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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한 ‘국어책임관’ 제도…. “네? 제가 국어책임관이라니요?”
이지현 | 승인 2016.01.15 23:54

“국어책임관이라니요? 저는 잘 모르는 내용인데?” 중앙부처 소속기관 A 팀장이 한 말이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당혹스러움이 느껴졌다. 국어책임관이 무엇이냐고 되묻기도 했다. 올 7월에 부임한 그는 전 팀장이었던 사람의 업무를 이어받아 국어책임관 역할도 맡게 되었다. 하지만 “국어책임관으로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전혀 설명을 듣지 못했다. 국어책임관으로 해야 할 역할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기관에 있는 유일한 국어책임관이다. 부임한 지 4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는 본인이 맡은 직무를 몰랐다. “아무런 설명 없이 덮어놓고 ‘이 자리에 오면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됩니까? 이런 일은 한국어를 사랑하고 식견이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예를 들어서 담당자가 바뀌면 알려준다든가 교육을 해준다든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난감하네요.”

국어책임관이 있는 46개의 중앙 행정기관 중 21개 기관에 연락을 취해 각 부처 소속 국어책임관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각 행정기관 아래의 소속기관과 연락한 사례도 있어, 총 전화 인터뷰를 한 인원은 23명이다. 이 중 4명은 자신이 그런 역할을 맡고 있는지조차 몰랐다.

국어기본법 제 10조 제 1항에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국어의 발전 및 보전을 위한 업무를 총괄하는 국어책임관을 소속 공무원 중에서 지정할 수 있다.”고 되어있다. 2005년 국어기본법 제정 때 만들어진 조항이다. 이들이 주로 하는 임무는 외부로 나가는 보도 자료와 공문서 등에 있는 잘못된 국어 표기들을 다듬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659명의 공무원이(중앙행정기관 46명, 중앙행정기관 소속 기관 243명, 광역 지방자치단체 17명, 기초 지방자치단체 226명, 교육청 및 대학 127명) 국어책임관으로 지정돼 있다. 하지만 이런 제도가 있음에도 각 정부 부처 공문서의 잘못된 한국어 사용은 여전하다.


“광양항 美 서안 항만 파업의 여파- 정시성 확보를 위해 아시아-미주 노선의 일부 선박이 광양항을 Skip 함에 따른 영향”(해양수산부 2015.4.29.)

“노사화합을 위한 노사공동 혁신활동으로 ‘Cozy-Room 만들기’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전사적 참여를 이끌어 내어”(고용노동부 2015.4.30.)

“신규 의무지출에 대한 Pay-go원칙, 재량지출 제한, 조세감면 제한”(보건복지부 2015.5.13.)

“핀테크-금융회사 연계한 데모데이의 주기적 개최(매월) 등을 통해 핀테크 Start-up의 성장을 지원할 계획임”(미래창조과학부 2015.6.05)

“지원되는 방호장치는 차량의 전도를 방지하는 ‘아웃트리거 감지센서’.”(고용노동부 2015.4.14.)

“이어폰 연결음(이어링: earing)을 이용해 ‘힐링멘트와 광고메시지’를 제공하는 세계 최초의 모바일 네이티브 오디오광고 서비스”(미래창조과학부 2015.6.12.)

“방문단은 이곳에서 들깨 심기 및 팜파티를 체험할 계획이다.”(농림축산식품부 2015.6.1.)

위에 있는 7개의 문장은 실제 공문서에 있는 잘못된 한국어 사용 예시들이다.

국어기본법 제 14조 제 1항은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는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Skip이라는 단어는 ‘지나치다’ ‘거쳐 가지 않다.’ 등의 말로 바꿀 수 있다. 국어책임관은 어려운 말을 순화하는 데에도 힘써야 한다. ‘착근하면’도 ‘다니면’이라는 말로 대체할 수 있다. ‘꾸준히’라는 부사를 덧붙여 붙을 착(着)의 의미를 정확히 설명할 수도 있다. ‘팜파티’나 ‘아웃트리거’도 일반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다. 국립국어원 공공언어과장 최혜원(46)씨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문제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공무원들은 이미 이런 용어들에 익숙해져서 그 용어들이 국민이 이해하기에 어렵다는 인식을 못 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들이 한두 건의 보도 자료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가 2015년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 동안 17개 정부 행정 부처에서 냈던 3,270건의 보도 자료를 모아 분석한 결과, 보도자료 한 건당 평균 4회 정도의 국어기본법 위반 사례가 나왔다. 외국어 남용은 한 건당 평균 7회가 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진단은 두 가지다. 첫째, 국어책임관 제도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의 신능호(33) 주무관은 “국어책임관들이 그 책임을 다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법안은 없다”고 이야기했다. 국어책임관을 두고 있지만, 국민에게 공개되는 보도 자료가 반드시 이들을 거쳐 가는 것은 아니다. 신능호 씨는 “그렇게 하도록 권유할 뿐”이라고 말했다. 국어책임관들을 교육하기 위해 문체부에서 연 1회 워크숍을 열고 각 광역 단체들도 연 1~2회의 워크숍을 열고 있지만 ‘바빠서 못 참석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둘째는 전문성의 부재다. 신능호 씨는 그들이 국어 관련 전문가냐는 물음에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일반 행정직 공무원이 국어책임관의 역할을 겸직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성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체부에서는 각 부처에 국어 전문가를 따로 뽑도록 하고 있지만 강제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제도의 강화를 위해 2013년 12월 10일 새누리당 박성호 의원이 대표발의를 통해 ‘국어기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기존 법률에 “국어책임관을 둘 수 있다”를 “국어책임관을 두어야 한다.”로 법을 좀 더 강화한 것이다. 발의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 법이 통과될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국어 관련 법률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국어정책과 조민령(29) 주무관은 “2015년 2월 10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상정되었지만 계류 중이다”고 말했다.

국어책임관 제도의 실무적인 부분에서 최종 책임을 맡은 문체부 국어정책과 박성준(55) 사무관은 “하루 이틀에 끝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느리게라도 제도적인 측면에 강제성을 더하고 의식 개선 운동에도 힘써서 천천히 바뀌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어책임관을 도와 실무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국어책임관 제도 실행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ㄱ 대변인실 주무관 B씨는 “우리도 우리말 표현을 쓰고 싶은데 외국어가 한국어 단어의 뜻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것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어떤 사업이나 정책이 만들어질 때 영어를 써서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보도 자료는 그냥 영어로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처음부터 영어를 쓰는 문제는 내버려두고 보도 자료만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또 C 씨는 “외국어 순화 문제가 부서 평가에도 반영되니까 신경 쓰게 되지만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했다.

ㄴ 대변인실 주무관 C씨도 “국어책임관은 대변인이지만 실무적인 일은 내가 하고 있다”라면서 “해야 하는 다른 일이 있는데 이런 것까지 맡아서 해야 하니 부담스럽다. 문체부에는 국어 정책과가 따로 있지만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니) 국립국어원에 모르는 것들을 물어가며 일을 처리해야 한다.”며 “문체부는 외부 전문가와 국립국어원에 협조 요청을 해서 정책 개발을 하라는데 대변인실에서 다른 업무와 겹쳐 있다 보니 일을 원만하게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는 바른 국어 사용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쉬운 영어가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 모두의 목표여야 합니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가 한 말이다. 시작은 ‘크리시 메이어 여사 (Chrissie Maher)’라는 평범한 여인이 시작한 ‘쉬운 영어 캠페인(Plain English Campaign)’이었다. 1979년 크리시 메이어 여사는 수많은 기자가 모인 자리에서 정부의 공문서 다발을 자르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을 쓰는 정부에 항의하기 위함이었다. 그녀는 런던 의사당 앞에서도 시위했다. 그녀의 문제 제기에 공감한 정부는 변했다. 대처 정부는 어려운 영어 사용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조사하면서 불필요한 공문서를 정리했다. 쓸데없이 어렵게 쓰인 공문서들을 쉬운 언어로 고친 것이다.

이 움직임은 유럽연합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1995년에 쉬운 말 쓰기에 관련한 두 건의 유럽연합 명령이 만들어졌다. 하나는 의약품 정보 안내서에 질환과 복용량, 부작용을 알기 쉬운 용어로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이고 다른 하나는 소비자 계약서에 이해하기 까다로운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이다. 유럽연합 명령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각 나라의 법률에 반영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벌금을 부과하고 유럽연합 명령에 따라서 회원국 국민은 국가에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이 캠페인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쉬운 영어 캠페인’의 대변인 리암 레딩턴은 MBC 교양 프로그램 ‘우리말 나들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대중이 읽고 이해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공공정보는 명확하고 정확히 전달되어야 합니다.”

한글문화연대 이건범(50) 대표는 “공무원들 전체의 국어능력 향상을 위해 확실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나라에서 추진하는 사업들도 무분별하게 외국어나 어려운 한자어를 남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각종 전문 용어들이 아무런 순화 과정 없이 사용되면 국어책임관들도 속수무책일 수 있다”고 했다. “국어책임관 한 명에게만 부담을 지울 것이 아니라 공무원 전체가 모두 바른 언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자체 인사 평가에 영어 점수는 반영해도 국어 능력은 반영하지 않는 모습은 국어를 푸대접하는 자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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