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의 글에는 '버럭'이 없다. 자신의 주장이 무조건 맞다는, 아집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에 대한 차분한 읊조림이 있다. 마치 부끄럼 많고 차분한 성격의 어른이 "내 이야기 한 번 들어볼래?"하는 것 같다. 그의 주장이 나와 다르더라도, 다시 한 번 그의 주장을 곱씹어 보게 되고, 그의 글을 다시 읽어보게 되는 이유가 나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독자 이상무 씨

열혈 독자 이상무 씨(26)는 이렇게 평가했다. 중앙일보 권석천 기자가 쓴 칼럼을 빠짐없이 읽은 이 씨가 권 기자의 칼럼에 대해 적어서 보내준 내용이다. 권석천 기자는 현재 중앙일보 사회2부장으로 재직하며 칼럼을 쓰고 있다. 이상무 씨는 기자 지망생으로, 권 기자의 칼럼을 챙겨보며 공부하고 있다. 잘 모르는 법 이야기나 법조계 풍토를 미리 배우고 좋은 글의 표본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씨가 칼럼을 챙겨 읽는 이유다.

이상무 씨 외에도 권석천 기자의 칼럼을 즐겨보는 사람들이 있다. 네이버 블로거 starry2322는 지난 1월 29일 자신의 블로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칼럼인 중앙일보 '권석천의 시시각각'이 돌아왔다. 권석천 기자님께서 사회2부장이 되신 이후로는 더 이상 시시각각은 안하셨는데, 갑자기 1월 19일 오늘 약 7개월 만에 '권석천의 시시각각'이 재등장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 써주셨으면 좋겠다”라고 글을 남긴 바 있다. 그러면서 그의 칼럼을 공유했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으로 중동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노석조 씨도 지난 2012년 10월 17일 블로그에 권석천 기자의 칼럼을 스크랩한 뒤 “간지러운 데를 잘 찾아 긁어주는 글”이라고 표현했다. 또 “2011년 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 시절 현장에서 종종 만났다”며 “권 기자가 당시 중앙일보 법조팀장인데, 막내기자나 보내질 취재현장에 직접 나타나 강한 인상을 남겼다”고 짧게 덧붙였다. 권 기자의 칼럼에는 어떤 특징과 힘이 있기에 이렇듯 열혈 독자들이 있는 것일까. 지난 4월 3일 중앙일보 앞 카페에서 권석천 기자를 만나 칼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법조기자 경력에서 비롯된 칼럼
법조기자란 법조계(法曹界)를 취재하는 기자로, 법원과 검찰 등을 취재한다. 권석천 기자는 1990년대 초반부터 10년 넘게 법조기자로 일했다. 그의 글에는 법조계 이야기가 많다. 권석천 기자가 2012년부터 중앙일보에 쓴 칼럼들을 분석했다. 기명칼럼 ‘권석천의 시시각각’, ‘분수대’, 취재수첩 형식의 ‘노트북을 열며’가 분석 대상이었다. 칼럼에 법 내용이 담긴 경우, 판결문을 소재로 쓴 경우, 법조계 인사(판․검사, 변호사) 관련한 경우, 법조계 사람의 말을 인용한 경우, 법원․헌법재판소․검찰청 등 사법기관 자체에 대해 다룬 경우 등을 법조계 관련 내용 칼럼으로 분류했다.

권석천 칼럼

전체 수 (2012年 ~ 현재)

137개

법조계 관련 내용 칼럼 수

77개 (전체 중 약 56.2%)

그 결과 2012년부터 쓴 139개 칼럼 중 77개가 법조계 관련 내용이었다. 전체의 약 56%를 차지한다. 나머지 44% 칼럼의 소재와 분야는 다양하다. 행정부와 국회를 비판하는 내용부터 미국 힙합 가수 에미넴(Eminem)의 내한 공연장에서 느낀 소회를 밝힌 내용까지 다채롭다. 전체 칼럼 수의 절반 이상을 법조계라는 공통 소재로 쓴 셈이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믿는다, 나는 느낀다
눈앞의 이런 일들이 지난해 세월호 문제를 넘어서지 못한 업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세월호는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다. 국가의 무능과 자본의 탐욕을 자각하고, 반성하고, 개혁해야 할 시점이었다. -시시각각 ‘세월호 이후의 세상’ 2015.1.19.

직업적 자존심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나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노력을 기울인다면 많은 게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 경찰은 검사 앞에서, 검사는 판사 앞에서 직업적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수사를 해야 한다. 기자도 다르지 않다. 나는 안일함이나 경솔함 때문에 팩트를 놓치거나, 판단을 그르쳤음을 깨닫게 되거나, 글에 오․탈자가 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시시각각 ‘김용판, 부끄러움은 없었다’ 2014.2.12.

그래서 나는 언론이란 이데아에 청춘을 바치려는 젊은이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대견하면서도 착잡하다. 젊은 기자들이 떠나는 이유가 비단 경제적 대우나 불투명한 미래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진실의 사도가 되겠다는 꿈을 키워온 그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여건을 만들어주지 못한 탓도 크다. -시시각각 ‘신문은 끝났다?’ 2013.8.28.

권석천 기자는 ‘나는 생각한다’, ‘나는 믿는다’, ‘나는 느낀다’라고 자주 쓴다. 그의 칼럼 5편 중 1편에는 꼭 들어가 있는 표현이다. 권 기자는 이에 대해 “나의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소설가 김훈이 칼럼은 편견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고 덧붙였다. 칼럼이 개인의 생각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자연스레 ‘나’라는 화자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권 기자는 인터뷰 도중에 모든 글은 감정에서 쓰여진다는 자신만의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비웃고 싶다, 눈물 난다, 어이없다 등의 개인적 감정에서 글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대부분의 칼럼이 화자인 ‘나’를 배제한 채 독자들에게 ‘이렇게 해야합니다’라고 쓰는데, 나는 내 감정에서 시작된 글이므로 차라리 나만의 편견임을 드러내고 써야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철학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도 받는 것 같다”며 웃었다. 실제 네이버에 권석천 기자를 검색하면 ‘광주의 아들’, ‘좌빨’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판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글에 밝혔다가 돌아온 평가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권 기자는 “편견을 드러냈으니, 당연히 돌아올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칼럼에도 직접 인용과 상황 묘사 사용
권석천 기자는 칼럼에도 직접 인용을 많이 사용한다. 인터뷰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대로 칼럼에 담아낸다.
왜 그러지 않았습니까. 내 물음에 홍경령의 안경 속의 눈동자가 붉게 흔들렸다. 당황했습니다. 도주 피의자를 잡지 못하면 문책 당한다는 생각에…. 모든 책임은 수사검사인 제게 있습니다. 지금도 유족들께 죄송합니다. -시시각각 ‘고문 검사 홍경령의 진실’ 2013.10.16.

인터뷰 기사 형태로 싣는 경우도 있다.
 -법조문이 ‘외계어’ 같다. 무슨 뜻인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에서 과징금이나 영업정지 같은 것을 맞았을 때 재판을 하려면 공정위가 있는 지역을 담당하는 서울고등법원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시시각각 ‘기업에 3심제를 허하라 2014.3.19

또한 직접 현장에 다녀온 내용을 칼럼에 담아내는 일도 잦은 편이다.
 겨울비가 내리는 지난주 금요일 저녁. 서부이촌동 거리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도로변 상가 점포 중 몇 곳만 불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가 앞에서 마주친 ‘이촌반점’ 주인 김홍재(59)씨는 화부터 냈다.
 “용산국제업무지구 한다고 철도 정비창이랑 우편집중국 옮기면서 상권이 완전히 죽었어요. 하루에 자장면 서너 그릇 팔고 있으니…가게도 못 내놓고 보상금은 안 나오고 대한민국이 국민 죽이고 있는 겁니다.” -시시각각 ‘새 정부의 첫 시험대, 용산 개발’ 2013.2.6

권 기자는 “내가 사람들의 말을 쿼트(직접 인용)로 넣거나 현장에서 관찰한 그대로 쓰는 이유는 독자의 판단을 흐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밝힌 뒤, 그 생각의 근거를 직접 인용과 현장 묘사로 보여준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직접 보여주고 내 견해를 글에 밝히면, 그 생각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독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또한 권 기자는 “칼럼에서 ‘이렇게 해야한다’고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칼럼은 독자들에게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견해를 보여주는 방식일 뿐이라는 뜻에서였다.

다양한 형식의 시도
권 기자의 칼럼은 지루하지 않다. 다양한 형식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미국 워싱턴 정계에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은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극중에서 가난한 환경을 이겨낸 뒤 민주당 원내대표가 된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의 입을 빌어 칼럼을 쓴 적도 있다. 그는 이를 통해 우리 정치권을 비판했다.

솔직히 나는 한국 정치인들이 마음에 드오. 입법보다 진영싸움에 올인하는 당신들이. 선거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당신들이. 따지고 보면 우린 비슷한 회색지대를 걸어가고 있소. 언젠가 당신들과 함께하고 싶소. 대통령이 마음먹으면, 당론이 정해지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건 나의 ‘가차 없는 실용주의(ruthless pragmatism)’에 맞는 것이오. 한국 정치가 효율성 있는 정치인지 의문이지만…. -시시각각 ‘하우스 오브 카드 냉소할 일인가’ 2014.4.2

사용설명서 형식으로 배임죄에 대한 칼럼을 쓴 적도 있다. 법률용어사전에 따르면 배임죄란 타인을 위해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하는 죄다. 이는 타인의 재물을 보관하는 자가 그 재물을 횡령하거나 반환을 거부함으로써 성립하는 횡령죄와 혼동하기 쉽다. 권 기자는 글을 통해 어려운 법률용어를 쉽게 풀고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여기 형법 제 355조 2항이 있다. 배임죄다. 기업 수사의 흙바람이 일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한다. 오늘은 이 법 조항의 기능과 사용법을 익혀보도록 하자.
1. 기본 사양 : 배임은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손해를 가한 때’ 처벌하는 것이다. 임무 위배? 대법원 판례는 “당연히 해야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적용 범위가 ‘광대역’이란 뜻이다. 법정형은 일반 배임 징역 5년 이하, 업무상 배임 징역 10년 이하다.
2. 발전 과정 : 원산지는 독일이다. 일본을 거쳐 1953년 형법 제정 때 수입됐다. 이사 등의 경영 행위에 본격 적용되기 시작한 건 97년 외환위기 때부터다. 부도 기업에서 경제계 전반으로 확대됐다. “경제위기의 주된 원인이 기업 경영자의 부도덕성에 잇는 것으로 인식되고, 경영자의 경영 실패를 형사상 처벌이 필요한 범죄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게 강동욱 동국대 교수의 분석이다(2012년 논문) -시시각각 ‘배임죄 사용설명서’ 2014.2.5.

권석천 기자는 “나는 신선하게 쓰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독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기를 권 기자는 바란다. 때로는 존댓말로, 때로는 반말로 쓴다. 가끔은 자신을 1인칭 화자로 두고 서술하기도 하고, 또 어느날은 제3자의 시선에서 글을 풀어내기도 한다. 권석천 칼럼을 즐겨 읽는 독자 이상무 씨는 “글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다양해 배울 점이 많다”고 읽는 이유를 설명했다. 다양한 형식으로 글을 쓰려는 권 기자의 노력이 독자를 끌어 모으는 동력이 되는 셈이다.

그의 칼럼은 화자인 ‘나’를 정확히 서술한다. 주장만 있는 글은 아니다. 직접 인용과 다양한 현장 묘사가 주장을 뒷받침 한다. 이런 글쓰기 과정은 모두 독자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또한 글의 형식은 다양하다. 간결한 현대어로 쓰기도, 때로는 한시(漢詩) 형태로 쓰기도 한다. 재밌게 본 드라마나 책이 있다면, 그 주인공으로 변신하여 편지글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노력 또한 독자들의 재미와 이해를 위함이다.

미디어오늘에서 출간한 <언론인 24시>에는 법조기자에 대해 이렇게 설명돼있다. “법조기자들은 검찰, 판사 등 소위 ‘권력 엘리트’로 통칭되는 까다로운 취재원을 상대하는 만큼 취재에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법조기자의 일상에 대해서 CBS 최철 기자는 <기자수업>이라는 책에서 “법조기자의 하루는 샛별을 보며 시작해 또 다시 별을 보고서야 하루가 끝난다. 모든 기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법조팀은 타사와 특종 경쟁이 심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매일 매일이 서로 물 먹이고, 물을 먹는 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법조기자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권석천 기자에 대한 편견이 생겼다. 까다로운 취재원과 10년 넘게 접촉하며 그 또한 까다로운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염려스러웠다. 그의 칼럼들을 읽으며 편견은 더욱 견고해졌다. 139개의 칼럼들은 간결한 문장들로 구성돼있었고, 그는 확고한 주장을 현장 묘사나 직접 인용을 통해 촘촘하게 전개했다. 어려운 법 이야기도 많았다. 이런 사실들은 그를 재미없고 딱딱한 사람일 것이라고 상상하게 했다. 그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직접 만난 그에게서는 사람냄새가 났다. 식사를 하지 못한 필자를 배려해 케익을 나눠 먹자고 제안했으며, 인터뷰 내내 스무살 가량 어린 기자 지망생을 존대했다. “기자 시험을 치르며 어려운 부분이나 궁금한 점이 없냐”고 먼저 묻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글에 대한 평가를 궁금해 했다. 칼럼이 어렵다는 몇몇 친구들의 평가가 있었다고 말하자 권 기자는 “법률 용어가 어려워 쉽게 쓰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어렵다면 더 쉽게 쓰도록 노력 해야겠다”고 말했다.

권석천 기자는 인터뷰 도중 말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라고. 그의 노력이 담긴 글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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