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한복을 명절 때만 입잖아요. 요즘은 그마저도 입지 않는데 특별하게 입어볼 수 있어서 좋았고 색달랐던 것 같아요”

설날, 추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진 속 주인공은 고운 빛깔의 한복치마를 뽐내며 단아하게 포즈를 잡고 있다. 최근 SNS상에선 젊은 층들이 한복을 입고 여행을 다녀온 모습을 담은 사진들, 일명 ‘인증 샷’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이와 더불어 한복 대여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SNS 페이지와 이화여대 ‘이화, 흐드러지다’, 한동대학교 ‘한복온데이’와 같은 각 대학교의 한복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복은 일본의 전통 의상인 유카타와 비교돼 관심도와 활용도가 높지 않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한복에 대한 관심을 모아, 한복진흥센터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부속 공공기관인 한복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안에서 부설기관으로 독립한 한복진흥센터는 보다 전문적이고 기획력 높은 한복 사업을 위해 설립됐다. 이들은 한복의 대중화, 현대화, 세계화, 산업화를 모토로 삼고 있다. 모토에 따라 신(新) 한복 프로젝트와 공모전 기획, 한복 교육, 문화원 컨설팅, 민간단체 지원사업 등 한복에 관한 다양한 업무를 맡고 있다.


2015한복의 날

한복진흥센터는 지난 10월 21일 ‘2015한복의 날’ 행사를 마쳤다. 이날 행사엔 기념식과 한복 패션쇼가 열렸는데, 이번 패션쇼는 1500명 규모의 경복궁 야외무대에서 화려하게 진행됐다. 한복진흥센터 박선영 팀장은 올해 한복의 날 행사의 특별함을 경복궁에서 꼽았다. “그동안 문화역 서울284라는 곳에서 행사를 해왔는데, 거기는 200에서 300명 정도밖에 수용이 안돼요. 올해는 좀 다르게 경복궁에서 개최했죠” 또한 직녀 이야기 설화를 전통한복과 신 한복을 보여주는 패션쇼와 엮어 스토리가 있는 무대를 보여줬다. “직녀 설화는 일본과 중국에서도 공통적으로 있다고 해요. 그래서 조금 더 공감을 이끌어내려고 했어요” 이번 행사는 한복 디자이너들과 체코, 포르투갈 주한외교사절단 등 각국 대사와 외신들, 관광객이 참석했다. 약 1천 5백 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해 대규모로 진행됐다. 한복의 날은 올해로 19회를 맞긴 했지만, 아직까지 날짜가 정례화 돼 있지 않다. “97년도에 한복인들끼리 한복의 날을 선포했는데, 2008년에 KCDF가 생기고 한복진흥센터가 설립되면서 정례화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젊은 세대니까’...일등 공신은 SNS

한복 전문가로서 그는 젊은 층의 한복입기 붐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 박씨는 “일단 젊은 층이 SNS를 많이 하잖아요. 국내에 전국구 단위의 한복동호회들이 굉장히 많아요. 이런 분들이 ‘한복 배낭여행’과 같은 소스를 SNS에 올리면서 흥미를 끌게 된 것 같아요” 라고 했다. 젊은 층들이 한복에 대한 깊은 관심보다는 SNS를 통해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유행도 이전의 무관심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것이다. 이런 현상 또한 ‘젊은 세대니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복은 불편하고 비싸다고 인식하기 쉬운데 이렇게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죠. 관심이 시작되면 그 뿌리가 궁금하게 돼서 점점 공부를 하게 되니까요” 한복에 대한 관심은 국내, 해외를 가리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다.


나들이 속 함께 하는 한복

과거의 한국을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고궁 속에서 형형색색의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걸어 다닌다. 드라마 세트장이 아니다. 종로에 위치한 경복궁에서는 한복을 입고 고궁을 관람하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도 눈에 띈다. 한복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한복을 입고 나들이 기분을 더한다. “SNS를 보니까 사람들이 한복을 입고 많이들 오더라고요” 여자 친구와 한복 데이트를 하던 김병현(26)씨는 이전에 경복궁에 온 적이 있었는데도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 오니까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광화문 광장 입구엔 전통궁중복식을 무료로 입어볼 수 있는 체험관이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입어볼 수 있어 젊은 층에게 이색적인 추억거리가 되고 있다. 이곳에서 ‘광화문 찍사’로 일하고 있는 다니엘 턱(45)씨는 한복을 입고 관광하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으며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평일에는 약 40컷, 주말에는 약 70컷의 사진을 찍어요. 요즘은 젊은 친구들이 더 많이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더라고요” 과거에 비해 높아진 한복에 대한 관심 때문에 광화문 행복사진관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청춘들이 모여 더욱 뜨거운 한복동아리

한복에 대한 관심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뜨겁다. 이화여자대학교, 서울여자대학교의 한복 동아리가 대표적이다. 한복에 관심 있는 친구들끼리 모여 한복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화여자대학교의 한복동아리인 ‘이화, 흐드러지다’의 회장 홍민지(21)씨는 동아리를 통해서 불편하게만 보이는 한복을 생활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창단 회장님이 일본 여행을 갔을 때 특별한 일이 없어도 기모노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했대요. 한복은 선도 아름답고 고운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없잖아요. 그래서 한복동아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해요”

‘이화, 흐드러지다’는 한복의 생활화를 위해 재학생들에게 매학기 한복을 대여해주고 ‘이화, 한복 입는 날’을 주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부원들이 한복을 입고 경복궁과 한국 민속촌, 그리고 전주 등을 다니면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홍 씨는 한복의 일상화를 위해 여러 활동들을 계획하고 있고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생활한복, 일상 속으로 스며들다

한복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일상에서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생활한복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구분 없이 높아진 한복의 인기를 느낄 수 있다. 북촌한옥마을과 가까운 삼청동에는 생활한복을 판매하는 가게가 줄지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온라인에서도 생활한복을 파는 쇼핑몰이 증가하고 있다. 생활한복 쇼핑몰의 디자이너이자 대표인 김보경(26)씨는 최근 홈페이지 방문자 수가 하루에 약 3000명, 오프라인 매장 3개 지점의 방문자 수가 약 500명인 것을 보고 대중들의 생활한복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 한복을 평상시에 입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고 대여소도 많이 없었어요”

생활한복 인기의 원인에 대한 질문에 김 씨는 전통한복에 비해 활동성이 뛰어나고, 세탁 등 활용도 측면에서 편리하며, 일반 기성복과 유사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같다고 답했다. 실제로 생활한복을 구매하는 주된 연령층은 20-30대라고 한다. 생활한복을 인터넷에서 구입한 김강리(20)씨는 생활한복에 푹 빠져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생활한복 게시물들을 보고 부담 없는 가격과 아름다운 디자인에 매료되어 구매했어요” 가격대는 다양하지만, 보통 인터넷에선 3~4만원 대면 생활한복을 구매할 수 있다. “저는 생활한복을 입을 때 이것이 특별한 날에 입는 옷이 아니라 바지나 원피스처럼 평소에도 입는 옷이라 생각하고 코디해요. 실제로 학교 가거나 놀러 갈 때도 입고요” 김 씨(20)에게 생활한복은 말 그대로 생활 속 의상이 됐다. 전통한복의 고유패턴은 살리면서도, 일상생활에서의 부담을 최소화한 생활한복은 젊은 층을 매료시키고 있다.


세계 속의 한복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복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복 입고 해외여행하기. 처음엔 다소 어색하게 들리지만, 이국적인 풍경 속의 한복은 묘한 매력이 느껴진다. 실제로 생활한복을 구입해 대만을 여행한 김 씨(20)는 SNS를 통해 한복을 입고 해외여행을 간 사진들을 보며 여행을 계획했다고 한다. “현지사람들이 옷이 예쁘다며 말을 걸고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해서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여행할 때 생활한복이 불편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정말 편했어요” 자칫 평범한 여행이 될 수도 있었지만 한복이 특별함을 더해준 것이다. 젊은 층들 사이에서 SNS를 중심으로 한복여행을 인증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세계인에게 한복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흥미만으로 한복 입는 것은 우려

한복진흥센터 박 팀장은 한복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무작정 유행을 좇는 것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한복 안에 반바지를 그대로 입거나 슬리퍼를 신는 등 올바른 복식 예절에 대한 이해가 자리 잡히지 않은 상태를 걱정하는 것이다. “그저 남에게 튀고 싶은 마음으로만 한복을 입고 해외를 나가는 경우들은 우려가 되죠. 드레스 입고 사진 찍는 것처럼? 그래서 복식 예절에 대한 강의나 자료를 계속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박 팀장은 한복의 이슈화와 유행식의 한복 붐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동안 한복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더 이슈화되는 것 같은데, 걱정도 되죠. 훅 꺼질까봐”


유행이 문화가 되기 위한 노력

박 씨는 한복이 SNS 인증놀이와 같은 한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센터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우선 한복에 대한 좋은 소스를 최대한으로 보여주자고 의견을 모으고 있어요. 유명인들이 한복을 입으면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도록 말이죠” 또한 박 씨는 사람들이 한복 자체의 가치에 대해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유네스코에 한복을 무형문화재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 중이에요. 5000년 동안 바뀌지 않고 유지돼 온 한복의 가치와 정신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말이죠”

박 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통 복식의 가치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런 면에서 일본에 본받을 만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일본은 엄마가 딸을 낳으면 적금을 들어서 성인식 즈음에 비싼 전통 옷을 맞춰준대요. 인생의 가장 귀한 순간을 기모노와 함께 하는 거죠” 또 전통복식의 다양성을 배워야한다고 강조했다. “기모노는 수 백 만원의 비싼 가격부터 만 원대의 저렴한 것까지 다양하게 있어요. 일본 관광객들은 가격에 부담 없이 전통복식을 입을 수 있어서 공유할 만한 기회가 많아요.”

그는 이제 한복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생겨났으니, 보다 올바르게 자리잡아갈 수 있도록 교육적이고 제도적인 발판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거기에 젊은 층들의 역할도 중요함을 강조했다. “한복 입는 문화를 살린다는 것은 억지로 한다고 금세 되는 일은 아니죠. 제도적인 측면의 해결은 지자체의 몫이지만, 여기에 젊은 층들이 다양한 방향을 제시해준다면 더욱 탄탄하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들이 있어 든든한 한복의 미래


일본에서 젊은 남녀가 자신들의 전통복인 유카타를 입고 데이트하는 것을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는 김보경씨. 그녀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우리 고유의 옷을 예쁘게 입고 데이트를 하는 것을 보기를 꿈꾸면서 생활한복 쇼핑몰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싶어 여행 가기 전 가장 먼저 챙긴 옷이 한복이었다는 김강리씨. 그리고 하나 둘씩 증가하고 있는 한복 동아리들과 한복문화가 바르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든든하게 지원하고 있는 한복진흥센터까지. 이런 노력에 더해 SNS 상의 한복 인증 유행은 보다 일상 속에서 친숙하게 우리 것을 지킬 수 있어 고무적이다. 이들을 보았을 때, 지금의 한복 유행은 잠깐으로 그칠 것 같지 않다.

박씨는 옷이 가지는 연속성을 주목한다. “민족이 사라지면 언어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죠. 근데 옷은 그대로 남아있대요. 우리는 이민족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잖아요. 한복에도 조금의 변화가 있기도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한복은 오천년 동안 이어져 온 거죠”라며 한복을 이어가는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복이라는 단어 자체는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냥 우리 옷이기 때문에 이름을 굳이 붙일 필요성이 없었던 거예요” 박씨는 한복을 지켜야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한복 관련 단어가 1000개가 넘는데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복식문화가 어마어마해요. 한복이라는 옷 자체로 다른 나라 어떤 옷보다 가치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박씨는 한복이 우리 전통복식으로서 왜 가치가 있는지 스스로 고민해보고 공부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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