브랜드 조사’에서는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한국전력공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코레일’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이처럼 대부분 청년들이 안정성 높은 직업을 선호하는 가운데 시야를 돌려 농업에 관심을 쏟는 젊은이들이 있다.

 

 

▲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렸던 슬로푸드 청년 엑스포 ‘We Feed the Planet & Terra Madre Giovani'에 참석한 한국 청년대표단 장시내(첫째 줄 왼쪽에서 두 번째), 김인성(둘째 줄 왼쪽에서 첫 번째) “사진 장시내 제공”

 

이들은 슬로청춘의 대표 장시내(26), 토마토 총각 김인성(34), 미국에서 온 환경학도 이한나(26) 씨다. 이 세 청년은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청년들의 슬로푸드 관련 엑스포 ‘We Feed the Planet - Terra Madre Giovani (이하 WFTP)'에 함께 참가했다.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Slow Food Youth Network) 주최로 2015년 10월 3일부터 4일간 진행된 이 행사에서 이들 삼인방은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온 2,500여 명의 젊은 농부, 어부, 요리사, 활동가 등과 머리를 맞대고 더 나은 음식 시스템을 정착시킬 방안에 대해 고민했다.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는 슬로푸드 철학을 지지하는 35세 이하의 청년들이 모인 국제단체다.


건강한 먹거리, 슬로푸드

국내 슬로푸드청년네트워크인 슬로청춘을 이끄는 장시내 씨는 슬로푸드 운동에 대해 ‘누구나 맛있고 깨끗하고 공정한 (Good, Clean, Fair for Everyone)’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 피에몬테주의 브라 마을에서 시작된 맥도널드의 이탈리아 진출 반대 운동에서 시작돼 국제적으로 번져나갔다. 현재 160개국에 슬로푸드 지부가 있다.

그들이 슬로푸드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과 이유는 다양하다. 장 씨는 어릴 적 아토피를 앓으며 먹거리와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그녀는 음식에 철학을 담는 요리를 하고 싶어 관련 단체를 찾아보다가 슬로푸드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슬로푸드 운동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가 내 삶의 가치관을 표현하는 길이고 세상의 긍정적 변화에 투표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 경기도 양평군에서 매월 첫째, 셋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지역시장
‘문호리 리버마켓’에 설치된 김인성 씨의 토마토 상품 판매 부스. “사진 김인성 제공”

토마토 총각 김인성 씨는 팔당 청정지역에서 토마토농장을 운영한다. 김 씨가 처음부터 농부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다. “원래는 암치료 기계 엔지니어 일을 했어요. 10년 전 쯤, 어머니께서 토마토 효소로 고추장을 만드셨거든요. 그걸 들고 유럽출장에 갔는데 외국 친구들의 반응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김 씨는 경기도 양평 북한강변을 따라 열리는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상품을 판매하면서 자신의 토마토 가공식품이 슬로푸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슬로푸드에 관심을 가지면서 김 씨의 거래처 중 한 명이었던 슬로푸드 관계자의 추천을 받아 WFTP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

이한나 씨는 미네소타 주에 있는 칼튼칼리지 (Carleton College)에서 환경학을 전공하고 현재 교내 국제학습지원부서에서 일한다. 그녀는 대학 시절 참석했던 유기농업 비교 연구 세미나를 통해 농업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학교 3학년 시절 데이비드 하우겐-에이츠만 (David Hougen-Eitzman) 교수님의 지도 아래 미국과 중국의 유기농업이라는 수업을 듣게 됐어요. 겨울 방학 기간 동안 중국에 있는 유기농업 농장들을 방문했는데 그때 한국 농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이후 그녀는 우프코리아(사단법인 한국농촌체험교류협회, 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Korea)를 통해 남양주시의 ‘한솔농장’, 한국 최초의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농장인 ‘같이 CSA(WWOOF CSA)’를 방문했다. 같이 CSA에서 주최한 농장캠프 프로그램에서 그녀는 슬로청춘의 회원들을 만났다. “그들과 슬로푸드와 한국청년들이 처한 힘든 현실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따뜻한 슬로청춘을 느꼈어요. 그래서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WFTP에 참가한 한국 청년 대표단과 미국 청년 대표단. 이한나(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진 이한나 제공”

 

일상에서의 바른 먹거리 실천

‘We Feed the Planet & Terra Madre Giovani’의 주제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미래를 위한 대화’였다. 청년대회지만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수평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고 이 씨는 말한다. “마지막 날에 밀라노 엑스포 현장 내 슬로푸드 파빌리온으로 시위행진을 했습니다. 슬로푸드 본연의 가치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한편 대기업의 무분별한 생산에 대해 항의의 목소리도 냈었죠.” 그녀는 대규모-소규모 생산자간 균형을 맞춰야 함을 주장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농업에 대해 깊게 이해하게 된 그녀는 현재 건강한 생활습관을 만들려 노력중이다. “슬로푸드를 지키는 방법은 스스로 바른 먹거리를 실천하는 것 같아요. 바쁜 일상에 치이다 보면 건강이나 환경을 생각하지 못할 수 있는데 스스로 슬로푸드 운동을 실천하면 주변 사람들까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어요.”


슬로푸드의 중심에 서있는 청년 농부

김 씨 또한 세계 각국에서 온 농업 관계자들과 나눈 대화가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나라별 시스템 생산자, 로컬푸드(Local Food)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들과 농부로서의 고민, 미식문화 등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또한, 슬로푸드를 알리기 위해서는 농부 역할이 가장 중대함을 느꼈습니다.”
 
김 씨는 행사를 통해 슬로푸드에 대한 개념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슬로(slow)라는 단어처럼 느리지만 정직한 재료와 원칙으로 농업활동을 계속 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밀라노 엑스포에도 제가 직접 만든 토마토고추장을 가져갔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앞으로 한국의 발효문화를 세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시작, 슬로푸드

직업이나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지만 그들은 밥상의 미래와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했다. 장 씨는 슬로푸드 운동을 하면서 ‘세상을 바꾸자’라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그 때마다 큰 거리감을 느꼈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작은 존재인데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지 상상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행사를 통해 전 세계 젊은 농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마지막 날 ‘우리가 지구를 먹여 살린다 (We feed the Planet)’는 구호를 외친 순간 그녀는 변화의 시작을 깨달았다.

같은 미래를 바라보는 친구들이 모여 서로 돕고 격려하는 모습에서 그녀는 어쩌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얻었다. 슬로청춘 앞으로 젊은 생산자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여 어부, 유통인, 전문가들의 네트워크를 넓힐 계획이다.

 

▲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WFTP에 참가한 한국 대표단은 전 세계 청년들과 함께 밥상의 미래와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해 고민하고 토론했다. “사진 장시내 제공”


농업강대국 대한민국이 돼야…

현재 세계 각국에서는 농업 분야에서 청년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쿨 애그(Ag's Cool)' 캠페인을 진행한다. 노스캐롤라이나 주 정부는 학생들이 농업과 친숙해지도록 여러 농업 활동 참여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미국에서 로컬푸드는 친숙한 문화다. 버몬트 주, 뉴햄프셔 주, 매사추세츠 주 등 전국 각지에서 도시 농업을 시도하는 등 농업 강국의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농업에 대한 젊은이들의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장 씨는 지난해 WFTP 행사에 참석할 젊은 농부를 찾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의 지부장들과 지인들의 도움으로 10명의 대표단을 겨우 꾸릴 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농업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저조한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어요.”

김 씨는 맛과 품질을 보장하는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다면 농부는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유망하다고 설명한다. “농업뿐만 아니라 선입견만으로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짓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농업이 강해야 국가가 튼튼해진다고 한 그는 청년들에게 농업에 관심을 가져주길 부탁했다.


드디어 시작된 변화의 첫걸음

농부, 사업가, 활동가, 생산자로 이뤄진 10명의 한국 청년들이 전 세계 청년들과 출발을 함께 했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2,500명의 생각을 만 명의 사람들에게 나누고 그들도 주변 사람들에게 전한다면 소통의 힘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장 씨는 그 변화의 첫걸음으로 청년들이 매일 먹는 세 끼의 식사가 세상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길 바랐다.

“인식한 것을 깨닫고 변화시키는 밥상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어요. 함께 둘러앉아 먹고 마시며, 재밌고 희망찬 방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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