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이대역~이대정문 사이에 위치한 노점상들의 모습


이대역을 나와 이화여대 정문으로 향하는 길. 저녁에도 이 길이 환한 것은 가로등, 건물들의 간판에서 나오는 불빛 때문만은 아니다. 호떡, 순대, 떡볶이 등의 분식을 파는 몇 십 개 노점상들의 마차에 달린 전구들에서도 하얀색과 노란색 불빛들이 뒤섞여 뿜어져 나온다. 길을 따라 늘어서 있는 노점상 천막 안 불빛 아래서 사람들이 떡볶이를 먹고, 어묵 국물을 마신다. 하지만 내년 상반기가 되면 이대 앞에서는 천막 모습의 노점들을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서대문구청이 3월부터 이대역~신촌기차역 사이의 노점 거리에 대해 정비사업을 시작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대 거리가게 특화거리’예정 둘러싸고 서대문구청과 노점상 갈등

서대문구청은 노점상 마차들을 철거하고, 미니스톱(이대역점)에서 신촌기차역에 이르는 ‘ㄴ’자의 길과 신촌기차역 앞 쪽의 길([사진 2])을 ‘이대거리가게(노점상)특화거리’로 지정해 ‘스마트로드숍’을 설치할 계획을 갖고 있다. 재산조회를 거쳐 기업형과 생계형을 가린 후에 생계형 노점을 대상으로 ‘스마트로드숍’ 운영자격을 부여할 예정이다.

‘스마트로드숍’([사진2])은 서대문구가 앞서 연세로 정비를 시작하면서 기존 포장마차 노점을 규격화된 거리가게로 바꾸면서 붙인 이름으로, 2.5m(가로)*1.7m(세로)*2.4m(높이)이며 전기와 수도시설을 갖추고 있다.

                         ▲[사진2] 연세로에 위치한 스마트로드숍(Smart Road-shop)


현재 이대역~신촌기차역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노점상의 개수는 68개. 이중 (가칭)이대지부 (이대노점상연합회) 소속의 노점은 35대, 민주노점상연합회(이하 민노련)소속의 노점은 22대다. 이들 노점상 연합회를 비롯한 노점상들은 구청의 위와 같은 ‘이대 거리가게 특화거리’ 계획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사진 3] 현재의 노점상들을 철거되고, ‘스마트 로드숍’이 들어설 예정인 거리 구간.

10년 넘게 이대역 쪽에서 계란빵과 떡볶이를 팔아온 김종규씨도 구청의 ‘이대 거리가게 특화거리’계획에 불만을 나타냈다. 이대노점상연합회 지부장을 맡고 있는 김씨를 비롯한 이대 앞 노점상들이 갖고 있는 불만은 크게 두 가지다.
 

-기존 노점상들 ‘스마트로드숍’ 추가 비용 부담

첫 번째 불만은 구청에서 제시하는 것처럼 ‘스마트로드숍’ 형태의 가판대로 바꿀 경우 노점상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돈이 생긴다는 것이다. 김종규씨의 말이다. “오세훈 시장 시절에 지정해 준 마차형태로 530만원을 주고 바꿨어. 지금 이 마차가 그거야. 그런데 바꾼 지 8년밖에 안됐는데 지금 서대문구청이 얘기하는 스마트로드숍 가판대로 바꾸려면 1,000만원이 들어. 여기에 전기로 시설이 바뀌면 전기료가 추가되겠지. 8년만에 다시 1000만원 넘게 부담해야 하는 것이 억울해.”

이미 노점 정비가 완료돼 가판대 형태로 장사를 하고 있는 연세로의 경우 일정 부분을 서대문구에서 노점상에게 지원해주고 나서 월세로 임대료를 받는 형식인데, 이대 앞의 경우에는 어떠한 지원도 없어 노점상 개인이 모든 돈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어.” 실제 연세로에 스마트로드숍을 설치했을 당시 서대문구에서 가판대와 관련해 돈을 부담했으며, 현재 노점상인들은 달마다 도로점용료와 임차료를 내고 있다.

노점상들이 지원을 받기 어려운 데에는 예산의 문제도 있다. ‘이대거리가게특화거리’사업의 경우 서대문구의 예산으로 진행을 할 예정이며, 구청에서 서울시에 예산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대문구 이대 앞 도로의 경우 서울시 소유의 도로가 아니고 구 소유의 도로이기 때문에 예산 지원이 어려우며, 서대문구에만 예산을 지원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있어서 어렵다”라고 말했다.
 

-노점상 개수 줄어들고, 기존 자리에서 이동

이대 앞 노점상들이 가진 두 번째 불만은 현재 노점상 중 일부는 재산 기준에 따라 장사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며, 장사를 할 수 있게 되더라도 구청이 지정한 자리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민노련에 따르면 서대문구는 미니스톱 앞쪽 거리에 9개, 신촌기차역 앞 야외 화장실 부근거리에 10개, 이대역앞~이대정문 길에 24개, 총 43개를 스마트로드숍 형태로 설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대 앞에서 노점을 운영하는 이씨는 서대문구의 이런 정책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 이대역 앞에서 이대정문까지 이 길에 24개가 들어가는 것은 말이 안돼. 양쪽 길도 아니고 한쪽 길인데. 다닥다닥 붙어서 들어가기도 힘들걸.“ 이씨는 노점상을 43개로 줄이게 되는 것에도 불만을 나타냈다. “이렇게 되면 이 안(노점상을 운영하는 사람들)에서도 싸움이 날 수 밖에 없어.”

최오수 민주노련 대외협력국장은 위와 같은 계획이 노점상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노점상들은 보행자가 많은 곳에 있어야 하는데 보행자가 별로 없는 곳으로 옮기게 되면 유지가 되지 않으며 이는 결국 노점상에게 부담을 지우고 노점상을 점점 감축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서대문구는 노점상을 감축하겠다는 얘기를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겠지만 실제로는 노점상의 수를 줄이겠다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되는 거죠.”


‘이대특화거리가게’의 구체적인 계획과 논란에 대해 서대문구는 자세한 세부 계획에 대해서는 논의 중일 뿐이며, 논란에 대해서도 정확히 정해진 것은 없다며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다만, 서대문구 건설관리과 방제두씨는 “내년 3월에 사업이 추진되는 것이 맞다”라며 “이대 앞 노점을 정비하려고 하는 것은 도로 폭이 좁고, 계속해서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거리가게 특화거리 사업 현황>에 대해 행정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서대문구의 거리가게 특화거리 사업을 진행 중(혹은 진행완료)인 곳은 2곳으로 확인됐다. 연세로와 이대입구다.
 

자치구별 ‘거리가게특화거리사업’ ….. 서울시의 정책 아래 증가

구와 노점상의 ‘거리가게 특화거리 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서대문구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동작구에서 ‘거리가게 특화거리 사업’을 추진해 ‘컵밥 거리’에 자리잡고 있던 노점상을 사육신 공원 쪽으로 옮긴 후에도 갈등이 남아있다. 기존의 ‘컵밥 거리’에서 공원 쪽으로 갈 수 없다며 이전을 거부한 노점상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거리가게 특화거리 사업’이 시작된 배경에는 서울시의 노점 관련 정책이 있다.

서울시 박원순 시장이 ‘생계형 노점에 대해서는 소통과 상생하겠다’는 것을 약속하면서 이후 서울시의 각 자치구에서는 ‘거리가게 특화거리 조성사업’이 시작됐다. 이 사업은 ‘시민들의 안전한 보행’과 ‘생계형 노점상의 안정된 생계유지 도모’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아래 표와 지도([표1], [지도])(2014년 3월 기준)에서 볼 수 있듯이 서울시의 여러 구들에서 거리가게 특화거리 사업을 추진했다. 현재는 아래 표와 지도([표2], [지도2])를 보면 이보다 더 많은 자치구에서 사업을 추진했거나 추진하고 있다(2015년 9월 31일 기준).

서울시는 ‘거리가게 특화거리 사업’을 인센티브 사업으로 지정해 각 자치구를 대상으로 인센티브를 지급해왔다. 서울시는 2014년까지 거리가게 특화거리 사업을 추진하는 자치구를 대상으로 자치구 평가 시 100점 만점 중에서 노점상 관련 항목(5점 만점)에 대해 추가점수를 지급했으며 이와 같은 서울시의 정책 아래 ‘거리가게 특화거리 사업’을 시행하는 구는 증가해왔다. 서울시는 올해 2015년부터는 인센티브를 지급하지 않고 있는데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이제 거의 모든 구에서 5점 만점에 만점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노점상 문제 다룰 큰 틀의 제도가 없어
거리가게 상생위원회 추진…갈등

서울시의 노점상 관련 정책 방향을 수용해 각 자치구에서 ‘거리가게특화거리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갈등이 일어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서울시에 노점상과 관련한 문제를 다룰 제도가 없다는 것에 있다. 서울시는 현재 노점상 관리와 정비를 각 자치구에 맡기고 있다. 생계형-기업형 노점상의 분류 기준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거리가게가 들어설 시 도로규격 폭은 어느 정도로 유지해야 하는지 등등 ‘거리가게특화거리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논쟁점이 되고 있는 것에 해결책을 제시할만한 어떠한 정책적 제도도 마련돼 있지 않다.

서울시도 노점상과 관련해 제도적 마련의 필요성을 느끼고, 2014년부터 ‘서울시 거리가게 상생위원회’를 만들어 노점상 관련 조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상생위원회는 공무원, 교수, 노점단체, 시의원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관련 조례를 만들기 전 조례에 들어갈 노점과 관련한 여러 기준에 대해 논의를 해왔다. 노점상의 규격과 디자인 같은 경우에는 일정 부분 합의점에 도달한 상태며, 서울시는 늦어도 내년에는 조례를 만들 계획이다.

그러나 현재 상생위원회는 중단된 상태다. ‘노점 운영 자격 기준’을 놓고 서울시와 민노련이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민노련 측에서 회의를 거부하고 있다. 서울시 보도환경개선과 보도환경팀은 “ 현재 가판대 규정처럼 재산 3억 미만과 서울시를 거주지로 둔 사람을 대상으로 노점 운영 자격을 부여하려고 했으나, 노점 쪽에서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고 해 설득 중”이라며 “다시 회의에 복귀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를 거부하고 있는 민노련은 현재 서울시의 노점관련 조례에 대한 방향성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초창기 ‘거리가게 상생위원회’에서는 노점상의 입장을 많이 반영해줬고, 노점상도 서울시가 내건 ‘슬림한 거리의 디자인을 가미한 시민들과 함께하는 거리가게’ 슬로건에 공감하며 시와 노점상관련 문제에 대해 합의를 해 나갔다.

그러다 6개월 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생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왔던 최오수 민노련 대외협력국장은 “중간에(지금으로부터 6개월전에) 서울시 실무자가 바뀌면서 그 전부터 진행해 오던 방향에서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그전에 합의했던 부분을 시에서 일방적으로 파기했다”라고 비판했다. 서울시와 노점상 측은 ‘노점상을 운영하는 사람의 재산 공개’, ‘신규 회원에 대한 가입 제한', '해당 지역 거주자 우선', '연장 기간을 5년으로 둔다'등의 조항에서 합의를 하지 못했다. 앞의 조항들을 시에서는 6개월 전부터 다시 조례내용에 추가하기를 원했고, 노점 측은 위 조항들에 대해 수정 또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민노련 측은 차상위 계층 혹은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고려가 같이 이루어져야 하며, '해당 지역 거주자 우선'의 경우 노점상 이용자에 관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연장기간'의 경우 재산과 연결되는 조항으로, 대상자가 누구냐에 대한 부분과 차나 집 같은 자산이 돈으로 환산되는 부분에서 '실제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을 고려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국장은 “실무자들이 중간에서 박원순 시장의 뜻을 자르는 것인지 애초부터 서울시의 노점상 관련 방향인 것인지를 확인할 것”이라며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을 요청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와 노점상 측이 합의를 계속해 나갈 부분”이라고 답했다.

누군가에게는 노점상들의 포장마차가 도로 공간만 차지하는 정리가 필요한 대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주황색 천막의 포장마차가 그들의 삶이라는 점에서 노점상 정비를 통한 ‘거리가게특화거리사업’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대 앞에서 10년 넘게 노점상을 해 온 김모씨에게 노점은 ‘그저 음식을 팔아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 내 10년의 삶도 있는 거야.“ 그런 김씨는 요즘 자신의 10년의 삶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딱 한가지다. “그냥 내가 장사해 온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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