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한 파티에서 처음으로 포르노를 경험했다. 팝콘, 잠옷 그리고 포르노가 있었다. 우리는 성의 신비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가득 차 있었다. 금지된 열매를 상상하며 키득키득 웃어댔다. 그러나 우리가 마지막에 느낀 것은 ‘혐오감’ 이었다.”

테드엑스(Tedx) 강연에서 에리카 러스트(Erika Lust)가 한 말이다. 스웨덴 출신의 포르노 감독인 그는 스웨덴 룬드대학교(University of Lund)에서 정치학, 페미니즘 그리고 섹슈얼리티를 공부했고, 현재 바르셀로나에서 활동하고 있다.

스웨덴은 세계 최초로 학교에서 성교육을 필수로 지정할 만큼 성평등이 확립된 국가다. 그의 첫 포르노 경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런 스웨덴에서 조차 포르노는 남성의 시각에서 소비된다. 그리고 여성으로서 그는 포르노에서 ‘혐오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경우는 훨씬 더 비극적이다. 추산 가입자가 100만 명인 ‘소라넷’이라는 온라인 사이트에선 불법적인 몰래카메라 영상과 성범죄가 넘쳐난다. P2P사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여자 친구와의 성행위를 동의 없이 찍어 올리는 경우도 흔하다. 여성이 성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에서 나아가 불법적인 행위의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에리카는 포르노 산업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산업 내에 여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작자, 감독, 작가로서 말이다. 포르노그래피는 하나의 담론이며 그 담론에 여성이 주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 안에서 여성들은 살아 있다. 주체적이다. 남성과 같은 인간으로서 존재한다.

그는 말한다. “성행위는 더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 가치는 깨끗해야 한다(The sex can stay dirty, but the values had to be clean).”
 

-“페미니스트 포르노(Feminist porn)"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꽤 간단하다. 페미니스트 포르노는 페미니스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일반적인 포르노와 비교해 페미니스트 포르노에서는 여성의 즐거움과 분명한 합의 및 다양한 신체 유형, 인물, 각본을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페미니스트 포르노의 경우, 연기자들이 행복하고 건강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동시에 재정적으로도 공정하게 보상하고 있다. 독자들은 섹스와 욕망의 광범위한 표현을 통해 만족하고 있다. 나는 섹스를 둘러싼 흥분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여성의 신체만 부각되는 것이 아닌 키스, 전희, 사람 사이의 열과 불꽃을 포착하고 싶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포르노가 여성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은 오해다. 실제로 독자 중 절반은 남성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화와 같은 수준으로 제작된 고품질의 성인물을 보고 싶어 하며, 영화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공정하게 참여했는지 알고 싶어 한다."

 

 

 

 

 

 

 



▲ 영화 촬영 중인 에리카 (사진 출처 erikalust.com)


-당신의 영화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묘사되는가?

"내 영화에서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여성 그 자체로 묘사된다. 즉, 스스로의 의견, 생각, 욕망을 가진 성적 주체로 묘사된다. 자신의 성을 즐기고 섹스와 욕망에 대한 주체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다. 오직 섹스를 하고 있는 순간에만 존재하지 않으며, 각자의 삶과 관심사, 독특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여성은 기쁨의 주체이지, 단지 욕망의 객체가 아니다."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스웨덴은 페미니스트의 양심을 수십 년에 걸쳐 실천한 나라다. 페미니즘 덕분에 정부를 포함한 일반 사람들 역시 기본적으로 여성의 권리 뿐 아니라 육아 휴직 등과 관련한 남성의 권리에 관해서도 꽤 계몽적이다. 스웨덴 정부는 페미니즘이 손해가 아닌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자라는데 있어 페미니즘은 확실히 정치적 생각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스웨덴도 성 차별 문제가 존재한다. 세계에서 아무리 ‘평등한’ 국가라고 해도 말이다. 어떠한 권리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페미니즘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성 문제를 다루는 수단이다. 그냥 "됐어, 이제 평등하다!"라며 넘어갈 수는 없다."

-린다 윌리엄스(Linda Williams)의 <<하드코어(Hard Core: Power, Pleasure and “The Frenzy of the Visible”)>>가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가?

"그 책은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다른 방식으로 포르노를 바라볼 수 있게 했다. <<하드코어>>는 포르노의 광대한 문화적 장르를 분석한 첫 번째 책이었다. 역사, 형식, 규정 및 메시지의 장르를 정밀하게 분석했다. 별로 차이를 느끼지 못했던 반(反)포르노·반(反)검열 논쟁을 떠나 대신에 저자는 ‘극도로 노골적인 포르노(hard-core film pornography)’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를 특정한 영화의 형식과 성에 대한 현대적인 담론의 부분으로써 분석했다. 이를 통해 포르노가 담론, 즉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 이해함으로써, 나는 전통적인 포르노가 하지 않았던 섹스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다른 가치를 보여주는 것을 통해 다른 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이 포르노 감독으로 데뷔한 2004년과 비교해 현재 어떠한 변화가 느껴지는가?

"기술 발전과 인터넷 덕분에 포르노는 매우 빠르게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변화했다. 아마 이 주제로 책 한 권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대안 포르노에 대해 말하자면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후에 페미니즘, 윤리를 강조한 감독들이 반갑게도 큰 규모로 증가하고 있다. 섹스, 사랑과 에로티시즘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보여주길 원하는 많은 제작자들이 생겨났다."

-현재 성인 산업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최근의 근황은 어떠한가?

"지금 6번째 엑스컨페션(XConfessions)을 촬영하고 있다. 항상 그래왔듯이 바쁘다. 하지만 매우 보람차다. 창조적인 도전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촬영해야 하는 양이 매우 많다. 우리는 매 달 두개의 단편 영화를 촬영해야 한다. 물론 촬영 전·후에도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 영화는 장소에 있어서 종종 신중한 계획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최근 비행장과 비행기에서 촬영했는데, 당신도 예상하겠지만 모든 안전 예방 조치를 수행해야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두 여자아이의 어머니로서도 매시간 근무 중이다."

-엑스컨페션 프로젝트(XConfessions project)는 어떠한 프로젝트인가?

"확실히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 중에 가장 야심차고 포괄적인 프로젝트다. 엑스컨페션(XConfessions)은 전 세계 사람들이 그들의 성적인 환상, 비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모두가 가입하고 이용할 수 있다. 이 중 매달 두 편을 엄선해 단편 영화로 제작한다. 기본적으로 엑스컨페션(XConfessions)은 크라우드 소싱 성인물(crowdsourced erotica)이다! 실제 사람들의 추억 그리고 진짜 흥분 되는 이야기들을 토대로 영화를 만든다. 이 때문에 나는 엑스컨페션(XConfessions) 프로젝트를 사랑한다. 사람들의 환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람들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엑스컨페션(XConfessions)은 성장하는 방대한 인간의 성에 대한 도서관이다. 엑스컨페션(XConfessions)은 감독으로서 내가 항상 상상력 넘치는 멋진 이야기를 제공받게 하며 독자에게는 그 대가로 기존 포르노 규범과는 다른 무언가 흥미로운 영화를 제공해준다."

-여성 섹슈얼리티의 해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성들은 큰 진보를 해왔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그리고 그 길에서 섹슈얼리티는 큰 부분이다. 여성들은 섹슈얼리티에 관한 문제에 있어 오늘날 여전히 두려움에 떨고 있다. 성폭력이나 성희롱은 말할 것도 없이 그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가족계획이 기피되며, 어린 소녀들은 포르노 배우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여겨질까 봐 스스로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것에 죄책감(slutshamed)을 느낀다. 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많은 노력과 교육이 행해져야 한다. 모든 부정적 현실들 사이에서 다행히 많은 수의 젊고 깨어있는 사람들이 계속적인 페미니즘 투쟁을 하고 있다. 여성은 조롱과 창피당하지 않을 권리, 침묵하지 않을 권리, 어떠한 경우로도 상처받지 않을 권리, 그들만의 언어로 성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아시아로 활동을 확장할 계획이 있나?

"아시아에 있는 사람들이 내 영화를 보고 즐긴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전 세계로부터 사랑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대단히 좋아한다. 그리고 아시아 여성들과 남성들의 환상에 대해 알게 된다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몇 가지 조사를 통해 한국에서 포르노를 포함한 "음란물"에 대한 검열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전혀 그럴지 몰랐다!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현대적이고 개방적인 나라였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검열이 사람들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그 방법을 믿지 않는다."

-인간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으로서,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젊은 여성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세계 경제 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연례 "성별 격차 보고서“에서 한국은 142개국 중 117위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 협력 개발기구(OECD)에서는 한 멤버를 제외하고 맨 아래다. - "한국 여성에게 더 우울한 읽을거리(More Depressing Reading for Korean Women)", 2014년 10월 24일, 월스트리트 저널)

"참으로 우울한 현실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의 여성들에게 너무 큰 연민을 느낀다. 변화는 가능하다. 하지만 내가 한국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조언까지 하기는 힘들다. 오직 그들만이 자신의 입장과 자신이 원하는 변화가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들에게 사랑을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연대를 통해 노력할 수 있길 바란다. 한국의 여성들을 믿는다!"

-꿈이 있다면?

"먼저 엄마로서 내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란다. 감독으로서는 창의적인 영화를 제작하고 싶다, 동시에 예술적으로도 스스로를 시험에 들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계속해서 사랑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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