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고 싶어요. 그리고 의사가 되고 싶어요.” 2009년 뉴욕타임스의 한 다큐멘터리에서 당시 11세였던 소녀가 뱉은 첫 마디다. 이 소녀는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에 전해진 말랄라의 이야기는 아동 교육권 및 여성인권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그리고 이는 일명 ‘말랄라 신드롬’으로 퍼져 파키스탄의 여성교육 문제에 대한 인식을 세계로 확산시켰다. 말랄라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모든 어린이의 교육권을 위해 투쟁한 공로로 2014년 노벨 평화상을 받으면서 역대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 뉴욕타임스 다큐멘터리(Times Documentaries)
<수업이 끝났다: 말랄라의 이야기(Class Dismissed: Malala’s Story, 2009)>의 한 장면.


미디어를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세상에 처음 알린 이가 바로 뉴욕타임스의 기자 아담 엘릭(Adam B. Ellick)이다. 엘릭 기자는 2009년에 6개월 간 파키스탄 북부의 스와트(Swat) 지역에서 말랄라와 그의 아버지 지아우딘 유사프자이(Ziauddin Yousafzai)를 취재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같은 해 뉴욕타임스에 다큐멘터리 <수업이 끝났다: 말랄라의 이야기(Class Dismissed: Malala’s Story, 2009)>를 공개했다. 이 영상은 탈레반 점령지의 억압적 일상과 여성 교육을 금지하는 현실 속 유사프자이 부녀의 고통과 슬픔을 그대로 담았다. 그리고 이는 그녀가 2012년 탈레반에 피격되기 전 모습을 담은 유일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영상을 다루는 신문기자, ‘하이브리드 저널리스트’

“아직 제 복합적인 일을 설명할 직함은 없습니다(There is not yet a title that describes my hybrid job).” 그가 홈페이지(www.adambellick.com)에서 자신을 소개한 말이다. “미디어 산업은 융합, 멀티미디어와 같은 단어로 진화된 모습을 보이려 하지만, 실질적으로 신문과 방송 저널리즘을 동시에 하는 기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는 촬영하고 편집해 웹에 영상을 올리면서 동시에 신문에 글을 쓴다. 음악으로 말하면 ‘원맨밴드(One-man band)’다. 혼자서 여러 악기를 동시에 연주하는 공연자처럼 엘릭 기자는 글쓰기와 영상 제작을 함께 한다. 그를 굳이 정의하자면, 두 개 이상의 기능이나 요소의 혼성, 결합의 의미를 갖는 ‘하이브리드’ 저널리스트라 할 수 있다.

                  ▲ 2009년 파키스탄에서 취재하던 당시 아담 엘릭.
뉴욕타임스 다큐멘터리(Times Documentaries) <말랄라 다큐멘터리 제작기(The Making of Malala, 2013)>의 한 장면.

엘릭 기자는 미국 뉴욕주에 위치한 이타카 대학에서 방송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1999년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후 미국을 비롯해 체코와 인도네시아에서 프리랜서 신문 기자로 활동했다. “글쓰기를 정말 좋아했지만, 이에 충분히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5월 20, 21일 양일 간 동대문디지털플라자에서 개최된 ‘2015서울디지털포럼(이하 SDF)’에 연사로 초청된 그가 말했다. 그는 <밑바닥부터의 근본적인 혁신>을 주제로 한 이 강연에서 ‘하이브리드 저널리스트’가 된 배경에 대해 밝혔다. 그는 해외에서 겪은 일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데 글쓰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그가 본 것을 전달할 새로운 도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2005년 뉴욕타임스 입사 직후 영상 촬영과 편집 기술을 독학으로 익혔다. 그렇게 익힌 기술로 그는 지금껏 70여개 국가를 넘나들며 비디오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2009년 말랄라를 만났던 파키스탄을 비롯해, 2011년에는 아랍의 봄 시위가 한창이던 이집트와 바레인에서 취재하고 글과 영상으로 보도했다. 이외에도 아프가니스탄, 이란, 러시아, 발트3국, 베네수엘라, 브라질 등에서 취재했다. 그는 유럽 특파원으로 기사를 쓰고 영상을 제작하던 2014년에 뉴욕타임스 ‘선임 비디오 저널리스트(Senior Video Journalist)’로 임명됐다.

2015년 11월 4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의 최근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올해 7월부터는 유럽에서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뉴욕타임스 영상뉴스부서(Video Department)에서 차장(Deputy Editor)을 맡고 있다. “저는 기자와 편집자를 합해 50명이 넘는 영상뉴스부서를 관리하고 있어요. 무엇을 영상으로 다룰지 결정하고, 프로젝트를 감독하고, 타임스 비디오(Times Video)의 미래 전략을 세우는 일을 합니다.” 뉴욕타임스 영상뉴스부서는 2005년 엘릭 기자를 포함해 다섯 명의 비디오 저널리스트가 진행한 3개월간의 실험으로 시작했다. 그 이후 10년이 흘렀다. 그에게 10년간 영상뉴스부서의 가장 큰 변화에 대해 물었다. “가장 큰 내부적 변화는 회사의 전문기술을 이용하면서 신문과 별개로 좋은 영상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외부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독자들이 우리 영상을 모바일로 시청하게 된 것입니다.”

이어서 엘릭 기자에게 신문사인 뉴욕타임스에서 영상을 만드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뉴욕타임스는 디지털 저널리즘 회사입니다. 우리의 생산품은 신문, 웹,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심지어는 컨퍼런스 같은 행사 등을 포괄하죠. 영상은 우리의 보도를 구성하는 생산품의 조합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영상은 특별한 매체에요. 독자에게 그 순간을 느끼게 하고 강한 감정과 친밀함을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또 영상은 목격자를 낳습니다. 이 기능이 적절하게 이루어지면 보도는 깊숙이 개인적인 게 됩니다.” 그는 신문이 전하는 것을 뛰어넘는 비디오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했다.

‘디지털 혁신’이라는 기회

SDF에서 엘릭 기자는 그의 경력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몇 년간 파키스탄을 비롯한 분쟁지역에서 취재하다가 1년간 휴직 후 MIT 미디어랩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2012년에는 하버드대 공공정책 전문대학원인 케네디스쿨에서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파괴적 혁신과 기술이 저널리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13년 뉴욕타임스로 돌아간 뒤 그는 ‘뉴욕타임스 혁신 위원회(The Times’s Innovation committee)‘에 대해 듣게 됐다. 당시 뉴욕타임스 경영진은 편집국에서 가장 생각이 앞선 여덟 명을 선발해 디지털 환경에서 회사를 발전시킬 수 있는 현명하고 타당성 있는 방법을 강구하도록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했다. 그는 즉시 이 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2014년 세상에 공개된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NYT Innovation Report)’를 주도한 인물 중 한 사람이 됐다.

▲ SBS가 주최한 2015 서울디지털포럼에서 아담 엘릭.

“164년의 전통을 갖고 있는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미디어 회사로 탈바꿈하는 것은 큰 도전이죠. 이는 저널리즘적 도전이며, 문화적 도전이고, 기술적 도적이자 사업적 도전 과제입니다.” SDF에서 엘릭 기자는 디지털 혁신에 대해 이 같은 생각을 밝혔다. 하지만 현 저널리즘 환경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에 “기자로서는 정말 반가운 기회”라 했다. 그리고 미디어 빅뱅 시대 뉴욕타임스의 생존 전략 중 하나로 ‘독자 확대’를 설명했다. “이전엔 ‘기사를 다 쓰고 난 다음 그 반응을 즐기기(sit back and enjoy the impact)’였다면, 요즘엔 ‘기사를 쓰고 난 후부터 시작(the story begins when you press the publish button)’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엘릭 기자는 그가 공동제작으로 참여한 다큐멘터리 <ISIS 대학살 생존기(Surviving an ISIS Massacre, 2014)>가 바로 혁신 위원회가 주장한 ‘독자 확대’가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된 사례라 했다. 이 영상은 2014년 6월 ISIS 대원들이 수백 명의 군 지원자들을 대량 학살한 가운데 유일한 생존자인 알리 카짐(Ali Hussein Kadhim)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엘릭 기자는 이 영상이 최대한 많은 독자에게 전달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한 번도 함께 일한 적 없는 8개 부서에서 인력을 모아 ‘독자 확대 팀’을 결성했다. 이들은 기존 미국 독자뿐 아니라 아랍권 독자들까지 겨냥해 뉴욕타임스 사상 최초로 영상에 영어와 아랍어가 동시에 나오도록 했다. 또 예고편과 사진모음 같은 독자적인 소셜 미디어 콘텐츠도 제작했다. 뿐만 아니라 SNS에서 영향력이 큰 사용자들과 협력해 영상이 최대한 많이 공유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이 다큐멘터리는 2014년 한 해 뉴욕타임스에서 가장 많이 재생된 영상이 됐다. 또 뉴욕타임스 비디오 트위터 계정(@nytvideo) 팔로우 수가 이 동영상 하나로 6퍼센트 증가했다.

그는 편집국에서 기자들의 대화가 ‘내가 왜 신경 써야 돼?(Why should I care?)’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지?(How can I help?)’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애플워치’가 출시된 후 뉴욕타임스는 기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로 구성된 팀을 꾸렸다. 그리고 이들은 ‘한 줄 뉴스(One-sentence stories)’라는 새로운 형태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개발했다. 이는 빠른 뉴스 업데이트를 위해 고안한 한 줄짜리 짧은 기사다. 시계는 개인적인 물건이기에 그들은 최대한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기사를 썼다. 뉴욕타임스의 이러한 노력에 사람들은 환호했고 한 독자는 “필요하단 걸 깨닫기 전에 뉴욕타임스가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군요”라 이메일을 보내왔다. 엘릭 기자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뉴욕타임스가 사용자들의 필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독자’

뉴욕타임스에서 10년. 그동안 엘릭 기자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목소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었다. 그는 최연소 노벨상 수상자가 된 말랄라를 다큐멘터리를 통해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또 ISIS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인터뷰해 ISIS의 잔인함을 고발했다. 그리고 2014년 세상에 공개된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에서는 뉴욕타임스가 기존의 꼿꼿한 자세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독자를 확대해나갈 것을 주문했다.

엘릭 기자의 다음 행보는 무엇이 될까.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의 다음 목표에 대해 물었다. “제 다음 목표는 뉴욕타임스 비디오 저널리즘의 전략과 비전을 재정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10년 간 큰 진전을 했죠. 그러나 현재는 이를 더 높은 수준의 탁월함으로 끌어올리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이는 유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에요. 어디서 어떻게 독자들이 영상을 시청하는지, 우리가 만들기로 한 영상 유형 또는 만드는 것을 중단한 유형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을 포함합니다. 전략을 재정비하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이전의 어떤 저널리스트 세대보다도 더 큰 독자군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죠.”

뉴욕타임스에 들어가 영상 제작 기술을 독학하던 10년 전부터, 뉴욕타임스의 ‘혁신’을 주도하는 지금까지 그에겐 많은 사건과 성과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릭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함없이 ‘독자’였다. 그는 본 것을 오로지 글로 표현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충분한 전달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영상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스스로 갖췄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2015년 SDF에서 그는 “독자가 뉴스를 찾길 기대할 것이 아니라 뉴스가 독자를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환경에서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혁신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독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기사를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켰고, 더 나아가 뉴욕타임스를 변화시키고자 했다. 아담 엘릭은 끊임없이 독자를 중심으로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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