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우리는 책의 해, 관광의 해 등 그 해의 주제를 정해 각종 관련 행사 등을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그런데 1999년이 세계 노인의 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세계 노인의 해를 맞아 여러 단체에서 노인 문제에 관한 학술 회의를 열고, 노인 복지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 움직임은 미미하다. 이는 노인 계층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적고, 노인 계층이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로서 소외되는 현실과 관련이 깊다.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교과서에서도 노인 문제에 대한 내용이 다뤄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가장 바람직한 가치관을 제시해야 할 교과서에서 보이는 노인의 모습 또한 소외 그 자체다.

1. 이 세상에는 소외된 노인밖에 없다

"아버지, 학교에서 몸이 불편한 노인들이 계시는 장애인 시설을 방문했어요. 노인들이 너무 외로우신 것 같았어요. 시설도 변변치 못하고…. 얼른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해요."
                                                -초등학교 사회 6-2, 109쪽, 민수와 아버지의 대화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할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의탁할 자식이 없는 노인 등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중학교 도덕 1, 104쪽 

"노인들은 하는 일도 없어 고독하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지내며"
                                                                       -고등학교 윤리, 69쪽

노인의 소외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오로지 소외된 노인만 존재하는 것일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동안 교과서에서 배우는 노인의 모습은 몸이 불편하고, 외롭고, 불우 이웃이고, 어려운 사람이고, 하는 일이 없어 고독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노인이라면 으레 몸이 불편하고 외로운 사람으로 정하는 것은 사회 전체의 편견일지도 모른다. 편견을 아이들에게 주입하면 아이들은 노인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게 된다. "얼른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은 현실의 노인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풍긴다. 교과서에서는 의탁할 자식이 없는 노인은 어려운 사람들로 규정짓고 있으나, 요즘은 경제적 능력만 있다면 자식들과 떨어져 살기를 원하는 노인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노인문제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식들과 별거를 원하는 노인이 전체 노인의 71.6%나 된다고 한다.(1996)


그렇다면 현실 속 노인의 모습은 어떠한가?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노인들이 많이 변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이상 노년기를 상실의 시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아 새로운 변신을 추구하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수필가로 변신하거나 노인합창단을 결성하여 공연활동을 벌이기도 하고 자서전을 출판하는 등 자기계발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또,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면서 생의 기쁨을 찾는 노인들도 있다. 이들은 지역사회나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요즘 노인들은 집안에서 조용히 생활하는 한거형이나 칩거형보다는 자기계발을 위해, 즉 보다 보람있고 활기찬 노년생활을 위해 적극적이고 활동적이며 창조적으로 생활해 나가는 새로운 세대이다. 이들은 당당히 자신들의 권리 주장도 한다. 노인복지 향상을 위해 자기 주장을 외치며 가두행진을 하기도 하고, 정책 건의를 위한 조직적 활동을 펼치기도 하는 ‘그레이 파워’ 세대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2. 우리가 부모에게 효도해야 하는 이유? 부모니까!

전통 사회에서 노인이 공경 받는 것에 대해 교과서에서는 어떻게 그려져 있는지 살펴보자.

"전통적인 가족 제도 아래에서 노인은 위엄을 갖춘 존재이고, 아래 세대에게 신뢰와 사랑을 심어주는 인격자였다"
                                                                   -고등학교 윤리, 69쪽

"전통적인 가족 생활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도 따랐다. 부모는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였으며, 자녀들은 자기들의 생각을 펼쳐 나가기 어려웠다"
                                                                  -중학교 2, 사회, 199쪽

중학교 교과서와 고등학교 교과서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전통적 가족 제도를 바라보고 있다. 아래 세대에게 신뢰와 사랑을 심어주는 인격자 밑에서 자식들은 왜 자신들의 생각을 펼쳐 나가기 어려웠을까? 자식에게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부모를 자녀들은 공경해야만 했던 것이 전통사회인가 보다.

3. 마음만 먹으면 노인 문제 끝!

"노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이 베푼 수고에 감사하며, 우리가 모두 노인들을 공경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키워 나간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고등학교 윤리 69쪽

"앞으로도 노인 문제는 점점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되므로, 합리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고등학교 공통 사회 (상) 일반사회 81쪽

단지 노인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간직하자는 것을,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노인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공경하는 마음만 가지면 노인 문제가 해결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윤리적인 사회이다.

"원래부터 노인인 사람은 없다. 우리가 노인을 귀찮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와 더불어 살아갈 동반자로 생각하게 될 때에 비로소 노인들이 겪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중학교 도덕 1, 110쪽

교과서의 편견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구절이다. 노인 문제의 대안으로 우리가 노인을 귀찮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동반자로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은 노인을 귀찮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노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도덕책에 등장하는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이 이 정도다.

우리사회도 65세 이상의 노인층이 전체인구 7%에 달하는 등 뚜렷한 고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노령화사회는 곧 장수사회를 의미한다. 장수사회란 더 이상 노인들이 가난하고 할 일 없고, 병약하고 외롭고 고독하게 쓸쓸한 여생을 보내는 사회가 아니다. 지금 노년층은 변하고 있다. 외롭고 쓸쓸하고 허무한 노년기는 이제 옛말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노인들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산업도 등장하고 있고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실버산업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100명 중 7명의 비율로 존재하는 노인들을 언제까지 불쌍하고 소외된 계층으로만, 우리 아이들에게 인식시켜야 하는가? 좀 더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불필요한 동정심 유발보다는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더 이상 교과서에서조차 노인을 소외시켜서는 안된다.

송혜원 기자<dewed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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